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메콩 델타의 오리(2)
제이에스 농장을 둘러보고는 진석은 껀터 시내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와, 장난 아니게 덥네요.”
“하하, 베트남 남부는 북부와도 완전히 다르죠. 보통은 북베트남은 중국과 비슷한 유교 문화권, 동북아시아인과 인종적으로 비슷하다고 하지만, 남베트남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게요. 사람들 얼굴도 하노이와는 다르네요.”
“과거에 참파 왕국이라고 불리던 남방 왕국의 있던 곳이죠. 인종적으로는 북베트남보다는 캄보디아쪽과 비슷할 겁니다. 북베트남은 한국 사람과 비슷한 얼굴과 피부톤인데, 남부는 말레이시아나 캄보디아인에 가깝죠.”
진석도 푹푹 찌는 날씨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베트남 남부의 껀터는 기온도 높고, 습지대가 많은 델타 지역 특유의 습한 기후에 푹푹 찌는 가마솥에라도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에어컨이 돌아가는 제이에스 지사로 돌아오자, 좀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쌀 생산량은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을 것 같더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쌀은 동남아가 원산이라고 하죠. 이곳 기후에 정말 잘 맞는 작물입니다. 가만히 볍씨만 뿌려놔도 알아서 자라는 야생벼도 있으니까요.”
오병우는 이 지역의 장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점차 메콩 델타의 풍요도 사라지고 있었다. 북부의 산업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도 그렇지만, 하류로 내려오는 침적물도 줄고 있고, 거기에 유량이 줄면서 바닷물이 유입되는 문제도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 듣기로는 바닷물 유입량이 늘어난다면서요?”
“예,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다와 면한 지역이다보니, 지구온난화로 해수위가 높아지는 영향도 있고요. 상류에서 내려오는 퇴적토가 줄어서, 천연 제방 역할을 하던 델타 지역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있어요.”
메콩 델타의 습지대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문제도 큰 문제였다. 과거에 수량이 풍부하던 시절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더라도 강의 물이 바닷물을 밀어내는 양상이었는데, 그 힘이 줄어들면서 균형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바닷물은 주기적으로 밀려들어왔다가 다시 바다로 쓸려내려가며,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고 있는데, 바닷물이 한 번 들어왔던 지역은 염도가 높아져서 농지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방을 쌓으면 어떨까요?”
“뭐,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무엇보다 베트남 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래요?”
“베트남 정부도 바닷물이 농지를 침식하는 걸 알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워낙 대공사가 될 거라, 공무원들이 그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죠. 사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메콩 델타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데, 댐이나 제방을 쌓아서 그 지역을 다 커버할 수도 없고. 또, 인공제방을 만들어서 물이 고이는 문제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겠네요. 물을 가두는 것도 문제고, 물이 고이는 것도 문제고.”
뭔가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인 해결이 아니고는 어려울 것 같았다.
“맹그로브 숲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맹그로브 숲요?”
“예,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면 바닷물을 막아준다고 하더군요.”
진석의 말에 오병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규모 숲을 조성하는 게 가능할까요?”
“뭐, 시도는 해봐야죠. 저희도 메콩 지역에 투자를 한 이상, 이 메콩 델타가 잘 되어야 할 거 아닙니까?”
제방을 쌓든 맹그로브 숲을 만들든 베트남 정부가 나서서 주도를 해야 할 큰 사업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무심한 분위기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럼, 베트남 공무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볼까요?”
“뭐, 그럴 건 없습니다. 일단은 우리 농장 근처에 만이라도 맹그로브 숲을 만들어서 해수를 좀 막아보죠. 우리가 성공하면 베트남 정부도 알아서 따라 하겠죠.”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그나저나 오리들이 잘 자라는 것 같은데. 오리 쪽의 판매는 어떻습니까?”
“뭐, 일단, 한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수출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베트남 사람들은 오리는 잘 안 먹나요?”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리 요리가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요. 껀터 같은 곳은 워낙 해산물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오리 고기보다는 생선을 더 좋아하거든요.”
메콩 델타 지역은 물고기가 흔한 곳이어서 그런지 굳이 오리를 키우는 농가가 많지 않았고, 오리 고기도 많이 소비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오리 요리를 하는 식당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았다. 당장 새로운 인력을 데리고 오는 것보다 현지에 한인 식당과 협업으로 오리 요리를 전파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껀터에 한인 식당들이 있지 않나요?”
“예, 지난 번에 갔던 곳도 있고요. 컨터에는 제법 교민이 있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껀터와 하노이, 호치민 같은 곳에 한국식 오리 고기 전문점을 만들어 보죠.”
“오리 요리 식당 말인가요?”
“예, 제이에스 농장에서 생산하는 오리들도 소비하고, 한류가 유명하니까, 한국식 오리 고기 전문점이라고 해서 한국식 오리 요리를 선보이는 겁니다. 일종의 k 푸드죠.”
진석의 말에, 오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베트남은 한류 여전히 인기라 한국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다 인기가 좋은 편이죠. 오리 고기 식당도 한국식이라고 해서 오픈하면 관심을 받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껀터부터 시작해서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교민 식당주들을 섭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제 전문이죠. 제가 한 번 한인 식당들을 돌아보면서 파트너가 될 곳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병우가 시내를 돌며 오리고기 사업에 관심이 있는 한인 식당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껀터에는 많지는 않지만, 한인들도 제법 있었다.
***
한인 식당, 민수네 식당
“아드님 이름이 민수인가요?”
“예, 올해 일곱 살입니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였었다는 민수네 식당 주인 부부는 2년 전에 베트남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아이도 어리고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뭘요? 이진석 사장님 같은 분이 대단하시죠. 저희는 평범하다 못해 많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하, 이렇게 먼 외국까지 오셔서 새로운 인생을 도전하시는 거면 대단한 거죠, 대단한 게 뭐 따로 있나요?”
민수네 식당의 주인은 30대 초반의 부부들이었다. 나이는 비슷해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냥 서울 어디에서든 볼 것 같은 사람들이 껀터까지 와서 식당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진석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별 건 아니지만 궁금하시면 이야기를 못 할 것도 없죠, 저는 최영일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이미주고요. 서로 동갑이에요. 고등학교 때 만나서 결혼까지 한 케이스죠.”
“와, 거의 첫사랑이었겠네요?”
“뭐, 그런 셈이죠. 워낙 어렸을 때부터 만났으니까.”
둘 다 가정사가 복잡한 집안 출신이라, 청소년기부터 집 밖으로 겉돌던 둘은 성인이 되자, 돈도 아낄 겸, 동거를 시작했다고 했다.
“정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방값 좀 아껴보자고, 같이 살았던 거예요. 그만큼 돈이 궁했었죠.”
첫 시작은 경제적인 문제였고,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 남녀 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원룸에서 같이 방을 쉐어하는 공동생활이 가능했다고 했다.
둘 다 대학을 갈 형편은 안 되었고,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돈을 모아서 같이 방 하나를 쓰던 생활도 몇 년 후에는 청산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떨어져 살던, 둘이 우연이 길거리에서 만나서 마치 영화처럼 다시 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20대 중반쯤이었으니까, 또 그때, 미주를 다시 만나니까. 또 전과는 달라 보이더라고요.”
최영일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이미주가 무척 성숙해진 모습에 반했고, 결국, 두 번째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진짜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민수가 태어난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가진 것도 없고,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는 결혼도 안 하고 태어난 아이를 좋게 안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말 그대로 헬조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고요.”
최영일은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헬조선이라? 그런 말을 많이 하더군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합니다.”
“예, 일자리는 없고, 장사도 하기 어렵고, 집값이나 교육비는 너무 비싸고, 한국에서는 답이 없겠다 싶었죠. 저도 그렇고 미주도 어려운 집안 출신이라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음, 저런...”
“어린 마음에 나중에 돈 벌어서 복수할 거야, 그런 마음도 먹었는데, 돈 버는 게 쉽지도 않고, 아이가 한 살 두 살 커가는 걸 보니, 우리 민수도 전형적인 가난한 집 아이로 자랄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가 않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요. 그래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베트남으로 온 거군요?”
최영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새로 시작하면 뭐든 한국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소위 말해 헬조선을 탈출한 난민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곳은 베트남에서도 오지였던 껀터였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거라, 한국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 가보려고 했던 거죠. 어차피 이국땅에서 도전하는 거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베트남 이주는 성공하신 겁니까?”
진석의 말에 최영일은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글쎄요. 도망쳐간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여기도 힘들기는 한국이나 마찬가지죠. 거기에 아이가 커가면서 걱정도 되고요.”
“아. 민수 말이군요?”
“예, 이제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 학교를 가야하는 건지, 여기 현지 학교를 보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이래저래 걱정이 많습니다.”
최영일은 한국이 싫어 떠났지만, 또 여기서도 한국 식당을 하고 있었다. 주로 한국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혹시 제이에스 그룹의 파트너가 될 생각은 없으십니까?”
“파트너요?”
“예, 제이에스가 메콩 델타에 대규모 농장을 하고 있는 걸 알고 계십니까?”
“저도 뉴스에서 봤습니다. 베트남 tv에도 그 농장이 자주 나오더군요. 오리도 키우는 오리 농업으로 잘 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예,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쌀농사를 짓는 곳이지만, 부수적으로 오리도 키우고 있죠. 오리는 논의 잡초를 제거해 주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오리고기는 건강식으로 한국에서는 꽤 잘 알려져 있죠.”
“음, 그렇죠. 저도 들은 적이 있으니까요. 오리고기가 혈관 질환에 좋다고도 하더라고요.”
“한국에는 오리에 대한 수요가 제법 있어서 논에서 키운 오리로 부수입도 괜찮은 편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에도 오리 요리 식당을 열어 볼까 하고 있거든요.”
“그럼, 저에게 지금 오리고기 식당을 해보라는 겁니까?”
“예, 이미 식당을 영업 중이시니까. 현지 사정도 잘 아실 것 같고. 또 이곳에 한류가 유행이라, 한국식 오리고기 전문점을 해보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제이에스 그룹이 필요한 투자는 해드릴 겁니다.”
뜻밖의 제안에 최영일은 좀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오리 요리는 해 본 적이 없는데?”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한국에서 전문가를 모셔와서 요리 강의도 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식당을 하시던 분이라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여보, 좋은 기회 같아요.”
옆에서 아내인 이미주가 거들자, 최영일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사업도 더 안정적이 될 테고요.”
잠시 고민하던 최영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좋은 기회일 것 같네요.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하, 이렇게 제이에스 가족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저와 저희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