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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파인애플(2) (102/183)

119화. 용감한 파인애플(2)

제이에스 본사

“이게 그 새로운 파인애플이에요?”

“어때, 신기하지 않아, 다 익었는데도 완전히 진한 보라색 파인애플이라고.”

이수정은 파인애플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보라색 식품이 몸에 좋다고는 하는데 이건 어떨지 모르겠네요. 속은 어때요?”

“한 번 잘라봐.”

이수정은 칼을 가져와서 파인애플을 잘라보았다. 안쪽은 여느 파인애플과 같이 밝은 노란색이었다.

“안은 똑같네요. 음, 맛도 달콤하고, 맛있어요.”

“그렇지? 맛도 최고라고, 이걸 가지고 전에 말한 군부대 위문을 갈 거야.”

“군부대에 위문요?”

“그래, 아버지가 사는 동네에 홍수가 났었잖아, 그때 도와준 군인들이 있는데 내가 한 번 찾아가겠다고 했거든.”

“뭐 그렇기는 한데, 그냥 막 부대에 찾아가도 되는 건가요?”

이수정이 군대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개인자격으로 면회를 가는 거라면, 부대에 가서 위병소에서 연락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이정수 이병과 약속한 파인애플과 그 외에 간식으로 피자와 치킨 그리고 걸그룹의 위문 공연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그냥 막 쳐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걸그룹까지요?”

“명색이 제이에스 그룹의 사장인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부대원들이 작은 파티라도 열 수 있게, 피자랑 치킨도 넉넉히 준비하고 걸그룹이라도 데리고 가야 좋아하겠지? 나 같은 아저씨가 부대에 가봐야 뭐 좋아하겠어?”

“하긴, 20대 초반의 남자들이니까, 그런 걸 가장 좋아하겠네요. 그런데 아는 걸그룹이라도 있으세요?”

“걸그룹이라?”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진석이 아는 걸그룹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문제라면, 아무래도 연예계쪽에 있는 서태준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정 씨, 그건, 내가 알아볼게, 연예계에 아는 지인이 있거든.”

“누구요? 서태준 씨요?”

이수정은 서태준의 팬이라 은근히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수정 씨는 수입차 사업은 잘 되는 거야? 성제윤 씨랑 동업으로 하는 거 말이야, 에스제에 모터스던가?”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이라고요? 사장님은 이름도 헷갈리세요?”

“아, 미안, 전에 한 번 가보고 갈 기회가 없어서 말이야.”

“이름도 기억 안 날 정도라니, 어지간히 무심하신 거 아니에요. 요새, 차도 잘 안 팔린다고요. ”

“그래, 간만에 차나 하나 살까?”

“정말요?”

“뭐, 그건 그렇고, 오명진 도지사에게 연락 좀 해봐.”

“도지사님은 왜요?”

“내가 가려는 부대가 강원도에 있잖아 그 쪽 부대장에게 연락을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걸그룹 위문 공연도 할 건데, 연락 정도가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겠지.”

“음, 그래서 오명진 지사님에게 부탁을 하시려고요?”

“그래, 아무래도 정치인쪽이 군인들하고 인맥이 있지 않겠어.”

군인들도 일종의 공무원이라,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면 정치화가 된다. 장성급이라면 승진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힘이 필요하기 때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명진 지사도 진석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파인애플을 가지고, 홍대 카페에 좀 갔다 올게.”

“홍대는 왜요?”

“어, 그 부대에 위문갈 때, 파인애플로 뭘 좀 만들어 가려고.”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점.

“그래서 이 보라색 파인애플을 가지고 오신 거예요?”

유민지는 반으로 갈라놓은 파인애플의 과육을 한 입 먹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좋은데요. 그런데 이걸로 뭘 만드시려고요?”

“무더운 여름이잖아, 장마 때문인지 습하기도 하고, 이런 동남아 스타일의 날씨는 정말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고.”

“뭔가 시원한 게 좋겠네요?”

“그래, 시원하다 못해 아주 차가운 그런 거 없을까?”

“빙수?”

“빙수? 팥빙수 말이야?”

“예, 물론 빙수야, 팥이 기본이지만, 좋은 파인애플이 있으니까, 파인애플 조각을 많이 넣어서 듬뿍 올리면 더 맛있겠죠.”

“그래?”

여름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역시 팥빙수다, 갈아서 수북이 쌓아 놓은 얼음 위에 팥과 연유를 듬뿍 뿌리고, 토핑으로 과일과 떡을 넣어서 먹으면 정말 시원한데, 이번에는 이 자색 파인애플을 썰어서 토핑으로 쓰면 제격일 것 같았다.

“좋아, 민지 씨가 한 번 실력을 보여달라고.”

“걱정마세요. 제가 아니라, 요리 실력이 좋은 이현경 씨가 맛있는 팥빙수를 만들어 올 테니까.”

“이현경 씨?”

“안녕하세요. 이현경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민지의 옆에 못 보던 알바생이 서 있었다.

“원래는 음악하는 친구인데, 요리도 제법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고요.”

“그래? 음악이라면 어떤 음악이죠?”

“밴드에서 기타도 치고, 작곡도 하고 있어요.”

이현경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날씬한 여자였다. 약간 마른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화장기도 없고, 약간은 보이시한 인상이었다.

“여자들은 보통 피아노나 건반 이런 거 많이 하지 않아요. 기타는 남자들이 치고.”

“요즘 세상에 그런 게 따로 정해져 있나요? 아무나 잘하는 사람이 하면 그만이지.”

진석의 말에 유민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현경 씨가 이해해, 우리 사장님 은근히 구식이야.”

뭐? 구식이라고? 남녀를 구별한 게 아니라, 여자들이 피아노를 많이 배우니까 하는 말이었다. 기타는 은근히 악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인 남자가 아니면 배우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하, 그런 게 아니라, 기타는 체격이 어느 정도 크지 않으면 배우기 어려워서 하는 말이야. 남자들도 바레를 잡거나 하는 게 어렵잖아.”

“기타 연주 한 번 보여드릴까요?”

이현경은 약간 도발적인 표정으로 진석을 보며 말했다.

“연주? 여기서 가능해요. 밴드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은 기타 한 대로 하는 핑거스타일이 유행이잖아요. 한 번 보여드릴게요.”

이현경은 카페 한쪽에 세워둔 기타 케이스들 들고 왔다. 그러고 보니, 이현경의 기타 케이스인 모양이었다.

“나도, 기타를 조금은 배웠다고 들으면 잘 치는 지 못 치는 지는 알아.”

“그럼 한 번 들어보세요.”

이현경은 의자에 앉더니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기타 한 대로 멜로디와 화음을 한 번에 연주하는 핑거스타일 연주였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음악이 상당이 그럴듯했다. 어디서 한 번 들어본 듯한 곡이었다.

“와, 기타 잘 치네, 내가 사과할게, 현경 씨, 기타 실력을 몰라봤어.”

진석의 말에 이현경은 진석을 한 번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아, 기억났다. 이거 토미 엠마누엘의 엔젤리나였지?”

“와, 이 곡을 아시네요.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곡인데, 정말 기타 좀 치셨나봐요?”

“치는 건 별로고, 듣는 건 좋아해서, 유명한 곡들을 대충 알고 있어. 그나저나 기타 정말 잘 치네, 여자들은 기타 잘 치는 경우가 드문데.”

“사장님, 또 여자 타령하실 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거고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거죠.”

“그래, 미안..미안..자 기타 실력은 이제 입증이 된 것 같은데, 요리 실력은 어떻게 되는 거야?”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신기한 파인애플로 팥빙수를 만들어 볼게요.”

이현경은 기타를 정리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홍대는 확실히 예술가들이 많은가봐요. 카페 알바생이 저렇게 기타를 잘 치다니.”

“그러게요. 그만큼 예술이 힘든 거 아니겠어요. 저렇게 음악에 재능이 있는데도. 카페 알바로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원래, 예술은 배가 고픈 법이죠.”

주방 문이 열리며 이현경이 팥빙수 두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팥 위로 파인애플이 먹음직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와, 맛있겠는데, 잘 먹을게요.”

진석이 먼저 팥빙수를 한 입 맛을 보았다. 연유와 팥이 적당히 섞여서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파인애플이 달콤해서 따로 시럽 같은 건 넣지 않았어요.”

“뭐, 이걸로 충분히 맛있는데. 음, 파인애플 과즙이 굉장히 상큼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데, 여름에 더울 때는 이거 한 그릇이면 더위가 싹 가시겠어.”

“점장님은 어때요?”

“나도, 정말 맛있어, 특히 이 파인애플 정말 괜찮은 것 같아. 이거 좋은데요. 이걸 신메뉴로 출시해도 괜찮겠어요.”

“그래, 카페에서도 여름 특별 메뉴로 팔아보자고.”

이제 군부대에 가져갈 음식들은 대충 준비된 셈이었다. 피자 같은 건 주문만 하면 되는 거니까, 카페 직원들과 같이 빙수기와 보라색 파인애플을 가지고 가서 즉석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주면 군인들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이걸 군부대에 가져갈 생각이거든.”

“군부대요? 군대 말이에요?”

“그래, 내가 면회 가기로 약속한 게 있어서 말이야. 그냥 갈 수는 없고, 가서 과일빙수를 만들어 주려고. 가능하겠지 민지 씨?”

“뭐, 인원이 제법 있어야겠지만, 각 카페에서 지원자를 모아서 가면 가능하겠죠. 어때 현경 씨도 갈래?”

“저요? 뭐 좋아요. 군대는 안 가봤으니까, 경험삼아 가보죠.”

“하하, 그래, 그리고 위문 공연도 해야 하는데.”

“위문 공연요?”

“그래, 아무래도 군인들이다보니까, 걸그룹을 데리고 가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데려가야지.”

“그것도 좋겠네요.”

***

강원도 지사실,

“이진석 사장님이 군부대는 무슨 일로 가시려는 겁니까?”

진석은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오명진에게 설명했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 군인들에게 위문 공연도 하고 간식도 제공하면 좋은 일이죠. 강원도 내에 있는 부대니까, 제가 부대 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지사님이 신경 써주시니까, 잘 되겠죠.”

“그나저나, 요즘 FC 강원이 아주 승승장구더군요.”

오명진은 요즘 K리그에서 상위권 경쟁을 하고 있는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외국인 선수들이 적응에 성공하면서 팀은 우승권의 팀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외국 용병들이 잘해주고 있어서죠. 처음에는 비싸게 데려온 선수들과 국내 토종 선수들 간에 좀 갈등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잘 해결되었습니다. 이제는 선수들끼리 호흡이 맞다보니까, 성적도 잘 나오고요.”

“다행이네요. 강원도를 대표하는 축구단이니까, 강원도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번 시즌에는 꼭 우승을 해야겠네요. 뭐, 내년에 대선도 있고 말이죠.”

“하하, 대선요? 글쎄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아직 경선도 있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오명진은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한 당내 경선에서도 쉽게 통과할 것이고 아마도 내년 이맘때쯤에는 청와대에서 오명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 오명진 입장에서도 강원도 지사직을 마무리하는 올해 강원 FC가 우승을 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선거까지 제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죠. 아무튼 우승을 위해서는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하, 저도 우승을 기원하겠습니다.”

***

제이에스 본사.

“여보세요, 예, 서태준 씨인가요? 하하..이진석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연예인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를 다 하시고요.”

“예, 사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진석은 군부대 위문 공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시군요. 좋은 일을 하시네요. 그러면 제가 당연히 도와야죠.”

서태준은 중국의 리진 회장 일로 진석에게 신세를 진 것도 있어서인지 진석의 부탁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그럼 일정에 맞출 수 있는 겁니까?”

“예, 제가 지금 알아봤는데, 요즘 인기 있는 걸그룹 두 팀을 섭외했습니다.”

“벌써요?”

“하하, 이진석 사장님 부탁인데, 저도 제가 가진 인맥을 총동원했죠. 중국 일도 있고 신세를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뭐 그렇게까지야,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럼, 약속 날짜에 걸그룹 두 팀이 오는 걸로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오명진 도지사가 부대 일정을 잡아주자 다른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태준이 걸그룹을 섭외하고, 유민지가 북카페 직원들 중에 지원자들을 모아서 위문 팀을 만들었다.

거기에 파인애플 빙수를 만들기 위해, 기계와 재료들도 준비하자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준비는 다 됐고, 이제 군대로 가기만 하면 되겠네. 내 평생에 군대를 다시 가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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