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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체리(2) (95/183)

112화. 유쾌한 체리(2)

오아시스의 출입구를 통해 산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일꾼들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이용하는데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산에서의 작업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체리 나무는 처음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체리는 장식용으로 많이 보기는 했는데 어떤 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데.”

일단 밭을 만들고, 체리 농장에서 선물 받은 체리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묘목을 심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체리 나무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검붉은 체리 열매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탐스러운 열매군요,”

“그러게요. 맛은 어떨지 궁금해지는데.”

진석은 체리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보았다. 달콤한 향과 맛이 입안에 퍼지자 진석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맛이 어떤가요? 공간주님.”

“굉장히 맛있는데, 향도 좋고. 이 정도면 내가 먹어본 체리 중에 최상급인데.”

“오, 그러면 만족하신 겁니까?”

체리가 맛있기는 하지만 잘익은 체리는 어지간하면 맛이 있으니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더 산에서 재배를 하다보면 독특한 체리가 나올 것이다. 진석은 산에서 변형된 체리가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사령관, 좀 다른 체리가 나올 때까지, 더 작업을 해보자고.”

일꾼들이 밭에서 체리 묘목을 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체리나무가 늘어나며 산의 체리 밭에는 향긋한 체리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음, 사령관, 체리가 맛있기는한데 별다른 건 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체리가 변형이 되는 기미가 없는데요. 모양도 그대로고 색깔도 변화가 없고..”

진석은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천천히 인내심을 갖고 체리나무를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음, 공간주님, 저 체리나무는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다른 점이 있다는 건가?”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가리키는 나무를 진석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열매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아니였다. 열매의 모양과 색은 그대로지만, 보통 하나씩 열리는 체리열매들이 포도처럼 송이를 이루고 있었다.

“뭐지? 이건 포도같은 느낌이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포도는 아닌데, 포도 송이 같은 느낌이네요.”

진석은 송이체리가 열리는 체리나무로 다가갔다. 포도처럼, 알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10여개의 체리가 송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체리는 처음보네, 모두 올망졸망 모여있잖아.”

진석은 체리를 따서 맛을 보았다. 맛은 다른 체리와 비슷했다. 색이나 향도 그대로고, 대신 하나씩 열리던 체리가 송이를 만들어서 자라고 있었다.

“좋아, 이건 변형된 체리가 분명해. 이거면 분명히 특별한 효능이 있을 거야. 이걸 증식해보자고.”

진석은 송이체리의 열매에서 씨를 채취해 체리나무를 증식하기 시작했다.

***

강원도 송암 스포츠타운 주경기장, 전북과의 홈경기.

“개막전이군요. 거기에 홈경기 뭔가 기대가 되는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vip석에서 진석은 올시즌 fc강원의 첫 경기를 관람 중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 만난 김현수 감독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올해 팀이 역대급 경기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최근 10여 년 동안 5번을 우승한 전북을 상대로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전 관중석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사실, 진석이 응원을 하는 것과 경기 결과와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었다. 하지만 구단주로서 충분한 지원을 해준 올 시즌의 첫 경기, 승패보다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진 것인지 직접 눈앞에서 확인해 볼 기회였다. 그래서 진석도 일부러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강원의 서포터로 보이는 두 명의 남녀 대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아, 강원을 응원해주신 분들이군요. 구단주로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원의 홈 경기 저지를 입고 응원 도구도 들고 있는 폼이 열성적인 서포터즈인 모양이었다. 구단주의 입장에서는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다. 특히 강원 fc는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서포터즈도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팀 성적도 부진해서, 지난 시즌에 겨우 1부 리그 격인 k리그에 진출했고, 거기에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은 강원도가 연고지라 이래저래, 팬들의 수들도 적고, 서포터즈도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 명의 팬들도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 대학생드인 것 같은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매점에서 뭐 좀 먹고 가요. 오늘은 구단주인 내가 쏘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고맙죠.”

한턱 쏜다고는 했지만 매점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햄버거와 핫도그 그리고 음료수들 정도,

“이진석 구단주님, 매번 느끼는 건데, 매점에 간식거리가 부실합니다. 저희는 강원 fc 원정 경기를 응원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다른 경기장에 비해서도 한참 부실한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사실, 이 경기장은 구단 소유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운영하는 도립 경기장이었다. 운영주체도 강원도에서 하고 있어서 일반 민간기업처럼 열성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었다.

“매점이 좀 부실하기는 하네요. 사실, 여기는 제이에스 그룹이 직영하는 곳은 아니기는 하지만, 제가 구단주니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죠.”

“정말요? 그럼 감사하죠. 기대하겠습니다.”

간식거리를 같이 산 김에, 일반석으로 같이 가서 학생들과 축구경기를 보기로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막전인데도 빈 좌석이 많은 편이어서, 진석은 빈자리에 대충 자리를 잡았다.

매점에 다녀온 사이에도 아직 득점은 없었다. 팽팽한 영의 대결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은 득점보다는 경기 내용에 관심이 있었다.

“확실히 브라질 출신이라 개인기가 좋군요.”

세르징요는 브라질 출신의 브라질 리그 지난 시즌 득점왕이었다. 남미 출신 스트라이커로는 183cm 정도의 비교적 큰 키에 유연하고 개인기가 좋은 선수였다.

“하지만 개인기만으로 전북의 수비를 돌파하기는 어렵죠.”

대학생 중에 남학생이 경기를 유심히 보더니, 세르징요의 플레이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렇기는 하네요. 개인 돌파를 많이 시도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하하...”

전북의 수비가 볼을 끄는 세르징요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협력 수비를 펼치자, 세르징요의 개인돌파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최전방에서 커트된 볼이 빠르게 전북 중앙 미드필더를 거쳐, 순식간에 강원 지역으로 역습이 시작되었다.

“저런, 위험한데. 안 돼..”

보고 있던 진석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하, 구단주님도 저희랑 다른 게 없네요.”

다행히 전북 공격수의 강슛이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옆자리의 두 대학생 서포터즈도 진석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똑같이 행동하는 진석을 보고 재밌다는 듯이 웃는 것이었다.

“축구를 보는 건 똑같죠. 저도 구단주 이전에 한 명의 팬일 뿐입니다.”

“그러게요, 축구경기보다, 이렇게 소탈한 구단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재밌네요.”

“하하, 그래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경기가 안 풀리네요.”

진석의 말에, 대학생 서포터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손발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서 그런가? 다들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국내 선수들은 조직적인 숏패스만 하려하고, 외국 용병들은 개인 플레이만 하려고 하고 뭔가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진석이 보는 인상도 마찬가지였다. 남미 출신의 공격수들의 개인기가 확실히 뛰어나기는 한데, 국내 선수들로 구성된 미드필더의 지원을 받지 못하니 매번 고립되는 느낌, 아무리 개인능력이 좋아도 매번 상대편에 포위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면 어려운데, 저렇게 따로 놀기만 해서는.”

경기력에 문제가 있다는 건, 진석과 서포터즈들만 느끼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김현수 감독도 경기 시작 전과는 달리 초초한지 필드까지 나와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선수들도 서로에게 짜증 섞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반면에 지난 시즌과 선수구성이 아니, 최근 몇 년동안 큰 변화가 없던 전북은 유기적인 패스 연결을 보여주며 점점 경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경기력이 좋지 않은데요.”

옆자리의 여대생도 실망한 목소리였다.

“첫 경기라 그럴 수도 있죠. 아직 영 대 영이니까, 좀 더 지켜봅시다.”

하지만 팽팽하던 영의 행진도 기어이 멈추고 말았다. 먼저 승기를 잡은 것은 전북이었다. 최전방의 세르징요와 강원 미드필더간의 패스 미스가 나오자, 빠르게 전북이 볼을 빼앗았다. 그리고 몇 번의 안정적인 패스 연결 후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강원의 중앙에서 수비수들이 서로 뒤엉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이 전북의 공격수가 여유있게 헤더로 득점 성공.

“아, 이건 아닌데.”

남학생이 안타까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수비 위치가 서로 겹쳤네요. 저럴 때는 서로 콜을 해줘야 하는 건데.”

여러 사람이 뛰는 축구경기, 특히 골 에어리어에서 수비수들이 서로 뒤엉킬 때는 서로 콜을 해줘서 위치가 겹치지 않게 조정해 줘야 하는데, 선수들 간의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이라 국내 선수들하고 말이 잘 안 통하나봐요.”

“언어가 문제는 아닐텐데, 간단한 영어 정도는 다들 가능하니까요.”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경기 중에 사용하는 간단한 회화 정도는 모두 가능하다, 그보다는 선수들간에 언어 외적으로 소통이 안 된다고 볼 수 있었다.

경기는 후반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강원은 전반적으로 공격과 수비, 그리고 미드필더가 따로노는 느낌이었고, 그에 반해 전북은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전북에 노장이 많아서 잘 못뛰는데도. 우리가 밀리고 있어요.”

여학생은 속상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게 됐네요. 개막전이라 그것도 홈에서 기대가 컸을텐데.”

“아뇨, 구단주님이 무슨 잘못인가요? 올해는 투자도 많이 하신 걸로 아는데, 구단주님은 할만큼 하신 것 같아요.”

착한 학생들이었다. 진석이 무안하지 않게, 좋게좋게 말해주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후반에 또 실점하고 결국 2대 0으로 경기가 종료되자 두 학생 모두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하하, 이제 겨우 한 경기니까요. 시즌이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아직 새로 온 선수들과 호흡이 안 맞아서 그런 것 같으니까. 좀 더 기다려주세요.”

“예,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강원 fc 파이팅.”

“올해는 꼭 우승하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경기는 졌지만 젊은 서포터스들은 여전히 유쾌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진석도 실망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겨우 한 경기가 지났을 뿐이다. 시즌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진석은 경기에 졌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선수들을 위로하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뭐가 좋으려나? 그래, 공간에서 재배한 송이체리를 가져다주자.

경기가 끝나고 락커룸으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냉랭하게 식어 있었다.

“하하, 락커품 분위기가 좀 다운됐네요. 다들 힘내세요. 이제 첫 경기아닙니까?”

“아, 구단주님.”

선수들도 모두 진석을 알아보고 일어섰다.

“아아, 쉬어요,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다들 수고했어요. 경기 결과보다는 어려운 개막전 첫 경기를 무사히 마쳤다는데 의의가 있는 거니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큰 소리를 쳐서, 주제 파악도 못한 못난 감독이 되었네요.”

김현수 감독은 잔뜩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왕년에 국가대표로 필드에서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그 김현수 선수가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경기야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경기 내용이 많이 실망스러워서. 이렇게 팀웍이 엉망일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하하, 다음 경기는 또 다르겠죠. 그나저나, 제가 선물로 체리를 좀 가져왔습니다.”

“체리요?”

“우리 제이에스 바이오에서 새로 개발한 품종의 체리인데, 모양도 좀 특이하죠. 마치 포도 소이처럼 체리가 몰려있는 송이체리입니다.”

“아, 뭐. 아무튼 감사합니다.”

진석은 가져온 체리 상자를 열어서 김현수 감독과 선수들에게 송이체리를 보여주었다. 분위기는 다운되었지만, 신기한 체리의 모습이 다들 모여들었다.

“와, 맛있네요. 세르징요도 먹어봐. 이런 체리는 브라질에도 없지?”

“오, 잇츠 딜리셔스, 마시써..오..굿...따봉..”

“하하, 따봉...”

경기중에는 서로 호흡이 안 맞던 외국 선수들도, 체리를 나눠 먹으며 조금씩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하하, 그럼, 송이체리를 먹고 좀 힘을 내서 다음 경기에는 더 잘해봅시다. 자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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