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나일 델타
이집트하면, 피라드미드 정도를 떠올리지만, 사실, 이집트 문명이 만개할 수 있었던 데는 나일강의 풍요로운 삼각주가 있었다. 이른바 나일 델타라고 하는 이 광대한 지역은 내륙에서 시작한 나일강이 지중해로 이어지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삼각주다,
아프리카 내륙의 우기와 건기의 반복 그로 인한 강의 유량의 변화로 인한 주기적인 범람은 나일강 주변과 나일 델타를 풍요로운 농경지로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다,
“이집트는 인구 1억이 넘는 나라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막의 나라라면 이 정도의 인구를 부양할 수 없어요. 실제로 이집트는 사막의 나라가 아니라, 풍요로운 녹색의 땅입니다.”
최승호는 카이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유학생이었다고 한다.
“특이하군요. 카이로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다니.”
진석은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법학이든 뭐든 상관은 없었어요. 그냥 이집트로 오고 싶었거든요.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거죠.”
사업가였던 최승호의 아버지는 경영학을 전공해서, 자신의 기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자유분방했던 최승호는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려고 마음먹고 마땅한 대학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미국이나 아니면 한국에서 외국인 고등학교를 다닌 게 아니어서, 저를 받아 주는 외국 대학이 많지 않았어요.”
“카이로 대학에서는 받아주더란 말이군요?”
“저도 좀 의아했는데, 외국인 전형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별생각 없이 법학을 전공했죠.”
“법이라면, 우리나라 법학과 같은 건가요?”
“아뇨, 그것도 좀 웃기는 일이 되었는데, 사실은 이슬람 율법을 전공한 거였어요. 처음에는 이집트어가 서툴러서 뭘 배우는 지도 몰랐던 거죠.”
말하자면, 외국인이 거의 배우지 않는 이슬람 율법을 전공한 것이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마치 한국 국악을 배우러 온 외국인 같은 느낌으로 대우를 해줬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는 국제법으로 전공을 바꾸기는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에서는 이집트어를 공부했던 거죠.”
최승호는 그 이후에도 이집트 남아, 관광 가이드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버지 회사는 기계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전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공장에서 작은 부품들의 치수를 재고, 확인하고 그러는 건 취미에 안 맞아서 말이죠.”
“성격이 외향적이셔서 그런지 가이드를 잘 했을 것 같네요?”
“그렇죠. 원래 밖으로 돌아다니는 체질이라, 아예 외국으로 나와 버린 거죠.”
이집트에서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많아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보통 피라미드를 보러 한 번씩은 오게 되잖아요.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라면, 이집트에 안 올 수가 없어요. 특히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이집트의 고대 문명에 대한 판타지가 있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이집트는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미국은 역사가 짧으니까, 유럽의 역사를 자기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더군요.”
“그렇죠. 그리고 역사를 배우다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부분이 이집트, 그리스 이런 쪽이니까. 역사에 관심이 있든 없든 피라미드는 정도는 다 알고 있기도 하고.”
진석은 사막 위로 불쑥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어찌보면 단순한 삼각형의 조형물인데, 문제는 그 크기였다. 말하자면 규모의 문제인 것이다.
“피라미드가 저렇게 크지 않았다면, 그렇게 유명해지지는 않았겠죠?”
진석의 말에, 최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예전에 독일인 정신과 의사의 가이드를 한 적이 있는데, 피라미드의 가장 큰 가치는 그 거대한 크기와, 그에 비해, 황량하고 비어 있는 사막의 부조화라고 하더라고요.”
“오, 그래요? 그러고 보니, 피라미드도 압도적이지만, 주변의 사막은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처럼 보여서, 피라미드가 더 돋보이네요.”
진석은 상상을 해보았다. 주변에 나무들이 자라고, 농경지가 펼쳐지고, 마을과 도로가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같은 피라미드가 있으면 어떨까?
이런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면, 피라미드의 압도적인 위용은 그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역시 피라미드는 사막이 가장 잘 어울리는군요.”
“사실, 이 피라미드도 제대로 된 피라미드는 아닙니다.”
“예? 무슨 말이죠?”
진석이 최승호를 바라보자, 최승호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래는 이 피라미드를 가는 길이 있었어요. 그냥, 도로를 말하는 건, 아니고 사람들, 그러니까. 이집트의 신민들이 왕의 피라미드를 보러 가려면, 중간에 일종의 터널을 통과해서 갔을 거라는 연구가 있죠.”
“터널요?”
“예,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서 가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터널 안에서는 분명 어두운 공간일 테고, 그 터널을 지나,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나온다면, 지금처럼 강렬한 태양으로 순간적으로 눈이 부시게 될 테고, 그런 상황에서 거대한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뭔가 굉장히 드라마틱한 연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이 강렬한 빛과 거대한 사이즈의 피라미드를 더욱 더 초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 말이다.
“뭔가 더 엄청나 보이는 연출이겠네요?”
“그렇죠. 사실, 피라미드의 진짜 목적은 그런 거죠. 혹자는 피라미드가 거대한 식량창고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왜죠?”
“피라미드는 내부에는 그럴 만한 공간이 없어요. 피라미드는 파라오가 장수할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죠.”
“왕이 오래 살수록, 더 크게 짓는다는 말인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피라미드는 정해진 크기라는 게 없어요. 현대의 건축물처럼, 일정한 설계를 하고 지어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처음에 기본 골격을 세운 후에 그 위에 한 겹 한 겹 덧씌우는 방법을 쓴 겁니다.”
“삼각형을 만들고, 그 위에 더 큰 삼각형, 이런 식으로 말인가요?”
“맞아요. 마트료시카처럼, 한 겹 위에 또 한 겹 이런 식이죠. 결국, 피라미드가 아무리 커도, 내부 공간은 처음에 지어진 좁은 공간이 전부라는 겁니다.”
“왜 그런 거죠?”
“여러 학설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피라미드는 식량창고가 아니라, 일종의 식량 배급소였다는 거죠.”
“식량 배급소요?”
“이진석 사장님도 나일 델타를 보고 오셨다니까 잘 아시겠지만, 이집트는 나일강의 축복으로 고대로부터 풍요로운 지역이었죠. 식량은 넘칠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 1억 이상의 인구를 부양하는 생산력을 가진 지역이죠.”
“그건,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더군요.”
“맞아요. 이집트의 농업은 별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인구가 훨씬 적었던 고대 이집트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농업이 발달했건 거죠. 문제는 우기와 건기가 확실한 아프리카의 특성 때문에, 우기로 강이 범람한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거죠.”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실업 문제가 있었다는 건가요?”
진석의 말에, 최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미, 문명이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는 사유 재산 개념도 분명했고, 왕이나 귀족들이 대다수의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죠. 그런 대농장에는 언제나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런 대농장의 노동자로 생활을 했던 거죠.”
최승호의 말은 이런 것이었다. 건기에는 강의 범람이 멈추고 땅이 마르기 시작해, 퇴적물로 비옥해진 토양이 드러나고 여기에 농사를 지어,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농업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기로 강이 범람하는 시기에는 물이 농경지를 침식해 농사는 올 스톱이 되는 것이다. 그 시기는 농장의 노동자들이 쉴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기간에도 그들의 식량이 필요하고, 식량을 사기 위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이 충분한데 공짜로 주거나, 임금을 올려줘서 비 농사 시즌에도 생활하게 해주면 안 되겠나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그 정도의 임금을 줄 생각은 지배층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일종의 우기에 따른 계절성 실업자 구제책인 피라미드 건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피라미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던 것이고, 처음부터, 목표로 한 크기라는 것도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왕의 무덤이었기 때문에 왕의 임기 중에 건설을 하는 것이 관례였고, 동시에 실업 대책으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성격도 있었기 때문에. 왕이 장수할수록, 피라미드는 그 위에 한 겹의 피라미드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그 크기가 불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피라미드는 왕의 건강 상태를 반영했다는 이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현대에는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죠.”
“아스완 댐 말이군요?”
“예, 잘 알고 계시네요.”
“아스완 댐도, 일종의 경제 부양 정책으로 시작한 일이었죠. 덕분에 만성적인 물 부족은 해결되고 전기도 생산되었죠. 하지만, 아스완 댐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 되었습니다.”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자원 이용이 더 수월해진 것은 장점이었지만, 문제는 수천 년을 계속된 나일강의 범람이 완전히 조절되었다는 것이다.
언뜻 좋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강의 범람은 나일강 일대의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퇴적물을 공급해 주었고, 이것은 특별한 비료 없이도 나일강 일대를 비옥한 곡창 지대로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강의 범람이 멈추자, 토지의 유기물이 현저히 줄어들어, 토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버렸고, 이건 인공적인 비료 없이는 농업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확실히 고대의 파라오들에 비해 현대의 파라오들은 예측력이 떨어지는군요.”
최승호는 관광 가이드로 시작해, 이제는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주로 한국과 연관된 무역이나 기업의 고문 역할을 하는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석의 제이에스 바이오를 위해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집트 농림부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죠. 최근에 농업 생산성이 떨어져서 비료를 시비해야 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집트 농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천 년 동안 비료 없이 강의 범람으로 얻어지는 비옥한 토양에서 손쉽게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은, 아스완 댐으로 안정을 찾은 나일강의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료를 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고, 비료의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나일 델타의 생산성도 타격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진석은 이 지역에 거름 없이도 재배가 가능한 슈퍼 테오신테를 보급하기 위해, 이집트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옥수수를 보급하는 것도 좋을 것 같더군요. 나일강의 범람이 멈추면서 토양이 많이 안 좋아졌거든요. 그렇다고 이곳 농부들이 비료를 토양에 뿌리는 것도 아니고요.”
“이집트 정부 쪽은 어떻습니까?”
“이집트 농림부에서도 슈퍼 테오신테가 보급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이집트 정부도 농업 생산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거든요. 여론이 안 좋아질까봐 말입니다.”
“그래요, 일단은 이집트에서 제이에스의 종자들을 판매할 회사부터 세울 생각입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파트너가 필요한데, 최승호 씨가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요?”
최승호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의 농업 대국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죠. 최근에 아스완 댐으로 환경이 바뀐 것도 있고요. 아무래도, 농업용수는 더 풍부해지고 토지의 비옥도는 떨어지는 식이니까, 작물을 교체할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죠.”
최승호도 진석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나일강의 신에 의해 지배되던 이집트의 농업도, 현대적인 농업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다.
최승호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느낌이었다.
“좋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우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