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안달루시아의 올리브나무 (70/183)

87화. 안달루시아의 올리브나무

스페인 세빌, 농업생물 연구소

스페인은 안달루시아를 비롯한, 카턀루냐 지역이 전체 농산물의 50% 이상을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바르셀로나가 부유한 도시로 꼽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카탈루냐의 농업 생산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건조한 안달루시아를 대표하는 작물은 바로 올리브, 스페인은 세계 1위의 올리브유 생산지다.

진석은 유럽의 주요 농업 산지인 스페인을 둘러보고 있었다. 스페인은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각종 채소류를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 각국에 수출하는 농업 대국이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소문은 많은 들었습니다.”

마리아 에스테반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대학의 교수 겸, 안달루시아 올리브 영농조합 산하의 ‘수확 후 관리 저장 연구소’의 연구소장이었다.

“이름이 재밌군요? 수확 후 관리 저장 연구소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마리아 에스테반 박사는 40대 전후로 보이는 금발의 모델 같은 느낌이었다.

“뭐든 작물이 그렇지만, 수확 이후에 본격적으로 저장과 보관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죠. 인류의 역사에 신석기의 농업혁명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냉장 혁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냉장고의 발전으로 보관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걸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농업이라는 것이 시작된 초기에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곡물의 생산 위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장기보관이 가능한 몇몇 곡물류만이 그 저장성을 바탕으로 주요 곡물로 발전한 것이다.

채소나 과일 역시도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기는 했지만, 곡물에 비하면 저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그래서 계절에 따라 즐기는 먹거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국 주식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시아의 경우에는 쌀이나, 보리, 서양에는 밀 정도가 그런 주된 작물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냉장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식재료의 다양성은 엄청나게 발전하고 다양해진 셈이죠. 불과 수백 년 전만해도, 극소수의 특권층이 아니고는 요리라고 할 만한 것들을 먹을 수가 없었죠. 그 시절에도 다양한 채소나 과일, 육류, 생선 같은 식재료가 있었지만, 생산은 가능해도 장기보관이 가능한 재료는 소수에 불과했으니까요.”

마리아 에스테반 박사가 연구하는 분야는 작물의 수확 후에 관리에 관한 연구들이었다. 냉장고를 이용한 저온 보관기술이 보편화된 현대에도, 저온 저장은 시설과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농업 분야에서 대량의 작물을 보관하는 방식은 가공을 통해, 보관을 용이하게 방법이 많이 쓰인다. 올리브의 경우에는 쓴맛이 나는 열매를 소금에 절이거나, 압착해서 올리브유를 생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이곳은 작물을 수확 후에 재가공하는 연구를 하는 곳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실, 농산물의 경우에는 작물 자체의 가격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가공과정을 거치면, 가치가 몇 배로 상승하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안달루시아에서 많이 생산되는 올리브죠.”

마리아 에스테반 박사는 연구소 주위에 심어진 올리브 나무를 구경시켜주었다. 올리브는 상당이 특이한 나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지중해 일대에 건조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뿌리를 아주 깊게 내리고, 수분을 땅속에서부터 강하게 빨아들이는 나무예요. 생명력이 굉장히 강하죠. 건조한 기후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열매가 보통 맛이 쓴 편이거든요.”

“오, 그런가요?”

“과일이라면, 열대 과일, 그것도 습한 기후의 과일들이 단맛이 많이 나죠. 당분과 수분이 풍부하고요. 포도를 제외하면, 건조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자라는 나무는 올리브 정도가 유일해요.”

그러고 보니 이곳 안달루시아의 풍경도 흡사 사막을 연상시키는 건조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사막까지는 아니지만, 크게 자란 풀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습도가 낮은 지역이었다.

“안달루시아의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작물이군요. 올리브 말입니다. 그런데 올리브는 스페인이나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많이 재배된다고 하더군요. 독일 같이 좀 더 습한 지대로 가면 올리브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진석의 말에 마리아 에스테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신기한 일이죠. 이런 건조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수백 년을 사는 올리브 나무인데, 오히려 수분이 풍부한 토양에서는 뿌리도 얕아지면 잡목화가 이루어져요.”

“잡목화요?”

“예, 쉽게 말해서 나무가 제대로 성장을 못 하는 거죠. 안달루시아를 예를 들면, 이런 곳에서는 올리브에 물을 공급하는 것에 따라, 좋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거든요.”

“물을 많이 주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물론이죠. 이곳은 건조한 지역이라, 물만 제대로 공급해주면 나무도 크게 자라고, 열매의 품질도 우수해지죠. 수확량도 많아지고요. 그런데 정작 수량이 풍부한 지역에 올리브를 심으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잡풀처럼, 작고 볼품없어지고 말아요. 열매도 맺히지 못하고요.”

올리브는 전세계적으로 기름을 착유하는 등, 쓸모가 많은 작물이지만 고대로부터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 외에서는 좀처럼 재배가 어려운 작물이다. 에스테반 박사의 말처럼 건조한 땅에서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강인한 면모를 보이지만, 정작 수량이 많으면, 뿌리가 땅에 내리지 못하고 나무도 제대로 성장을 못 하는 잡목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중해 일대의 재배지역을 제외하고는 서유럽에서 올리브 나무는 쓸모없는 잡초 취급을 받아서 제거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딜레마군요. 물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는 물 공급이 관건이고, 수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원래대로 물푸레나무가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원래 올리브나무는 물푸레나무의 일종이다. 이름 그대로 물가에 자라는 잡목으로 올리브는 특이하게 건조 기후에 적응한 케이스인데, 문제는 건조한 곳에서 자라다 보니, 성장속도가 느리다는 것이었다.

“이곳 세빌 연구소에서도 다양한 올리브 나무를 육성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아시다시피, 올리브는 성장이 느리고 재배지도 한정되어 있거든요. 과거에는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서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그 문제라는 것은 바이러스로 인한 병해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올리브 나무는 성장이 느려서, 나무 하나가 제대로 열매 수확에 필요한만큼 성장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래서 바이러스에 걸려 나무가 손상을 입으면 그 피해는 다른 수종에 비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건조지대를 벗어나면 잡목화하는 성향 때문에, 재배지를 더 늘리기도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

진석은 스페인의 세빌 연구소에서 제공 받은 올리브 묘목들을 가지고, 프랑스의 국경을 넘었다. 진석이 도착한 곳은 파리 근교 빌레쥐프였다.

진석의 별장 겸, 휴식처로 사용되는 빌레쥐프의 벽돌 주택, 이곳은 공간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은 그동안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 공간의 면적은 5억 평이 넘는 거대한 섬이 되어 있었다. 섬의 내부에는 전체 면적의 5분 1, 대략 1억 평 규모의 염수 호수도 존재하고 있었다.

공간의 면적이 커지면서, 오아시스와 산 사이의 거리도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차나, 말을 타고 2시간 이상은 가야, 도착하는 정도였다.

진석이 오아시스에 도착하자, 사령관이 마중을 나왔다.

“공간주님, 오늘은 나무 묘목이군요. 산에 심으실 건가요?”

“아니, 이건 올리브 나무야.”

“올리브나무라? 이것도 열매가 열리는 유실수 아닙니까? 기름도 짜고요.”

“그래, 맞아. 여기서 초록색의 올리브 열매가 열리는 거지.”

진석이 주위를 둘러보자, 오아시스 주위에는 올리브 나무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조건 같아 보였다.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그리고 그런 기후이면서도 오아시스 주변은 물이 공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이 가져온 올리브 나무를 개량해서 대규모의 농장을 만들려고 하는 곳은 호주였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달리, 호주에는 넓은 농경지를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올리브 농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주에서도 올리브 나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대규모 재배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성장이 굉장히 더딘 특징도 문제, 건조한 지대에서 수백 년 동안 성장하는 올리브나무는 현대적인 농업에는 부적합해 보이는 작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스페인이나 그리스, 이탈리아 등지의 고대 올리브 산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져온 올리브 나무는 좀 더 수량이 많은 지역에서, 단기간에 성장해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해야 호주에서 올리브 농장을 세워 올리브 재배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이곳은 너무 건조하군.”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공간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올리브 나무를 개량해 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토양의 비옥도처럼, 토양의 수분도 조절이 가능할까?”

-수분이 많은 습한 토양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 올리브를 키울 곳에서 토지의 환경을 습하게 변화시켰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어?”

-물론 가능합니다. 공간의 토양은 농경을 위해서 최적화되어 있지만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공간주님의 목적에 맞게 여러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토지의 수분 함유량도 마찬가지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오, 그래? 다행이군, 그럼, 좀 더 토양을 습한 환경으로 바꿔줘.”

-알겠습니다. 공간주님이 원하는 수준으로 토양의 수분 함유량을 조절하겠습니다.

상태창이 토양의 습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진석은 일꾼들을 동원해, 습해진 땅에 올리브 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묘목들을 심고 시간을 가속하자,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라? 뭐지?”

시간을 가속하며 나무가 자라기는 했는데, 안달루시아에서 보던, 정갈한 느낌의 올리브나무가 아니라 뭔가 제멋대로 자라난 잡목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습한 곳에서는 잡초처럼 된다더니, 정말이잖아?”

“공간주님, 올리브나무가 아니라 잡초 아닌가요?”

진흙 인간의 사령관도 쓸모없는 잡목이 되어 버린 올리브 묘목들을 바라보며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런가?”

이번에는 잡목이 되어 버린, 올리브나무에서 묘목을 채취해서, 다시 건조한 땅에 심어 보았다. 뭔가 제대로 자라는 것 같지가 않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올리브는 다시 건조한 땅에 적응하며, 100년 이상의 시간을 가속하자 원래의 모습을 되찮아 갔다.

하지만, 다시 습한 땅에 올리브 묘목을 심으면, 다시 물푸레나무가 되었다.

“이렇게 반복을 하다 보면, 뭔가 변화가 생기려나?”

진석이 가진 것은 무한한 시간의 힘이었다. 반복은 언제나 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동일성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이 되어 간다.

진석은 지루한 반복을 계속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수백 년, 그리고 천 년, 그리고 2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공간주님 이건 뭔가 다른데요.”

사령관은 진석이 습한 땅에 심어 시간을 가속한 올리브 묘목을 가리켰다. 전에 심었던 나무들과 달리 습한 땅에서 자란 올리브는 외형이 물푸레나무처럼 되지 않고,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 올리브와 같이 단단한 모습이었다.

“뭐지? 이건 변종인가?”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고 습한 토양에서도 올리브나무의 모양을 한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에는 초록색의 올리브 열매도 맺히고 있었다.

진석은 초록색 열매를 따서, 입에 넣었다.

“퉤..”

“공간주님, 맛이 이상한가요?”

“아니, 진짜 올리브 열매 맛이야. 아직 다 익은 건 아니지만.”

올리브는 떫고 쓴 맛이었다. 하지만 올리브 열매의 맛은 원래 그런 것이다. 진석은 습지에서 잘 자라난 올리브 나무의 묘목을 채취해 더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다행히, 올리브 나무는 다음 대에도 습지에 적응하는 특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성장속도도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올리브보다 훨씬 빨랐다.

“사령관 이정도면 기대 이상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공간주님, 올리브 나무는 대성공인 것 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