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벨루가 캐비어
“이쪽은 데이비드 정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주앙 곤잘레스”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적인 대도시다. 특히 남미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대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빈부 격차로 빈민가가 있기는 하지만, 도심의 빌딩 숲은 상당히 세련된 모습이다.
남미 지역 처름으로 이곳 리우데자네이루에 제이에스 스토어가 입점하게 되었다. 제이에스 스토어의 해외 사업은 데이비드 정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뉴욕의 코리아 타운의 1호점을 시작으로, 두 번째는 LA , 애틀란타, 시카고 순으로 미국에서도 점포 수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미국 외에 처음으로 진출한 해외 시장은 브라질, 남미를 대표하는 인구대국이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대국이다.
진석도 이곳에 바나나 농장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매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트러플들이었다. 매장을 새로 오픈할 때마다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매장이 들어서는 곳의 고객층이었다.
오픈 기념으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삼바의 나라답게 흥겨운 삼바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무용수들이 화려한 춤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화이트 트러플이군요. 이건 최상품이겠군요.”
주앙 곤잘레스는 가격표를 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주앙 곤잘레스는 국제 곡물 카르텔의 일원으로 브라질에 여러 개의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곡물의 거래를 담당하고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빈부 격차가 심한 곳이죠. 가난한 사람들도 많지만 부자들도 많으니까요.”
진석의 말에, 곤잘레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 정과, 이곳의 컨셉을 의논할 때, 신경 썼던 것은 고급화였다. 시장에 대한 조사 결과, 이곳 리우네자네이루의 부유층의 소비력은 엄청났다.
빈부 격차로 상류층의 씀씀이는 더 커진 셈이었다.
“브라질의 부자들은 미국 못지않게 돈을 많이 쓴다더군요.”
데이비드 정은, 샴페인 잔을 들고 진석과 곤잘레스에게 매장 안을 설명해 주었다. 매장에는 트러플을 비롯해서, 고급 와인과 최고급 치즈, 캐비어 같은 고가의 식재료들이 많이 보였다.
“맞습니다. 브라질 부자들이 씀씀이가 더 크다고들 하죠.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제이에스 스토어의 리우데자네이루점의 특징은 한마디로 고급화였다. 과일이나 채소류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제이에스 스토어보다는 그래서, 와인류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와인들이 많이 보이네요, 와우, 이건 로마네 꽁띠군요.”
주앙 곤잘레스는 매장을 둘러보며,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급 와인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물론, 와인들은 모두 공급받은 것들이었다. 진석은 포도를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하며, 와인을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와인의 생산까지는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캐비어, 벨루가 캐비어군요. 이것도 최고급..캐비어는 흑해산이 유명하죠.”
“사장님, 캐비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주문을 했다고 하셨는데?”
데이비드 정은, 진열된 캐비어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최고급 고급 식자재 마트를 표방한 제이에스 스토어, 리우데자네이루점, 하지만 몇몇 재료들은 공급이 부족해서 충분히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고급 캐비어가 특히 부족한 상황이었다.
“캐비어 말이군, 뭐, 걱정할 건 없어. 제이에스 그룹 자회사가 크림 반도에도 있으니까.”
“크림 반도에 말입니다?”
캐비어는 철갑상어의 알을 염장한 식품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것은 벨루가라고 불리는 흑해산 철갑상어. 크림 반도는 철갑상어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 고가의 식재료들은 비싼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최고급 캐비어인 벨루가 캐비어는 20년 이상된 철갑상어 암컷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
자연에서 잡기도 어렵고 양식도 어려워, 자연스럽게 최고 수준의 고가로 거래되는 것이다. 일단은 크림 반도에 설립한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지사의 브리진스키에게 벨루가 캐비어를 구해보라고 지시는 했지만,
물량을 구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때요? 데이비드, 캐비어가 그렇게 많이 부족한가요?”
“뭐, 당장 아주 급한 건 아니지만, 창고에 재고가 거의 없으니까요. 기껏 주문이 들어왔는데 물건이 없다고 하면 곤란한 일이죠.”
진석은 새로 개장한 리우데자네이루 매장을 둘러보았다. 오픈 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다. 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상류층들이었다. 제이에스에서 최고급 식재료 마트를 오픈한다고 하니,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제품들이 최고가였고, 자연스럽게 부유층들이 모여 들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캐비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캐비어나 트럼플은 고가에도 인기가 좋은 식재료들이라,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는 건 필수였다.
“할 수 없군, 캐비어는 내가 직접 구해보지.”
“직접 말입니까?”
진석은 이파네마 해안의 집으로 돌아왔다. 리우데자네이루를 벗어나 해변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해안가의 주택이 나타났다.
진석은 작은 집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이파네마 해변과 멀리 보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거실로 들어간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거쳐, 크림 반도의 집으로 가는 출입구를 열었다.
지난번에 크림 반도를 방문했을 때, 마치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좋은 기후와 풍광에 매료되어 진석은 크림 반도 남쪽 해안 지대에 별장을 구매했다.
주황색의 흙벽돌로 된, 근사한 별장으로 멀리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크림 반도로 오자마자, 브리진스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진석 사장님? 크림 반도에 오신 겁니까?”
“예, 방금 도착했습니다. 지난번에 부탁한, 벨루가 캐비어 말입니다.”
“아, 캐비어 말씀이군요. 죄송하지만, 요새 캐비어가 품귀입이다. 아시겠지만, 중국 부자들이 캐피어를 많이 찾아서요. 철갑상어가 잡히는 족족 중국으로 팔려가는 실정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흑해는 캐비어의 주산지이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수요가 많이 늘어나서, 가격도 폭등하고 물량도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모든 유통업이 다 그렇지만, 물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가장 큰 시장으로 물건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고급 식재료인 캐비어의 최대 소비국도 중국이 유럽을 제치고,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캐비어의 공급업자들도 중국 시장에 집중하는 모양세다.
“그럼, 가공하지 않은 캐비어, 그러니까, 벨루가 철갑상어는 구할 수 있나요?”
“철갑상어 말입니까?”
브리진스키는 조금 난처하다는 반응이었지만, KGB 출신의 수완이 좋은 사업가답게 알을 밴 암컷 철갑상어 몇 마리를 구해왔다.
“철갑상어는 뭐하시게 말입니까?”
진석이 주문한대로 수조에 담겨진 철갑상어를 트럭에 싣고, 브리진스키가 별장으로 왔다.
“이걸, 양식을 해볼까 하고요.”
“하하, 양식이라고요? 쉽지 않을 겁니다. 캐비어를 채취하려면, 20년은 자라야 하는데, 양식을 하면, 중간에 폐사하는 게 많아요. 자연산 철갑상어처럼 오래살지 못한다는 말이죠.”
“뭐,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설령, 양식에 성공한다고 해도, 20년은 키워야 하는 벨루가 철갑상어였다. 지금 양식을 시작해도 20년 후에나 캐비어를 채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벨루가 캐비어가 고가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흑해는 염도가 낮은 바다입니다.”
“염도가 낮다고요?”
브리진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흑해는 민물호수였죠. 그러니까, 뭔가 대격변이 일어나서, 지중해의 물이 보스포로스 해협을 넘어, 흑해로 밀려들어온 거죠.”
“보스포로스 해협이라면, 터키에 있는 거 말입니까?”
“예,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지중해와 흑해 사이가 육지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흑해는 지금보다 수심이 168 미터나 낮았다는 겁니다. 말그대로 호수였던 거죠.”
“그럼 보스포로스 해협이 육지였다는 거군요. 흑해와 지중해 사이를 막고 있는 댐처럼.”
“그렇죠.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갑자기 지중해의 물이, 보스포로스의 댐을 넘어 흑해로 넘어 온 겁니다. 이 지역 입장에서 보면 대홍수가 발생한 거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요.”
“최근에 과학자들과 수중탐사 팀이, 흑해 해저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했죠. 민물 조개들의 흔적도 발견하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이 벨루가 철갑상어가 그 증거죠.”
“증거요?”
“벨루가 철갑상어는 민물고기입니다. 주로 러시아 내륙의 강가에서 사는 녀석이죠. 아니면 담수 호수정도에요. 그런데 이 흑해는 염도가 낮은 편이라, 이 흑해에도 벨루가 철갑상어가 살 수 있는 거죠.”
“신기하군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담수 호수였던 흑해는 아직도 염도가 낮은 편이라, 민물고기인 철갑상어가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 캐비어의 산지로 유명해진 거군요.”
“그렇죠,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큰 민물호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여기 흑해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즉 대홍수의 증거라는 말이 있죠.”
“음, 지중해가 보스포로스를 넘어, 흑해로 침수한 게 그 대홍수라는 말이군요?”
“어떤 사람들은, 저 흑해 심해에 있는 유적이 아틀란티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나오는 대홍수와, 아틀란티스에 관한 전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물에 의해서 문명이 멸망하고 극소수의 생존자만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였다.
언뜻 홍수와, 바닷속으로 멸망한 다른 이야기처럼도 들리지만, 최근의 지질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연구결과대로 지중해가 범람해, 보스포로스 일대의 육지를 넘어, 흑해로 바닷물이 넘어왔다는 이야기를 믿는다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와, 성서의 대홍수가 굉장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밌는 주장이군요. 아무튼, 철갑상어를 구하는라 수고했어요.”
“하하, 다 비즈니스일 뿐이죠.”
브리진스키는 수조들을 내려놓고는 트럭과 함께 돌아갔다.
브리진스키가 가져온 수조의 철갑상어들은, 족히 3미터에서 4미터는 되어 보였다.
브리진스키가 수조를 놓고 사라지자.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사령간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주님, 오늘은 물고기, 아니, 상어인가요?”
“그래, 일단은 저 수조들을 공간의 바다로 옮기자고. 아니지 바다가 아니라, 민물 호수로 옮겨야겠어.”
“민물로 말입니까?”
공간에는 염수의 호수, 즉 바다가 있었다. 하지만, 철갑상어는 민물에서 자라는 수종이었고, 특히 벨루가 철갑상어는 민물과 염수가 적당히 섞인 흑해에서 살던 녀석이었다.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공간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새로운 호수가 필요한데 말이야.”
-새로운 호수 말입니까?
“그래, 염수와 민물이 섞인 저염도의 호수가 필요해, 흑해와 비슷한 정도로 말이야. 벨루가 철갑상어를 양식할 생각이거든.”
-흑해 수준의 염도를 가진 호수를 말이군요.
“가능하겠지?”
-염도를 조절하는 것은 공간주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하지만, 새로 호수를 만드는 데는 5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호수를 만드시겠습니까?
“좋아, 저염도 호수를 만들어 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반이 붕괴되며, 아래쪽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반이 붕괴되며 강한 지진이 일어나자, 진석은 몸이 순간 휘청였다.
“괜찮으십니까, 공간주님.”
“아아, 괜찮아. 그나저나, 호수는 제대로 만들어진 건가?”
호수는 아직 흑탕물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진석은 진동이 멈추자, 호수가를 바라보다가 호수의 시간을 가속했다. 시간을 가속하자, 지반의 붕괴와 지진으로 인한 흙탕물이 진정되며 맑은 물이 나타났다.
물이 어느 정도 맑아지자, 진석은 호수의 물을 손으로 떠 마셔보았다.
“어떻습니까?”
“약간 짜기는 한데, 그렇게 짜지는 않아.”
호수는 흑해 수준의 저염도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진석이 손짓을 하자, 진흙 일꾼들이 수조관을 들어올려, 호수로 철갑상어들을 풀어 놓았다.
“새로운 호수가 생겼군요, 역시 공간주님은 대단하십니다.”
사령관은 새로 생긴 저염도의 호수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곳은 염도가 흑해와 비슷하다, 벨루가 철갑상어들도 아마, 잘 적응할 것이다. 그렇게 철갑상어들이 적응해서 번식한다면, 이곳에서 최고급 벨루가 캐비어도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다면, 트러플에 이어서, 또 다시 최고급 식재료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진석은 맑은 호숫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