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한국인의 밥상
저염수의 호수에 철갑상어들이 방류되었다, 그리고, 알을 벤 암컷들은 알을 낳기 시작했다. 철갑상어의 먹이가 될 작은 물고기들도 넣어주었다.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사령관 뭐가 좀 보이는 것 같아?”
“글쎄요. 여기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철갑상어와 먹잇감까지 저염도의 호수에 방류하고 수백 년의 시간을 가속시켰다. 아마도, 철갑상어의 개체가 꽤 늘어났을 터였다.
하지만, 호숫가에서는 호수 안쪽의 철갑상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 배를 준비해, 호수 가운데로 가보자고.”
민물의 호수와, 염수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 둔 배를 저염수 호수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배의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통나무를 이용해 레일을 만들어서 옮겨야 했다.
저염수 호수로 배들이 옮겨지기 시작하고, 철갑상어를 잡기 위한 그물도 준비되었다.
“사령관, 이제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 출발해볼까?”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저염수의 호수로 배가 옮겨지자, 그물과 함께 본격적인 출항이 시작되었다. 흑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공간의 호수도 배를 띄울 정도로 충분히 넓은 호수였다.
배를 타고, 호수 중앙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 보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물에 철갑 상어들이 걸려오기 시작했다.
“공간주님, 상당히 큰데요.”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자연상태로 방치되었던 벨루아 철갑상어는 전보다 더 크기가 커져 있었다. 대략 5미터 이상은 되는 녀석들이 연이어 그물에 걸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알을 벤 암컷을 골라내면 되는 일이다.
“공간주님, 아직 산란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
진석은 시간을 좀 더 진행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이 벤 통통한 벨루아 철갑상어들이 그물에 걸려들기 시작했다.
***
리우데자네이루, 제이에스 스토어.
“이게 다 벨루아 캐비어인가요?”
데이비드 정은, 진석이 가져온 캐비어 상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즘은 중국에서 고급 캐비어들을 싹쓸이 해간다고 하던데, 용케 이렇게 많은 물량을 구하셨군요.”
“예,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으니까요.”
마침, 제이에스 스토어의 진열대에 캐비어가 다 떨어져 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캐비어가 부족해지기 전에 창고에 캐비어들을 채워 넣을 수가 있었다.
캐비어 문제를 해결하고, 제이에스 스토어를 한 번 둘러본 후에 진석은 이파네마의 해변으로 돌아왔다.
브라질에 온 김에, 이파네마에서 좀 시간을 보내다 갈 생각이었다. 남반구는 이제 막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해변에는 축구나 배구를 즐기는 젊은이들부터, 수영이나 썬탠을 하는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보사노바의 아버지 카를로스 조빔은 이파네마 근처쯤에서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소녀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라는 명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곡을 섰다고 하니까,
작곡가로서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곳 이파네마 해변의 분위기가 많은 영감을 준 모양이었다.
진석도 카를로스 조빔을 흉내내듯, 해변가의 카페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시작되지 않은 듯, 저녁이 되자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해변을 거닐며 산책을 하니, 피로도 풀리는 기분이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경기도 지사님이, 면담을 하고 싶으시다는데요.”
“경기도 지사? 강원지사가 아니고?”
“예, 송준영 경기도 지사님이요.”
경기도 지사나, 서울시장은 지자체단체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라,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진석도 경기도 지사라면 잘 알고 있었다.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정치인이었다. 송준영은 원래 직업은 내과 의사 출신으로 의사협회장을 하다가, 국회로 진출해 보건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이후로 구리 시장을 거쳐, 경기도 지사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비교적 젊은편이었다. 물론, 40대 후반의 오명진 지사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경우니까 말이다.
경기도 쪽에 창고나 공장을 가지고 있는 진석이었지만, 그동안 따로 경기도 지사를 만난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바쁘다고 할까요?”
“아냐, 수정 씨, 시간을 좀 잡아줘. 뭐 만날 일이 있으니까 만나자고 하겠지.”
***
경기도 지사실,
“반갑습니다. 유명하신 분을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송준영 지사는 정치인답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유명하기는요. 지사님이 더 유명하신 분 아닙니까?”
“하하, 저야, 경기도 쪽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이진석 사장님은 세계를 누비는 분 아닙니까?”
사실,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 남미, 아프리카 동유럽까지 정신없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진석이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저를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일단 앉으시죠.”
송준영은 자리를 권했다.
“사실은 쌀 문제로 부탁을 드리려고 오시라고 한 겁니다.”
“쌀요?”
“예, 아시겠지만, 경기도는 인구도 많고, 쌀 경작지도 많은 곳이죠. 김포 평야나 여주 평야 같은 쌀 생산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쌀이 갑자기 왜?”
“경기도 산하의 농업연구소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최근 쌀 재배 농가를 상대로 여러 가지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기후 온난화로 작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아, 그런가요?”
송준영 지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원래,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남부와는 기후가 좀 다르죠. 한강이 그런 경계지점입니다.”
“한강을 경계로 농산물 재배 환경이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쌀도 그렇지만 대부분 농산물에 기온이 미치는 영향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최저 기온입니다. 가장 낮은 온도가 계절별로 몇 도까지 내려가는가 하는 것에 따라 생육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음,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강을 기준으로 한강 북쪽과 남쪽은 거리나 행정구역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경기도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최저 온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배하는 쌀의 품종도 다르고, 많은 조건이 달라지게 됩니다.”
“음, 그렇겠네요.”
“그런데, 최근에 전체적으로 한반도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한강 이남과 이북의 차이도 없어지고 있죠. 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기존에 재배하던, 품종들이 개발된지 오래되면서 원품종의 특성이 사라지는 문제도 있고요.”
“경기도에서 많이 재배하는 벼는 어떤 겁니까?”
“현재는 추정이나, 고시까리가 대부분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심는 건 역시 일본벼인 고시까리입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일본벼의 재배지가 더 늘어난다는 거군요?”
송준영 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는 감정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고시까리가 들어온 지도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진석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벼는 신품종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가 않죠.”
“그렇죠. 아무래도 벼처럼, 1년 주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품종은 개발 기간이 많이 걸리니까요.”
비단 쌀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지만, 신품종의 쌀을 개발한다고 하면, 여러 종류의 벼 중에서 우성을 골라내고, 각종 병해에 대해 실험도 해야하고, 그 후에 우리나라 농가에서 직접 키워보는 테스트 재배까지, 최소 20년 이상의 개발기간이 소요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국민들이 가장 많이 먹는 식량인 쌀, 그리고 국민의 정서에 가장 민감한 이런 쌀이라는 작물이 어이없게도 일본 품종이 들어와 벌써 30년 이상 우리나라의 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품종을 너무 오래 키우는 것도 문제고요.”
“그렇죠. 한 품종이 너무 많아지면, 병충해에 약점이 생기는 문제가 있죠. 그리고, 어느 품종이든 마찬가지만, 30년 이상 재배하면 개발당시의 원품종의 특성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의사출신이라 농업은 잘 모륻지만,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쌀은 최소 20년 주기로 품종을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말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병충해에 적응력 문제도 있고, 단일 품종으로 쌀 같은 핵심 식량을 30년이나 재배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죠.”
“그래서 말인데, 신품종의 쌀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경기도가 예산으로 개발을 지원하고 제이에스 바이오가 개발을 담당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신품종의 쌀이라,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인 작물들과 달리, 쌀은 말그대로 한국인의 주식이고 여러 가지로 대표성을 가지는 곡물이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쌀의 품종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인의 밥상을 모두 바꾼다는 의미와 같았다.
“음, 신품종을 개발하는 건 가능하지만. 보급하는 건 쉽지가 않을 것 같은데요. 농민들은 종자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라, 아마 새로운 쌀을 재배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거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경기도가 도내의 농민 단체를 통해서, 새로운 품종을 전파할 계획은 세워두었으니까요. 그리고 농민들도, 단일 품종을 장기 재배하는 건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경기도도 신품종 개발에 의욕을 보이고 있었고, 농민단체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인 모양이었다.
“어떻습니까? 언제까지 일본 쌀이 우리 식탁을 지배하도록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지금이 우리 쌀로 교체할 적기라고 보는데..”
진석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시까리 같은 일본 품종은 벌써 개발된지 30년이 너무 품종이라 교체 주기가 지난 셈이었다.
“좋습니다. 경기도가 지원해 주신다면, 한 번 개발해 보죠.”
***
강원도 인제 제이에스 바이오 농업 연구소
“쌀을 말입니까?”
쌀을 개발하기로 하고 필요한 종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인제의 농업 단지를 찾았다. 종자를 관리하는 소대영은 쌀을 개발하겠다는 진석의 말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하하, 뭐 그렇게 놀랄 것 까지 있나요? 쌀이야 말로, 농업을 대표하는 작물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일본 쌀이라고 해도, 고시까리 같은 품종은 한국인에 입맞에 벌써 너무 익숙해졌는데 다른 품종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도 일리는 있어요. 아무래도, 30년 넘게 일본 고시까리 쌀을 먹다보니, 이제 그 맛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쌀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근에 기후 변화 문제도 있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때가 된 것은 분명하죠.”
“뭐, 이진석 사장님이야 워낙, 새로운 품종 개발을 하시는 걸로 유명한 분이니까. 잘 될거라고는 생각됩니다. 하지만, 쌀 정도 되는 작물이라면, 개발하고 테스트 하는데 15년에서 20년은 보통 걸리지 않나요?”
“보통은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죠. 하하, 하지만, 우리만의 노하우가 있으니까. 개발 기간은 최대한 단축해볼 생각입니다.”
진석은 소대영에게 연구소 내에 있는 다양한 쌀들의 품종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종자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쌀을 개발해야 한다.
진석은 농업연구소에서 필요한 자료들과 종자들을 챙겨서, 파주의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
공간의 오아시스로 연결되는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령관의 모습이 보였다.
“공간주님, 오늘은 뭘 가지고 오신 겁니까?”
“이번에는 진짜 중요한 걸 가지고 왔어.”
“진짜 중요한 거요?”
“그래, 바로 쌀이야. 이거야 말로, 가장 중요한 곡물이라고 할 수 있지. 한국인의 주식이니까 말이야.”
“오, 쌀 말이군요. 하지만. 쌀이라면 이미 다른 품종들이 잘 재배되고 있지 않나요?”
“그렇기는 해. 하지만 단일 품종이 너무 오래 동안 재배되게 되면, 다양성의 문제가 생긴다고. 병충해나 유전적인 결함이 생길 위험이 있다는 거지, 그래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거나, 아니면 주기적으로 품종을 교체해 주어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교체 주기라는 거지.”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요.”
“그래, 쌀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논이 필요한데, 아직 공간에 논은 없잖아?”
“정말 그렇군요. 밭은 많이 있지만 아직 논은 없습니다. 그러면 일단 논부터 만들어야겠네요?”
“그래, 일단 논부터 만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