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메콩 델타의 오리(4)
“공간주님, 맹그로브 나무들에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은 맹그로브 나무들을 관찰하며 진석에게 말했다. 사령관의 말대로 성장 속도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나무의 자라는 모양도 다른 나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나무들은 비교적 곧게 자라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문어 다리 같은 뿌리 부분은 마찬가지지만, 위쪽은 상당히 곧고 굵게 자라는데요.”
진석은 어느 정도 자란 맹그로브들을 벌목해 보기로 했다. 사령관이 일꾼들을 동원해 나무를 종류별로 잘라내었다.
“나무의 목질은 어때? 목재로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일꾼들은 다양한 맹그로브 나무들을 잘라내서 목질을 비교해 보고 있었다. 나무들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나무의 목질도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속은 텅 비어 있는 나무도 있고,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라, 나무가 너무 무른 것들이 많았다.
목재로 가치를 가지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강도가 필요했다.
“이 나무는 좀 달라보이기는 하는데.”
진석은 뿌리 위쪽부터는 곧게 자라난 맹그로브를 가리켰다.
“공간주님, 그 나무도 한 번 벌목해 보죠.”
일꾼들이 톱과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나무가 이건 좀 단단한 느낌입니다.”
일꾼들은 다른 나무들보다 나무를 자르는데 시간이 더 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며, 벌목 작업이 마무리가 되었다.
진석은 곧게 자란 맹그로브의 목질을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다른 나무들보다, 던 단단한 목질이었다.
“사령관, 이 나무 어때? 사령관은 목조 주택도 지어보고, 배도 만들어 봤잖아. 이 정도면 목재로 가치가 있는 거야?”
진흙 인간의 사령관은 오아시스의 목조 건물들을 직접 시공작업을 했던 베테랑 목수였다. 목재에 대한 지식도 상당해서, 사령관은 천천히 나무를 두드려도 보고,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음, 이 정도면 건설용이나 아니면 소형 선박을 만드는 목재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가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
진석은 곧게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들을 더 증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들이 해안가를 채우고 어느 정도 자라나자, 나무들을 잘라서 실제로 테이블이나 의자를 제작해 보기로 했다.
진흙 일꾼들은 목조 주택과 고깃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서 목재를 자르는데 능숙한 편이었다.
“공간주님, 여기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사령관은 작업을 끝낸 가구들을 진석에게 보여주었다. 일단 목질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좋아,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성장 속도도 일반 맹그로보다 빠르고, 이 정도면 메콩 델타에 보급할 수 있겠어.”
***
베트남 메콩 델타, 껀터시 민수네 식당.
“잘 지내셨나요?”
“와, 이진석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제이에스 농장의 오리고기가 잘 나가는지 확인차 와 봤죠.”
진석이 한국에 갔다 온 사이, 최영일은 민수네 식당을 본격적으로 한국식 오리요리 전문점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리들은 제이에스 농장에서 공급받고, 제이에스 그룹이 인테리어나 주방 설비 등도 교체하는 등 투자도 이루어졌다. 거기에 한국에서 꽤 유명한 오리요리 전문가를 초빙해서, 요리 교육도 받고 말이다.
“덕분에, 장사가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시 찾은 민수네 식당은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건물도 더 큰 건물로 이전했고, 인테리어도 깔금하게 새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메뉴도 한식류가 주 메뉴였던 전에 비해, 훈제오리와 오리 주물럭 두 가지가 메인 요리였다,
“메뉴는 줄었네요?”
“예, 한국에서 오신 선생임이 메뉴가 많을 필요가 없다고, 일단 기본 메뉴로 시작하고 장사하면서 늘려나가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긴, 어중간하게 여러 가지 하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잘하는 집이 더 인기가 있죠.”
진석은 민수네 식당을 둘러보았다. 베트남의 한류를 이용하기 위해, 인테리어 여기저기에 k팝 스타들의 사진들이 붙어 있고, tv에서도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고 있었다.
손님들도 제법 많은 편이었다. 한국인들도 보였지만, 베트남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모양이었다.
“베트남 사람들도 많네요?”
“예, 한국식 오리고기라고 많이 좋아합니다. 특히 매콤한 우리 주물럭이 인기가 있죠.”
“그래요? 저도 주물럭 하나 주세요.”
진석도 인기가 있다는 오리 주물럭을 맛보았다. 약간 한국의 매운 맛이 느껴지는 맛이었는데, 오리고기의 잡내도 느껴지지 않고, 괜찮은 맛이었다.
같이 온 오병우는 훈제 오리를 시켰는데 역시 맛이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와, 이 정도면 요리 수준은 최고 수준인데요. 베트남에서 이 이상으로 오리요리를 하는 곳은 없을 겁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식당은 잘 되는 것 같은데, 민수 군은 안 보이네요?”
“아, 민수는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요? 어느 학교로 간 거죠?”
“사실 학교 문제로 많이 고민했는데, 여기 오병우 지사장님이 도와주셔서, 껀터에 한인 학교가 생겼습니다.”
“그래요? 껀터에 학교가 새로 생긴 건가요?”
진석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 예, 원래 호치민에 한국인 학교가 있었는데, 제가 거기 교장 선생님과 친분도 있고, 또 최영일 사장님처럼 껀터에서 학교 문제로 고민하는 교민들이 많은 것 같아서. 이번에 분교를 만들게 됐습니다.”
“오, 그래요?”
“예, 덕분에, 우리 민수도 껀터에 새로 생긴 한국인 학교에 가게 돼서 한시름 놓은 느낌입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국인이면, 한국 학교에 다니는 게 좋겠죠. 이번 기회에 제이에스 그룹에서 한인 학교에 기부도 좀 하고 그래야겠네요.”
“하하, 정말이십니까? 그러면 정말 좋은 일이죠? 사실 껀터에 학교가 생기기는 했는데 지금 교실도 부족하고 선생님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요? 그런 거라면 제이에스가 지원하겠습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우리 민수도 좋아할 거예요.”
일단, 오리고기 식당은, 전망이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베트남인들이 한국식 오리고기를 좋아하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진석은 민수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제이에스 농장을 찾았다.
***
“정말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실 계획이십니까?”
“예, 그래야죠.”
제이에스 농장의 광활한 농지 뒤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메콩 델타의 끝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안가는 최근 메콩강의 수량이 줄면서 해수가 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해수화가 문제가 되고 있었다.
진석의 제이에스 농장도 해안과 접하는 부분으로 바닷물의 침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쪽 해안지역에 맹그로브를 심을 겁니다.”
“정말 맹그로브 나무로 해안이 방어가 되는 겁니까?”
오병우는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일단 나무를 심어 놓고,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맹그로브가 해안 침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그 외에 부수적으로 이 맹그로브 나무의 목재도 가공해서 수익이 날 수 있죠.”
“맹그로브 나무는 목질이 안 좋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새우 양식장을 만든다고 잘라낸 맹그로브를 그냥 버리는 걸 많이 봤거든요.”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이건 새로운 품종이라 좀 다릅니다. 성장도 더 빠르니까. 멀지 않아 이 해안지대가 맹그로브로 가득차게 될 겁니다.”
진석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메콩 델타의 해안지대에 맹그로브 숲이 대규모로 조성될 것이다. 일단 제이에스 농장 주위에 숲이 생겨서 해안 침식을 막는 걸 보게 되면, 베트남인들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맹그로브 나무를 목재로 쓸 수도 있으니 베트남 농부들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맹그로브 숲 조성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규모의 맹그로브가 메콩 델타의 해안선을 지켜주게 된다면,
메콩 델타의 제이에스 농장도 더 발전하게 될 것이었다.
“좋아요, 일단 농장 주위부터 맹그로브를 심기로 하죠.”
진석의 진두지휘로 공간에서 생산한 맹그로브 묘목들이 제이에스 농장의 인부들의 손으로 해안가에 하나 둘씩 심어지기 시작했다,
해안에 나무를 심는 것이 신기한지 베트남 현지인들도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진석에게 베트남 남자 하나가 다가와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트남어를 모르는 진석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오병우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해안에 뭘 심는 거냐고 묻는데요.”
“맹그로브 나무를 심는 거라고 말해주세요. 이걸 심으면 나무가 자라서 해안이 침식되는 걸 막아 줄 거라고 말이죠.”
오병우가 베트남어로 통역을 해주자, 베트남 남자는 고개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죠?”
“자기가 르웬동이라는 마을에 사는데 저기 해안가의 마을 말입니다. 그쪽으로 바닷물이 자꾸 들어와서 마을이 바다에 침수될까봐 걱정이라는군요. 자기네 마을에도 나무를 심어줄 수 없냐고 묻는데요.”
남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오병우가 나이를 물어보니,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라고 했다. 확실히 한국인들에 비해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무 묘목은 줄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대신 나무를 심는 건 직접 해야 한다고.”
남자가 다시 뭐라고 말했다.
“자기네 마을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군요. 여기에 사람이 많으니 자기 마을에도 심어주면 좋은 일 아니냐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맹그로브 묘목을 심을 사람도 없는 마을이라면 바닷물에 잠겨도 상관없겠군요. 그렇게 통역해 주세요.”
오병우가 그렇게 통역을 하자,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돌아가버렸다.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죠.”
“하하, 맞습니다. 잘하신 겁니다.”
진석은 농장 주위에 맹그로브를 촘촘하게 심어 놓았다. 이 정도면, 시간이 지나서 나무가 자라면 바닷물을 막는 건 물론이고, 육지를 오히려 늘려줄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는 농장의 토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까 그 남자가 수십 명의 남자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뭐죠? 아까 우리가 나무를 심어주지 않겠다고 하니까, 해코지라도 하러 온 건 아니겠죠?”
“글쎄요. 설마 그러겠습니까?”
르웬동의 주민이라는 그 남자가 다시 뭐라고 말을 했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맹그로브 나무를 심을 사람들을 구해왔다는군요. 묘목을 나눠주면, 마을 해변에 심고 싶답니다.”
베트남 현지인들이 직접 맹그로브 숲을 만들겠다면 진석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한 번 거절한 것이 오히려, 베트남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묘목이라면 얼마든지 나눠주죠.”
진석은 말이 나온 김에, 르웬동이라는 마을에도 같이 가보기로 했다. 해안이 침식돼서 마을이 위기라는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일까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저기인 모양입니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어촌 마을이 나왔다. 그런데 바닷물이 진짜 마을의 집이 있는 곳까지 들어차 있는 것이었다.
“지금 밀물이라서 그런 거죠?”
“예, 썰물이면, 물이 마을 바깥쪽까지 빠진다고는 하네요. 하지만 밀물 때, 점점 더 안쪽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어서 몇 년 후에는 마을이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이랍니다.”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진석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르웬동 마을의 해안 침식은 심각한 상태였다.
일단,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의 외곽 지대에 맹그로브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다시 밀물이 들어오기는 하겠지만, 원래 바닷물 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맹그로브의 특성상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진석과 제이에스 직원들도 르웬동 주민들을 도와서 나무 심기 작업을 같이 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군요.”
“하하, 맹그로브 묘목이 더 필요하면, 제이에스 농장으로 찾아오라고 전해주세요. 이 마을 외에도 다른 마을 사람들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심을 수 있게 맹그로브 묘목을 준비해 놓을 테니 말이죠.”
르웬동 주민들은 진석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맹그로브를 심으라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맹그로브 숲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