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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파인애플(3) (103/183)

120화. 용감한 파인애플(3)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최동혁 대령입니다.”

이정수 이병이 근무하는 육군 부대로 진석이 제이에스 직원들과 위문차 부대를 방문했다.

“이렇게 방문을 허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오히려 이렇게 날씨도 덥고 이래저래 지친 장병들을 위해서 이렇게 와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이곳의 연대장을 맡고 있는 최동혁은 육사 출신의 전형적인 직업 군인이었다. 외모는 상남자 스타일이지만, 목소리도 차분하고, 성격은 의외로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부하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는 평가였다.

위문행사는 크게 걸그룹 공연과 점심 식사 이렇게 두 개의 일정으로 준비되었다. 진석이 인사차 무대에서 짧은 인사를 하고 나자, 바로 걸그룹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군인들이 다들 좋아하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연예인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여자들도 만나기 힘든 곳이니까요.”

최동혁은 장교 출신이지만, 사병들의 처지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제이에스 쪽에서는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점심은 간단하게 주문한 피자와 치킨 그리고 음료수들 정도로 준비되었고. 그 외에 제이에스에서 보라색 파인애플을 이용해서 스페셜 과일빙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이 다 끝나는 것 같은데요?”

유민지는 공연장을 보며 말했다.

“아직 앵콜 공연이 남아 있어. 그래도 거의 끝났으니까, 식사 준비를 하자고.”

커튼콜이 몇 번 더 있었지만, 결국 공연도 끝나고 제이에스에서 마련한 식사가 제공되었다.

“음, 이게 다, 그 이정수 이병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일인데 말입니다. 이정수 이병은 어디 있죠?”

다들 과일빙수를 맛있게 먹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정수 이병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최동혁도 주위를 둘러보며, 이정수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정수 이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야, 이정수 이등병 어디 갔어?”

“연대장님 지금 초소 근무 중입니다.”

“그래? 하필 지금 근무 중이야. 저 이진석 사장님, 지금 교대를 시킬까요?”

“아닙니다. 근무 중인데 원래 하던대로 해야겠죠.”

이정수 이병을 만나고 싶기는 했지만, 근무 중인 초병을 교대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근무 규정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누가 대신 가야 하는 일인데. 일부러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오, 장영석 병장. 그래도 되겠어?”

장영석 병장은 이정수가 속한 분대의 분대장이었다.

“뭐 저야, 다음 주면 전역입니다. 나가면, 빙수야 흔하지만, 군대에서는 먹기 힘들잖습니까.”

“뭐, 그러면 좀 부탁해요.”

다행히, 고참 한 명이 교대를 해주겠다고 해서, 잠시 후에 옷을 갈아입은 이정수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저기 오네요.”

“이병 이정수.”

“하하, 갑자기 연대장님 앞이라 그런가, 좀 군기가 들어갔네요.”

최동혁도 그런 이정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래, 자네가 파인애플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지?”

“이병 이정수, 죄송합니다.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하하, 이렇게 커지는 거야, 얼마든지 커져도 상관없지. 하하,”

최동혁의 말에도 여전히 이정수 이병은 잔뜩 얼어 있었다. 역시 이등병 때는 위축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외국에 가보면 그 나라의 군인들이 휴가 나온 것을 볼 일도 있는데,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미군은 군기가 거의 당나라군 수준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군기와 군사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한국의 군대도 쓸데없이 군기만 있는 건 아니지 조금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정수 이병이 파인애플을 먹고 싶다고 해서, 우리 제이에스에서 뭔가 특별한 파인애플을 만들어 봤어요. 이걸 좀 봐요.”

진석이 보라색 파인애플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내밀자, 이정수는 놀란 눈으로 파인애플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파인애플입니까?”

“그래요, 이번에 새로 개발한 보라색 파인애플입니다. 뭐 맛도 훌륭하니까, 마침 날씨도 덥고 파인애플 빙수를 준비했어요.”

진석이 신호를 보내자, 이현경이 파인애플 빙수를 가지고 왔다.

“와, 이건 진짜, 파인애플이 많이 들어갔네요.”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특별히 많이 넣었어요. 한 번 먹어봐요.”

이정수는 조심스럽게 스푼으로 파인애플 빙수를 떠서 맛을 보기 시작했다.

“어때요?”

“정말, 맛있습니다. 제가 먹어본 파인애플 중에서 최고입니다.”

이정수를 비롯해서 다들 빙수를 맛있게 먹고 그렇게 위문행사도 마무리가 되었다.

“장영석, 이정수”

“병장 장영석, 이병 이정수.”

“두 사람은 특별 휴가다.”

“예? 갑자기 무슨 휴가입니까?”

“서로 양보하는 전우애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연대장이 고유 권한으로 특별 휴가증을 지급하겠다.”

“와, 특별 휴가?”

“보초 근무 한 번 바꿔줬다고 특별 휴가인가?”

“이정수는 또 뭐야?”

“야, 아무튼, 근무 한 번이든 뭐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바꿔주는 게 쉽냐?”

“맞아, 그리고 이정수는 어쨌든 저 녀석 덕에 걸그룹 공연도 보고, 피자도 먹고, 빙수도 먹었잖아, 그것만 해도 개이득이지.”

“아무래도 둘만 휴가를 보내주니까 조금 불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최동혁 대령은 부관을 불러서 뭔가를 가져오게 했다.

뭐지? 잠시 후 부관이 뭔가를 들고 왔다.

“그게 뭡니까?”

“휴가증입니다.”

“휴가증요?”

날도 덥고, 최동혁은 부대원들에게 특별 휴가증을 뿌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냥 휴가증을 줄 수는 없고, 장기자랑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휴가증은 20장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차피, 나와서 뭐 해보라고 해도 잘 안 나와요. 하하..”

“하긴, 그렇기는 하죠.”

최동혁은 단상에 올라섰다.

“자, 오늘 위문 공연 팀도 왔으니까, 우리 부대원도 그냥 있을 수는 없겠지? 나와서 뭐라도 하나 잘하는 게 있다, 아무거라도 자신있게만 보여주면, 연대장 특별 포상휴가증을 주겠다. 어때 해보겠나?”

“예, 그렇습니다.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별로 반응이 없을 거라던 최동혁 대령의 말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무대로 올라오려고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하하, 오늘은 지원자가 평소보다 좀 많네요.”

손을 든 순서대로, 한 명씩 무대로 올라오게 해서 즉석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물론 평범한 군인들이라, 장기자랑이라고 해봐야, 수준은 형편없는 수준, 사실 휴가증을 준다는 게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막장 무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휴가증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인지, 말도 안 되는 장기자랑을 하면서도 병사들은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자자, 시간 관계상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이미, 준비한 20장의 휴가증이 모두 바닥나고, 추가로 20장을 더 가져오고 있었다.

“이걸로, 오늘 장기자랑으로 휴가증을 받은 병사가 40명이네요.”

“하하, 연대장님 생각보다 병사들이 적극적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좀 소극적인 편인데, 하하 오늘따라, 아주 적극적이네요.”

아무튼 그렇게 장기자랑도 마무리가 되고, 휴가는 인원이 초과된 관계로 두 조로 나누어서 가게 되었다.

“겨우 위문행사가 마무리가 되었네.”

진석이 행사 준비를 하느라 수고한 유민지에 대화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인사를 해왔다.

“어, 이정수 이병 아냐? 휴가 출발한 거 아니었어?”

“지금 막 출발할 건데, 아무래도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 그래요. 지난번에는 내가 신세를 졌잖아, 그래서 면회 오기로 약속한 거기도 하고.”

“그래도 진짜로 이렇게 파인애플 빙수를 가지고 찾아오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파인애플 맛은 괜찮았죠?”

“예, 원래 파인애플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맛있는 파인애플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더울 때 시원하게 빙수와 같이 먹었더니, 뭔가 힘이 솟는 것 같기도 하고, 에너지가 전에 없이 넘치는 느낌입니다.”

“오, 그래요?”

“뭐랄까? 내부에서 용기가 솟아오른다고나 할까요?”

“용기요?”

이정수 이병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예, 뭔가, 군 생활에 대한 부담도 없어지는 느낌이고, 아무튼 군대에 막 입대해서 위축되고 자신감도 없었는데, 뭔가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기분입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에서 재배한 작물들은 모두 특별한 효능을 가지게 된다. 이 보라색 파인애플은 먹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장기자랑에 참가했던 병사들도 왠지 너무 오버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들이었다. 아마도 보라색 파인애플이 평소 이상으로 자신감을 키워준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등병 때는 군 생활이 쉽지 않을 때인데, 휴가도 받고, 자신감도 찾았다니 다행이었다.

***

에스제이 인터네셔널. 전시장.

“아, 성제윤 씨, 오랜만이네요.”

“이진석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요새는 자동차 사업은 어때요?”

진석의 말에, 성제윤은 어딘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사업이 어렵네요. 아무래도 고가의 자동차를 파는 일이라, 고객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요?”

“예, 아무래도 강남에 사는 금수저들이 주고객인데, 저는 지방 출신의 흙수저라 고객들하고 어울리기도 어렵고, 그래서인지 매출도 점점 떨어지고, 수정이 누나가 많이 투자를 해줘서 시작한 사업인데, 누나한테도 미안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괴로운 상황입니다.”

성제윤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우리나라에서 고가의 자동차나 부동산 같은 경우는 인맥을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고급 수입차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소위 말하는 금수저로 고가의 슈퍼카를 타고 다니다가,

그런 동호회에서 알게 사람들을 상대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에 비해 차가 좋아서 도산대로에서 파파라치를 하던 성제윤 같은 경우에는 이수정의 투자로 운 좋게 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돈많은 지인들의 인맥 같은 것은 없었던 모양이었고,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하하, 사업을 하다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고 있는 거죠.”

“저도 알고는 있지만, 왠지 자신감도 점점 떨어지고 제가 제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고요.”

“의문이라?”

“수정이 누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는 했는데, 분수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냥 사진이나 찍는 파파라치가 제 분수인데 말이죠.”

“너무 고민할 거 없어요. 잘 안 되는 날은 그냥 하루하루 버틴다고 생각하고 견뎌봐요.”

“그런다고 해결이 될까요?”

“버티다 보면, 또 상황은 바뀌기도 하는 거니까요. 음, 오늘은 나도 차 한 대 사려고 왔는데.”

“정말이십니까?”

“그래요. 음, 저게 롤스로이스 팬텀인가요?”

“팬텀을 타시려고요? 이진석 사장님이 타시기에는 좀 연령대가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아뇨, 한 번 타보고 싶었습니다. 고급 세단의 대명사인데, 제가 탄다고 늙어 보이지는 않겠죠. 저 걸로, 계약하죠.”

이런저런 옵션을 합치자, 롤스로이스 한 대 가격이 10억이 넘고 있었다.

“자,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이게 뭔가요?”

진석은 보라색 파인애플이 들어 있는 상자를 성제윤에게 건내주었다.

“이건 우리 제이에스 바이오에서 새로 개발한 보라색 파인애플인데, 좀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힘도 생기도 자신감도 되찾아주죠.”

“아, 자신감을요? 그런 게 설마? 아무튼 차도 구매해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차가 너무 안 팔려서 좀 우울할 정도였는데. 조금 용기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하하, 시간 있을 때, 이 파인애플도 먹어봐요. 자신감을 찾아 줄 테니.”

“알겠습니다. 꼭 먹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좀 더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야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용기를 내서 해봐요.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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