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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메뚜기(4) (87/183)

104화. 사막 메뚜기(4)

“공간을 분할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날로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공간은 처음부터 그 위치에 존재하는 분할되지 않는 절대적 개념처럼 보이지만, 디지털적인 관점에서 보며 각각의 시공간은 단순한 디지털 좌표에 불과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간을 분할하면 저 메뚜기들을 특정한 공간에 격리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분할에는 5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공간을 분할하시겠습니까?

메뚜기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분할이 꼭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메뚜기 떼가 공간 전체를 먹어치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아 공간을 분할해 줘,”

-공간을 분할하겠습니다. 분할 중입니다. 공간이 분할되었습니다.

뭐지? 뭐가 분할되었다는 거지?

“달라진 게 없는데, 이 밭을 말하는 건가?”

진석은 메뚜기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둔 밭으로 들어가보았다. 하지만 뭐가 분할이 되거나 한 흔적은 없었다. 일꾼들도 자유롭게 작업을 위해 돌아다니고 이동하고 있었다.

“공간을 분할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대로인 것 같은데?”

-공간은 메뚜기에게만 분할되었습니다. 여기 이 밭들이 분할된 공간입니다. 메뚜기는 이 경계를 넘지 못합니다.

“진짜?”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중간에 무슨 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메뚜기가 왜 여기를 못 넘는다는 거지, 진석은 메뚜기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휙 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진석의 손을 떠난 메뚜기는 관성의 힘으로 곧바로 날아가다가, 중력의 당김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더니 어느 순간 슉 사라져버렸다.

“어라? 뭐지? 사령관 지금 봤어? 메뚜기가 사라진 거?”

진흙 인간의 사령관도 메뚜기가 사라진 것을 보고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공간주님, 메뚜기는 어디로 사라진 거죠?”

“메뚜기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공간주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간이 분할되면서 메뚜기들은 이 밭을 떠날 수 없습니다. 메뚜기들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공간이 분할되어 고립되면서 이 밭 외부의 공간은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나, 일꾼들은 그냥 막 돌아다니고 있는데?”

-공간주님, 디지털적인 개념으로 생각을 해보십쇼. 공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에게 주어진 일종의 상수입니다. 모든 개체들에게 공통의 상수가 붙여진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상수?”

-모두 그 상수를 가지고 있고, 변하지도 않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공간의 존재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임의로 개체에 부여한 일종의 좌표값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는 공간주님의 요청으로 메뚜기들에 한해서 그 공간의 상수값을 조정한 겁니다.

뭔가 복잡한 이야기다, 하지만 정리를 해보면 메뚜기들에게는 특정한 상수가 주어졌다는 것, 그래서 일종의 수학 방정식이라고 생각한다면 특정한 계산을 넘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즉, 메뚜기들의 방정식으로는 이 밭이라는 공간을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아까, 밭의 밖으로 던진 메뚜기는 어디로 간 거지?”

-메뚜기라면, 공간 안에 있습니다.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지만, 다른 곳을 통해 다시 이 밭이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되돌아와 있습니다.

“그래?”

진석은 다시 메뚜기 한 마리를 집어 들어 밖으로 던져 보았다. 이번에도 슉하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뒤쪽의 밭으로 외부에서 메뚜기 한 마리가 툭 하고 떨어져 들어왔다.

“역시, 내가 던진 메뚜기는 다시 이 밭으로 되돌아 온 거였군.”

-그렇습니다. 결국 메뚜기들에게 이 밭 이외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은 메뚜기들에게 분리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여기서 메뚜기가 아무리 증식을 해도 이 밭의 경계를 넘을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마음 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좋아, 사령관, 메뚜기들은 이 밭은 벗어나지 못하니까, 이제 실험을 시작해 보자고.”

“정말입니까? 역시 공간주님의 능력은 대단하십니다. 당장, 이곳에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일꾼들이 밭을 만들고, 옥수수와 콩을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뚜기들도 밭에 풀어놓은 상태, 그 상태에서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옥수수의 싹이 나오고, 콩도 자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메뚜기 떼도 농작물을 먹어 치우며 개체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 년에 300배로 늘어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300배로 늘어난다는 의미라, 중간에 3개월 간격으로 번식을 하는 이 메뚜기들은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간 가속으로 몇 달의 시간이 지나자,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메뚜기가 밭을 가득 메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작물들은 메뚜기 떼의 공격에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메뚜기 떼의 운명도 별다르지 않았다. 먹이가 없어진 메뚜기 떼는 서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불쌍하네요. 번식력이 너무 좋아서, 감당을 못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왕성한 번식력이 종족의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부르니 말입니다.”

“그러게, 하지만 꼭 저런 모습이 메뚜기만일까? 인간도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메뚜기처럼 멸망의 길을 가는지도 모르지.”

먹이가 없어진 메뚜기들이 전멸하기 직전에 다음 시험을 위해, 메뚜기 몇 마리를 밖으로 끄집어 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가속하자, 밭에는 작물도, 메뚜기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원래의 아무것도 없는 밭으로 되돌아갔다.

진석은 분할된 공간의 밭에서 몇 번이고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년의 걸친 메뚜기 떼의 흥망성쇠가 반복되었다.

분할된 공간의 밭에는 여러 가지 작물들이 번갈아 심어지며 메뚜기들의 먹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이 반복된 후였다.

“슈퍼 테오신테가 아직 살아남아 있네요?”

“그러게 말이야.”

메뚜기 떼와 작물들과의 매번 뻔한 싸움이 반복되는 중에, 특이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슈퍼 테오신테가 메뚜기 떼들 속에서 살아남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메뚜기 떼들이 먹어치우는 시간이 좀 길어졌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용케 그걸 알아본 사령관이 진석에게 보고를 했고, 메뚜기 떼들이 먹어치우는데 오래 걸리는 슈퍼 테오신테가 다 사라지기 전에, 몇 개의 종자를 확보해

다시 증식해 보았다. 그리고 메뚜기와 같은 공간에서 증식을 하자, 이번에도 확실히 메뚜기들이 먹어치우는 속도가 느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메뚜기들이 잘 먹지 못하는 슈퍼 테오신테를 증식하며 진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공간주님, 이제 메뚜기들이 거의 먹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보고 있어. 메뚜기들이 슈퍼 테오신테를 거의 먹지 않는데.”

메뚜기 떼에 대한 방어력이 생긴 것인지, 사막 메뚜기 떼들은 평소의 왕성한 식욕을 잃어버린 것처럼 슈퍼 테오신테에 입을 대지 않고 있었다.

시간을 더 증식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슈퍼 테오신테의 잎부터 줄기, 열매까지 별로 입에 맞지 않는 듯 메뚜기 떼들은 작물을 먹지 않았고, 슈퍼 테오신테를 먹지 못하게 되자 개체수도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자 슈퍼 테오신테와 메뚜기 떼들이 서로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메뚜기 떼들은 거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인 것 같습니다.”

“그래 사령관, 이 새로운 슈퍼 테오신테는 확실히 사막 메뚜기가 먹지 않고 있어.”

“이걸 뭐라고 부를까요?”

“음, 사막 옥수수가 어떨까?”

***

신장 위구르 우루무치.

“이곳에도 제이에스 바이오의 지사가 세워지는군요.”

장치엔은 사무실 개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와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곳에서 제이에스 바이오도 사막 기후에 적당한 종자들을 공급할 생각입니다.”

장치엔 외에도 우루무치의 공산당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였다. 제이에스의 사막 옥수수는 사막 메뚜기를 막는 일종의 천연 해충제 성분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것은 천연의 성분으로 인체에는 무해한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고.

대신 메뚜기 종류에는 강한 거부감을 주는 성분이라, 사막 메뚜기를 비롯한 메뚜기들은 이 사막 옥수수의 잎과 줄기, 열매를 전혀 먹지 못했다.

“일종의 방어막이라고 할 수 있죠, 마치, 유목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은 것처럼 말입니다.”

진석의 말에 장치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만리장성은 유목민의 침입을 막지 못했죠.”

“그런가요? 하하..”

“예, 하지만 이 사막 옥수수들은 사막 메뚜기를 막아줄 것 같네요.”

올해는 이미 사막 메뚜기의 공격으로 막대한 작물의 피해를 입은 중국의 서부 농업지역에는 중국 중앙 정부가 나서서 대대적으로 사막 옥수수를 서부 접경지대에 심기 시작했다. 쿠얼러로 그런 지역의 하나였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진석은 일단 중국 서부지대에 사막 옥수수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에티오피아 같은 사막 메뚜기의 피해를 입는 지역에 사막 옥수수의 보급을 늘려 나갈 계획이었다.

“아프리카에도요?”

“예, 기왕 메뚜기를 막는 옥수수를 개발했는데 중국뿐 아니라, 다른 피해를 입는 지역에도 보급해야죠.”

“하긴 그렇죠. 전 세계적인 문제니까요.”

“마침, 이집트에도 지사가 있고 해서, 일단 이집트와 시나이반도 쪽에 이런 사막 옥수수를 심어서 메뚜기가 아시아로 유입되는 걸 차단할 계획입니다. 주로 메뚜기 떼가 발생하는 아프리카에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지역에도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 곳들은 다 식량의 주요 생산지니까, 전 세계적인 식량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막 옥수수로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사막 옥수수는 작물 자체보다는 해충의 대규모 이동을 막는 성격이 강했다. 사막 옥수수들을 각각의 지역의 경계 지점에 일정하게 심어 놓으면

메뚜기 같은 대규모 해충의 급성장을 막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사막 메뚜기가 동진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중국 대서부 개발은 탄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사막 옥수수는 메뚜기 방어용으로 심는 거고, 그 외의 지역에는 다른 작물들을 심으면 되겠네요.”

“사실 그래서 말인데요. 그 다른 작물들도 제이에스가 우리를 좀 도와주셨으면 해요.”

“작물들의 종자들 말인가요?”

“예, 올해는 메뚜기 떼가 워낙 극성이라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지금 중앙정부에서는 콩의 생산을 늘리라고 난리거든요.”

중국은 여전히 대두의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던 대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생산이 줄어서 중국이 원하는 물량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콩을 많이 먹는 식생활을 바꿀 수도 없고

오히려 최근에는 웰빙 열풍을 타고 콩의 수요가 더 늘어나는 추세라, 중국 정부도 물가 안정을 위해 콩의 재배지를 늘리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콩이라? 기존의 콩들의 재배 성적은 어떤가요?”

“콩이야 워낙 잘 자라는 작물이기는한데, 아무래도 건조한 곳이라 하북 지방 같은 곳과는 비교가 안 돼요. 그래서 말인데 건조지대에서 잘 자라는 그런 콩은 없을까요?”

“사막 기후에서 잘 자라는 콩 말이죠?”

사실, 사막 옥수수를 개발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콩도 있었는데 메뚜기 떼를 막아내는 능력은 없지만, 비교적 물이 적은 곳에서 잘 자라는 콩의 품종도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그 새로운 콩의 이름은 사막 콩이었다.

“사막 콩요?”

“예, 진짜 사막에서는 못 자라겠지만, 아무튼 사막 같은 건조 기후에도 성장이 꽤 빠른 편입니다. 사막 옥수수를 심고 이것도 한 번 재배를 해보세요. 쿠얼러에서 시험 삼아 키워 보고 성과가 좋으면 다른 지역에도 보급하면 되지 않겠어요.”

“정말요? 와, 이진석 사장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덕분에 이 일이 잘되면 저도 다시 산둥이나 아니면 베이징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예, 이번 일만 잘되면 말이죠.”

하긴, 이런 사막에서 지내기에는 장치엔은 조금 아까운 여자였다. 그녀에게도 좋은 기회가 생겨서 원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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