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막 메뚜기(1) (84/183)

101화. 사막 메뚜기(1)

“상하이는 두 번째인가요?”

“예, 지난번에 뵙고 이번이 두 번째군요.”

상하이의 최고급 주택가, 그중에서도 다른 주택과 확실히 구별이 되는 대저택이었다. 상하이 일대의 백화점 재벌, 바이반 그룹의 리진 회장의 저택이었다.

“도심에 이런 대저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하, 뭐, 미국에도 가보셨으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죠. 베버리 힐즈만 가도, 이 정도 저택은 흔하죠.”

리진 회장의 말에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도 미국에 갔을 때, 대표적인 호화 주택들이 모여있는 베버리 힐즈의 언덕을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고지대군요. 원래 부자들은 높은 곳에 산다는 말이 있죠.”

진석이 갔던 로스엔제렐스의 베버리 힐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래쪽도 부촌으로 유명하지만 진짜 부자들이 사는 저택들은 언덕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전망이 좋기도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보안이었다. 베버리 힐즈의 언덕은 경사가 가팔라서 걸어서 이동할 수는 없는 곳이고, 차를 이용하더라도 2차선의 도로뿐이라, 위치가 쉽게 노출된다.

파파라치부터, 잡다한 좀도둑에 이르기까지 외지고 높고 험한 언덕지대로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고, 차량을 이용할 경우에는 경찰이나, 보안 요원의 눈에 쉽게 노출이 되기 때문에, 언덕의 저택들은 보안과 사생활 보호에는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한국도 전통적인 부촌은 언덕 위쪽에 있죠. 물론, 최근에는 도로 사정이 안 좋다고 젊은 부자들은 좀 싫어하지만 말입니다.”

“하하, 그렇죠. 중국에서는 풍수지리라는 개념이 있어서, 집터라든가 위치를 중시합니다. 높은 언덕은 풍수적으로도 좋은 위치입니다.”

풍수라고 하면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생각하지만, 예로부터, 저지대에는 서민들이 살고, 고지대에는 귀족이 살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로마시대에서 귀족들의 저택은 고지대의 언덕 위에 지어졌고,

근대에 와서 런던의 모습도, 저지대의 서민들이 사는 다운타운과, 고급 주택가인 업타운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단순한 개념으로 저지대는 비가 오면 쉽게 침수가 되는 단점이 있다. 현대에는 하수관리가 잘 되기 때문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지대는 침수 위험이 있는 위험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수해로부터 안전한 고지대가 풍수적으로도 명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리진의 대저택도 고지대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고층의 아파트가 아님에도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도로와 거리도 있어, 소음도 적고 말이다.

“아무튼 정말 멋진 저택입니다.”

“이진석 사장님도 이 정도 집이라면 언제든지 살 수 있지 않나요?”

리진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진의 말대로, 돈이라면, 충분한 진석이었다. 수백 억, 아니 수천 억짜리 대저택이라도 한국에 짓고 싶으면 지을 돈은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서상, 그런 대저택을 짓는다면,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지만, 부자들에게 관대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미국 못지않게 부유한 부자들도 많고, 그들의 씀씀이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거기에 언론도 그들을 따로 공격하지 않다보니,

한국의 부자들과는 클래스가 다른 중국 부자들의 호화로운 생활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돈이라면 있지만, 한국에는 좀 무리입니다. 기자들이나, 이런 호화주택을 지으면 당장 뉴스에 기사거리가 되고 비판을 받겠죠.”

“한국인들은 부자들에게 엄격한 모양이더군요?”

“저 같은 사람들은 좀 억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런 정서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경제적 불평등 말인가요?”

“예, 한국은 소위 말하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국가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단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다보니, 공정한 분배보다는 고속 성장이 더 중요한 화두였죠.”

“분배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부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군요.”

“적어도 미국처럼, 모든 것이 공개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미국은 대단한 나라죠.”

“하하, 미국이라? 하긴 엄청난 슈퍼 강대국이기는 하죠.”

진석은 아차 싶었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미국을 가 본 후로, 미국의 엄청난 스케일에 감탄하고 있던 진석이라 무의식적으로 미국을 찬양하는 말이 나온 모양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라이벌 내지는 적대적 관계의 국가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두 개의 초강대국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을 빚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중국도 엄청난 대국이죠. 미국과 중국, 두 개의 초강대국 아니겠습니까?”

리진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기분이 상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진석 사장님은 둘 중 어디가 최종 승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장님은 중국도 와 보시고, 미국도 가 보시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사업을 하시는 분이니까. 그런 국제적 비즈니스맨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하하, 어려운 질문이구요. 글쎄요. 저 같은 사업가가 복잡한 국제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난처한 질문을 했나보군요?”

사실, 중국이 이기든, 미국이 이기든,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국의 미래나 진석의 미래가 중요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어차피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상수일 뿐이었다. 상수라는 말과 예측불가능성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따로 계산하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에 진석은 그걸 상수라고 봤다.

“그런 골치 아픈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그보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듣기로는 콩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예, 아시겠지만.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부터 시작해서 인권, 군사, 기타 등등 싸우지 않는 분야가 없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관계에서는 국제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국제법은 유명무실한 것이다.

유엔이 만들어지며 국제법을 강조하고 질서와 원칙을 말하고 있지만, 강제성을 가지는 국내법과 달리, 국제법은 상호 합의의 개념이라, 어차피 양자가 합의하지 않는 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가 무기력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갈등 당사자에게 화해를 권유할 뿐 뭔가를 강제할 힘은 없는 것이다.

“농산물 같은 것은 중국이 수입을 하는 입장이죠?”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백화점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의 대도시에 백화점을 세우고 있죠. 나중에는 한국에도 진출하고 싶습니다. 뉴욕, 파리, 도쿄, 이런 대도시들에도요.”

“하하, 그런 날이 오면 좋겠네요. 그런데 백화점 사업을 하시는 회장님께서 어떻게 농산물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겁니까?”

“중국에서는 꽌시가 중요하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은 사실, 다들 정치권력과 줄이 닿아 있습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바였다.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과 경제 엘리트들은 서로 혈연이나 학연, 지연들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정책의 빠른 실행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꽌시라는 전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장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아무튼 서로 꽌시를 맺게 되면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게 중국의 문화입니다.”

“제가 뭔가를 해야 하는 거군요?”

“하지만 꽌시라는 건 일방적인 건 아니니까요, 뭔가를 들어주는 만큼 다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리진 회장은 중국 정치권에 꽌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평소에는 주로 혜택을 받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석과 협상을 하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정치권이라면, 어느 정도입니까?”

리진 회장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은 연간 7억 톤 정도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 대국입니다.”

“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2억 톤 이상의 곡물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식량 수입국, 식량 부족국가죠. 아마, 단일 국가로는 식량 부족량이 최대일 겁니다.”

리진의 말대로였다. 중국의 인구는 공식적인 통계만으로도 13억이다. 하지만, 1자녀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동시에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유교적 전통이 뒤섞여,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구도 상당하다.

국제 식량 기구에서는 중국의 식량 소비량을 기준으로 인구를 계산한 적이 있는데, 경제수준과 1인당 곡물과 육류 소비량 등을 참조해 계산한 인구 추정치는 15억 이상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아무튼, 최소 13억 이상에서 15억 이상까지도 보는 엄청난 인구대국인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식량과 곡물 수입국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 곡물을 수출하는 주요 수출국은 최대의 라이벌 국가인 미국이다.

“식량 수입은 정치적인 문제도 많은 편이죠. 예를 들어서 쌀 같은 경우는 중국은 인도와는 거래를 안 하고 있죠?”

리진은 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인도와는 국경 문제로 분쟁이 많거든요. 미국과 무역 마찰이 일어나기 전부터 인도와도 사이가 안 좋았죠.”

사실,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인도,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 미국 등 중국을 둘러싼 나라들과 중국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단순히 정치적 분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식량 수입이라는 점에서는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인도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다. 단일 국가로 인도만큼 쌀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인도의 쌀은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으로 수출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과의 갈등으로 그동안 공급이 원활했던 대두의 수입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미국과도 농산물의 수입이 쉽지 않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최근에 미국 농가들이 대두 생산을 크게 줄였더군요. 덕분에, 중국에는 콩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이 사장님도 그 콩의 가격 급등에 일조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제가 말입니까?”

진석이 미국 프레리에 슈퍼 테오신테를 보급한 것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대두를 키우던 중부의 대평원 지대에 진석이 콩처럼 비료 없이 재배가 가능한 슈퍼 테오신테라는 옥수수 종자를 보급했고,

그로 인해 중국으로 수출되던 대두 생산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비효과처럼 중국의 식료품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입니다. 저 같은 부자들도 있죠. 이런 대저택에 슈퍼카를 타고, 호화 요트에 전용 제트기를 가지고 세계를 여행하고 명품들을 쇼핑하기도 합니다.”

“음, 그렇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저 같은 부자들이 돈을 아무리 쓰고 다녀도, 기자들이 뉴스에 보도를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잘 모르죠.”

“그거야 그렇겠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부자들은 부자 동네, 최고급 식당, 고급 백화점의 vip 전용관과 같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자들의 호화생활은 일반인들이 눈으로 직접 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뭔가 불평등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눈앞의 현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콩은 다르죠. 밥상 물가가 오르는 건, 생생한 현실이라는 겁니다. 빈부격차가 벌어져도 사실 크게 실감되는 건 아니에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만날 일이 없어요. 서로가 서로를 볼 기회가 없는 거죠.”

“그에 비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건, 서민층의 불만을 가속화시킨다는 의미인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콩 가격이 오르는 건, 그저 물가 몇 퍼센트가 올랐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공산당 정부에 대한 국민들, 인민들의 불만이 커진다는 말이에요.”

진석은 고객를 끄덕였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빈부격차라는 갈등의 씨앗은 이미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 씨앗이 크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민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료품 가격이 폭등한다면, 그 불만은 그 갈등의 씨앗을 위험 수준으로 커지게 만들 수도 있는 문제였다.

“중요한 건, 콩이라는 거군요?”

“콩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에 부족한 식량이 문제죠. 이걸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진석 사장님을 이렇게 모신 겁니다. 중국의 정치권을 대리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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