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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메뚜기(2) (85/183)

102화. 사막 메뚜기(2)

“식량 문제라면?”

리진 회장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중국은 연간 2억 톤의 곡물이 모자라는 식량부족 국가다. 하지만 2억 톤의 곡물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나, 아니면, 호주와 남미, 우크라이나 같은 곡창지대를 가진 나라들의 생산량을 합쳐야나 가능한 수출량이다.

“일단 가장 부족한 건, 콩입니다. 그 외에도 필요한 곡물들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저는 주로 곡물의 종자를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호주에 농장을 가지고는 있지만, 한 나라에 공급할 수준은 아니죠.”

리진 회장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저희도 이진석 사장님에게, 수억 톤의 곡물을 내놓으라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중국에서 원하는 것도 식량의 자립이죠.”

다행히 리진 회장이 직접적으로 곡물을 구해달라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진석과 제이에스는 곡물의 유통보다는 종자를 생산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하지만, 진석과 파트너 관계인 투르진스키는 보다 큰 규모의 곡물 카르텔의 리더였다. 국제 곡물 카르텔이 모두 동원된다면, 중국의 부족한 곡물 수 억 톤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곡물 카르텔이 그런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들도 경제적 이익을 따르거나 아니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 역시 곡물의 종자를 원하시는 겁니까?”

콩이라든가, 다른 곡물의 새로운 종자를 원하는 정도라면 진석으로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예, 맞습니다. 사실 중국 정부도 오래전부터 식량 증산을 위해 여러 가지도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었죠.”

“음, 그렇겠죠.”

중국이 식량부족을 겪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구가 너무 많다는 사실, 하지만 이것도 꼭 이유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국 못지않은 인구 대국 인도는 역설적으로 곡물 수출국이다.

인구가 많아서 식량 자립이 안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보다는 좁은 농토에서 집약적으로 노동력에 의해 이루어지던 중국의 농업의 비효울성을 들 수 있다. 거기에 최근 수십 년 동안 동부 해안지대가 산업화되면서 인력이 빠져나가 전통적인 농업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거기에 미국 같은 기계화된 대규모 농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고 말이다.

“중국에도 기존의 소규모 자립농으로는 어려운 실정이죠.”

리진 회장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그렇다고 미국 같은 대농장은 중국의 상황에 맞지 않지 않습니까?”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하 유역에서 시작된 문명이다, 이후 소위 말하는 강남 개발로 양쯔강 일대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이후 명대에 이르러 지금의 서부 지역으로 진출해서 청나라 시대 말까지 영토가 확장된 결과 지금의 국경선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주력은 동부 해안지대에 모여있고, 산업화도 인구가 많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동고서저로 동부는 이미 소득이 크게 올라, 상하이 같은 곳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진석이 처음와서 본 상하이의 인상도 여느 서구의 대도시 못지않은 화려함, 그리고 요트 마리나를 채운 호화 요트들 같은 것들이었다.

그에 비해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서부 내륙은 굉장히 낙후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중국의 최고위층에서는 미국식의 기계식 농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식이라고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대농장, 땅의 넓은 대농장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중부의 프레리죠. 혹시 프레리 지대를 가 보셨습니까?”

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실, 뉴욕이나 LA, 시카고 정도는 가봤지만, 저도 농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곳은 잘 모릅니다.”

“저는 일 때문에 자주 가는데, 정말 할 말을 잃게 할 정도로 넓은 곡창지대입니다. 지금은 옥수수밭이 더 늘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넓은 옥수수밭이죠. 공포소설의 무대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넓은 지대입니다.”

“하하, 그 정도인가요?”

“물론 중국도 넓은 땅이지만, 인구가 많아서 그렇게 넓은 대평원은 없지 않나요? 넓은 땅이라고 해도 개발이 이루어져서, 농장으로 쓸 땅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면적에 비하면 농업으로 얻는 돈도 그렇게 많은 건 아니거든요.”

리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문제라면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상하이 같은 곳에서는 불가능하죠. 이곳의 땅값도 엄창나거든요.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시 외곽으로 나가도 최근에 부동산 열풍이 불고 있어요. 기존의 농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문제는 땅이다, 미국 같은 농업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살지 않는 말 그대로 농업 외에는 무가치한 땅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면적이 있어야, 그런 대규모 농업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 중부 내륙과 호주 서부의 미개척지대를 제외하면, 그 정도의 땅을 구할 곳은 세계적으로 봐도 드물다.

물론 최근에 중국의 서부 대개발이라는 사업이 벌어지고는 있다. 상하이나 베이징에 같은 전통적인 한족 밀집 지역에서 보면, 서부 오지라고 할 수 신장 위구르 지역이나 내몽골 같은 건조한 서부 지역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지역은 위구르족이나 몽골족이 살고는 있지만, 인구가 적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목축이나 유목을 하는 지역이나 한족과는 달리 토지 개념도 약간 희박하기도 해서 중국 정부가 그 지역을 기계식 대농장으로 만들려는 이른바 서부 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위구르 일대의 서부 대개발 지역을 말하시는 겁니까?”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중국에서 그런 큰 토지를 농지로 만들려면, 서부 사막지대 뿐이죠.”

“음, 하지만 중국 정부가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는 곳 아닌가요?”

“예, 중국 공산당이 이 지역을 개발한다고 국제적 비난까지 받고 있는 곳이죠. 위구르족을 탄압한다고 말이죠.”

“그 지역의 위구르족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원래 유목을 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 사람들의 목초지에 농장을 짓겠다는 건데, 반대가 강할 수밖에 없죠.”

진석의 말에 리진 회장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요. 식량 자급을 위해서는 동부 지역은 가망이 없다는 겁니다. 여긴, 토지 구조가 큰 농장을 만들 수가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으니까, 결국 서부 대개발뿐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건가요?”

“일단, 우루무치로 가 주십쇼.”

“우루무치요?”

“가서 현지 사정을 듣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진석 사장님의 의견을 들으려는 겁니다. 사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리진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음, 서부 대개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거군요.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라. 하하, 이거 쉽지 않은데요.”

“뭐, 아까도 말했지만, 제 역할은 여기까지니까요. 그보다는 제가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고급 와인도 있고, 만찬 후에는 요트에서 파티도 있고요. 일단은 파티를 즐기시죠.”

***

신장 위구르 우루무치.

멀리 톈산 산맥이 보이고 있었다. 천산 산맥이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산맥으로 이른바 실크로드가 탄생한 배경이 된 산이다.

중국기준으로는 서부 내륙에 우뚝 솟은 이 산맥은 고대로부터, 중국과 중동 인도 일대의 경계가 되기도 하고, 또 교통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험준하고 거대한 산맥은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자연지대지만, 이동에는 제약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 이 산맥을 우회하는 교역로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실크로드다.

“우루무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치엔은 우루무시 시의 공산당 대외 협력부장이라고 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장치엔입니다.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대외 협력부장이라고 해서 나이가 든 남자 간부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30대 중반의 늘씬한 미녀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

“한족이시죠?”

“예, 원래 고향은 산둥성이죠. 이곳은 발령을 받고 온 거고요.”

“아, 굉장힌 험지로 온 셈이겠네요?”

공산국가라, 남녀간의 평등은 어느 정도 보편화된 개념이라, 여성이라는 건, 논외로 하고 젊은 산둥성 출신 공무원이 여기까지 발령을 받은 건 그리 좋은 인사는 아닌 것 같았다.

“뭐, 사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은 아니죠. 그렇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면 나중에 승진에 유리하니까요.”

한국에도 오지나 도서 지역에 근무하면, 인사평가에 플러스를 준다고 하더니 비슷한 제도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하, 그렇겠군요. 아무튼, 중국 서부는 처음인데 예전에 책으로 읽던 실크로드에 왔다고 생각하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이곳 우루무치는 넓은 목초지라는 의미다. 유목민이 살던 땅이고, 톈산 산맥 일대는 이른바 천마라고 불리는 명마의 산지기도 해서,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말을 방목하거나 양 같은 가축을 방목하던 곳이다.

지금은 서부 대개발로 농업 개발을 위해, 각종 교통 시설을 들어서고 있었다.

“우루무치에서 쿠얼러로 갈 거에요.”

실크로드의 기준이 되었던, 천산의 남과 북으로는 두 개의 실크로드가 있다. 천산북로와 천산남로, 지금 진석이 가려는 농장지대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투르판으로 이어지는 천산남로 방향에 있는 작은 농업 도시였다.

“차를 타고 가나요?”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서부 지역은 아직 개발이 다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럼?”

“경비행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트기 정도는 아니지만,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하니,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대기중이었다, 세계 여러곳을 가본 진석이었지만,

이런 오지는 처음이었다. 길이 안 좋아, 경비행기를 이용해야 하니 말이다.

“경비행기를 다 타보네요.”

비행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경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쿠얼러 공항에 가볍게 착륙했다.

쿠얼러는 천산남로의 접한 오아시스 도시였다, 천산남로의 아래쪽은 타클라마칸 사막, 위로는 톈산 산맥으로 막힌 일종의 좁은 회랑 같은 지역이었다. 물론, 지도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굉장히 광활한 지역이다.

이 천산남로를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 일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지역에 오래 살던 위구르족과의 정치적 문제가 있어서 여러 가지 국제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 정부는 이 지역을 농업 지역으로 개발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여기군요. 와, 굉장히 건조한데요.”

우루무치도 약간 사막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는데, 이곳 쿠얼러는 바로 아래에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어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히 건조한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대농장을 조성한다는 겁니까?”

진석의 말에 장치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후가 건조하기는 하지만, 넓은 땅이 있고, 수리 시설만 갖추면 농업에는 문제가 없어요. 미국 서부와 크게 다르지 않죠.”

“미국에 가 보셨나요?”

“예, 공무원 연수로 미국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왔죠.”

“이곳을 캘리포니아처럼 개발하겠다는 겁니까?”

“농장을 보시면 알거에요. 지하수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농업에 성공하고 있어요.”

장치엔은 픽업 트럭에 진석을 태우고, 아까 말한 그 농장들로 진석을 안내했다. 픽업 트럭이 한참동안 먼지나는 마른 흙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황토색의 건조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멀리에서 봐도 안 눈에 들어오는 녹색의 농지가 나타났다.

“저기가 농장이군요?”

“예, 어때요, 제법 성공적이지 않나요?”

장치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석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조한 사막 기후 지역에 무슨 농업을? 이라는 물음표가 있었지만 실재로 물만 공급되면 이 지역도 캘리포니아와 별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농업용수가 공급되지 않는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은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 지역에서 지하수 개발과, 톈산 산맥 일대의 풍푸한 수자원을 이용해서 농업 용수는 공급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농장 지역에는 옥수수와, 밀, 그리고 콩 같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농장은 괜찮은 것 같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는데 그게 어떤 겁니까?”

장치엔은 진석을 옥수수밭 끝으로 데려갔다.

“이걸 보세요.”

장치엔은 옥수수밭에서 작은, 아니 꽤 큰 메뚜기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게 뭐죠?”

“사막 메뚜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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