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메콩 델타의 오리(3)
제이에스 본사
“맹그로브 숲을 만드시려고요?”
“그래, 맹그로브 나무라는 건, 바다와 강의 경계에 사는 나무라고, 그래서 해안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들은 것 같아.”
“해안을 지켜준다고요?”
이수정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맹그로브는 아주 특이한 나무다, 식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새끼를 낳는 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나무가 무슨 새끼를 낳냐고 하겠지만, 맹그로브는 나무의 가장자리에서 작은 새끼 나무가 떨여져 자라는 특이한 나무다, 마치 바나나의 측아와도 비슷한 건데, 차이라면 뿌리만 떨어져 나오는 바나나와 달리, 맹그로브는 작은 나무 묘목이 바다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복제를 하는 나무인 것이다. 덕분에 맹그로브는 전세계적으로 보아도 12종 정도의 적은 품종이 있는 나무다. 자기 복제를 하기 때문에 다양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나무가 가진 특성은 굉장히 독특해서, 뿌리가 깊지 않고, 오히려 뿌리가 물 위로 계속 올라와, 결과적으로 이 복잡한 뿌리의 작용으로 육지를 늘려나가는 작용을 하는 나무다.
“육지를 나무가 어떻게 늘려나간다는 거예요?”
이수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내 말을 들어와, 맹그로브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야, 즉,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거지, 맹그로브의 뿌리는 밀물 때는 물에 잠기지만, 썰물이 되면 수면 위로 올라온다고 그리고 뿌리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서 강에서 흘러 내려오는 퇴적물을 걸리게 하는 그물 역할을 한다고.”
마치 메콩 델타처럼, 바다와 강이 만나는 퇴적 지대에 자리를 잡고, 강의 퇴적물을 뿌리로 막아서 계속 쌓이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맹그로브 숲은 점차 퇴적물이 바다로 흐르지 않고 쌓여 육지화가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신기하네요, 자연적인 간척사업을 한다는 거잖아요?”
“그래, 억지로 인공의 제방을 쌓게 되면,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게 돼서 결국 썩은 호수가 되는 일이 생겨버리지. 그러면 퇴적토가 쌓여서 갯벌처럼 되더라도, 그 땅은 죽은 땅이 되어서 생태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져.”
“음, 정말 그렇겠네요.”
“하지만, 맹그로브의 숲은 단단하고 빈틈이 없는 제방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나무뿌리이기 때문에 적당히 물을 통과시키면서 퇴적토를 이용해 갯벌을 만들어 주거든 그리고 우리나라 서해처럼, 그런 식의 뻘흙은 여러 가지 생명체의 터전이 되어 주는 거지.”
자연이란 인간보다 훨씬 더 현명한 데가 있어서, 상당히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조건 바다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타협하며 중간지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맹그로브는 바다와 갯벌을 파괴하지 않고도 단계적으로 육지의 면적을 넓혀가는 신기한 수종이다.
하지만 맹그로브는 클론 번식을 하는 감자나, 바나나처럼, 새로운 품종을 개량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그럼 사장님은 어떤 맹그로브를 심으시려고요?”
“당연히 빨리 자라는 녀석이 필요해, 물론 요즘은 목재로 맹그로브를 활용한다고 하니까, 목재로서의 가치도 있는 녀석이면 좋고.”
진석이 맹그로브를 심는 이유는 일단, 해안가의 삼각주를 침범하는 바닷물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육지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맹그로브 숲을 광대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제이에스 농장 주위에 맹그로브 나무를 심으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겠지만, 그게 해답은 아니었다. 바닷물의 유입을 막으려면, 보다 광대한 맹그로브 숲이 필요했다.
거대한 맹그로브 숲 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지 문제도 있고, 베트남 정부나 아니면 메콩 강 일대의 주민들이 합심을 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석의 맹그로브 숲 사업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일단은 맹그로브 나무가 잘 자라서 바닷물을 막는 걸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맹그로브 나무로 뭔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맹그로브 숲의 나무를 목재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맹그로브 나무는 물가에서 자라는 특성 때문에 목질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목재로 사용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목질이 좀 더 단단할 필요가 있었다.
“수정 씨, 아무래도 사업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맹그로브가 필요하다고.”
“새로운 맹그로브요?”
“그래, 내 생각에 맹그로브 숲이 계획대로 잘 자라나면, 해안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해안을 육지로 만들면서, 육지화가 이루어질거야, 그러면 육지 쪽의 나무는 잘라서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맹그로브로요? 맹그로브로 가구를 만들 거나 말인가요?”
“뭐, 지금은 어려워, 맹그로브는 목질이 떨어지는 수종이거든. 하지만, 새로운 맹그로브 나무를 개발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거야.”
진석은 맹그로브 나무 묘목을 구하기 위해 인제의 제이에스 농업 단지를 찾았다.
***
강원도 인제군 제이에스 바이오 농업 연구단지. 종자연구소.
“사장님, 맹그로브 묘목을 찾으신다고요?”
소대영은 종자 연구소의 관리 과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벌써 과장이군요. 하하. 신입사원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동안 제이에스 바이오 그룹도 정말 엄청난 성장을 했으니까요. 요즘에는 메콩강 쪽에 쌀농장을 개발하고 계시다던데요?”
“맞아요. 메콩 델타라고 하죠, 아주 광대한 델타 지역입니다. 메콩강의 퇴적층이 쌓여서 엄청난 풍요를 누리던 지역이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상류 지역 국가들이 댐을 건설하면서 메콩강 하류의 유량이 많이 줄었다면서요?”
“맞아요, 그것 때문에 말들이 많죠. 유량도 줄어서 농업용수도 부족해지고, 또 하류 지역은 퇴적물이 줄면서 바닷물 유입이 늘어나 농지가 염분으로 황폐화되기도 하고요.”
“음, 심각한 문제네요.”
베트남 현지 분위기는 돈이 안 되는 쌀농사보다는 해안 침식지를 이용해 수익성이 높은 새우양식을 하려는 어부들도 있어서, 해수 유입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움직임은 보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진석이 맹그로브 숲을 개발해 수익 모델을 보여주면 베트남의 사람들도 태도가 변할 것이다.
진석은 일단, 새로운 맹그로브 나무가 필요했다.
“어떤 맹그로브 수종을 찾으시는 겁니까?”
“여러 종류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맹그로브들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품종이 필요하니까요.”
진석의 말에 소대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맹그로브는 식물 중에 유일한 태생종이죠. 마치 새끼를 낳는 것처럼 작은 새끼 나무를 바다로 떨어뜨리면서 번식하기 때문인데 일종의 클론 번식이라, 종의 다양성은 아주 적은 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12종 뿐이에요. 열대 해안에 대군락을 이루는 나무치고는 이례적으로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죠.”
“그래도 맹그로브 나무 열매도 있을 거 아닙니까?”
보통 클론 번식을 하는 식물들도 종자를 가진 열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클론 번식을 시작하면서 이런 종자의 기능을 퇴화하기 때문에, 종자의 번식력은 굉장히 미약한 편이다.
“예, 하지만 열매로는 번식이 거의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해 보죠. 일단 연구소에서 보관 중인 묘목을 좀 보여주겠습니까?”
소대영은 열대 작물 종자 보관소에서 기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맹그로브 묘목을 가지고 나왔다.
“좋아요, 이거면 되겠군요.”
***
강원도에서 돌아온, 진석은 서울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나무를 가지고 오셨군요.”
사령관은 맹그로브 나무 묘목을 가지고 온 진석에게 물었다.
“그래, 이건 맹그로브 나무라는 거야.”
“이번에도 산에 심으실 겁니까?”
“아니, 이건 물가에 사는 나무라고, 주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말이야.”
공간이 계속 확장되면서 공간에도 염수의 호수, 즉 바다가 생겼다. 그리고 공간과 함께 그 면적이 계속 확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산에서 출발한 물의 흐름은 강이 되어 염수의 바다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말이군요. 공간에도 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곳이 있기는 하죠.”
공간의 강은 메콩강보다는 작은 편이었지만,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퇴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종의 델타 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의 물을 타고 흘러내린 퇴적층은 뻘 같은 진흙의 지대를 만들게 된다,
진석은 일꾼들과 함께, 이 뻘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쯤이면 되겠는데. 뻘이 끝나고 바닷물이 시작되는 지점에 맹그로브를 심으면 될 것 같아.”
진석은 맹그로브 묘목을 바닷가의 갯뻘에 심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나무가 잘 자랄까요?”
“이 나무는 특이하게 이런 뻘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수종이니까. 이런 곳에서 더 잘 자란다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맹그로브 묘목들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뿌리가 밖으로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뿌리 호흡을 하는 맹그로브의 특성 때문이었다.
때문에 숨을 쉬기 위해 맹그로브 뿌리가 땅 위로 올라오는 특이한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이것이 강 하류의 퇴적층과 만나게 되면, 퇴적물을 모아서 뻘을 형성하고 점차 육지화가 되는 것이다.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자, 맹그로브가 무성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래쪽은 복잡하게 뿌리가 얽히며 특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나무 옆 줄기에 작은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나다가 어느 순간 바닷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같은 유전자를 가진 클론 번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기하군요, 공간주님, 맹그로브 나무 옆에서 작은 맹그로브 나무가 떨어지네요. 무슨 새끼를 낳는 것 같습니다.”
진흙 인간들의 사령관은 신기하다는 듯이 맹그로브의 작은 묘목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연 상태에서라면, 오랜시간동안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이라 관측이 어렵겠지만,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고 있었기 떄문에 맹그로브의 묘목이 어미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정은 굉장히 다이내믹한 모습으로 연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맹그로브 나무들은 바닷물 속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해안 일대를 맹그로브 나무들로 빠르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맹그로브의 성장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 성장한 맹그로브의 목질이었다. 맹그로브 나무를 베트남의 메콩 델타 외곽 해안 지대에 퍼지게 하려면, 자발적인 동참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목재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진석은 기다란 막대기 같은 녹색의 맹그로브 묘목을 살펴보았다. 그 끝에는 둥근 열매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맹그로브는 특이하게 열매가 어미 나무에서 발아해서 뿌리를 만들어 바닷물로 떨어지는 번식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무 옆에는 아직 뿌리가 자라지 않는 맹그로브 열매도 보였다.
“뿌리가 나오기 전에 이 열매를 따서, 안에서 씨앗을 채취해 보자고.”
“오, 이게 열매군요?”
진석은 맹그로브 열매에서 미성숙한 씨앗을 채취해서 성장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 클론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모체에서 성장을 다 마친 열매는 모체와 거의 일치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뿌리가 뻗어나오기 전에 열매를 따서 씨앗을 채취해 발아를 유도해 보는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맹그로브의 정상적인 번식법이 아니라, 발아 작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진석은 인내심을 가지고 발아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맹그로브의 씨앗이 흙에서 천천히 발아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공간주님, 열매에서 채취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있습니다.”
“그래, 이걸로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는데. 진석은 조심스럽게 싹이 튼 맹그로브 씨앗의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품종의 맹그로브 나무가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일단 씨앗으로 발아에 성공하자, 그 씨앗에서 나온 맹그로브를 증식시켜 계속 실험을 반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씨앗 발아에 성공한 맹그로브는 다음 세대에서도 씨앗으로 발아에 성공하며 빠르게 개체 수를 늘려나갔다. 그리고 클론 번식의 특성이 약해지면서 맹그로브 나무들은 다른 맹그로브 군락들과는 달리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가진 수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맹그로브들의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