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메콩 델타
베트남 하노이.
고대로부터 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삼각주는 풍요로운 곡창지대였다. 강의 범람은 풍부한 유기질을 토양에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부한 수량도 농업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메콩 델타는 베트남, 쌀 생산의 50%를 생산하는 주요 곡창지대입니다.”
“이곳에서 50%를요? 국토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을 보면, 엄청나군요.”
베트남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베트남은 흡사 칠레와도 비슷한 지형이다.
길죽하게 남북으로 뻗은 나라들의 특징은 기후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베트남도 남과 북이 기후가 많이 다른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기후도 많이 차이가 나고, 사실은 한국사람들은 그냥 베트남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쪽과 북쪽은 인종도 다르고, 민족도 차이가 나요. 역사적으로는 남과 북 지대에는 서로 다른 왕국들이 있었으니까요.”
“오, 그래요?”
진석은 오병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것은 베트남 전쟁, 그리고 최근에 한류에 열광하는 베트남의 팬들, 한류 드라마가 유행이라는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 정도다.
“베트남이 한국보다 인구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실제로는 국토도 더 넓고, 인구도 더 많은 나라입니다.”
오병우는 베트남 교민으로, 베트남에 이주한 것은 10여 년쯤 전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도피를 한 거였죠.”
오병우는 40대 중반의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작은 의류회사를 경영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의류회사가 경영이 나빠져서 파산 위기에 몰리자, 전부터 옷을 생산하는 거래처들이 있던 베트남으로 회사를 옮기고 한국으로 의류를 수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인건비나 그런 것 때문에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그런 곳들에서 옷들을 많이 생산하지 않습니까?”
오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건비라는 게 사실 비중이 엄청납니다. 인건비라고 하면 단순히 월급을 주는 걸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장 근로자들 임금도 그렇지만, 그 나라의 전체적인 물가 수준이 생산비에 주는 영향이 엄청나죠.”
“그렇겠죠?”
“여기는 하다못해 일하다가, 중간에 간식을 사먹어도 가격이 엄청 싸니까요. 물류 비용도 그렇고 기업 경영하는 각종 비용이 굉장히 저렴하죠.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가격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도저히 동남아 국가들과 경쟁할 방법이 없어요.”
하노이의 쌀국수 집에서, 진석은 베트남 교포 오병우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건물들도 그렇고, 프랑스 문화가 많이 남아 있군요. 지금은 쌀국수에 소고기를 얹어 먹지만, 원래는 베트남인들은 소고기는 잘 먹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예, 잘 알고 계시네요. 쌀국수는 남쪽 메콩 델타 지역에서 먹던 음식인데, 그쪽은 소고기보다는 물고기나 돼지 고기를 먹는 곳이죠. 그래서 전통 베트남 쌀국수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소고기를 쌀국수에 넣어 먹던 건, 프랑스인들이었죠.”
“식문화도, 남과 북이 차이가 나나요?”
“아무래도, 북쪽은 밀 재배 하는 곳도 많고, 우리가 아는 쌀이 대량으로 재배되는 곳은, 남쪽입니다. 그중에서도 물이 풍부한 메콩강 삼각주가 쌀의 주산지죠.”
오병우는 처음에는 의류공장을 지어서, 한국에 하청받은 옷을 파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주로 베트남에서의 오랜 경험과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인 사업가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진석은 베트남의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는 메콩 델타에 쌀에 주목하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최근에 채식 열풍이 불면서 수요가 급증한 곡물이 바로 쌀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밀로 만든 빵이나 육류, 유가공품 등이 주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쌀을 재배하는 지역은 이탈리아, 남부 지역 정도를 제외하면 쌀을 재배하거나 먹는 일은 드문 것이다. 이탈리아 리조또 정도가 대표적인 쌀 요리인 셈이다.
당연히 쌀이나 밥은 동양인들이 먹는 신비한 음식 정도로 인식이 되었지만, 최근 세계화 추세도 있고, 아시아 스타일의 채식 열풍이 불면서 점점 쌀 소비도 늘어가고 있었다.
진석의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에서도 다양한 곡물을 취급하고 있었고, 그 관심 목록에는 유럽과 미국 시장에 수출할 쌀도 있었다.
“보통 베트남 쌀은 안남미라고 하죠? 한국 사람들 취향에는 좀 안 맞는 쌀인데.”
“하하, 그렇죠.”
오병우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오기 전에, 베트남 쌀들을 봤는데, 품종 자체가 한국 쌀들과는 다르더군요.”
“그럴 겁니다. 베트남 쌀이 다르다기보다는 기후가 덥고 습하다 보니, 아무래도 보관이 잘 되야겠죠.”
“밥을 지었을 때 말이죠?”
“예, 여기 하노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덥게 느껴지지만, 남쪽은 더 덥죠, 특히 메콩 일대는 습도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습지대라고 봐도 되니까요.”
“그래서 쌀도, 밥을 지었을 때, 보관이 용이하게, 좀 푸석푸석한 쌀들이 재배된다는 말이죠?”
오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한국 사람들은, 진밥을 좋아하는데, 보통 유교적인 전통 때문이라고 하죠.”
“유교적 전통요?”
“밥의 기준이 어르신들이라는 거죠? 사실, 젊은 사람들은 밥이 좀 건조해도 상관없는데, 나이든 노인들은, 치아도 부실한 경우가 많았죠. 과거에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진밥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문화적, 기후적 차이로 베트남 쌀들은, 찰기가 적고, 꼬들꼬들한 식감이 있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서양인들의 입맛에는 이런 베트남 쌀이 잘 맞는 편이다. 보통 밥을 그냥 먹기보다는 볶아 먹는 서양 사람들 스타일에도 적합하고 말이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식량 수출국이다. 그중에서도 풍요로운 메콩 델타는 베트남 전체 쌀의 50%를 생산하고, 어류와, 과일 등의 식량 자원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말그대로 베트남의 식량 바구니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언뜻 풍요로운 베트남의 농업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식사는 다 한 것 같은데, 이제 출발해 볼까요?”
“그러시죠.”
오병우의 안내로 향할 베트남의 다음 행선지는 남부 메콩 델다를 대표하는 직할시인 껀터였다.
***
하노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껀터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껀터에서 진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베트남의 농림부 차관, 응우웬 티 쑤엔투였다.
“안녕하세요. 이진석입니다.”
“응우웬 티 쑤엔투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는 성을 부르는 것이 세계적인 표준이지만, 베트남은 이름을 직접 부르는 문화가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도, 쑤엔투 차관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쪽의 예법인 것이다.
진석은 농립부의 젊은 차관이 쑤엔투와 메콩 델타 일대를 둘러볼 예정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이곳 메콩 델타지만, 최근에 베트남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전통적인 농업 생산지인, 이곳 메콩 델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쑤엔투 차관이 준비해준 차를 타고, 진석은 메콩 델타 일대를 둘러보았다. 팜파스나, 프레리, 유럽의 곡장지대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삼각주 일대는 이른바 반농반어 지대로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어업도 활발한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시내에 수산시장이나, 농산물 시장의 모습들도 볼 수 있었는데, 모두 갓 잡은 생선들이나 싱싱한 과일들로 넘쳐나는 모습들이었다.
진석은 수엔투 차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운 지역이군요, 얼핏 봐도 생산되는 과일이나 작물, 거기에 물고기들까지 종류가 많고, 양도 엄청난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이곳에도 최근에는 문제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도시화를 말하는 거군요?”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지만, 개혁과 개방 노선으로 들어선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만큼, 외국자본들이 들어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경공업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로 인해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부작용도 있었는데, 과거 베트남을 먹여 살리던, 남부 메콩 델타가 베트남 경제의 급성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지리적인 이점도 있고, 농업과 어업 생산의 80%를 담당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도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소득이 제자리 수준이죠.”
쑤엔투 차관의 설명에 진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지만, 역설적이게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옷도 필요하고, 차도 필요하고, 아파트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농업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곳 메콩 델타를 떠나 북부의 산업 도시들로 떠나고 있어요.”
“하노이 같은 대도시로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메콩 일대에 농업 인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죠.”
베트남의 공산당 정권의 핵심은 바로 베트남의 농부들이었다. 실제로 공산 혁명을 주도한 계층도 농부 출신들이 많았고, 노동을 중시하는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도 가장 적합한 계층으로 공산주의 시절에는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기도 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농업과 농부는 점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농촌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농업 분야에 외국인의 투자를 반대하던 베트남 정부의 스탠스도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변화의 일환으로 쑤엔투 차관이 직접 진석을 베트남으로 초청한 것이었다.
“차관님 말씀대로라면, 이 광대한 메콩 델타에도 외국자본과 기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예, 뭐 단계적이기는 하겠지만, 종국에는 이 메콩 델타도 미국 같은 대규모 농장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 그건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요?”
보통, 아시아의 산업국가들은 산업 발달기에 농촌이 인력부족과 상대적 빈곤을 겪는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업을 대규모 기업농으로 전환하지는 못하고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대체 작물을 육성하는 식으로 농가를 지원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베트남의 경우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일단,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어 있으니까요.”
쑤엔투 차관은 멀리 보이는 베트남의 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농지들은 국가 소유라는 겁니까?”
“예,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입니다. 그건 지금도 그렇고요. 베트남의 농지들은 대부분 국가 소유로 되어 있어요. 대신 농부들은 자신들이 원하면, 20년 이상 장기 임대를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일반적인 국민들 모두가 원하면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 겁니다.”
“흠, 나름 합리적이네요. 토지 소유는 국가가 하고, 장기 임대로 자기 땅처럼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그런 식의 베트남 농법은 개방으로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자 큰 취약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즉, 농부들은 농지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농지를 팔거나 농지에 뭔가를 개발하는 식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국가 소유의 임대 농지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남부 지역은 국가가 개발하는 몇몇 개발지역을 제외하고는 낙후된 채로 농업지대로 방치되었고, 반대로 북부의 도시들은 공업과 상업이 크게 발달하여 남부와 북부의 격차가 커지자, 남부의 농민들이 대거 북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기 땅이 아니니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도시에 간 친구들이 돈을 버는 걸 보고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겁니다.”
“베트남 정부 정책이 실패한 거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겁니다.”
“음, 그래서 외국인이 저에게 메콩 델타에 새로운 농업 투자를 하라는 거군요?”
한국의 농촌과는 달리, 이 거대한 메콩 델타의 농지들은 모두 국가의 소유, 거기에 기존의 농업의 생산성 저하로 농민들은 도시로 떠나가고 있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메콩 델타에 새로운 농업 투자를 하기에는 적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