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팜파스에 부는 바람 (74/183)

91화. 팜파스에 부는 바람

“멋진데요. 성제윤 씨도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건가요?”

성제윤이 새로 개업한 수입차 매장은 크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매장 규모도 상당하고 전시된 차들도 고가의 슈퍼카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하하, 다, 이진석 사장님 덕분이죠.”

성제윤은 겸손하게 웃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에 도산대로에서 슈퍼카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하루종일 서성이던 파파라치였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한 변화였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는 진석도 한 몫을 하기는 했다.

제이에스 그룹이 급성장을 하면서, 그룹의 주가도 폭등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이에스 그룹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이에스 바이오는 상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장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기업 정보들을 공개해야 하는데

제이에스 바이오의 핵심 기술은 연구소에서 전문가들이 연구를 통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진석이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외부 세계에 공개하거나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비밀스러운 기업의 운영방식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비밀로 해야 했다. 따라서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제이에스 바이오는 그런 이유로 아직도 1인 기업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그룹들은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이 되었고, 그 결과 진석을 비롯한 제이에스의 임원들도 스톡옵션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게 되었다.

초기부터 제이에스를 위해 일했던 이수정과 유민지도 그런 식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고, 특히 이수정은 그렇게 번 돈을 성제윤과 함께 시작한 수입차 직수입 사업에 투자를 했다.

덕분에 수입차 매장에 영업사원이었던 성제윤은 이제는 어엿한 수입자동차 업체의 공동 사장이 되어 있었다.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이라? 제이에스를 거꾸로 한 느낌이네요.”

“아, 그런 건 아니고, 수정이 누나의 에스와 제윤의 제이를 딴 이름입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수정 & 제윤이라는 의미인 모양이었다. 에스제이 인터네셔널은 어쨌든 도산대로에 넓은 매장을 구해서 수입차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슈퍼카를 넘어서는 하이퍼카들의 모습도 보였다.

“와, 이런 건 뭐죠? 엄청나게 특이하게 생겼는데요.”

“아, 이건, 파가니의 존다입니다.”

“존다? 파가니요?”

성제윤은 진석이 관심을 보이자, 차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는 람보르기니의 디자이너였던 호라치오 파가니가 세운 하이퍼카 회사 파나니의 존다, 라는 자동차였다.

람보르기니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파가니는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를 나와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파가니는 디자이너로 차의 외관을 만들기는 했지만,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자동차에서 엔진이나 미션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외관 섀시를 디자인 하는 능력 정도 밖에는 없었던 파가니는 회사를 나왔어도 자신의 차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있었으니.

엔진회사로 유명한 AMG였다. 파가니의 디자인 능력과 AMG의 엔진 설계능력이 합쳐져서 파가니라는 하이퍼카 브랜드를 만들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이 존다라는 하이퍼카이다.

마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형은, 자동차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슈퍼카를 넘어 하이퍼카 시대를 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와, 이런 차는 가격이 얼마나 하는 겁니까?”

“뭐, 이건 출시된 지 오래된 차지만, 파가니의 차는 가격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상승하니까요. 지금은 30억 이상은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타고 다니기에는 너무 튀네요.”

“하하, 사실,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는 아닙니다. 이런 건, 트랙에서 속도를 즐기거나, 아니면 일종의 컬렉션의 개념으로 봐야죠.”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정도만 해도, 그럭저럭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파가니나 부가티 같은 하이퍼 카들은 아직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차들이었다.

보통을 넘는 슈퍼카를 또 넘어서는 하이퍼카들이었다.

가격도 30억 이상의 차들도 많아서, 어지간한 강남의 아파트 가격을 넘어서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존다라? 이건 아르헨티나 팜파스에 부는 바람 이름 아닌가요?”

“와,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파가니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어서 자기가 만든 자동차에 아르헨티나의 바람, 특히 팜파스 일대에 부는 바람 이름을 많이 붙였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동차를 살펴보았다. 외형이 아름답기도 하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쓴 디자인이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 차는 사두면 가격이 오르는 겁니까?”

일반적인 고급 차들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차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용할수록 차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런 하이퍼카들의 세계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이 높아져 가격이 역으로 상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이죠. 파가니의 차는 자동차라기 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우니까요.”

30억이 넘는 자동차, 그것도 타고 다니기에 불편한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소장하고 가격이 올라가는 예술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시각으로 파가니의 존다를 살펴보자, 정말 예술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예술품은 가끔씩 타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차 맘에 드네요. 사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존다를 말입니까?”

진석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성제윤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곳에 전시해 놓은 존다는 판매 목적이라기보다는 개업 기념으로 하이퍼 카들 전시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는 건 아닌가요?”

“하하, 이건 전시용으로 임대한 차입니다. 음..하지만 이진석 사장님이 정 원하신다면. 한번 문의는 해보겠습니다.”

결국 일주일 후, 진석은 파가니 존다를 타게 되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

진석은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일대의 농장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팜파스는 아르헨티나의 대평원 지대를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강우량에 따라, 목초지대와, 곡물을 생산하는 농경지대로 나누어진다.

팜파스의 서부는 라팜파라고 불리는 건조지대 그리고 강우량이 많은 동부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팜파스 지대로, 이 지역도 역시 동과 서로 구분되어 비교적 건조한 목초지대와 옥수와 밀을 생산하는 평야 지대로 나누어진다.

존다는 주로, 평야 지대에 비가 오기 전에 부는 습하고 뜨거운 바람을 말한다.

로사리오는 아르헨티나의 제이에스 농장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였다. 진석은 팜파스의 가능성을 보고 이곳에 지속적으로 농장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제이에스 농장은 주로 소들이 방목되던 건조한 목조지대에 올리브나 포도를 키우는 농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실행 중이었다.

진석은 도로 주위로 노랗게 핀 유채꽃들을 바라보았다. 팜파스에서 까놀라는 굉장히 흔한 꽃이었다. 자연적으로도 많이 자라고 일부러 씨를 뿌려 까놀라유를 채유하는 농장들도 있었다. 하지만 까놀라유는 올리브유 비하면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로사리오 씨, 저는 이곳에 올리브와 포도를 심을 생각입니다.”

진석은 소들을 키우던 농장들을 돌아보며, 새로 밭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리브 나무를 말인가요? 글쎄요, 올리브는 잘 자라지 않는 나무라고 알고 있는데.”

로사리오는 팜파스에서 전부터 밀과 귀리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진석의 제이에스 인터네셔널과도 생산한 곡물을 거래하고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제이에스의 아르헨티나 농장의 일을 맡게 되었다.

“로사리오 씨는 이 팜파스 일대에서 나고 자란 분이죠?”

“예, 저도 그렇고, 저희 조상 대대로 팜파스에서 목축을 하던 집안이었죠.”

“목축요? 밀 농사를 지으셨다고 들었는데.”

“팜파스도 지역이 넓기 때문에, 목축과 곡물 재배를 하는 지역이 나누어져 있죠. 원래는 저희 집안도 소를 키우던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방목을 하는 지역이 줄어들면서 업종을 자연스럽게 바꾼 거죠.”

로사리오의 집안도 원래는 가우초들을 고용해서 방목을 하고 있었지만, 철도가 보급되면서 팜파스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팜파스에서 방목으로 소를 키우는 건, 사람이 많이 필요하죠. 그것도 유능한 가우초들이 있어야하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키운 소가 더 좋은 가격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초원을 누비던 가우초들은 이제는 트랙터를 모는 농부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도시로 떠나버린 것이다.

로사리오처럼, 이곳에 남은 목축업자들은 밀이나 옥수수를 재배하거나, 집약식 목축으로 소를 가두어 키우는 방식으로 변신을 하게 되었다.

진석이 오기 전에 그들은 이미 변화의 바람을 경험했고, 이제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었다.

“뭐, 아무튼, 원래는 가우초들이 방목을 하던 이 지역이 지금은 밀 경작지가 되고 옥수수를 키우는 곳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바람과도 같죠. 아무튼 이제는 밀이나 옥수수 외에도, 올리브나 포도도 재배하려는 겁니다. 건조한 서부지역을 더 개발해도 좋겠죠.”

“그게 잘 될까요?”

“전에는 말했지만, 이번에 새로운 품종을 우리 제이에스 바이오가 개발했습니다. 5년 정도면 이 팜파스 일대가 올리브 나무들로 가득할 겁니다.”

올리브 나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확한 올리브를 가공하는 일이었다. 올리브를 수확해서 기름을 채유하는 과정도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다.

올리브 채유는 주로 지중해의 재배지에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외에 지역에서는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진석은 스페인 등에서 채유 분야의 기술자들을 스카웃 해서 올리브유를 생산할 준비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팜파스 일대에 포도 농장도 포도 재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도는 올리브와 기후적으로 거의 비슷한 지역에 재배되는 작물로, 둘 다 건조 기후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었다.

팜파스의 목축이 집약식 목축으로 바뀌면서, 과거 소들을 방목하던 넓은 토지들이 방치되고 있는 곳들이 많았다. 이 지역들은 비교적 건조한 지역으로 강우량이 적어, 올리브나 포도 재배에는 적합한 기후였던 것이다.

“가우초들이 소를 몰던 팜파스의 초원에 올리브나무를 키우게 될 줄은 몰랐네요.”

로사리오는 이 지역에서 자라고 난, 농장주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팜파스가 변해가는 것에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죠. 이제 방목을 하던 시대는 끝이 난 거죠.”

제이에스가 개발한 슈퍼 테오신테는 전세계에 옥수수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고, 그 영향으로 국제 곡물 가격과 사료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세계의 주요 축산 지역에서도 인건비가 많이 드는, 방목보다는 집약식 목축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 결과 방목지들은 소들이 빠져나가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진석은 팜파스의 거대한 비어 있는 공간에 포도와 올리브를 채워 넣으려는 것이었다.

“호주에 가보니까,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이 있더군요. 아르헨티나라고 못 할 거는 없지 않습니까?”

“포도를 재배하고 그걸로 와인을 생산하자는 거군요.”

농산물의 경우에 농산물 자체와 그것을 가공한 가공물의 가격 차는 엄청나다. 농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수확한 작물을 가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포도와 올리브는 와인과 올리브유를 생산하는 방식이 가장 쉽고도 고수익을 얻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석은 팜파스의 빈 농장에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면, 이 일대는 포도 농장과, 올리브 농장으로 급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방목 외에는 전무했던 이 지역의 농업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었다.

팜파스 건조한 목초지대에 빠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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