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리의 맛 (80/183)

97화. 오리의 맛

오리가 가득 담긴 상자를 들고 은하수 농장으로 돌아가자, 서은주가 오리 상자에 관심을 보였다.

“어머, 귀여워라, 그거 오리들이죠?”

“예, 은주 씨가, 소개해준 오리농장에 가서 분양받은 거예요”

“정말, 오리를 키우시게요?”

“그렇죠.”

원래는 논에서 피를 먹어치우는 오리 농법을 위해서 오리를 알아보기 온 길이었지만, 오리 농법은 사실 좀 의문이 드는 방법이었다. 대신 오리농장에서 오리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새끼 오리 몇 마리를 분양받아온 것이었다.

“그걸로 벼농사를 지으시게요?”

“벼농사는 잘 모르겠네요. 뭐, 쌀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논에서 취미 삼아 키워 보려고요.”

“그것도 좋겠네요. 오리가 귀엽기는 해요.”

“참,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요.”

“부탁요?”

“신품종 쌀을 개발하려는데, 아무래도,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쌀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그렇죠.”

“젊은 사람들이야, 회사 직원도 많이 있고 하니까, 자체적으로 시식을 해보면 되는데, 어르신들 입맛도 중요하니까요.”

“아, 새로운 쌀이 나오면, 테스트를 해달라는 거군요?”

“예, 맞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쌀을 가지고 올 거니까, 부탁드릴게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서은주는 걱정말라는 듯, 크게 웃어 보였다. 서은주에게 인사를 하고 농장을 나와 진석은 다시 공간으로 향했다.

***

“공간주님, 상자에 들어있는 건 새인가요?”

“새? 뭐 비슷하기는 하지, 이건 오리야.”

“아, 귀엽게 생긴 오리네요.”

진석은 공간에서 쌀 품종 개발을 위해 만들어 놓은 논에서 오리들을 키워 볼 생각이었다. 크게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리들도 좀 키우고, 혹시라도 논에 피들을 처리해 줄 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공간주님, 작업을 해서 논을 더 늘렸습니다.”

“오, 그래, 수고했어. 정말 논이 많이 늘었는데.”

일꾼들이 열심히 작업을 해준 덕에, 전에는 밭이었던 경작지들이 속속 논으로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새롭게 조성된 논에는 물을 채우고, 다양한 쌀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끼 오리들도 물이 찬 논에 풀어놓고 키우기 시작했다.

진석이 다양한 벼들을 시험하기 위해, 시간을 가속시킬 때마다, 오리들도 벼들 속에 있다가, 가속된 시간 속에서 개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

“공간주님 그러게 말입니다. 벼를 키우기 위해 시간을 가속할 때, 오리들의 시간도 가속되는 모양입니다.”

작은 오리들이 벼들 속에 돌아다니고 있으면 잘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눈에 뜨이더라도 작업이 바쁘기 때문에 오리들을 따로 빼고 시간을 가속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가속하더라도,

오리들이 느끼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빨라진 시간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지만, 그건 외부의 시각일 뿐, 오리 입장에서는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오리와 벼들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같이 가속하며 벼들과 오리 모두 개체 수가 크게 증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리들이 벼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논에 잡초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오리들이 생각보다, 논에 잡초들을 잘 먹어치우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논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확실히 처음에 가져온 오리들은, 물이 찬 논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벼들 사이의 피들을 먹어치우기보다는 물속에 들어있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잡초는 먹는둥 마는둥이었다.

진석도 딱히 오리 농법을 기대하고 오리를 데려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오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논 주위에서 키웠던 것이다.

그런데 논에서 벼들과 함께, 수천 년의 시간을 보낸 오리들은 점점 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논의 피들도 점점 즐겨 먹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초식으로 식성이 바뀌며 논의 풀들만 집중적으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논의 환경에도 완전히 적응해서, 벼들 사이로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며, 벼들에 손상을 입히지도 않고 말이다.

“생각보다 논의 잡초들을 잘 제거하는데 사령관.”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오리들이 점점 논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공간에서 키우는 오리들이 잡초들을 잘 먹어치으면서 따로 논의 피들을 관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일종의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이 벼들과 함께 오리들의 시간도 가속하면서 오리들도 논이라는 환경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보내며, 논의 환경과 피라는 먹이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이던 오리 농법이 수천 년의 시간을 논에서 적응한 새로운 오리들에 의해 큰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령관, 의외의 수확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오리들의 숫자도 엄청 늘어나서, 오리를 팔아도 되겠는데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논마다 오리들이 서식하며 개체 수가 늘어나서 그 수가 엄청 늘어난 것이다.

물론, 진석은 따로 오리를 판매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 개발한 쌀을 보급하면서 이 오리들을 보급하면 제초제나 비료 없이도 쌀농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농법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신품종의 쌀의 개발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진석은 종자 은행에 보관 중이던, 조선 시대의 전통 벼를 개량해서 일본의 쌀보다 더 품질이 좋은 신품종의 쌀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새로 개발한 쌀의 이름은 경기도 지사의 의뢰로 만들었기 때문에, 경기미라고 부르기로 했다.

***

은하수 농장,

“정말, 새로 쌀을 개발하신 거예요?”

서은주는 진석이 가져온 쌀을 신기하다는 듯이 살펴보았다.

“예. 우리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경기미라는 품종입니다.”

“경기미요? 경기도 쌀이라는 의미인가요?”

“예, 사실은 이 새로운 신품종 쌀의 개발을 외뢰한 곳이 경기도거든요.”

“경기도요?”

“예, 송준영 경기도 지사 아시죠?”

“물론 알죠, 여기 김포도 경기도잖아요, 나도 지난 선거에서 찍었는걸요.”

“하하, 아무튼, 경기도 지사님의 의뢰로 경기도의 자금을 지원받은 사업이거든요. 이제 이 쌀을 마지막으로 테스트 해보고, 경기도에 개발 경과를 보고할 겁니다. 그러면, 경기도에서 경기미를 전국으로 보급할 거고요.”

“마지막 테스트라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테스트를 해봤어요. 밥도 만들어 보고, 떡도 만들어 보고, 쌀국수도 만들어서 맛이나 식감이 어떤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본 거죠.”

“결과는요?”

“다른 일본 쌀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맛은 제가 먹어봐도, 경기미가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외에 병충해에 견디는 내성도 더 좋고, 이제 마지막으로 어르신들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테스트는 어떻게 할 건데요?”

“뭐, 아무래도 밥과, 떡, 국수 등을 평가를 해야 하니까, 마을 잔치를 한 번 벌이죠.”

“잔치요?”

경기미의 테스트 겸, 어르신들에게 음식도 대접할 겸, 겸사겸사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진석은 새로 개발한 경기미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했다.

경기미를 테스트 하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신 어르신들은 진석이 노인들을 위해서 잔치를 벌이는 걸로만 생각을 했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인 셈이었다.

“어르신들 많이들 드세요.”

“아이고, 고마워요. 예전에는 과일을 많이 보내주더니, 이번에는 아주 잔치네 잔치야.”

“음식들 맛은 어떠신가요? 밥 맛은 괜찮은가요?”

“아, 밥 맛이야, 최고지, 쌀이 더 고급이라서 그런가, 맛도 더 좋은가 봐.”

“아이고, 이 영감탱이 쌀이 고급이어봐야, 그게 그거지. 그보다는 요리사가 요리를 잘하는 거 아닌가, 밥도 맛있고, 떡도 국수도 맛이 최고야.”

어르신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경기미로 만든 요리에 대체로 만족하시는 모습이었다.

진석도 서은주와 여러 가지 쌀로 만든 밥과, 국수 같은 요리들을 먹어봤는데, 기존의 다른 쌀로 만든 식품들과 비교해도 더 맛이 뛰어나다는 느낌이었다.

“어때요? 서은주 씨는요?”

“경기미라고 했죠? 품질은 최고인 것 같아요. 밥이 제일 중요할 것 같은데, 쌀이 좋은 건지, 밥을 잘 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밥이 맛있어요.”

“하하, 요리사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이걸로 마지막 테스트도 합격인 것 같군요.”

“그럼 그다음은요?”

“이제 경기도 지사님에게 최종 보고를 해야죠.”

***

경기도 지사실..

“새로 쌀을 개발하셨다고요?”

“예, 경기미라고 제가 이름을 붙여봤는데 괜찮을까요?”

진석은 경기도 지사실로 새로 개발한 경기미를 가져왔다.

“기대 이상인데요. 저는 개발하는데 한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아주 장기 플랜으로 구상한 일이었습니다.”

“뭐,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에 10년이 걸리면 사업이 진행되겠습니까?”

진석의 말에 송준영 지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듣던 대로, 제이에스의 기술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이게 그 새로 개발한 경기미라는 거죠?”

“경기도 지사님이 의뢰를 하신 사업이니까요.”

“하하, 경기미라 나쁘지 않은 이름이네요. 사람들이 우리 경기도에서 개발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겠어요.”

“그리고 쌀도 쌀이지만, 오리도 있습니다.”

“오리요?”

“경기 오리라고 경기미와 함께, 농가에 보급해보려고 하는데요.”

진석의 말에, 송준영 경기도 지사는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쌀은 알겠는데, 갑자기 오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오리는 쌀을 개발하면서 같이 개발한 품종의 오리입니다. 일반 오리들하고는 달리, 논에 잘 적응하는 특징이 있죠. 논에 풀어 놓으면 논을 떠나지도 않고 논에 머물면서 잡초들을 먹어치우는 오리입니다.”

“오리 농업이라면,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어렵고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지사님의 말도 맞습니다. 일반적인 오리들이라면, 벼들과 함께 자라는 피를 잘 먹지 않는 편이죠. 그보다는 다른 작은 벌레나, 물고기들이 더 식성에 맞거든요. 그래서 논에 풀어놔도, 풀을 먹는 게 아니라 도망쳐서 개천이나 양식장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일이 더 많았죠.”

“이건 다르다는 건가요?”

“이 경기 오리는 완전히 초식입니다. 물론 오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육식도 가능한 잡식성 조류기는 합니다. 하지만, 논의 환경에 적응했고 특히 잡초를 먹는 초식 습성이 완전히 정착해서 거의 초식 동물로 봐도 무방합니다.”

“음, 그래요?”

진석의 말에도, 송준영 지사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일단, 시범적으로 여주 같은 쌀 주산지에서 한 번 테스트 재배를 제안하는 겁니다.”

“여주에서 테스트를 하자는 말이죠?”

송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도에서도 쌀로 유명한 곳이 여주였고, 그곳에는 쌀 연구소가 따로 있었다. 새로운 쌀이 개발되면, 여주에서 쌀을 시험하는 게 관례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여주는 쌀로 유명한 곳이고, 쌀 재배의 북방 한계도 알아봐야 하니까, 북쪽인 연천, 이렇게 두 곳에서 재배를 해보면 테스트 재배가 될 겁니다.”

송 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도 같이 말이죠?”

“예, 요즘 같은 시대에 오리 농법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실 수 있지만, 어쨌든 무농약 재배도 가능하고, 제가 시험해 본 바로는 논의 작은 미생물부터 작은 새우 같은 갑각류가 논에 생겨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말 그대로 친환경 재배가 이루어지면 요즘 많이들 하는 농촌 체험처럼, 여름철에 벼농사 투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기농 오리 농법으로 체험 농장도 가능하다 이거군요?”

“예, 그리고 이 경기 오리는 다른 기존의 오리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논에 최적화된 품종이라 정말 오리만으로도 유기농 쌀 생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음 좋아요. 이진석 사장님이 그렇게 확신을 하시는 걸 보니까, 일단 한 번 시험 재배를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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