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우크라이나 국빈 방문
서울 제이에스 본사.
“우크라이나 대통령궁?”
“예, 국빈으로 초대를 하겠다는 것 같아요.”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이수정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초대 소식을 알렸다. 그것도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국빈으로 초대한다는 것이다.
“설마 수정 씨가 잘 못 들은 거 아냐?”
“맞아요, 중간에 통역사 통역을 했으니까, 잘못 들었을 리가 없잖아요?”
이수정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진석을 국빈으로 초대할 만도 했다.
진석이 우크라이나 농가들에게 농업 캐피탈, 일봉의 농업 자금 대출을 하며 슈퍼 테오신테를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슈퍼 테오신테를 재배하는 우크라이나 농가들이 크게 늘었고,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 서부의 농업지대의 소득이 크게 오른 것이다.
종자와 농업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생산된 슈퍼 테오신테, 즉 옥수수는 전량 한국으로 수입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수입된 옥수수들은 홍천의 사료 공장에서 사료로 가공돼,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미국, 등, 목축업을 하는 주요 나라들로 수출되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이 사료들이 공급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농가에 자금을 지원하고 생산된 농산물을 수입해가는 고마운 존재가 바로 제이에스 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대를 한다는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좀 쉬려고 했더니? 또 유럽인가?”
진석은 국빈이니 뭐니,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보다는 좀 쉬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외교적인 결례가 되고 앞으로 사업을 하는데도 그리 좋을 일이 없었다.
“뭐, 그래, 수정 씨가 자세한 일정을 알아봐 줘.”
“가시는 거죠?”
“당연하잖아, 국빈으로 초대한다는데 안 갈 수가 있나?”
그동안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더니, 몸에 좀 피로가 쌓인 것 같았다. 사업차 공식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공간을 이용해서 바로 다이렉트로 이동할 수도 없었고, 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다 보니,
아무리 1등석만 타고 다닌다고 해도, 몸이 피곤하고 시차 적응이라든가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좀 쉬어야겠어. 전세계를 상대로 벌려놓은 수많은 사업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다보니 쉴 시간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진석에게는 공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진석은 사무실을 나와,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로 향했다.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공간의 문을 열었다. 환한 빛이 비추는 열대의 낙원, 아니, 열대라기보다는 지중해성 기후의 낙원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녀보니, 진석의 공간, 특히 오아시스 일대는 지중해와 비슷한 기후였다. 온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비교적 건조해서, 그늘에 있으면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석은 일단 좀 잠을 자기로 했다. 오아시스 주위에 늘어서 있는 야자수 숲으로 들어가, 걸어놓은 해먹 위에 몸을 뉘였다.
몸이 기분좋게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는지, 일어나 보니 배가 고팠다. 오아시스에서 요리를 해볼까?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제대로 맛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식사는 뉴욕에서 해볼까? 진석은 공간에서 뉴욕의 맨하튼의 아파트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열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진석의 아파트 거실이었다.
맨하튼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딱히 고급요리도 필요 없었다. 핫도그를 먹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새로 개업한 북카페 맨하튼점이 궁금해졌다.
“개업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개업 이후로는 한 번도 못 가봤네.”
같은 맨하튼이라, 걸어서 조금 가면 북카페가 나온다, 진석은 느릿느릿 북카페로 걸아가기 시작했다.
카페로 들어서자,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밖은 좀 더운 편인데, 안에는 온도도 쾌적하고 손님들도 제법 들어차 있었다. 실내에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하면, 꽤나 조용한 편,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노트북으로 작업도 하고,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장님, 여긴 웬일이세요?”
“아, 제니퍼.”
북카페 오아시스의 맨하튼 점장인 제니퍼 리였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니 김의 소개로 알게 된 직원이었다.
30대 초반의 야무진 느낌의 여자였는데, 전에는 헬스 트레이너 일을 했었다고 했다.
“뭐, 별일은 아니고, 지나가다 한 번 구경하러 왔어요. 잘 되고 있나 해서. 생각보다 손님이 많은데.”
“새로 개업한 곳 치고는 괜찮은 편이에요.”
“항상, 이런 분위기인가? 꽤나 여유롭네.”
“예, 다른 카페들은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 있는데, 여기는 하루종일 이 정도 수준에서 유지가 돼요.”
“그래?”
한국에서 오픈한 북카페들은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사람들이 확 늘어나고는 했는데 제니퍼 리의 말로는 이곳은 시간에 따라 편차가 거의 없다고 했다. 뉴요커들과 서울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좀 다른 모양이었다.
대신, 야간에도 손님들의 숫자가 유지되는 편이라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또 분위기가 한 번 반전되고 있었다.
1층이 잔잔한 재즈 음악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분위기라면, 2층은 뉴에이지 풍의 신비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커피보다는 동양 스타일의 차를 마시고,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2층에는 요가 교실도 있어서, 사람들이 간단한 요가 동작을 배울 수도 있었다.
대충 둘러본 거지만, 맨하튼의 카페는 기대 이상으로 잘 운영되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카페를 둘러보고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
다시 공간을 거쳐, 서울로 돌아가자 푹 쉬고 나서인지 몸도 개운하고 정신도 맑아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로 갈 시간이군..”
우크라이나 키에프의 대통령궁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는 젊은 나이의 코미디언 출신이었다. 주로 정치를 비판하는 스탠딩 코미디를 하다가,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아 유명해졌는데,
정말 코미디 같이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하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도 젊고 한국 정치인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코미디언 출신이라 그런지, 인상도 밝고 말이나 체스처가 유쾌한 편이었다.
“이진석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해야 할 건 오히려, 저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죠. 제이에스 바이오가 많은 투자를 해준 덕분에, 서부지역의 경기가 크게 좋아졌습니다.”
젤렌스키는 코미디언이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반러시아파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크게 서부의 농업지대와, 동부의 공업지대를 나누어지는데 동부 쪽은 친러시아에 가깝다.
우크라이나의 공업이라는 것이 러시아와 연관된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서유럽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곡창지대인 서부 지역은 친서방 내지는 반러시아 정서가 강했다.
제이에스 바이오와, 우크라이나의 로시첸코가 사장으로 있는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우크라이나 지사는 최근에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고, 이것은 시간이 지나, 결실을 맺고 있는 단계였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옥수수들이 한국으로 수출되면서 막대한 외화 수입을 얻고 있었고 이런 자금 유입을 통해, 지역 경제도 발전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의 경기가 살아나자,
우크라이나 정치 판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서방 세계와의 교역을 중시하는 젤렌스키 입장에서도 자신의 지지 기반이 탄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진석의 사업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희 제이에스의 사업이 우크라이나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하하,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서부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서, 크림 사태 이후로 짐체되었던 우크라이나 경제에 어느 정도 활력이 돌고 있는 느낌입니다.”
크림 사태라면, 흑해에 돌출된 반도 진형인 크림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림 공화국을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충동한 일을 말한다. 물론 직접 전쟁을 한 건 아니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뒤섞인 이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대결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던 크림 공화국은 주민 투표를 거쳐 러시아로 합병되고 말았다.
“크림 반도 문제라면, 우크라이나로서는 골짓거리겠군요?”
“맞습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분명한 영토입니다. 물론 자치 공화국이 있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일부라는데 이견이 없죠.”
“하하, 그렇겠죠.”
물론 그건 우크라이나의 의견이고 크렘린의 푸틴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든 말든, 크림반도 문제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문제로 둘이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은, 이번에 제이에스 그룹이 우크라이나의 농촌을 크게 개선 시킨 일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야, 제가 하는 사업을 했을 뿐인데요.”
젤렌스키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알지만, 크림 반도에서도 그런 일을 해주실 수 없습니까?”
“예, 크림반도에서 말인가요?”
사실, 크림사태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들은 정도였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내부에서 어느 정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진석으로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크림 반도는 지금 러시아계 인구 비중이 크죠, 주민 투표에서 친러시아파가 승리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하지만, 이미 선거를 통해, 러시아로 합병이..”
“선거로 한 일이라면, 다시 선거를 해서 바꾸면 그만이죠.”
크림 반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곳이 흑해와 접해있는 항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거대한 내륙 국가인 러시아가 흑해 일대에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지이기도 하고,
러시아 입장에서 식량의 주요 공급지인 우크라이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농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업가일 뿐입니다. 새로운 종자를 보급하고, 생산된 작물을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죠. 우크라이나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구소련 시절에는 같은 연방 소속이기도 했고요.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젤렌스키의 말대로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의 생산력은 러시아가 탐낼 만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러시아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문 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충지이니 말이다.
“크림 반도에 러시아가 손을 뻗는 이유도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려는 시도라는 거군요?”
젤렌스키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림반도는 흑해의 요충지입니다. 세바스토폴은 군사항구 기능도 하고 있어서, 이곳을 장악하느냐가 흑해의 재해권을 결정하니까요. 결국 크림 반도를 누가 장악하느냐가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진석은 난감하다는 듯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각국의 정치 외교적 문제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진석은 사업가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농업 기업을 이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국제 분쟁에 끼어들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이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 하는 데는 산업 구조도 큰 영향이 있죠.”
“산업 구조요.”
“러시아계 인구도 많지만, 그쪽 러시아인계 인구가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종속되어 있는 것도 영향이 큽니다. 주로 러시아의 중공업이나, 석유산업과 관련이 있거든요.”
“음, 그렇군요.”
언뜻 민족 간의 대립처럼도 보이지만, 그 내부를 보면, 경제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었다. 러시아는 의도적으로 이 지역이 러시아 경제에 종속되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쓰고 있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크림 반도에 농업에 더 투자를 하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서부 지대에서 제이에스 그룹의 농업 투자가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크림 반도도 전통적이나 포도나, 화훼, 그리고 담배 같은 작물이 많이 재배되는 농업지대입니다. 그리고 관광 산업도 좋은 입지 조건이 있고요.”
“그렇다면, 농업이나 관광 산업을 개발하면, 주민들도 러시아보다는 친서방에 가까운 우크라이나로 선택할 거라는 말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결국 모든 걸 결정하는 건 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