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쾌한 체리(1) (94/183)

111화. 유쾌한 체리(1)

청담동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개막전인가요?”

지난 시즌을 k리그 중상위권으로 마무리를 한 fc 강원은 올해는 목표를 우승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김현수 감독에게 약속한대로 선수들을 보강하는데도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동유럽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출신의 외국인 용병들도 대거 스카우트 되면서 전력이 크게 보강되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우승도 가능하다는 스포츠 뉴스의 분석기사도 보이고 있었다.

“예, 다음주가 개막이죠. 올해는 기대를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현수 감독은 유럽으로 떠났던 전지 훈련 결과가 만족스러웠는지 평소답지 않게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 정도입니까?”

“예, 구단주님께서 충분한 지원을 하신 덕분이죠. 남미 출신의 공격진도 최상이고, 유럽 출신의 센터백들도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수비력이 최강입니다.”

김현수 감독의 요청대로 특점력 강화를 위해, 브라질 리그 득점왕 출신의 공격수를 보강하고, 파라과이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동유럽 출신의 센터백들을 후방에 배치해서 공격과 수비 모두가 강화된 상태였다.

그리고 미드필더와, 사이드백 같은 체력소모가 강한 포지션에는 기존의 젊은 선수들을 배치하는 전술이었다.

“공격과 수비 모두가 강화되었다는 거군요. 뭐, 그 선수들이라면, 몸값도 외국인 최고 수준이니, 실력은 검증된 거겠죠.”

좋은 선수, 개인기가 좋은 남미 출신의 공격수와 피지컬이 강한 동유럽 출신 중앙 수비수들이 보강된 팀의 전력은 전 시즌에 비해, 대폭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난 시즌에 중상위권은 됐으니, 이번 시즌에는 최상위권 내지는 우승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아무튼, 개막전이 기대되네요.”

개막전 상대는 지난 시즌 우승팀은 전북이었다. 최근 주전들이 노령화로 하락세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노련한 강팀이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하하.”

김현수 감독은 전에 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하하, 그럼 기대해보죠.”

***

김포 은하수 농장,

“이게 뭐예요?”

서은주는 진석이 내미는 상자를 받아들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선물이예요. 엑스트라버진 오일이죠.”

“에...엑스트라버진요?”

호주의 올리브농장에서 첫 수확한 올리브유였다. 일단, 제이에스에 생산한 올리브유이기는 했지만 호주에서 생산된 수입산 오일이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수입절차를 밟느라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올해 첫 수확한 최고급 올리브 오일을 가져온 것이었다,

“엑스트라버진이라는 게 좋은 거죠? 사실 올리브유는 잘 몰라서, 마트에서 사기는 하는데, 병에 그렇게 써있기는 하더라고요.”

“예, 올리브는 뭐든 새것이 좋아요. 처음 압착한 오일이 좋은 거고, 첫 번째 수확한 나무의 올리브 오일이 좋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수확해서 첫 번째로 짜낸 최고의 오일인 셈이었다.

“와, 이게 그 호주에서 생산한 올리브유라는 거죠?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유럽을 제외하고는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은 호주가 거의 유일하다면서요?”

“올리브를 키우는 곳이야 제법 있겠지만 상업적으로 올리브유를 채유할 수 있는 곳은 제이에스 농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죠.”

“자부심이 대단하시겠어요?”

“하하, 뭐, 조금은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이미 슈퍼 테오신테 같은 작물을 생산하고는 있었지만, 슈퍼 테오신테는 옥수수라 누구에게 선물로 가져오기는 어려웠다.

그에 비해, 올리브유는 선물용으로 괜찮아서 호주산 올리브유의 수입이 시작되자, 여기저기 선물로 올리브유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잘 받을게요.”

“아, 올리브유는 많이 가져왔으니까, 주위에도 좀 나눠주세요.”

“어머, 그래도 돼요?”

“그럼요, 새로 출시한 오일이라 홍보도 할 겸, 여기저기 오일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석은 트럭에 가득 실린 올리브유 상자를 보여주었다.

“저걸 다요?”

“노인정에도 좀 나눠드리고, 주변 농장에도 나누어 주세요. 제이에스 농장에서 만든 올리브 오일은 아직은 생소하니까, 이렇게 무료로 증정도 하고 해야죠.”

일종의 선물 겸, 홍보를 겸해서 여기저기 올리브유를 나눠주고 있었다. 아직, 올리브유하면, 스페인이나 프랑스산이 좋다는 인식이 강하니 말이다.

“그럼 혼자서는 좀 무거우니까, 이 사장님이 좀 도와주실래요? 올리브 오일 나눠주는 거 말이에요.”

“그래요, 마침, 시간도 한가하거든요.”

호주쪽 일을 마치고 나자 시간에 좀 여유가 있어서 겸사겸사 찾아온 은하수 농장이었다.

진석은 서은주와 함께, 올리브 오일들을 주변 농장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노인정에는 열 박스면 되겠죠?”

“그거면 충분해요.”

노인정에도 올리브유를 배달하고 인근의 다른 농장들에도 차례로 오일 상자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된 것 같은데요.”

“이진석 사장님 덕에 제가 좋은 일을 하네요.”

“하하, 이웃들하고 잘 지내면 좋죠. 상부상조 아닙니까?”

“하나 남았네요. 더 선물할 곳 없나요?”

“음, 아, 얼마 전에 새로 생긴 농장이 있는데 거기로 가져가야겠어요.”

“새로 생긴 농장요?”

“응, 새로 생겼다고 해도, 6개월 정도는 됐어요. 다른 농장에 비해서 최근이라는 거죠.”

대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일반인보다 단위가 큰 편이다. 농사가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다 보니 다른 현대인들의 시간과는 좀 시간의 흐름이 느린 편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6개월 전에 생긴 농장이 새로 생긴 농장이라는 건, 너무 여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새로 생겼다길래, 2주 정도 된 줄 알았네요?”

“음, 그렇죠,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사실, 그 농장 주인이 좀 괴팍해요.”

“괴팍요?”

“예, 농장 위치도 좀 외떨진 곳에 있고, 농장 주인도 젊은 남자인데, 좀처럼 마을 사람들하고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서 말이죠.”

“음, 약간 외골수군요.”

“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뭐랄까? 물과 기름이랄까, 물속에 뿌려진 기름처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죠. 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그 사람은 무슨 작물을 키우나요?”

“체리를 키운다는 것 같아요. 체리 좋아하세요?”

“체리라면, 좋아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음료수 만들 때 많이 들어가는 재료죠. 그러고 보니, 체리도 키워보면 괜찮을 것 같네요. 아무튼, 한 박스 남은 올리브유는 거기에 주고 오죠.”

“그래요, 같이 가요.”

서은주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좀 나가자, 마을 외곽에 외진 농장이 하나 보였다. 농장에서는 서은주의 말대로 체리 나무들을 키우고 있었다. 체리가 익어가는 철인지, 나무마다 체리가 방울방울 열려있었다.

“음, 체리 향기가 좋은데요.”

“누구십니까?”

농장 앞에서 체리 나무를 구경하고 있자, 농장 안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가 나왔다.

군인처럼, 아주 짧은 머리였다. 이발소나 미장원에서 가위로 잘라낸 머리 같지는 않고,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것처럼, 아주 짧았다.

“아, 저는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서로 구면이시죠?”

진석은 서은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는 대답은 하지 않고 가만히 진석과 은주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저희 회사에서 출신한 신제품입니다. 호주산 올리브유죠. 호주산이라고 하지만 저의 제이에스 바이오의 호주 농장에서 생산한 올리브로 짜낸 신선한 오일입니다.”

“제이에스 바이오라고요?”

남자는 조금 놀란 눈으로 진석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말수가 적어서인지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진석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예,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제이에스 바이오라는 농업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종자부터 농작물의 생산과 유통을 하고 있죠, 이번에는 올리브유를 새로 출시한 거고요.”

“저도 압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아무튼 시제품인 셈이죠. 호주에서 올해 처음으로 올리브를 수확했거든요. 첫 수확한 올리브에서 처음으로 짜낸 엑스트라 버진 오일이죠.”

“그런데요?”

“선물이라고 해도 좋고, 홍보용으로 돌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한 번 사용해 보시라고 무료로 드리는 올리브 오일입니다.”

남자는 딱히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 얼굴로 어색하게 진석이 내미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하하, 그럼, 가보겠습니다.”

진석은 올리브 오일 상자를 건네주고는 차로 돌아왔다.

남자가 상자를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버리자, 서은주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괜히 왔나봐요. 저 사람, 고맙다는 말도 없네요.”

“괜찮아요, 어차피 시식해 보라고 가져온 건데, 어때요? 사람은 착해 보이던데요. 무뚝뚝해서 그렇지,”

“그래도 지나가는 말로라도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이런 말 정도는 하는 거 아닌가요?”

서은주가 그런 말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할 때였다. 집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뭔가를 들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뭐지? 이쪽으로 오는데요.”

“그러게요, 무슨 일이지?”

서은주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저기 이거 가져가세요.”

“뭡니까? 그게.”

진석은 남자가 내미는 비닐 봉투를 열어 보았다.

“체리 묘목입니다. 제가 체리를 키우고 있는데, 지금 심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체리의 묘목이에요.”

“아니, 이런 걸 왜? 좋은 품종의 묘목이면 더 심으시죠?”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땅이 좁아서 더 심을 곳도 없어요. 억지로 무리해서 심고 심지도 않고.”

“아, 그러시군요.”

“저도 체리 농사를 지은 지는 얼마 안 되는데, 이 품종은 향도 좋고 열매도 맛있는 것 같아요. 혹시 종자를 연구하시는데 도움이 될까 하고 드리는 겁니다.”

사실, 각종 과일의 종자라면 연구소의 종자 보관은행에 더 다양한 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순수해 보이는 남자의 성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뭐, 그렇게 좋은 거라고 하니까. 한 번 가져가서 키워보겠습니다.”

진석은 남자가 건네준 묘목을 트럭에 실었다.

트럭이 체리 농장을 빠져나오자 서은주가 한마디를 했다.

“역시 이진석 사장님 말이 맞았네요.”

“뭐가요?”

“무뚝뚝해서 그러지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도 이웃으로 살면서도 저 남자를 오해했나봐요.”

“하하,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이고요. 그나저나 그 남자 말대로라면, 아주 좋은 품종의 체리인가봐요?”

“그래서 그걸 진짜 가져가서 키우실 거예요?”

“그래야죠. 사실 체리는 안 키워봤거든요. 한 번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진석은 체리 묘목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거실로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관이 진석을 맞고 있었다.

“체리 나무라?”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서울은 벌써 해가 지고 있었지만, 공간은 언제나 밝은 낮의 세계였다. 공간의 오아시스에 진석이 나타나자, 진흙 인간의 사령관이 진석을 맞았다.

“공간주님, 오늘은 나무 묘목이군요?”

“그래, 체리나무 묘목이야.”

“체리요? 아 그 작고 달콤한 과일 말이군요.”

“그래, 올리브유를 선물로 주러 갔다가 받아 온 건데, 이 체리는 아주 향이 좋고 맛도 달콤하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어디에 체리 나무를 심으실 겁니까? 산인가요? 아니면 공간의 평지인가요?”

공간에서는 다양한 작물이 키워지고 있었지만, 산과 평지에 따라 작물의 성격은 확연하게 달라지고는 했다.

평지에 심는 작물들은 진석이 시간을 가속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용도를 쓰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종자들을 만들어 외부세계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산에서 키운 작물들은 독특한 효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과일들에 비해 크기나 색깔이 다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평지에서 키운 새로운 품종은 외부세계에서도 잘 적응하는 편이었지만, 산에서 재배한 작물의 새로운 품종은 공간을 벗어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평지와 산, 둘 다 장점과 단점이 있는 셈이었다.

음 이, 체리를 대규모로 키울 거라면, 평지가 좋고. 특별한 효능을 원한다면 산이 좋겠지..

“공간주님, 결정을 내려주십쇼.”

“음, 이건, 산에서 키워보기로 하지. 준비해 줘, 사령관.”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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