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슈퍼 카무트 (66/183)

83화. 슈퍼 카무트

청와대를 나온, 진석은 마음이 무거웠다. 오명진과 같이 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영훈 대통령이 요구한 것은 북한에 식량으로 지원을 할 새로운 작물이었다.

단순히 북에 보낼 곡물이 아니라, 국제적인 대북제재를 피해, 북에 보낼 수 있는 특수한 곡물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군량미로 전용이 불가능할 것, 두 번째는 중국과 같은 인접국으로 밀매 형식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 거래가 되지 않는 작물이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북한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식량으로 이용 가능한 작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곡물 중에는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작물을 창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기존의 작물들 중에서 그런 조건에 근접한 것을 찾아, 좀 더 개량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강원도 인제 제이에스 농업 연구단지.

“저기, 소대영 연구원 아닌가요?”

인제 농업 연구단지 내에, 종자 은행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낯익은 젊은 연구원 한 명이 눈에 보였다.

지난번에 만난 적이 있는 인제가 고향이라는 소대영이라는 연구원이었다.

이제는 제법 신입 티를 벗고, 연구소를 여유롭게 활보하고 다니고 있었다.

“와, 사장님, 이게 얼마만인가요? 외국에 계신다고 하시던데, 귀국하신 겁니까?”

“하하, 뉴욕과 유럽, 남미, 그러고 보니,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기는 했네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새로운 작물을 개발해보려는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말이죠.”

“새로운 아이디어요?”

소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사실은, 북에 보낼 곡물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북이라면, 북한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요, 소대영 연구원도 알겠지만,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경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식량도 마찬가지죠.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보내는 걸 그동안 허용해 왔지만, 그걸 악용해서 군량미로 비축한다거나, 외국에 팔아서 달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쓰니까요.”

“참, 어이가 없네요. 굶주리는 주민들을 먹일 생각은 안 하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소대영은 약간 화가 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하하, 나도 소대영 연구원과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북한 정권의 어리석음을 비난한다고 주민들 배가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불평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새로운 곡물이라면 어떤 걸 찾으신다는 건가요? 곡물이라면, 밀이나 쌀, 옥수수 그 정도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기존의 곡물들에 비해 저장성이 떨어지는 걸 말하는 겁니다.”

“저장성이 높은 게 아니라, 떨어지는 걸 찾는다고요?”

“맞아요.”

소대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보통 농작물의 경우, 저장성이 높은 작물이 더 선호된다. 대표적으로 밀이나 쌀은 저장성이 높은 곡물들이다, 과일의 경우에도 사과가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면에는 특유의 저장성도 큰 몫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당도가 높고 맛이 훌륭하더라도, 저장성이 낮은 과일이나 작물은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냉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변화를 보이고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인류의 농업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동안 저장할 수 있는 작물들은 선호되고, 더 광범위한 재배의 기회를 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북에 보내려는 곡물들은, 군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오히려 저장성이 떨어지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서도 식량으로 사용될 수 있는 그런 곡물이 필요한 것이다.

“북에서 주민에게 주지 않고, 다른 곳에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저장성이 낮아서 장기 보관이 어려워야겠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주민들에게 곡물을 나누어 주지 않겠습니까.”

진석의 말에 소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식량으로 보낼 곡물이라는 건데, 보통 곡물이라고 한다면, 저장성이 높은 것들이지 않나요?”

“맞아요,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곡물들은, 오랜 기간동안 인간들에게 재배되면서, 높은 생산성과 높은 저장성 등을 가지는 방향으로 발전 개량되어 왔으니까요. 음, 그러니까..”

소대영과 대화를 하다 보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현재의 일반적으로 재배되는 곡물들은 오랜 기간, 저장하기 좋은 것들로 자연스럽게 선택된 종들이었다.

그것은 신석기 혁명 이후로 계속되어, 수천, 혹은 만 년 이상의 시간을 거치며 이루어진 작업의 결과였다.

그 말은, 좀 더 오래전에 재배되던 초기의 곡물은 지금의 것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마치 야생의 테오신테처럼, 아직 현대의 곡물들처럼, 저장성이 발달하지 않는 그런 고대의 작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진석은 그런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눈앞에 서 있는 소대영 연구원에게 두서없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진석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던, 소대영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진석에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찾으시는 그런 곡물이 있습니다.”

“예, 정말요? 그게 뭡니까?”

***

미국 몬태나...

소대영의 말을 듣고, 진석이 급하게 찾은 곳은 미국의 몬태나 주였다.

“이게, 카무트인가요?”

진석은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벼와 밀의 중간처럼 생긴 작물을 바라보았다. 카무트, 혹은 호라산 밀이라고 부르는 고대의 작물이었다.

기원전 7천 년 이전에 유프라테스강 일대에서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고대의 곡물이다. 정확히는 쌀과의 밀속에 속한다고 한다. 밀과 쌀의 먼 조상쯤 되는 것이다.

소대영이 말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카무트가 재배되고 있다는 미국 몬타나의 농장을 찾은 것이었다.

“신기하네요, 이런 곡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농장 주인은 존 스탱턴이라는 젊은 농부였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기존의 농업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형태의 농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기존의 곡물 농장들이 생산성을 추구하는데 비해, 스탱턴의 농장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한 농작물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특이한 걸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평범한 것보다는 생소하고 낯선 것들을 좋아하고 기꺼이 큰돈을 지불하려는 사람들이죠.”

진석도 그런 농작물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종의 틈새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나름 수요가 있는 시장이지만 대규모로 작물을 생산하는 진석의 입장에서는 그런 작은 규모의 특수 작물들은 크게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쌀보다 열매가 더 크군요?”

“예, 껍질도 더 얇은 편이죠. 장점이라면, 쉽게 까서 먹을 수 있어요. 쌀보다 두 배 이상, 크기 때문에 작은 땅콩 같은 느낌도 있죠. 맛도 고소해서 견과류 대용으로 좋고요.”

스탱턴은 진석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카무트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쌀처럼,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다면서요?”

“예, 채식주의자들에게 추천드릴 수 있는 장점이죠. 쌀과 밀의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갈아서 전분을 만들어도 좋고, 쌀처럼 쪄서 먹을 수도 있어요. 보통은, 일반적인 쌀에 섞어서 압력솥에 찌면 특이한 풍미의 밥이 되는 거죠.”

“적은 양의 쌀과 섞으면, 쌀의 대용으로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예, 그렇죠.”

신기하게도, 쌀의 조상쯤 되는 이 작물은, 밥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식량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문제는 저장성이었다. 소대영에게 듣기로는 이 고대 작물이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저장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껍질이 잘 벗겨져서 손이나 입으로도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반면에, 쌀이나 밀에 비해 표면이 무르고 견과류에 가까운 특성이 있어서, 껍질이 벗겨진 후에는 보관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껍질은 자연적으로도 쉽게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말이다.

“보관성은 어떻습니까?”

“뭐, 그냥 냉장고에 보관하시면, 충분하죠. 상온에서는 보관이 잘 안 되는 편이지만, 냉장고는 하나쯤 갖고 있는 물건이니까요. 냉장보관을 하시면, 몇 달도 보관이 가능합니다.”

“농장주로서 이런 작물을 대규모로 보관하려면, 저온창고는 필수겠군요?”

“그렇죠, 일반적인 곡물하고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온창고에서 보관하면 문제없죠.”

“저온창고가 필수라는 말이군요?”

“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전력난이 심각한 북한에 대규모 저온창고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반적인 곡물이라면 상온보관으로도 충분하지만, 카무트는 상온에서의 보관성은 떨어지는 편, 역시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곡물들에 도태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진석은 몬태나의 농장에서 카무트의 종자를 충분히 확보해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맨하튼의 아파트에서 공간의 문을 열었다.

***

“공간주님, 오늘은 또 뭘 가져오신 건가요?”

“아, 사령관, 이건 카무트라는 밀의 일종이야.”

“밀이라? 곡물을 재배하시려는 거군요? 이건 산에서 재배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그래, 이건, 밭에서 대규모로 재배할 생각이야, 오아시스 근처에서, 슈퍼 테오신테처럼,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잘 자라는 품종으로 개발하는 거지.”

“어디에 쓰시려고 말입니까?”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할 생각이야. 일단 사령관, 이 카무트를 오아시스 근처에 심어 보자고.”

카무트를 재배할 곳은 공간의 산이 아니라, 평야 지대에 밭을 이용하기로 했다. 특별한 효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곡물로서의 기능과, 저장성이 떨어지면서도 영양은 풍부하고, 특별한 비료의 공급 없이도 잘 자라는 능력이 있으면 충분했다.

진석은 공간의 토양의 비옥도를 조절하며, 비료 없이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진, 카무트를 선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껍질이 잘 떨어지고, 저장이 잘 되지 않는 특성에도 주목했다. 그렇게 밭에서 자라난 카무트 중에 진석이 원하는 특성을 가진 것들을 더 선별해서

다시 증식하는 방법으로 카무트를 개량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진석은 시간을 가속하며, 카무트의 증식과 특성 개량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진석이 원하는 특성을 고루 갖춘, 카무트의 품종이 탄생하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공간주님, 이제 만족하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원하는 곡물로서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어.”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카무트는, 열매가 일반 벼보다 5배 정도로 크고, 껍질이 굉장히 얇고, 열매도 무른 편이었다. 수확을 해서 밥을 만들 수도 있었고, 가루를 내서 빵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표면이 무른 편이어서 장기 보관은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냉장 보관을 하면 가능하지만, 곡물이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상온에서 저장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카무트를 북에 식량으로 지원해도, 군량미로 저장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리고, 생소한 곡물이고,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국에 밀수출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북에 지원할 곡물의 두 가지 조건을 채우고 있는 셈이었다.

그에 비해, 영향은 풍부한 편이고, 쌀처럼 조리가 가능한 특성도 있어서, 북한에 지원할 식량으로는 적합한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좋아, 이걸로 완성이군.”

“공간주님, 이 작물의 이름은 뭐라고 지으실 겁니까?”

“음, 글쎄, 이것도 고대의 카무트를 개량해서 만든 신품종이니까. 슈퍼 카무트가 어떨까?”

“슈퍼 카무트 말입니까? 괜찮은 이름이군요.”

일단은 공간의 땅에서 북에 공급할 물량을 생산하기로 했다. 북한에 보낼 식량이 당장 급한데 곡물이라는 특성상, 지금 파종해도 수확에는 거의 1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수확한 슈퍼 카무트를 식량으로 보내는 것 외에, 종자를 북한에 보낼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보관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비료 없이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슈터 카무트라면, 북한의 농지에서 잘 자라서 식량 생산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 일단, 슈퍼 카무트를 대량으로 생산하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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