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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한 자두(2) (89/183)

106화. 털털한 자두(2)

자두나무라, 여기에 그런 추억이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저 남자를 막을 방법은 예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두가 필요해...

“저기요. 자두나무는 사라졌지만, 자두라면 안에 좀 있는데 한 번 맛보지 않겠어요.”

“자두라고요?”

남자는 진지하게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이 불쑥 자두 이야기를 꺼내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벌써 자두가 나오나요?”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빨리 나오는 품종도 있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안에서 금방 가져올 테니.”

진석은 서둘러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안에 자두 같은 것은 없었다. 일단은 공간으로 가는 출입구를 열어야 했다.

공간은 외부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공간으로 가야했다.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간주님.

“공간을 열어야겠어. 공간에 들어가서 할 일이 있다고.”

-이곳에는 현재 공간으로 가는 출입구가 없습니다. 출입구를 만드시려면, 5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출입구를 개설하시겠습니까?

“그래 어서...”

-출입구를 생성 중입니다.

-출입구가 생성되었습니다.

진석은 재빨리 공간의 문을 열었다.

“휴우, 일단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시간은 정지된 셈이겠지.”

“공간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진흙인간 사령관이 다급한 표정의 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어떤 녀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해서 말이야.”

“극단적 선택요? 저런, 큰일이군요.”

일단 펜션, 그러니까 외부의 시간은 정지된 셈이었다. 공간의 시간은 외부와는 별도로 흘러가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남자가 자살하려는 걸 막을 방법은 마땅하지가 않았다.

경찰에 신고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더 위험해 질 수도 있다. 펜션은 말 그대로 외딴 언덕에 홀로 있는 건물이라, 주위로 차나 사람이 접근하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역시 그 남자에게 말한 것처럼, 자두를 가져다주고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두라?”

“공간주님, 자두라면 나무에 열리는 새콤한 과일 자두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사령관 그 자두 말이야. 지금 어떤 남자가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데, 말하자면 복잡하지만 자두에 대한 추억이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맛있는 자두를 가져다주려고 하거든.”

“자두로 해결이 될까요?”

“보통 자두라면 별 소용이 없겠지. 특별한 자두라면 몰라도.”

“특별한 자두요?”

일단은 자두나무가 필요했다.

“사령관, 공간에 자두나무가 있었나?”

“자두나무라, 나무는 아직 없지만, 지난번에 공간주님이 여러 종류의 유실수 씨앗을 가져온 기억이 나는데요. 바빠서 아직 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 나도 기억이 나, 오아시스의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한 번 찾아봐야겠는데.”

공간에서 여러 가지 작물들을 키우다 보니, 올 때마다, 모종이나 종자의 씨앗을 가져오는 일들이 많았다. 더러는 공간에서 키우기도 하지만 다른 일에 밀려서 창고에 쳐박히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진석은 창고로 들어가 자두 씨앗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창고를 뒤지느니. 공간 밖으로 나가 자두 종자를 구해왔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다. 공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시간이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이 정지된 공간 안에서 최대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있더라? 여기 어디쯤 있을 것 같은데.”

진석은 정리가 안 된 상자들을 일일이 열어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빙고, 여기 있었군, 자두 씨앗들...”

“공간주님, 찾으셨습니까?”

“그래 겨우 찾았어. 이제 이걸 심어서.”

“자두나무라면, 오아시스 앞쪽에 심을까요?”

자두나무라면 여기에 심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평범한 자두 열매를 그 남자에게 주어봐야 큰 반응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추억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도 자두나무를 산에 심어서 뭔가 특별한 자두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산에서 키운 작물이나 과일들은, 특별한 효능 하나씩은 갖게 되는데 개중에는 스트레스 해소나 기분전환이 되는 것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산에서 좀 특별한 자두를 만들어서 가져가면, 자두가 남자를 진정시켜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공간주님,”

“아무래도, 산에서 자두를 재배해야겠어.”

“역시 산입니까?”

“그래, 평범한 걸로는 안 될 것 같고, 특별한 자두가 필요하거든.”

“그럼, 산으로 갈 준비를 할까요?”

“그래. 부탁해.”

다행히 산과 오아시스 사이에는 시간의 손실없이 다이렉트로 연결된 출입구가 새로 생겼다. 진석은 산으로 가는 출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일꾼들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와, 공간주님, 이제는 산까지 바로 올 수 있어서 정말 좋은데요.”

사령관과 일꾼들도 출입구가 생겨서 대만족인 모양이었다. 진석도 전에 3시간이나 걸려서 가던 길을 이제 바로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게 말이야, 말이나 차를 타고 3시간이나 가는 건 너무 피곤했다고.”

산에 도착하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일단 자두나무를 심을 밭을 일구고, 자두 종자를 땅에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하자 떡잎이 나오고 줄기가 나왔다. 여린 줄기는 이내 굵어지며 자두나무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와아, 나무가 되어 가는데요.”

진석이 시간을 가속하는 것을 매번 옆에서 지켜보는 사령관이었지만 사령관은 그때마다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석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가속으로 단숨에 씨앗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고 있었다. 나무에서 자란 열매에서 또 씨앗이 나오고, 씨앗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른 나무로 자라나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로운 순환과 반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속 증식하던 자두나무 무리에서 특이한 자두 열매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사령관, 이건 좀 특이하네.”

보통의 자두와 달리, 굉장히 큰 왕자두였다. 그 외에는 보통 자두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엄청 크군요, 복숭아보다 더 큰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야.”

진석은 자두 하나를 따보았다.

“어디 맛은 어떨까?”

진석은 커다란 왕자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떻습니까?”

“음, 굉장히 맛있는데, 달고 새콤하고.”

왕자두는 첫맛은 달콤하고 뒷맛은 새콤한 느낌이었다. 달기만 하면 좀 질릴 텐데, 뒷맛이 새콤한 향이 있어서,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었다.

거기에 크기도 커서, 먹기도 좋은 것 같았다. 보통 자두들은 좀 작은 편이라 양이 적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왕자두는 거의 사과 정도의 크기였다.

손으로 잡기도 좋고, 입으로 베어 물기에도 좋은 크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과 향이 최고였다.

“이 정도면, 그 친구도 먹고 기분전환이 될 것 같은데.”

“그 정도입니까?”

“그래, 먹고 나니까 기분도 좋고, 힘도 나는 것 같아. 뭐, 아무러면 어떻겠어? 이렇게 자두가 열렸으니 따서 그 녀석에게 가져다 주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뭐, 잘 안 되도 그만이고, 나는 할 만큼 한 거잖아. 그 정도면 된 거라고.”

“하하, 공간주님, 말씀하시는 게 아주 시원시원하시네요. 뭔가 말투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상관없다고. 이걸 따서 가져다주면 그만이니까.”

왕자두를 먹고 나자, 기분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인간에는 다 각자의 인생의 무게가 있는 법,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언덕 위의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본인 일은 본인이 해결하라는 마음이 들었다. 진석은 그저 약속한 대로 자두를 가져다주고 신경을 끌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두를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펜션으로 향하는 공간의 출입구를 열었다.

진석이 출입구를 나와 펜션 밖으로, 그리고 마당 쪽으로 나가자, 아직 그 남자는 마당 앞쪽에 서 있었다.

공간에서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외부세계에서는 불과 수십 초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게 뭔가요?”

남자는 진석이 들고 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가리켰다.

“자두입니다. 자두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잖아요.”

“그 게 자두라고요?”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보기에도 자두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크기였다.

“예, 크기는 하지만 분명 자두예요. 못 믿겠으면 하나 먹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

진석은 바구니째,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워하던 남자는 자두를 집어 들더니 향을 맡아보고, 자두의 모양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충보면 자두인 줄 알지 않나요?”

남자는 진석의 말에 힐끔 진석을 쳐다보았다.

“자두가 맞기는 하군요. 이런 큰 자두는 처음 보지만.”

남자는 주먹만한 왕자두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왜요? 추억 속의 그 자두가 아닌가요?”

“추억은 고사하고, 제 기억에는 이런 건 처음 보네요. 이걸 자두라고 가져온 겁니까.”

“그래도 맛은 좋아요, 최후의 만찬이라고 생각하고 한 입 먹어 보시죠.”

남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진석을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자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떤가요? 맛이?”

“음, 뭐, 자두가 자두 맛이죠. 자두는 맞군요. 맛은 달아요, 그리고 새콤하기도 하고.”

남자는 뭔가 불만 섞인 표정이었지만, 커다란 자두를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다 먹었군요.”

“예, 맛은 괜찮네요.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기분은 좀 어떻습니까? 추억의 자두, 아니, 뭐 아무튼 자두를 먹고 기분이 좀 좋아졌나요?”

이 녀석이 기분이 좋아지든 말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녀석의 인생, 나야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뭐, 그럭저럭, 슬슬 가봐야겠네요.”

“예? 가본다고요?”

무슨 말이지? 설마 저세상으로 가겠다는 말인가? 뭐, 그러든 말든, 녀석의 선택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진석이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남자는 앞마당으로 걸어서 가로질러 펜션의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딜 가는 겁니까?”

“집으로요. 아니, 어디든 상관은 없습니다.”

남자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저기 괜찮아진 겁니까?”

“예,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요. 괜히 귀찮게 해드린 것 같네요.”

뭐지?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자두를 먹고 진석도 뭔가 기분이 묘하게 변한 것 같았다. 자두를 먹기 전까지 남자가 혹시 잘못 될까봐, 별의별 걱정을 다했는데 자두를 먹고 난 후로는 별 관심이 가지 않고 무심해져 버린 것이었다.

무덤덤해졌다고나 할까? 혹시 그렇다면 이 왕자두의 효능은 성격을 무덤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가?

뭐, 그렇다면 좋은 거고..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저 왕자두를 먹어서든 다른 이유가 있든, 저 남자가 펜션에서 사고를 치지 않고 조용히 나가준다면 진석으로서는 가장 좋은 일이었다.

“마음이 바뀌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자두는 잘 먹었습니다.”

남자는 펜션 출입문을 열고 유유히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을 쪽으로 난 길로 사라져 버렸다.

“무심해지는 자두라? 성격이 예민한 사람들에는 도움이 되겠군.”

그러고 보니, 저 남자는 공황장애인지 불안장애인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그런 정신질환은 마음의 병, 과도하게 어떤 문제에 집착하는 일종의 강박증이었다.

멀리서 보면 인생은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인생을 바라보는 것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왕자두는 어떻게 하지? 맛은 꽤 좋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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