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올리브 기름(3) (93/183)

110화. 차가운 올리브 기름(3)

단기간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박성준 사장에게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진석도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술개발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고압 압축 프레스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다고요?”

“예, 저도 몰랐는데, 이번에 저온 압착기를 개발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보니, 독일에 DMW 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더라고요.”

“그럼, 그 회사에서 부품을 구할 수 있는 겁니까?”

진석의 말에 박성준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저희 직원이 그쪽 회사에 친구가 있더라고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친구인데 아무튼, 필요한 부품을 주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저온 압착기술은 유럽이 독점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나라의 부품 제조 기술도 상당히 발전한 탓인지 독일의 뒤셀도르프 기계 공작소의 주요 부품을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생산하고 있던 것이었다.

저온 압착기에 고압을 유지하는 핵심 부품이었다. 핵심 부품 몇 가지가 쉽게 해결되자, 저온 압착기 개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호주에서 또 연락이 왔어요. 압착 시설은 언제 준비되는 거냐고?”

존 스트라다였다. 호주쪽의 공장부지는 완공된 상황이었다. 이제 기계 설비를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수확기가 되기 전에, 올리브유 공장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해. 지금 준비 중이니까.”

원래, 성원 생활건강 공장에서 사용하던 고온 압축기를 저온 압축기로 개조하는 작업이 계속 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 사용하는 고온 압착기는 박성준 사장이 직접 개발한 기계였다. 따라서 설계 변경이나 개조 작업에는 문제가 없었다. 거기에 상당한 고가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저온 압착기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부품을 구해서 고압의 저온 압축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 호주 쪽에는 이제 본격적인 올리브 수확기가 온다는 것 같아요. 빠른 곳은 벌써 수확에 들어갔고요.”

“나도 알아, 조금만 기다려달라고해. 여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진석은 압착기 개발 경과도 알아볼 겸, 제이에스 생활건강의 공장으로 향했다.

***

제이에스 생활건강, 부천 공장.

“박 사장님, 기계 개발은 잘되나요?”

“이진석 사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의할 일이 있었는데.”

“상의요?”

기계를 만드는 일이라면, 진석과 따로 상의할 일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지? 기계공학이나 이런 쪽으로는 지식이 별로 없는 진석이었다.

“저, 사실은 이수정 전무님도 자주 전화를 해서, 압착기 개발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더군요.”

“이수정 전무가 말입니까?”

호주의 존 스트라다에게서 자꾸 급하다는 말을 듣다보니, 이수정도 급한 마음에 박성준 사장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급하게 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괜히 급하게 하다, 안 해도 될 실수를 하면 그것도 골칫거리가 된다.

“저, 사실은 압착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몇 가지 부품만 고압용으로 교체해봤습니다.”

“음, 그래요? 전체를 새로 만든 게 아니고요?”

“지금의 고온 압착기도 사실, 들어간 금속의 강도나 이런건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고압축 상태에서 검증이 안 된 부분이 있는데, 일단 독일의 저온 압축기에 들어가는 부품들로 중요한 부분은 교체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부품 중에서 안전에 문제가 없을 부분을 남겨 두고요.”

“음, 그래서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진석의 말에 박성준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설계상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른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죠?”

“아무래도 직접 가동을 해봐야 하는데, 아직 안정성 테스트를 다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각 부품별로 각 단계별로 따로 실험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조립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죠?”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안정성을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밝아서 부품들과, 중간 단계에서 고압에 견디는 걸 순차적으로 테스트하는 거죠. 그건, 시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압 실험을 위해서 따로 실험실도 필요하고요.”

“그럼, 디른 선택은 뭔가요?”

“일단, 부품들은 있으니까, 압착기를 조립해서 완성시킨 후에 문제가 생기는지 관찰하는 거죠.”

첫 번째 방법은 안정성이 높은 반면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생각보다 부품들을 따로 고압 테스트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압착기 내부 압력과 같은 고압의 실험실도 필요하고 말이다.

두 번째 방법은 일단 압착기를 조립해 놓고 테스트를 해보는 거다. 부품의 내구성을 테스트 하지 않는 방법인데, 일단 빠르게 테스트를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라도 있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아무래도 위험이 따르겠죠?”

지석의 말에 박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기억하십니까?”

진석도 기억하고 있는 큰 테러사건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압력밥솥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었던, 사건..고압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우리가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압력밥솥이지만, 압력이 축적되는 순간, 엄청난 폭발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이죠, 그때는 압력밥솥을 이용한 거였죠? 압착기는 압력밥솥보다 크기도 훨씬 크고 고압력 장비라, 이게 폭발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네요?”

“그냥, 이 공장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기로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빠른 길을 가느냐, 안전하게 정도를 걷느냐,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두르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더디게 걸을 수도 없는 상황,

“박성준 사장님은 안정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조립을 다 했다고 하는데 내부의 고압으로 폭발이라던가? 아니면 부품이 손상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겁니까?”

“일단 제 계산대로 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압력에 견딜 수 있는 고압 전용 부품을 사용하고 있고요. 문제는 계산대로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변수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법이죠.”

“음, 만약 계산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대폭발이 일어나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이 문제의 결정을 이진석 사장님에게 상의드리는 겁니다.”

저온 압착기를 개발한 장본인은 박성준 사장이었다. 하지만, 성원 생활건강, 이제는 제이에스 생활건강의 최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오너는 진석이었다.

위험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오직 진석뿐이었다. 진석은 깊게 심오흡을 했다.

“결정했습니다.”

“예? 어떻게?”

“일단 바로 압착기의 시험 테스트에 들어갑시다. 대신, 안전을 위해서 공장의 인원은 최소로 하죠. 몇 명이나 필요합니까? 테스트를 하는데.”

“기계는 자동식이라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두 명, 한 명만 더 있으면 됩니다.”

“그럼, 제가 하죠.”

“예, 이진석 사장님이 직접요.”

박성준은 최종 실험에 진석이 참가하겠다고 하자.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위험한 일이니 사장인 제가 해야죠. 박성준 사장님은 이 장비를 테스트할 지식이 있으니 함께 하셔야 하고요.”

“음, 좋습니다. 어차피, 그 기계의 개발자와 회사의 오너, 두 사람이 가장 위험한 실험을 하는 게 맞겠죠.”

박성준 사장도 찬성을 하자, 일단, 공장내의 직원들은 외부로 피신을 시켰다. 고압력의 압착기가 폭발한다면, 압력밥솥 폭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밖으로 모두 나가자, 박성준은 기계의 전원을 넣었다.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올리브 압착을 해야 하니까,. 올리브 열매를 압착기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전, 여기서 기계 상태를 관찰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신호를 보낼 테니 바로 대피하시고요.”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은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진석은 올리브 열매를 기계로 투입하기 시작하자, 압착기가 작동하며 뭔가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성준은 조심스럽게 기계의 작동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오일 배출구에서 기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계는 약간의 소음 외에는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괜찮은 건가요?”

“올리브 열매를 더 넣어 보시죠.”

진석은 공장 한쪽에 쌓아 놓은 올리브 열매가 든 상자를 연이어 압착기로 쏟아 넣었다. 올리브의 양이 아까보다 몇 배로 늘어나자, 기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더 육중해진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오일 배출구로 맑은 올리브 오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계는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성공인 거죠?”

그제야 박성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감돌았다.

“일단은 고압으로 인한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진석도 겨우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저온 압착기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폭발이나 부품의 손상없이 잘 작동되고 있었다. 물론 더 오랜 시간 테스트를 해봐야 하기는 했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내구성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일단, 기계를 계속 작동시켜보면서, 안정성에 문제가 없는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 호주에 보낼 압착기를 조립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테스트를 해본 결과 기계에 큰 결함이나 안전 문제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호주까지 수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복잡한 인허가 절차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총동원되어, 호주의 올리브 수확 시기에 늦지 않게 압착기들이 호주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

호주 윗벨트 제이에스 올리브 공장

“겨우 압착기 설치를 마쳤습니다.”

존 스트라다는 공장에 설치된 압착기들을 작동시켜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마터면 올해 올리브 농사는 망칠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올리브가 익어가는데, 압착기가 도착하지 않아서 저도 이만저만 신경이 쓰인 게 아닙니다.”

존 스트라다 역시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진석의 올리브 농장이 성공을 거두자, 올리브 재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덕분에 윗벨트의 내륙으로 거대한 올리브 농장이 건설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올리브 수확이 시작되는 첫 번째 해였던 올해, 수확한 열매에서 올리브유를 가공하는 공장도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올리브는 열매는 단단하지만, 좋은 품질의 오일을 얻기 위해서는 수확한 직후에 싱싱한 열매를 바로 저온으로 압착해야 최고 등급의 엑스트라버진 오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보십쇼. 이 초록빛이 감도는 올리브유를 이건, 갓 수확한, 그리고 그 해에 첫 수확한 최고등급의 엑스트라버진 오일입니다.”

존 스트라다는 올해 첫 번째로 수확한 싱싱한 올리브 오일이 담긴 병을 진석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이제 세계 올리브 시장은 재편되겠군요?”

“그럴 겁니다. 남유럽에서 주로 생산하던 올리브 오일이 이제 호주에서도 본격적으로 생산이 되는 거니까요?”

올리브 오일의 생산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고급 오일인 올리브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올리브유는 수요가 늘어나니까, 유럽 시장에도 큰 타격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유럽과 경쟁하기도다는 아시아의 새로운 수요를 잡을 계획이니까요.”

존 스트라다도 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일이 잘돼서 다행이네요. 사실은 올해는 오일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하하, 성격이 좀 급하기는 하죠. 사실 서두르는 게 좋은 건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진석은 만족한 표정으로 올해 첫 수확한 올리브 오일을 바라보았다.

“좋아,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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