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젊은 토마토(2) (82/183)

99화. 젊은 토마토(2)

토마토를 심으러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간의 면적이 점점 확장되면서, 오아시스에서 산으로 가는 길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진석은 목장에서 키우는 말들을 타고, 산을 향하고 있었지만, 가기도 전에 지치는 느낌이었다.

“사령관 이거 너무 멀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공간주님, 점점 산으로 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 세 시간은 걸리는 느낌입니다.”

말을 타고 가고는 있었지만, 말도 동물이라, 전력으로 계속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을 타고 쉬엄쉬엄 가다보니, 공간으로 가는 시간은 자꾸만 길어지고 있었다.

말을 타고 세 시간이나 가다보니, 가기도 전에 먼저 치치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있었다.

아니, 뉴욕에서 서울까지는 공간을 경유해서 곧바로 갈 수 있는데 공간의 오아시스에서 산까지는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말인가.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간주님.

“오아시스에서 산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곧바로 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는 없는 거야? 외부 세계에서 공간을 경유하면, 바로 갈 수 있잖아?”

-그건, 공간에서 거리란 디지털화된 좌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거리란 디지털화된 좌표일 뿐이라고?”

디저털화된 좌표라니,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는 말은 사실, 상태창이 종종 하는 이야기라 새로울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초지일관, 상태창은 이 공간을 디지털의 세계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공간에서의 거리라는 것도 디지털화된 숫자일 뿐이라는 말, 그러면 오아시스서 산까지의 거리도 좌표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는 없다는 것인가?

“그래서, 바로 갈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물론 가능합니다. 공간에도 출입구를 만들면, 원하는 곳으로 시간의 손실없이 다이렉트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뭐야, 그렇게 쉬운 건가? 그런데 왜 그동안은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공간주님의 요청이 따로 없으셨으니까요? 필요 이상으로 간섭을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다고 해두고, 그러면 오아시스와 산을 바로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내에 두 개의 출입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두 개의 출입구를 만들기 위해, 1만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출입구를 만드시겠습니까?

“그래, 이제 공간이 넓어져서, 말을 타고 가는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알겠습니다. 산과 오아시스에 출입구를 만들겠습니다. 출입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두 곳의 출입구가 연결되었습니다.

출입구가 만들어졌지만, 일단, 산까지는 가야했다. 말을 탄 일꾼들을 데리고 산까지 도착했다.

“겨우 도착했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출입구를 통해서 빨리 갈 수 있겠죠.”

“그래, 그건 그렇고. 일단은 토마토부터 심어보자고.”

산에는 여러 가지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공간이 넓어지면서, 산에서 키운 작물들을 오아시스나 혹은 공간 밖으로 가져가는 것도 쉽지가 않아졌지만, 이제는 오아시스까지 연결되는 통로가 생겨서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일꾼들을 동원해, 산의 밭들을 점검해보았다. 토마토를 심기 위해, 밭을 몇 개 만들었다. 그리고 토마토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키우기에 까다롭지 않은 작물이다. 적당한 토양과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식물,

산의 기슭에 새로 만든 밭에 토마토를 심자, 토마토 줄기가 빠르게 뻗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빨간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진석은 토마토들로 무성해진 밭을 돌아보며, 향을 맡아보았다. 아버지의 토마토밭에서 느껴지던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향이 정말 좋은데, 열매보다 향기가 더 좋은 것 같아. 안 그런가? 사령관.”

“하하, 그러시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작물을 재배하는 건 열매를 먹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진석은 토마토 줄기에서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하나 베어 물었다. 약간 새콤한 맛이 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토마토는 뭔가 약간 부족하다는 말이야.”

토마토가 좋은 채소이기는 하지만, 맛이나 향에서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진석은 그래도 이곳 산에서 키워낸 작물들이 뭔가 특이한 변화를 일으키며 특이한 효능이 생기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 기대를 하며, 시간을 가속해 토마토들을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밭을 옮겨가며 키워낸 토마토들에서 나온 작은 모종을 키우고 증식시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며, 주위는 온통 초록색의 토마토 줄기들로 가득채워졌다.

공간의 산의 특징은, 평지뿐인 공간에서 유일하게 높게 솟은 지형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공간의 에너지의 균형이 무너지며, 특이한 에너지의 영향으로 작물에 신비한 변화와 효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그런 변화는 외형의 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색이나 모양이 변하며 그 내부의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다.

진석은 토마토밭의 토마토 넝쿨들을 자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녹색의 줄기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들이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을 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 끝에는 익지 않은 토마토들이..진석은 시간을 조금 더 가속해 보았다.

“어라 뭐지?”

시간을 일주일 정도 가속해서 토마토를 익게 하려고 했더니, 토마토가 녹색인 채로 그대로 시들어서 썩어 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하네, 시간을 너무 가속한 것인가? 진석은 시들어 버린 토마토밭으로 가서 자세하게 토마토 넝쿨을 살펴보았다.

이상하네, 시간을 너무 가속해서 섞어 버렸다고 해도, 색이 빨갛게 농익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시들어 썩어버린 토마토들은 조금 갈색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녹색 빛이 남아 있었다.

“공간주님, 뭐가 잘못되었나요?”

“어, 사령관, 이 토마토들 이상하지 않아, 빨갛게 익지 않고, 그냥, 녹색인데.”

진석은 약간 시들어 버린 녹색의 토마토를 집어 들었다. 완전히 썩은 것은 아니어서, 끝부분을 살짝 깨물어보았다.

“어라 뭐지?”

“맛이 어떻습니까? 썩은 거 아닌가요?”

약간 상한 맛도 있었지만, 끝부분은 여전히 싱싱한 편이었다. 그리고 입에 베어 물자, 뭔가 향긋한 향기가 입안에 퍼졌다. 토마토 잎에서 나던, 토마토의 향기와 비슷했다. 맛도, 녹색으로 덜 익은 것 같은 외형과는 달리, 새콤하고 단맛이 났다.

기존의 빨간 토마토가 싱거운 채소의 맛이라면, 이 녹색의 토마토는 상큼하고 단맛이 나는 과일 느낌이 강했다.

“사령관, 이 토마토 생각보다 맛이 좋은데.”

“오, 그런가요? 저는 먹을 수가 없으니 맛은 잘 모르겠지만, 공간주님이 맛이 있다면, 맛이 있는 거겠죠.”

“그래, 하지만, 이건 그다지 싱싱하지는 않은 것 같고, 그래, 여기, 이 토마토 나무들인 것 같은데 이걸 더 키워서 증식시켜 보자고. 뭔가 새로운 토마토를 찾아낸 것 같아.”

녹색의 토마토는 익지 않은 토마토가 아니라, 익어도 녹색을 띠는 새로운 변종 토마토인 것 같았다.

색깔도 다르고, 맛도 기존의 토마토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산에서 키웠던 다른 작물들처럼, 이 토마토도 뭔가 독특한 효능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이 일꾼들에게 부지런히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기존의 다른 토마토들은 별로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밭에서 뽑아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정리가 되어 비어 있는 밭에, 녹색 토마토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석이 시간을 몇 번 가속하자, 녹색 토마토들이 빠르게 증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다 익은 건가?”

녹색의 열매에서 빨갛게 변하지가 않아서, 익고 있는 건지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대충 시간을 계산하며 토마토가 익기를 기다렸다.

“이제 대충 익은 것 같은데.”

진석은 여전히 녹색을 띠고 있는 토마토를 집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같은 녹색이라도 익은 토마토들은 더 진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봐 사령관, 익은 토마토는 색이 더 진해, 덜 익은 것들은 연하고 말이야.”

“오, 정말, 그렇군요. 자세히 보면, 익은 토마토를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석은 토마토를 관찰하며, 잘 익은 토마토를 골라냈다.

“바로 이거군, 어디, 이제 제대로 맛을 볼까?”

진석은 진한 녹색의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뭔가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맛이 어떤가요? 공간주님?”

“굉장히 달콤한데, 새콤한 맛도 나고 그리고 향이 되게 좋아, 토마토 잎이나 줄기에서 나는 그런 향인데, 맛도 훌륭하고 향은 뭔가 편안해지고 힐링이 되는 느낌이이랄까?”

향기를 이용해서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테라피도 있다고 하더니, 이 녹색 토마토의 향은 너무 좋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토마토 굉장히 향이 좋아. 이걸로 뭐라도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

북카페 오아시스, 건국대점.

방학 중이었지만, 카페에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기는 항상 사람이 많아서 좋단 말이야, 활기가 넘치거든요.”

진석은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창가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고, 이야기를 하거나, 캣 타워에서 고양이와 장난을 하는 여대생들도 보였다.

다들 젊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어머, 사장님. 오랜만이네요.”

“어, 지영 씨도 잘 지냈어요? 건국대점도 오랜만에 와보네요.”

건국대점은 여전히 김지영이 점장으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여기는 항상 젊음이 넘치는 분위기에요. 안 그래요? 여기 있으면 더 젊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어머, 아직 젊은데 뭐가 더 젊어져요.”

“하하, 그런가요?”

하긴, 김지영 그렇고, 진석 자신도 늙었다고 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더 어린 대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젊음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학생들은 더 젊잖아요. 더 활기차고.”

“뭐,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그래요? 대학생들이라면 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닐걸요? 저기를 보세요.”

김지영은 구석에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남학생을 가리켰다. 얼핏 봐서는 그 역시도 젊은 나이로 보이기는 했지만, 얼굴은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활기라기보다는 피로에 찌든 얼굴처럼 보여서 왠지 젊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자주 오는데 항상 저렇게 얼굴이 어두워요.”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젊은 대학생들이라고 항상 좋은 일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어른들 기준으로 나이도 어리고, 걱정 없어 보이는 것뿐이지 알고 보면, 다들 고민이 있고 힘들지 않겠어요.”

김지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젊음이라는 건, 지나고 나서야 깨닿게 되는 그런 상실 후에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감각이니까 말이다.

“뭐, 아무튼, 내가 신기한 과일, 아니, 채소를 가져왔는데 한 번 볼래요?”

“신기한 과일이 아니라 채소요?”

“하하, 토마토예요. 말을 좀 복잡하게 했는데, 맛이 굉장히 독특하기는 하지만, 분명 토마토라고요.”

진석은 가져온 상자에서 녹색 토마토를 꺼내 보여주었다. 김지영은 잠시 녹색의 토마토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거 그런데 덜 익은 거 아니에요?”

“그렇게 보이죠? 하지만, 다 익은 거라는 거죠. 색이 좀 특이해요. 다 익어도 빨갛게 되지 않고, 좀 진한 녹색이거든요.”

“음, 그러고 보니 향이 굉장히 좋은데요. 일반적인 토마토하고는 좀 달라요. 향이 굉장히 진하면서도 향긋해요. 이거 다 익은 거라는 거죠?”

“예, 한 번 먹어보세요.”

진석이 토마토 하나를 권유하자, 김지영은 토마토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굉장히...맛이..독특한데...”

김지영은 한 입 베어 문 토마토를 천천히 씹어서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녹색 토마토 특유의 맛과 향이 퍼지는지, 김지영의 시크했던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어때요? 맛이..”

“굉장해요. 달콤하기도 하고, 새콤하기도 하고, 이거 정말 토마토 맞아요?”

“하하, 이걸로 뭔가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 보는 거 어때요?”

“음, 이거라면, 그냥 갈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토마토 주스 말이에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