123화. 느긋한 망고(3)
백담사
“성원 스님 생각은 해보셧습니까?”
진석이 망고 빙수를 가지고 찾은 곳은 백담사였다. 사찰 음식 식당에 대한 제의를 해놓고, 성원 스님의 답을 기다렸지만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진석은 겸사겸사 백담사를 다시 찾았다.
“이게 뭐에요?”
“빙수입니다. 망고로 만든 과일 빙수인데, 녹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네요.”
진석은 아이스박스를 열어보았다. 다행히 공간을 거쳐 빠르게 온 덕에, 망고빙수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여름에는 사찰은 무척이나 덥네요.”
“예, 산이라서 도시보다는 시원한 편이지만, 한여름에는 무덥기는 마찬가지죠. 이게 망고빙수군요. 어디 한 번 먹어 볼까요.”
성원 스님은 빙수를 스푼으로 천천히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음, 굉장히 상큼한 맛인데요. 별로 달지도 않고.”
“하하, 이건 좀 특이한 망고로 만든 빙수죠. 저희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하얀 망고로 만든 겁니다.”
“망고가 흰색도 있나요?”
성원 스님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실 것 같아서. 망고도 좀 챙겨왔습니다.”
진석은 망고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진짜 하얀 망고네요.”
“속은 일반 망고와 비슷합니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뭐가요?”
“겉모습은 다 다르지만, 속은 다 비슷비슷하죠. 하고 있는 고민도 비슷비슷하고요. 그러니까 스님들이 이 산속에 계시면서도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호호, 무슨 도사님 같이 말하시네요.”
성원 스님은 망고 빙수를 천천히 먹으며 부처님 같은 염화미소만 짓고 있었다. 진석이 사업에 대해 물어봐도, 별다른 말없이 살짝 미소만 보이며 빙수를 먹는데만 전념하는 것 같았다.
얼핏 봐서는 맛잇는 빙수에 정신이 팔린, 아이같은 모습이었다.
“제 얘기는 안 들으시고 빙수만 드시는 거 아닙니까?”
“후후,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부처님 말씀과도 같아서,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죠.”
“음..”
무슨 말일까? 부처님 말씀 외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속세의 식당 같은 것에는 역시 관심이 없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석의 사업 제안은 물 건너 같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진석도 마음이 느긋한 편이었다.
뭐, 할 수 있으면 해보겠다는 정도로 성원 스님에게 제안을 한 일이다. 사찰 음식이 탐이 나기는 하지만, 채식 프랜차이즈 식당은 다른 식으로도 충분히 기획이 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성원 스님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주지 스님에게 여쭈어봤는데.”
“뭐라고 하시던가요?”
“주지 스님은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고,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라고만 하셨습니다.”
“음, 하하, 스님들이라 그런지 뭔가 선문답 같은 분위기네요.”
“중들이 사는 법과, 불경 공부가 다르지 않으니까요. 불교가 원래 그렇습니다. 사는 법에 대한 공부죠.”
“그렇다면 해답은 성원 스님에게 있는 거군요?”
성원 스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실은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음, 결론이 나온 건가요?”
“아뇨,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만 어지러워지고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하하,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스님의 머리만 어지럽혔군요.”
진석의 말에 성원 스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답이 없는 문제에 스스로 자문해 보고 답을 찾는 것이 불경공부죠. 불가에서는 그걸 화두라고 합니다.”
“음, 난제를 던져주고 답을 찾으라는 건가요?”
“뭐 꼭 답을 찾으라기보다, 왜 그것이 답하기 어려운가를 궁리하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죠.”
“하하, 정말 선문답이네요.”
진석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말만 하는 성원 스님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진석의 사업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아니면 거절인가? 아니면 여전히 미결정이라는 것인가?
“제가 마음이 이렇게 어지러운 걸 보니, 제가 속세에서 하던 요리에 아직 미련이 남아 있나 봅니다.”
“음, 그러면?”
“불가에서는 그런 미련을 잘라내고 마음을 고요히 하라고 가르치죠.”
역시, 성원 스님의 마음은 사찰 식당 사업에는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괜히 스님의 머리만 복잡하게 해드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마음이 고요해지겠습니까?”
“그러면?”
“여러 날 고민을 해봤는데,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사찰 음식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사찰에서 명상하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약간 복잡한 이야기지만, 사업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좋습니다. 허락하신 걸로 알고 사업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성원 스님이 사찰 음식을 이용한 채식 레스토랑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채식 식당 사업이 시작되었다.
***
이태원 제이에스 레스토랑.
사찰음식 전문 식당을 어디에 개업할까 하다가, 이태원의 건물을 알아보게 되었다. 한국 고유의 사찰음식 문화를 외국인이나,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곳인 것 같았다.
진석은 이수정과 식당을 개업할 건물과 주변 상권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쪽에 다양한 국적의 식당들이 많기는 하네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고, 다양한 음식 문화가 있는 이태원 일대에서 각양각색의 업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주 고객층도 이색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외국 요리는 물론이고, 외국인 주방장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인데..
과연 이런 곳에서 한식도 아니고, 사찰 음식이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진석도 확신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장님, 여기서 사찰 음식 식당을 개업하는 건 좀 무리 아닐까요?”
“그럼, 수정 씨는 어디서 하려고?”
“뭐, 사찰 음식이니까, 사찰 근처라든가, 아니면 산속, 아니 산속까지는 아니어도, 뭐,약간 전원 분위기 나는 그런 곳이 좋지 않을까요? 여기는 솔직히 너무 번잡하잖아요?”
“음, 그래? 하지만, 관점의 차이 아닐까?”
“관점의 차이요?”
진석의 생각에 오히려 번잡한 도심에서 사람들은 고요한 그런 휴식을 찾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양이들도, 자신에게 부족한 타우린을 찾아 생선에 집착하는 것이다.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국적이고 번잡한 이곳 이태원에 고요한 사찰 음식 식당을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인간이란 자신에게 없는 걸 욕망하는 거라고, 그런 말 못 들어봤어?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런 거 말이야.”
“그거 무슨 책인지 영화 제목 아닌가요?”
이수정은 잠시 생각을 해보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이태원이 뜬 것도, 이국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였잖아요. 그에 비해서 기존에 잘 나가던 상권들 중에는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서 특성을 잃어버려서 몰락한 곳들이 많으니까요.”
“그래, 어떤 장소와 안 어울린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일 뿐이니까.”
진석은 이태원에 매장 계약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산사 음식 전문점, 제이에스 레스토랑 1호점을 오픈했다.
산사 음식을 다루는 곳이라, 요란한 행사는 생략하고 대신 가야금 연주를 하는 대학생 연주팀이 축하공연으로 가야금 연주회를 열었다.
식당 앞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한복을 입은 여대생들이 가야금을 연주하자, 그 이색적인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서 가야금 연주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뭐지? 웬 이태원에 가야금?”
“그러게 여기 식당인 모양인데, 사찰 음식 전문이라? 이 동네 하고는 잘 안 어울리네, 여기는 외국풍 식당들이 많은데.”
“야, 부처님도 인도사람인데, 불교 음식도 이국적이지. 그리고 고기를 안 쓰는데 맛은 또 어떻게 내는지 궁금하네.”
몇몇 젊은 친구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제이에스 레스토랑을 둘러보았다. 성원 스님은 그런 사찰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사찰 음식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여러분 사찰 요리에 고기나 생선이 안 들어가는 건 아시죠?”
“예,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보통 그런 건 잘 아시는데, 그 것 말고도 안쓰는 재료들이 있습니다.”
“안 쓰는 재료요?”
“예, 오신채라고 해서, 파,마늘, 부추, 달래 같은 재료는 쓰지 않습니다.”
“마늘이 안 들어간다고요? 한식에는 다 마늘이 들어가는데요.”
스님들이 먹는 사찰 음식에는 고기 외에도 자극적인 향신료를 쓰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한식에는 빠지지 않는 마늘과 파 같은 식재료도 입과 위를 자극하는 재료라고 해서 금하고 있다.
덕분에, 사찰 음식은 소화기에 좋고, 자극적이지 않는 맛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파나, 마늘이 빠지면 맛이 안 나지 않나요. 가뜩이나 고기도 쓰지 않는데, 그러면 사찰 음식은 어떻게 맛을 내는 겁니까?”
“대신 재료를 많이 손질하고 간을 정성들여서 하는 방법을 쓰는 거죠. 자극적인 재료를 피하기 위해 평범한 재료를 정성들여서 요리하는 게 사찰 음식입니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과정이 많아요.”
“와, 맛이 어떨지 상상이 안 가네요.”
“상상할 거 없습니다. 오픈 기념으로 오늘 음식들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니까, 천천히 사찰 요리를 맛을 보시죠.”
“어, 정말요?”
익숙하지 않는 사찰 요리를 알리기 위해, 무료 시식을 겸해서 하는 오픈 행사였다. 가지초무침과, 시금치 무침, 두부 조림 같은 음식을 천천히 맛을 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 굉장히 순하네요. 정말 자극적인 맛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순하면서도 맛이 있습니다. 와, 이거 대박인데요.”
“하하, 그렇죠. 사찰 요리라면, 맛이 없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맛도 꽤 고급스러운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식으로 망고 빙수도 있으니까, 이것도 먹어보세요.”
“망고요? 망고랑 사찰 음식은 좀 이질적이네요.”
대학생인 듯한 커플은 사찰 음식을 시식하다가, 망고 빙수가 나오자 뜻밖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왜요? 망고는 인도가 원산지죠. 부처님도 즐겨 드시던 과일이고 불교와도 인연이 있는 과일입니다.”
“아, 그런가요? 미쳐 몰랐네요. 여기와서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대학생 커플은 망고 빙수를 맛보기 시작했다.
“음, 이 망고 빙수도, 뭔가 산사 음식처럼, 덜 자극적인 맛인데요. 그다지 단 것 같은 느낌은 없고요. 대신 자연스럽게 시원한 것이, 아까 먹은 가지초무침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하하, 생각보다, 망고도 사찰 음식과 잘 어울리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대학생 커플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당을 나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음식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진석의 말에 성원 스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절에서 스님들이 검소하게 먹는 음식이라 도시 사람들 입에 맞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성원 스님은 어떠십니까? 이렇게 다시 도시에 나와서 식당을 여니까요?”
“하하, 전과는 확실히 다른 기분이네요. 예전에 식당을 할 때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양념도 그저, 입에만 맛있는 자극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했죠.”
“보통 요리라는 게 그렇죠. 특별한 비법보다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조리법이나,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니까요.”
“그런 게 맛있기는 하죠. 하지만 두고두고 오래 먹기에는 좀 빨리 질리는 것도 있어요. 이곳 이태원도 예전 같지는 않잖아요?”
성원 스님의 말대로 이국적인 식당들로 전성기를 누리던 이태원도 임대료가 상승하기도 하고, 또 유행을 따라 철새처럼 이동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유행을 찾아 떠나버리면서 전보다는 경기가 위축되어 있었다.
그렇게 약간은 유행에 처진듯한 이곳에 진석과 성원 스님은 사찰 전문 식당을 오픈한 것이다.
“아무튼, 이 사찰 요리 레스토랑이, 산나물처럼 은근하고 오래갔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뭐, 천천히 하나하나 절에서 요리하듯이 느긋하게 운영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사찰 음식 전문점이 느긋하게 오픈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