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느긋한 망고(2)
공간의 산으로 가는 출입구를 통과해, 일꾼들과 산기슭으로 도착했다.
“이쯤이 좋겠네.”
망고는 열대 과일이니까, 비교적 온도가 높은 산의 아래쪽에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간주님, 밭이 완성되었습니다.”
인꾼들이 잡풀이 무성한 산기슭의 비탈을 정리해서 망고를 심을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망고 씨앗을 심어 보자고,”
일꾼들이 땅을 파고 씨앗을 심어 놓자,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속되면서 씨앗을 심은 땅에서 떡잎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떡잎은 분화하며 점점 더 무성한 잎이 되고 줄기는 더 키가 커지기 시작했다. 줄기가 굵어지며 망고나무가 높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망고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밭은, 열대의 망고 숲이 되어 있었다.
“부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죠?”
“불경하게 부처님과 나를 비교하지는 말아줘, 아무튼 망고나무 숲이란 이런 느낌이군,”
진석은 숲을 이룬 나무들 아래로 자리를 잡고, 그늘에서 일꾼들과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망고 열매를 따서 껍질을 까서 먹어보았는데, 백담사에서 먹어본 것과 같은 시원한 맛이었다.
“공간주님 맛이 어떤가요?”
“너무 달리 않은 맛이야, 약간 청량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입에는 조금 밋밋한지 모르겠지만, 먹고나면 갈증이 사라지는 그런 맛, 오히려 나는 달지 않고 시원해서 더 좋은데.”
진석은 망고나무에서 자란 열매들에서 씨앗을 채취해서 다시 땅에 심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수십, 수백,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 망고들은 좀처럼 변화가 없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모양이나 색깔이 달라지는 느낌이 없네요.”
진석도 수천 년의 시간 가속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노랗게 익어가는 망고나무 열매 중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느껴졌다.
“뭐지, 저건, 녹색에서 흰색으로 변하고 있네?”
“그러게 말입니다. 망고가 익으면서, 점점 흰색이 되고 있네요. 흰색 과일은 드문데.”
사령관도 신기한 듯,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망고 열매를 바라보았다.
“뭔가, 열매가 썩어가거나, 이상한 건 아니겠지?”
“한 번 따서 까보면 알겠죠.”
사령관의 말에, 진석은 하얗게 변해버린 망고를 따서 껍질을 까보았다. 망고의 속은 노란색으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맛도, 약간 단맛이 덜한 시원한 태국 사원에서 가져온 그 망고의 맛과 비슷했다.
“맛은 이상이 없는데, 하지만, 껍질이 하얗게 변했다는 건, 뭔가 산의 에너지의 영향으로 특별한 특성이 생겼다는 의미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공간주님.”
사령관은 하얀 망고들을 여러개 따서 진석에게 가져왔다. 다른 망고들은 속은 잘 익어서 다른 노란 망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좋아, 이 망고들을 더 증식시켜보자고.”
일단 일꾼들이 하얀 망고를 따서, 씨앗들을 채취해서 다른 밭으로 옮겨심기 시작했다. 산기슭의 망고밭은 점점 더 하얀 망고들로 마치 눈꽃을 뿌려놓은 거처럼, 새하얀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게 증식시킨 것 같아. 이제는 열매를 수확해서, 한 번 밖으로 가져가보자고.”
***
북카페 오아시스 해운대점.
“부산은 장마가 다 지나간 건가요?”
“어머, 사장님. 언제 오신 거예요?”
“뭐, 지나가다 들렀죠.”
“저 차는 뭐예요?”
“아, 새로 산 건데 어울려요?”
북카페 해운대점의 점주인 홍선화는 카페 앞에 세워진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고는 놀란 표정이었다.
“무슨 차가 저렇게 커요?”
“아, 뭐, 세단치고는 좀 크죠.”
홍선화는 진석보다는 롤스로이스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차가 마음에 들어요?”
“이거 영화 속에 나오는 차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그런 백만장자들이 타고 다니는 차 말이에요.”
“대충 비슷해요. 그런 차죠. 롤스로이스라고 들어봤어요? 아마 현존하는 차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차일 겁니다.”
“솔직히, 차알못이라 차들은 봐도 잘 몰라요. 하지만, 엄청 크고 럭셔리해 보이기는 하네요.”
홍선화처럼, 차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롤스로이스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롤스로이스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참, 그건, 그렇고. 이거 선물이에요.”
“선물요?”
진석은 산에서 가져온 하얀 망고들이 가득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망고입니다.”
“망고요? 하얀 망고도 있었나?”
“새로운 품종이죠.”
진석의 말에, 홍선화는 망고 상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신기하네요. 이거 먹어도 돼죠?”
“당연히 먹어도 되는 거죠.”
홍선화는 망고를 잘라서 과육을 잘게 썰어 맛을 보았다.
“음, 맛이 좀 아주 달지는 않네요.”
“예, 그렇죠. 하지만, 전 달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더라고요. 청량감이 있다고 할까?”
진석의 말에, 홍선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하려던 것도 그런 느낌이에요. 뭔가 시원하고 청량감이 있는 맛이에요.”
“그렇죠, 뭐, 굉장히 독특한 맛이라, 뭔가 그걸로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죠.”
“새로운 메뉴요?”
“예,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기도 하고, 부산의 느낌과도 잘 어울리는 맛 아닌가요?”
바다의 도시 부산, 그리고 바다와 해변의 계절인 여름이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진석도 일부러 서울에서 롤스로이스를 몰고, 부산까지 내려온 길이었다.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는 벌써부터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하긴,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고, 바다와 잘 어울리는 시원한 맛이기는 해요. 그래요, 이걸로 한 번 주스 같은 걸 만들어 볼까요?”
“주스라? 오다 보니까, 해변에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더군요.”
“맞아요, 이 근처에도, 장마가 끝난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카페 앞까지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들도 많다고요.”
이제 시대가 많이 변해서인지, 해변이라면, 비키니 차림도 낯설지가 않게 된 모양이었다. 장마가 끝나가면서 날씨는 더 무더워지고, 해변의 열기도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날씨가 더우니까, 시원한 주스로는 부족할 것 같고, 차가운 망고 빙수가 어때요?”
“음, 맞아요. 뜨거운 햇살에 맞서려면, 빙수가 더 낫겠네요.”
홍선화는 빙수를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진석은 북카페 해운대점 안을 돌아보았다. 카페 안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있는 정도였다. 날씨가 덥기도 하고, 해변에 놀러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조용하게 책을 읽기보다는 음료수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진석이 앞에 세워 놓은 롤스로이스 팬텀 주위에도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편한 반바지에 상의는 탈의한 모습도 많이 보였고, 여자들은 비치 가운을 걸치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비키니 차림으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와, 이거 롤스로이스지? 대박이네, 해운대에 롤스로이스를 타고 온 사람이 다 있네.”
“그러게, 이런 차는 회장님들 타는 거 아닌가? 해변에는 좀 아니지 않아?”
“그러게, 포르쉐나 람보르기니면 몰라도, 롤스로이스는 좀 안 어울리는 거 아냐?”
새로 산 김에 부산까지 타고 온 거기는 한데, 아무리 좋은 럭셔리 세단이라도, 육중한 체구의 검은색 롤스로이스는 이 가벼운 해변의 분위기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페라리를 타고 와야겠는데.”
날렵한 빨간 페라리라면 이 해변에서 더 멋지게 드라이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많이 기다리셨죠. 망고 빙수입니다.”
“와, 맛있겠네요. 어디 한 번 먹어볼까요.”
진석은 하얀 망고로 만든 망고 빙수를 한 입 먹어보았다. 팥빙수처럼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것이 아니라, 망고 과즙으로 만든 빙수였다,
특히 단맛보다는 시원한 청량감이 있어서 차가운 얼음과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먹고 나니, 시원함을 넘어 차가운 한기가 등줄기까지 퍼지는 기분이었다.
“대박인데요. 엄청 시원해요. 얼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얀 망고의 과즙이 빙수랑 아주 잘 어울려요. 이거 이번 여름에 대박이 날 것 같은데요.”
“정말요?”
홍선화도 자시가 만든 빙수를 맛보기 시작했다.
“음, 정말 그러네요. 아주 시원해요. 온몸의 열기가 한 번에 식어버리는 느낌이에요.”
“이거 아이스박스에 몇 개 포장할 수 있죠?”
“포장요? 빙수를요? 뭐, 가능하죠. 아이스박스에 넣으면 괜찮을 걸요.”
“그럼 포장 좀 해주세요.”
“어디에 가져가시려고요?”
“아, 아는 분에게 좀 가져다드리고 싶어서요.”
“뭐, 맘대로 하세요. 그나저나, 망고 빙수를 먹고 났더니, 뭔가 긴장이 풀리는 기분인데..”
“긴장이 풀린다고요?”
공간의 산에서 재배한 망고에도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홍선화가 망고 빙수를 먹고 긴장이 풀린다고 했다면, 이 망고의 특성은 심리적 긴장을 풀어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진석도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좀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왠지 저도 좀 느긋해지는 기분이네요.”
카페 앞에서는 아직도 젊은이들의 무리들이 진석의 롤스로이스를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망고 빙수 좀 포장 부탁해요. 난, 밖에 좀 나가 볼게요.”
진석은 밖으로 나와서 롤스로이스 구경하는 사람들 뒤로 다가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았다.
“야, 이거, 한 6억은 넘지 않냐?”
“그럴 걸, 6억, 7억 그 정도 가격이라는 것 같던데.”
“옵션이 많이 들어가서 10억 정도죠.”
“어, 이진석이다.”
뒤에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리자, 놀라서 뒤를 돌아보던, 학생들이 진석과 눈이 마주치고 진석을 알아보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하하, 학생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알죠, 제이에스 이진석 사장님이시죠? 역시나, 누가 이런 롤스로이스를 해운대에 타고 왔나 했더니 역시 돈이 많으신 분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뭐, 비싼 차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차일 뿐이죠.”
“그냥 차라뇨? 보통 사람들은 평생 일해도 꿈도 꿀 수도 없는 엄청난 차인데요.”
“아직 젊은 청춘 아닙니까, 롤스로이스든 뭐든 불가능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뭐, 그렇다고 비싼 차, 고급 아파트 이런 것들이 인생의 척도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차든 뭐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목표로 삼아 보는 것도 인생의 묘미죠.”
“저도 사실은 차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동차에 관한 블로그도 하고 있고요.”
“오, 그래요?”
“하지만, 아직 대학생이기도 하고, 돈도 없고, 면허는 없죠. 그래서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차를 사진으로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는 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요?”
“이 롤스로이스 팬텀도 가까이서 볼 기회가 드문 차인데,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도 될까요?”
“하하, 좋을대로 하세요. 차를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예, 하지만 이런 고급차는 사진으로 찍는 것 외에는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겠죠?”
어디선가 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었다. 그래, 성제윤, 도산파파라치라고 불리던 성제윤이 떠올랐다.
지금 성제윤은 자동차 수입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성제윤이라면 이 대학생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평소라면 일에 바빠서, 다른 사람들 일에 참견하지 않는 편인 진석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 망고 빙수 덕분인지, 기분이 느긋해져서 이것저것 저 대학생에게 관심이 가고 있었다.
“저, 사진은 다 찍은 건가요?”
“예, 덕분에, 촬영은 잘 됐습니다.”
“자동차도 좋아하고 사진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괜찮은 회사를 소개시켜 줄까요?”
“회사요?”
“학생이라니까, 아직 취직할 때는 아닌 것 같지만, 여기 명함을 줄 테니, 한 번 연락해 보세요. 여기 사장에게, 내가 소개시켜 줬다고 하면 도움을 줄 겁니다.”
진석은 지갑에서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의 명함을 꺼내 차를 좋아한다는 대학생에게 건네주었다.
다시 카페에 돌아왔을 때는 홍선화가 아이스박스에 빙수들을 포장해 놓은 후였다.
“사장님, 주문하신 망고 빙수입니다.”
“고마워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진석은 아이스박스를 트렁크에 담고, 카페 앞에 세워둔 롤스로이스에 시동을 걸었다. 롤스로이스 팬텀은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카페 앞을 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