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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밭두렁 (79/183)

96화. 논두렁 밭두렁

일단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을 만들어야 했다. 밭과 논의 차이라면, 물을 가두느냐, 배출하느냐의 차이다.

논이 물을 가두기 위해, 사방에 두렁을 만든다면, 밭은 물을 배출하기 위해, 가운데에 두렁을 만들어 물이 나가게 한다.

보통의 식물들은 뿌리가 땅 깊이 들어가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뿌리가 썩는 수해를 입게 되는데 물가에 자라면서, 뿌리가 얕은 벼는 물이 많아야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작물들이 땅의 힘으로 큰다면, 벼는 물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벼의 재배에는 수리시설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죽하면 자기 논에 물을 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벼농사에 물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령관, 일단, 논과 밭은 두렁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다르다고.”

“아, 흙을 쌓은 두렁 말이군요.”

“그래, 밭두렁은, 작물의 뿌리를 높여서 물에 뿌리가 잠기는 걸 막는다면, 논의 두렁은 물을 가두어서, 벼의 뿌리가 쉽게 물에 닿게 하는 의미가 있거든.”

“알겠습니다. 일꾼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겠습니다.”

그동안은 공간에는 밭이 있을 뿐이었다. 산에 작물을 재배하던 과수원들도 일종의 밭의 개념이고 물을 가두어서 농사를 짓는 논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공간에서 여러 작물들을 키웠지만, 논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논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재배 방식이다. 전세계에서 어디를 가도, 일부러 낮은 지대에 물을 가두어 식물을 재배하는 일종의 수경 재배에 가까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곳은 없다.

물론, 현대에 와서 딸기 같은 작물은 수경 재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논처럼, 수천 년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런 수경식 재배를 하는 곳은 동아시아 일대가 거의 유일하다.

벼가 야생에서 자라는 동아시아의 습지대를 보면, 논과 거의 환경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습지대가 있던 남부 지역으로부터, 점점, 북쪽으로 쌀의 재배지가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와 동시에, 습지대가 없는 한반도 같은 곳에서는 일종의 인공 습지대인 논을 통해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논은 대단한 발명품이다.

그래서 논은 자연 습지는 아니지만, 각종 조류들이 쉬어가는 습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공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인 것이다.

“공간주님, 논이 몇 군데 완성되었습니다.”

일꾼들이 급하게 작업을 통해, 기존의 밭으로 쓰던 경작지를 논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좋아, 모양은 대충 갖춘 것 같군.”

진석은 서울 출신이라, 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김포의 은하수 농장 주위에서 가끔 논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 본 논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물이 없었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사령관, 댐에서 나오는 물을 이쪽으로 끌어와야겠어.”

“물은 걱정하지 마십쇼. 전에도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 있습니다.”

“음, 좋아, 그러면 논에 물을 채워 보자고.”

논을 만들고, 동시에 외부에서 가져온 종자들을 파종에 모종을 만들어야 했다. 다소 복잡한 작업이지만 일꾼들과 진석의 시간 지배력을 이용해서 준비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 다음은 모내기인가?”

보통은 기계를 쓰기는 하지만, 농기계가 준비되지 않은 관계로 일꾼들을 동원해, 수작업으로 모내기를 시작했다.

“다음에는 이양기를 사와야겠어.”

일꾼들이 어설프게 물이 찬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공간주님, 벼농사는 손이 많이 가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까다롭고, 복잡하고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한국인이 주식으로 먹는 대표 작물이지만, 기계화가 되기 이전에는 굉장히 손이 많은 농사방법이라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농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물도 많이 필요하고, 모내기를 하려면, 단기적으로 많은 인력도 필요해서, 사람들은 쌀 농사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촌락에 모여서 집단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밀 농사와 비교하면, 밀밭이야, 아무 곳에나 개간할 수 있지만, 논은 물을 대야 하기 때문에 다른 논들과 떨어져서 만들 수가 없다.

한국 사람들이 서양에 비해서 개인주의가 약하고 집단적 성향이 있는 데는 이렇게 모여 살 수밖에 없는 쌀농사 문화가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내기까지 마치자, 진석은 시간을 가속해, 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논을 초록빛으로 가득 채우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벼가 익기 시작하자, 물을 빼주었다. 수확기가 된, 벼는 쌀 알맹이가 들어차며 누렇게 변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보았다.

베트남에서 가져온 품종이었는데 역시나 잘 자라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약간 찰기가 있는 밥은 아니었다.

진석은 개인적으로 찰기 없는 밥도 좋아하는 편이라 상관은 없었지만, 한국시장에 내놓기는 어려운 쌀이었다.

공간에서 재배한 쌀들로 밥이 짓기 시작해서 여러 가지를 시식해 본 결과, 역시 가장 진석의 입에 맛는 쌀은 일본 품종인 고시히까리였다.

“그동안 일본 쌀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이게 제일 익숙하네.”

같은 쌀 문화권이기도 하고, 과학기술쪽에 전부터 투자를 많이 했던 일본이라, 쌀의 품종도 우수한 편이었다.

오랜기간 한국에서 재배했을만큼 병충해나 기본적인 안정성도 좋은 편이고 그래서 신품종을 개발해서 전국적으로 보급하려면, 이런 일본벼들보다 맛이나 안정성면에서 더 우수해야했다.

그래야 수십 년 이상, 익숙했던 품종을 농부들이 바꿀 마음이 생길 테니 말이다.

“공간주님, 생각보다, 벼는 재배가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래, 중간중간 물을 넣어주고 빼주고 해야 해서, 작업이 번거러운 것도 있고.”

벼를 재배하기 위해, 논이 필요하고, 논은 관리가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잡초를 제거해주어야 하는 문제도 있는데, 일반적인 밭과 달리, 물속에, 벼가 촘촘해 심어진 형태여서, 중간에 일일이 들어가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잡초 제거 작업을 인력으로 해결하든지, 아니면 농약을 살포하는 방법뿐인 것 같았다. 두 가지다, 문제가 있었는데, 논의 벼 사이에 잡초를 손으로 제거하자니 너무 인력의 소모가 심하고, 결국 일반적인 농가에서 하는 방식은 제초제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진석도 은하수 농장에 갔다가, 초록빛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논에 역한 농약 냄새가 풍기는 것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오리를 이용해 볼까?”

“오리 말입니까?”

예전에 오리를 이용해서, 벼농사를 유기농으로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오리를 논에 벼와 같이 키우면, 오리들이 잡초들을 먹어치워서 제초제 없이도 벼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 오리를 논에 키우면, 오리가 잡초를 먹으니까, 또, 오리는 나중에 팔아서 농가 소득도 늘어나고 말이야.”

“오, 그런 방법이 있군요. 그런데 좋은 방법 같은데, 왜 오리로 농사를 짓지 않는 겁니까?”

“뭐, 그거야. 아무튼. 오리도 벼농사를 지으면서 같이 키워 보자고.”

그런데 오리는 어디서 구해오지? 시골에서 오리를 키울만한 사람을 떠올려 보니, 은하수 농장의 서은주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은하수 농장에 한 번 가볼까?

***

은하수 농장,

“어머, 이진석 사장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하하, 그동안 좀 바빴거든요.”

“소식은 뉴스에서 많이 들었어요. 옥수수도 개발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하신다면서요?”

은하수 농장에는 오랜만에 오는 거지만, 진석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뉴스를 통해 서은주도 진석의 소식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은하수 농장에는 어쩐 일이세요?”

“뭐, 궁금하기도 하고요. 사실은, 요즘 쌀농사를 연구하고 있거든요.”

“쌀농사요?”

“예, 저희 제이에스 바이오는 여러 가지 품종을 개발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신품종의 쌀을 개발 중이죠.”

“쌀이라, 하긴 여긴 김포에도 쌀농사를 많이 지으니까요.”

“이쪽은 주로 어떤 품종인가요?”

진석의 말에, 서은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듣기로는 일본 품종을 많이 키운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맛이 제일 좋다나 봐요.”

“아, 그렇군요. 뭐, 보통 일본 품종을 많이 재배하니까요. 여기 김포 평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네요.”

“예, 뭐, 쌀이야 잘 자라고 맛이 좋으면 어디 품종이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음, 참, 그런데 여기 보면 벼농사를 많이 짓던데, 혹시 오리 농법을 하는 곳은 없나요?”

“오리요?”

“예, 제가 전에 듣기로는 벼농사를 지을 때, 오리를 같이 키우면, 오리가 피라고 하죠. 논에 자라는 잡초들 말이에요, 그 피를 먹어치워서 논이 깨끗해진다고 하던데.”

“음, 글쎄요. 전 이 근처에 논이 많아서, 모내기나 추수할 때는 구경도 하고 그러는 편인데, 오리를 키우는 건 못 본 것 같아요. 대부분은 제초제를 뿌리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유기농 같은 것 드문가 보죠?”

“저도 농장을 운영하지만, 유기농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농부들이 농약을 안 뿌리면 유기농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충이나 잡초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하긴 그렇죠, 해충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거고,”

“말이 쉽지, 제초제를 안 쓰면, 손으로 잡초를 다 뽑아야 하는데 그만한 인력이 지금 농촌에는 없어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아마, 오리를 키우는 유기농 쌀 재배법도 생각만큼 효과는 없을 거예요.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면, 누가 해도 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데 보세요. 여기도 저 도로 건너편에 저렇게 논이 많은데, 오리를 키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하하, 알겠습니다. 농촌 사정은 서은주 씨가 나보다 더 잘 아니까. 은주 씨 말이 맞겠죠.”

“참, 오리로 농사를 짓는 건 잘 모르겠는데, 근처에 오리 농장이 있기는 해요.”

“오리 농장요?”

***

무영 오리 농장,

“최무영이라고 합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은하수 농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오리를 키우는 농장이었다.

“와, 오리들이 제법 많이 있네요. 오리들을 가두어서 키우는 줄 알았는데, 방목으로 하시네요.”

“하하, 오리도 운동을 해야 좋거든요. 건가에 좋다고 오리고기를 많이 드시는데, 오리도 운동을 해야 건강할 거 아닙니까.”

오리들을 사육장에 가두어서 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리들은 울타리가 쳐진 들판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키워지고 있었다.

“하하, 오리들이 노는 걸 보니까, 마음이 편해지네요. 그런데 혹시 오리로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 오리 농법 말이군요.”

최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리가 벼농사를 지을 때, 피를 먹어치운다는데 그러면 농사에 더 도움이 되지 않나요?”

“음, 글쎄요. 사실, 오리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괜찮은 방법이죠. 특히 저같이 사료보다는 풀을 먹이는 걸 선호하는 오리농장주라면 말이죠.”

“그런데 그런 건 실제로 보기는 힘드네요.”

“하하, 대부분 유기농법이라는 게 별로 효율적이지는 않아요. 오리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프면, 논에 잡초를 좀 뜯어 먹는다는 정도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안 먹는다는 말인가요?”

“비슷합니다. 오리가 논의 잡초를 확실하게 제거하려면, 오리의 숫자가 충분해야 하는데, 오리가 또 너무 많으면, 잡초만 먹는 게 아니라, 벼를 망치기도 하고요. 숫자가 너무 적으면, 잡초를 다 처리하지 못하고.”

“음..”

“그렇다고 쌀의 품질이 좋아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그냥, 유기농으로 무농약 재배를 했으니, 유기농 쌀이다. 이런 식으로 시장에 내놓아도, 사람들 반응은 그저 그렇거든요.”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리고, 사실, 농약, 특히 제초제는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인체에 독성이 거의 없습니다. 햇빛에 노출되면 다 자연 분해되는 성분들이 많아서 수확한 쌀이 제초제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오리는 별로 도움이 안 되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오리 농법이 사장된 거겠죠.”

진석은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무영 농장에서 새끼 오리 열 마리를 분양받아왔다.

“오리를 키우시게요?”

“아, 생각보다 귀여워서요. 한 번 키워 볼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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