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느긋한 망고(1)
강원도 백담사.
“와, 여기가 그 유명한 백담사군요?”
백담사에서는 산사 요리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찰음식은 예로부터 육류를 쓰지 않고도 맛을 내는 요리방법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육식을 금지하는 불교의 교리에 따른 고육지책이기는 했지만, 그런 이유로 최근 들어서 다이어트와, 채식 열풍이 불면서 웰빙 식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제이에스 그룹도 채식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최근의 트렌트에 맞추어서 산사 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마침, 강원도 인제의 제이에스 바이오 농업 연구단지 근처에 백담사라는 유명한 고찰이 있었고, 여느 고찰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오래되고 고유한 산사 음식이 전수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산사요리 축제를 한다고 해서 와본 길이었다.
“이건 연근 조림이군요?”
진석은 축제의 음식들을 하나하나 맛을 보고 있었다. 김치도 상당히 맛있었는데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 사찰 김치 특유의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김치도 굉장히 맛있네요. 채소만으로 이런 맛을 내다니 놀랍습니다.”
“하하, 뭐, 그냥 절간에서 스님들이 간단하게 하는 음식들입니다.”
성원 스님은 이 백담사의 사찰 음식의 전수자였다. 원래, 속세에 있을 때도
식당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속세에서도 요리를 하셨다고요?”
“예, 젊었을 때, 남편하고 식당을 했었죠.”
성원 스님은 40대 중반 정도의 여승이었는데, 결혼도 했었던 모양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사정이 있어서 백담사에 들어와서 이제는 사찰 요리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시나봐요?”
성원 스님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실은 식당을 하다가 잘 안 돼서 절에 들어온 거예요. 남편하고 같이 식당을 크게 했었죠.”
“어떤 식당을요?”
“갈비집요.”
“아..상상이 잘 안가네요.”
“스님이랑 고깃집이랑 참 안 맞는 조합이죠?”
성원 스님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갈비 전문점을 운영하기도 하고, 어려서는 고기를 참 좋아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스님이 되어서 사찰 음식을 만들고 있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식당이 어떻게 망한 건지, 남편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한 것 많았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진석은 산채 나물로 만들었다 비빔밥의 맛을 보았다. 산나물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독특한 향이 나고 적당히 감칠맛이 있어서 먹기 좋은 느낌이었다.
“산사 음식들을 쭈욱 맛을 보고 있는데 맛도 훌륭하고, 다이어트에도 좋을 것 같네요.”
“절밥이란 게 크게 맛은 없어요. 원래 스님들이 먹는 음식은 일부러 맛을 없게 한다는 말도 있거든요.”
“하하, 정말요?”
그런 것도 일리가 있을 것 같았다. 세계 여러나라 음식 중에서도 영국 요리가 맛이 없기로 유명한데, 그 이유가 종교적으로 금욕을 중시하는 영국의 분위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건 영국처럼 개신교 세가 강했던 북유럽이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음식은 노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는 에너지원의 개념으로 생각했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카톨릭 전통이 강한 국가들에서는 요리의 맛에 대한 금기가 적어서인지, 화려하고 다양한 요리 문화들이 발달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그런 국가들인데, 기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종교의 태도가 식문화에도 영향을 많이 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의 유교의 영향으로 검소한 식문화가 발달했고, 그 영향으로 채식 요리가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산사의 요리들은, 불교가 육식을 금하는 것까지 더해 검소한 채식 위주로 독특한 요리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식사가 대충 끝나자, 후식으로 과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진석의 눈길을 끈 것은 열대과일인 망고였다.
“망고네요, 하하, 왠지 백담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데요.”
수입산 과일이기도 하고, 달콤하고 과즙이 풍부한 화려한 맛이 왠지 정갈한 산사 요리의 후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왜요? 망고는 인도가 원산지죠.”
“그래요?”
성원 스님은 껍질을 벗겨 잘라낸 망고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음, 달콤하네요. 망고는 부처님하고도 관련이 있는 과일이랍니다.”
진석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원래 망고는 인도가 원산지로, 불경에도 언급이 되는 오래된 과일이라고 했다. 불교에 기록된 것만 해도, 대략 4천 년 전 이전부터 망고가 인도에서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부처님이, 망고 씨앗을 땅에 묻었더니, 망고가 쑥쑥 자라서, 금세 망고나무 수백 그루로 망고 숲이 만들어지고, 그 그늘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쉬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하, 씨앗을 심었더니 바로 나무가 자라더란 말인가요?”
“예, 신기한 이야기죠. 물론 부처님이니까,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에요.”
“성원 스님은 그 이야기를 믿습니까? 망고나무가 바로 자라서 숲이 되었다는 이야기요.”
“뭐, 그냥 전설이겠죠. 부처님이 망고 숲에서 강연을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 와전이 된 거 아닐까요?”
그렇게 백담사의 산사 요리 축제도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좋은 음식 잘 먹었습니다.”
“하하, 스님들 음식이라 입에 맞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은, 제이에스 그룹에서 산사 요리를 테마로 채식 전문 식당을 런칭해보려고 하는데요.”
“예? 식당요?”
“예, 물론 보통 식당은 아닙니다. 음식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불교 문화의 한 일부인 산사 음식을 일반인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알려보자는 의미죠. 어떻습니까? 성원 스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진석의 제안에 성원 스님은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글쎄요. 그런 일이라면 일단은 주지 스님에게 상의를 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겠네요.”
“하하, 물론 그렇겠죠. 급하게 답을 주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슬로우 푸드인 사찰 음식처럼 이번 사업도 천천히 진행할 생각입니다.”
진석은 사찰 요리 축제에 잠시 참석을 하러 왔다가, 채식 위주의 식단과 그 독특한 맛에 반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본 것이었다.
특히 농산물을 주로 유통하는 제이에스 그룹의 사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유기동 웰빙 라이프를 추구하는 제이에스 그룹의 사업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
제이에스 본사.
“그래서, 그 성원 스님이라는 분에게 같이 동업을 하시자고 하신 거예요?”
이수정은 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진석에게 물었다.
“왜, 괜찮치 않아? 우리 제이에스 바이오의 농산물로 채식 식당을, 그러니까, 사찰 요리를 하는 전문점을 만드는 거지, 재료들은 제이에스 스토어에서 공급하면 되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 그런 유기농 식자재들로 한식을 넘어서 한식 사찰 요리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거야.”
“하지만 그 요리한다는 분은 스님이잖아요? 그것도 예전에 식당을 하다가 잘 안 돼서 절로 들어가신 분이라는데 이미 요식업으로 실패를 겪고 속세를 떠난 분을 다시 사업을 하자고 한다고 응하겠어요?”
“그럴까?”
이수정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백담사에서 맛본 사찰 요리에 반해 성원 스님에게 덜컥 사업을 해보자고 제의를 했지만, 엄연히 백담사의 요리를 담당하는 스님인데, 진석과 같이 사업을 한다는 건 무리일지도 몰랐다. 이수정의 말대로 이미 요식업의 실패를 겪은 아픔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괜한 말을 한 건가?”
“신경쓰지 마세요. 그 스님이 할 마음이 없으면, 연락을 안 하겠죠.”
“음, 그렇겠지.”
“그나저나, 저건, 뭐예요?”
“아, 망고.”
“망고요? 저건, 망고 열매가 아니라, 씨 같은데요?”
“맞아, 백담사에 갔더니, 태국의 어떤 사찰에서 보내온 망고가 와 있더라고, 후식으로 먹고, 씨앗은 모아 두었길래, 내가 가져왔지.”
“아니, 망고 씨는 왜요?”
“생각보다, 맛이 있길래, 무슨 품종인가 궁금해서 가져와 봤어.”
사실, 품종이 궁금해서 가져온 건 아니었다.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가 원산지로 알려진 망고는 인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키우는 과일이다. 그 지방의 기후에도 잘 맞고, 맛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 인기가 있는 과일이다.
백담사에서 먹은 망고는 성원 스님의 말로는 태국의 유명 사찰에서 선물로 보내온 것으로, 그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불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화, 즉, 망고 씨를 땅에 심어 단숨에 망고나무 숲을 만들었다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즉, 그때 그 부처님의 힘으로 자라서 숲이 된 망고나무의 열매의 씨앗이 태국의 사찰까지 전해졌다는 것인데, 아무튼 사실 여부를 떠나서 태국의 유명 사찰의 정원에서 수천 년 전부터 재배하던 특별한 품종이라는 것이었다.
진석도 직접 맛을 보았는데, 일반적인 망고보다 단맛은 덜하지만, 더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있어서 신기했던 느낌이었다. 그래서 농업 연구소에 가져간다는 핑계로 씨앗을 얻어 온 것이었다.
“수정 씨, 그러면 난 먼저 가볼게.”
“벌써요, 아직 4시인데.”
“아, 난 또 할 일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아무 때나 퇴근하고요.”
“하하, 정말, 할 일이 있다니까.”
직장과 직업의 차이랄까? 직장인들은 출근과 퇴근이라는 시간의 틀에서 일과 사생활이라는 것을 반복하며 지내지만, 오너라는 사람들은 그 시간의 틀을 벗어나 있다.
정해진 틀에서만 일하는 직장인들과 달리, 사업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정해진 근무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또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백담사에서 성원 스님에게 사업 제의를 한 것도 그런 예였다. 정해진 일만 하는 회사원이었다면, 사찰 음식을 먹다 말고 스님에게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가 사찰을 찾은 이유와 목적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가인 진석에게는 어디에서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산사 요리를 해준 스님에게 식당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하고, 신기한 태국 사찰의 망고를 보고는 그 씨앗을 얻어와 이걸 또 재배해 보려는 것이었다.
진석은 새로 산 롤스로이스를 타고 회사 주차장을 나와, 집이 있는 스카이 타워로 향했다. 확실히 차폭도 넓고 좀 과장을 보태자면, 탱크를 몰고 다니는 느낌이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였다.
특히 도로 위에서 다른 차들이 슬슬 피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뭔가 주목을 받기에는 좋은 차였다.
아직 젊은 진석이 타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느낌도 있었지만, 이미 대기업의 오너인 진석에게 이 정도의 차는 어느 정도 어울리는 차라고 할 수 있었다. 기사가 따로 있어서 뒷좌석에 타도 괜찮은 차였고,
진석처럼 직접 운전하기에도 좋은 차였다. 그렇게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에서 새로 구입한 롤스로이스를 만족스럽게 운전하며 진석은 집으로 돌아왔다.
***
스카이 캐슬, 시그니엘, 거실.
오늘은 백담사에서 가져온 망고 씨앗을 가지고 공간으로 갈 생각이었다.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아직 장마의 습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 서울과 달리,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의 공간의 오아시스는 언제나 쾌적한 느낌이었다.
“공간주님, 오늘은 씨앗을 가지고 오셨네요.”
“이건 망고 씨앗이야.”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진석이 내미는 씨앗들을 들여다보았다.
“망고라면 어디에 심으실 겁니까?”
“어디가 좋을까? 이건, 좀 특별한 망고인데, 굉장히 오래된 품종인 것 같더라고 부처님이 직접 자라게 한 망고나무에서 나온 후손이라는데.”
“부처님이 말입니까?”
“그래, 신기하지, 부처님이 씨앗을 땅에 심으니까 바로 망고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었다고 하거든.”
“음, 그건, 공간주님의 이야기 아닌가요?”
“하하, 그런가? 아무튼, 이 망고를 산에 가져가서 심어보자고, 그냥도 특별한 망고라지만, 산에서 재배하면 더 특별한 망고가 나오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산으로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