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뉴욕의 오아시스
북카페 홍대 본점.
“저 기억하시겠어요?”
“어, 어디서 본 얼굴인데?”
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의 느낌이었다. 어디서 본 듯도 했는데 진석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뒤엉키고 있었다.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요.”
“아, 맞아요. 이채린 씨였던가요?”
제주도라는 키워드가 떠오르자, 연쇄적으로 기억의 조각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애월읍의 북카페 오아시스를 오픈하기 위해서 땅과 건물을 매입했을 때, 땅을 매도했던 전 주인이었다.
서울로 올라가서 다시 요가 학원을 할 거라고 했던 기억이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오늘은 요가 강사 모집을 하는 날이었다. 진석은 해외로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었다. 제이에스 바이오와, 제이에스 스토어도 해외 진출을 하고 있었고 북카페 오아시스도 하노이를 시작으로 외국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로 생각하고 있는 곳은 뉴욕이었다.
뉴욕의 맨하튼은 진석이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다양한 인종 문화가 뒤섞인 국제적인 대도시였다. 이곳에 북카페 오아시스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노이에서의 경험으로 외국에 진출할 때는 현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하노이의 오아시스 분점은, 베트남의 기후 특성을 고려해서 실외 공간을 많이 늘렸는데 그게 주효했는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 뉴욕으로 진출하는 이번에도 철저한 분석을 통해 현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댄 김과 데이비드 정 같은, 현지인들의 조언을 참고해, 뉴욕에 개점하는 북카페 맨하튼점은 좀 더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분이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공공 도서관이 흔한 뉴욕에서 책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진석은 뉴욕 맨하튼점에는 요가 교실을 카페 내에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할 요가 강사를 채용하기 위해 공고를 낸 것이다.
“다행히 기억하시네요. 저를 몰라보면 민망할 것 같았는데.”
“하하, 제 기억력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요가 강사라고 하시더니, 이번 채용 공고를 보고 오신 건가요?”
“예. 맞아요. 뉴욕에서 일하게 된다면서요?”
“그래요, 뉴욕에 북카페 오아시스 분점을 낼 생각인데, 뉴욕에는 아무래도 책만 가지고는 카페 분위기를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요가나 명상이 유행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요가 강사를 구한다는 거군요. 뉴욕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다행히 이채린은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사실, 요가 강사로서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현지 적응력도 중요한데 이채린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다.
“어렸을 때, 어학 연수 겸 해서 캐나다에서 1년 정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완벽하네요.”
캐나다라면 같은 북미권으로 문화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곳이었다. 거기에 요가 경력도 상당하고, 진석과의 인연도 있어서 그런지, 진석은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면접에 참가한 다른 심시위원들도 비슷했는지 최종적으로 선발된 것은 이채린이었다.
이채린 혼자 요가 교실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현지 요가 강사도 추가로 채용할 생각이었다.
***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청와대라는데요.”
“청와대?”
카무트의 북한 수송이 시작된 지도 두 달 정도가 지났다. 워낙 고립된 환경인 북한이라 식량을 보낸 제이에스의 진석조차도, 북에 보낸 카무트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저 주민들에게 잘 전달되어서 배고픔을 겪는 주민들의 고통이 줄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라는지 설명은 없고?”
“그냥, 비서실에서 대통령님이 이진석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내일 오후에 오면 된다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대통령이 부르는데, 시간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절대 군주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진석에게는 누구보다 영향력이 있는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진석을 굳이 부르는 이유라면, 북에 보낸 카무트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석이 공간에서 생산한 카무트가 과연 북한에서 잘 식량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진석으로서도 궁금한 일이었다.
“청와대에서 호출인데, 다른 약속은 제쳐두고라도 가 봐야지. 내일 오후라고? 간다고 전해줘.”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번에도 다른 접견실이 아니라, 집무실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진석이 공식적인 귀빈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면담이 아니라, 실무적으로 비공개 면담이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잘 오셨어요, 바쁘신 분을 내가 너무 급하게 부른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도 사실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대통령은 자리를 권했다.
“그래요? 궁금한 것이라면?”
“북에 보낸 카무트 말입니다. 지금 정도면 주민들에게 배분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북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이진석 사장을 부른 겁니다.”
역시 진석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식량이 잘 전달된 것만으로는 굳이 진석을 따로 부를 이유은 없었다. 그 정도라면 정보기관이나, 아니면 비서관을 통해 귀띔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그런데 일부러 진석을 집무실까지 불렀다면, 추가로 더 요구사항이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사장님이 그 카무트라는 곡물을 북에 보내자고 했을 때, 우리 NSC나 비서관들, 그리고 여당 국방위원들 쪽에서도 반대가 많았습니다. 유엔 제재 위반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생소한 작물이라 북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요.”
“그 이야기라면 저도 들었습니다.”
사실, 카무트의 북송 계획이 발표되자, 언론에서도 대부분 부정적 반응이었다. 북에 식량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 카무트라는 생소한 곡물이라서 더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찬성파와 반대파 양쪽에서 다 두드려 맞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북에 식량을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식량으로 쓸 수 있는 카무트를 보내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었고,
식량 지원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보내려면, 쌀을 보내야지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에서도 생소한 카무트를 보내면 북한 사람들이 먹겠냐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시작한 카무트 지원 사업은 그나마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해서 그나마 카무트 자체는 별문제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지금 북에서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물론 비공식적인 거지만 상당히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카무트가 식량으로 잘 쓰여지고 있다는 말인가요?”
“예, 주민들에게 배분이 되는 건 거의 마무리가 된 모양인데, 요즘 북한에서 카무트로 밥을 지어 먹는 게 유행이랍니다.”
원래, 카무트와 쌀을 혼합하면 잡곡밥과 비슷한 맛이 나는 밥을 지을 수가 있었다. 약간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만, 식량으로서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카무트가 식량으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진석은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또 추가로 대통령이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인가?
“절, 그냥 부르시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카무트를 잘 먹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부르신 것도 아닌 것 같고.”
“하하, 맞습니다. 사실,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북쪽에서 카무트에 아주 만족한 모양이에요. 처음에는 생소한 곡물이라, 그쪽에서도 시큰둥했는데 쌀을 대체할 수도 있고, 견과류처럼 간식으로 먹어도 괜찮고 점점 더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공급을 더 늘려달라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북한에서도 카무트를 재배해보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처럼 직접 카무트를 받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식량 자립을 원하고 있으 니까요.”
“음, 그래서 카무트의 종자를 보급해 달라는 거군요?”
북에서 카무트를 재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북으로 보내는 카무트는 전적으로 공간에서 생산되고 있었는데, 물론, 시간을 가속하는 방법으로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것을 수확하는 것이라 공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북에 무한정 카무트를 생산해서 공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북에서 자체적으로 카무트를 생산해서 식량 자립을 한다면 진석에게도 일거리가 줄어들어 좋은 일이었다.
“그래요, 슈퍼 카무트라는 그 품종은 이진석 사장님이 개발한 품종이니 다른 문제는 없겠죠?”
“예, 그렇습니다. 뭐, 보통은 종자에는 로열티라는 것이 붙지만, 북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쓰는 정도라면, 로열티 없이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꼭, 무상으로 지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북에 지원되는 카무트처럼, 정부에서 비용을 보전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저도 미약하나마, 통일을 위해서 도움을 드리고 싶네요. 북에 보낼 종자에 들어가는 비용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대북사업 쪽이라면,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보는 장기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대신 언젠가는 북한에서도 큰 사업을 할 기회가 생길 거라고 진석은 생각했다.
***
뉴욕 맨하튼 60번가, 북카페 오아시스 맨하튼점
“드디어 뉴욕에도 오아시스가 오픈하는군요.”
댄 김과 데이비드 정이 축하차 오아시스 맨하트점을 방문했다. 다른 곳처럼 K팝 가수를 불러서 공연이라도 할 생각도 했지만, 댄 김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재즈 밴드의 축하공연으로 대체했다.
“뉴욕은 재즈의 도시죠.”
댄 김의 말대로, 뉴욕과 재즈는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세련되고 동시에 활기찬 음악의 분위기, 사실 재즈의 역사는 멀리 아프리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련된 재즈 선율이 카페 내부에 퍼지고 있었다. 북카페 오아시스 맨하튼점은 책과 음료 외에도 음악과 공연이라는 것에도 신경을 썼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 뉴욕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1층에는 재즈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져서, 비정기적인 공연 무대로도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2층에는 요가 교실과, 명상을 위한 음악실도 준비했다.
1층 공간이 재즈를 들으며 책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2층은 명상과 요가 그리고 뉴에이지 음악이 있는 곳이었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캣타워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한국과 달리, 뉴욕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에 복잡한 절차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카페 내부에 다양한 식물의 화분들을 들여놓았다.
화분들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공기 정화에도 좋고,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내부 인테리어도 좀 더 고급스럽게 꾸며졌는데 한국의 북카페에 비해 좀 더 연령층이 높고 조용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뉴욕 맨하튼에 어울리는 분위기인가요?”
진석은 댄 김에게 카페를 소개해주며 물어보았다.
“음, 사실, 저는 한국의 북카페 오아시스도 가봤거든요.”
“그래요?”
“예, 한국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갈 기회가 있었죠.”
“비교해서 어떤가요?”
“솔직히 뉴욕이 더 좋네요. 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분위기도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뉴욕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라는 거죠.”
“맨하튼에 말이겠죠?”
서울에 있는 카페들과는 조금 느낌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책과 음악, 그리고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곳도 북카페 오아시스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요가와 명상을 더 해 뉴요커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할 계획이었다.
“아무튼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나 할까요?”
진석은 개업 축하용으로 준비된 샴페인 잔을 들었다.
“북카페 오아시스의 성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