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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 (64/183)

81화. 어려운 문제

홍천 군수실..

“뉴욕에서 최근에 귀국하셨다고요?”

“예, 사업차 외국에 좀 머물렀습니다. 세상 구경도 좀 하고요.”

김성락은, 오명진의 후배라고는 하는데, 언뜻 봐서는 풍채도 좋고, 오명진 도지사의 선배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외모였다.

약간 노안이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안정감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오명진 도지사와 전부터 약속했던대로 강원도 홍천에 농업식품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물론 전에 추진했던, 농산물 가공공장 외에 대규모 사료 공장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홍천 군수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농산물 가공공장 외에, 사료 공장이 추가되면 더 좋은 일이죠. 일자리가 늘어나니 말입니다.”

“하하, 저도 군수님께서 찬성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부지가 더 필요한데. 가능할까요?”

이전에 세웠던 가공공장을 위한 단지 조성 부지는 이미 어느 정도 홍천군 예산으로 마련했지만,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에서 옥수수를 가공해 가축용 사료 공장을 만들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보다 큰 토지가 필요했다.

“공장 부지가 문제지만,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도지사님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강원도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니까요.”

“그렇겠죠. 오명진 도지사님과 김성락 군수님은 대학 선후배 사이시죠?”

“하하, 그렇습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선배님이시죠.”

학맥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대학 선후배 관계 거기에, 이제는 도지사와 군수로 둘의 관계는 아주 돈독하다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홍천 사료 공장 부지 문제도 강원도와 협의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도지사님은 이제 중앙 정치로 진출할 생각이신 것 같더군요?”

진석의 말에, 김성락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도, 오명진이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떠나가 버린다면, 이곳에 남아 도지사를 차지할 사람은 김성락이 될 것이었다.

“지사님이야, 솔직히 강원도에만 머무르기에는 큰 인재니까요.”

“그러면, 차기 강원도 지사 자리는 누가 되는 겁니까?”

“하하, 그거야, 도민들이 투표로 뽑는 거 아니겠습니까?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강원도든 어디든, 양당 구조를 기본으로 나올 수 있는 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에 열성적인 특정 계층은 일종의 상수가 되어 버린다.

당에서 보면 열성 당원이고, 정치의식이라는 면에서는 일반적인 유권자들보다 의식이 높은 계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선거에서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하고 상수가 되어 버리고 만다.

어차피 찍는 성향이 정해져 있으니 정당이나 정치인 입장에서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부동층은 항상 선거의 향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아무래도, 도지사에 당선되시려면, 상대 표를 많이 끌어와야겠죠. 일종의 부동층을 공략하라라는 게 가장 기본적인 선거전략 아닙니까?”

“하하, 이진석 사장님은 사업가인 줄 알았는데,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나시군요. 맞습니다. 농구에서 리바운드가 중요한 것처럼, 선거에서는 부동층을 공략하는 게 중요하죠.”

보통 득점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농구지만, 공격 찬스를 얻고, 상대의 공격 기회를 빼앗는 리바운드가 중요한 것처럼, 선거에서 부동층 내지는 상대의 표를 빼앗아 오는 것이 선거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면에서 홍천 군수인 김성락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이곳 홍천은 오명진이나 김성락의 소속당의 지지세가 약한 지역이다. 하지만, 김성락은 홍천이 고향으로 이곳에서 지역 출신의 젊은 정치가,

고향 사람을 밀어주자는 식의 선거전략으로 이 지역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강원도의 정당지지도를 분석해보면, 전통적으로 약세 지역에서 얻은 승리고, 그것은, 나중에 도지사 선거에서도 크게 유리한 요소를 작용할 여지가 컸다.

거기에 오명진 도지사는 그런 김성락을 더 키워주기 위해, 그가 군수로 있는 홍천에 각종 투자 사업 유치를 밀어주고 있었다.

제이에스 그룹의 농산물 가공공장이나, 옥수수를 이용한 사료 공장도 다 그런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럴까요?”

“시원한 콩국수 어떠십니까?”

“하하, 좋죠, 외국에 오래 있었더니,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날도 덥고, 김성락과 홍천 시내의 콩국수집을 찾았다. 시원한 콩국수를 먹고 나니, 무더위도 좀 가시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홍천 시 외곽에 농산물 가공공장을 찾았다. 이미 농산물 가공공장 일부는 생산을 위해 공장을 가동 중이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김성락이 어디에선가 전화를 받았다.

“아, 선배님, 하하, 여기 말입니까? 예예, 그러시죠.”

“누굽니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걸로 봐서 오명진 도지사인 것도 같았다. 설마 오명진이 이쪽으로 오려는 것인가?

“도지사님입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시겠다는군요.”

“바쁘시지 않나요? 강원도 전체를 신경 쓰려면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진석의 말에, 김성락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이쪽으로 오시는 거겠죠.”

“이쪽이 가장 중요하다고요?”

하긴, 오명진은 앞으로 2년 후면, 도지사직을 마치게 된다. 그 후에는 아마도 대권에 도전할 듯, 그러기 위해서 후방을 단단하게 하는 차원에서 김성락을 후임 도지사로 당선시켜야 한다.

그런 오명진의 대권 플랜에, 시발점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홍천 농업 단지가 될 것이다. 이곳이 성공해야, 그 성공을 발판으로 김성락이 도지사를 노려볼 수 있고,

김성락이 후임 도지사가 되어야, 안심하고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오명진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곳이 가장 중요한 한 수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성락의 말대로, 20여 분이 지난 후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농업 단지로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사님이 오시는군요.”

세단이 멈추고, 차 문이 열리자, 오명진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지사님, 더 젊어지신 거 아닙니까?”

“이진석 사장님이야말로, 더 멋있어지셨는데요. 이제는 아주 국제적인 사업가가 되셨다면서요?”

“하하, 외국과 무역업을 좀 하는 정도죠.”

진석이 뉴욕에 머물며, 종자 회사를 키워나가는 동안 한국에도 진석의 제이에스 그룹의 성공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올라왔다.

대부분 젊은 한국인 사업가가, 국제 종자 시장과, 사료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성공 스토리였다.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미국에서 엄청난 일을 하고 계셨더군요.”

“우연히 뉴욕에 갔다가, 국제 곡물 시장에 눈을 뜨게 되었죠. 뭐, 전부터 제이에스 그룹은 농업 관련된 종자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시장을 전세계로 확장한 것뿐입니다.”

오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쉽게 하시지만, 저도 알아봤는데 이제는 세계 곡물시장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 슈퍼 테오신테라는 옥수수 말입니다. 그거 하나로, 전세계 농업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오명진의 말대로, 진석의 슈퍼 테오신테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계 3대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중부 내륙의 프레리와, 우크라이나 서부 곡창지대,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등의 대규모 농업지역에서 슈퍼 테오신테가 핵심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슈퍼 테오신테를 개발한 지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전미 옥수수협회나, 투르진스키가 주도하는 국제 곡물 카르텔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슈퍼 테오신테의 압도적인 상업적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변화였고,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꾼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와 더불어 진석의 제이에스 그룹의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옥수수로부터 축산으로 이어지는 국제 식량 루트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사업이 잘되고는 있습니다.”

진석은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은 이진석 사장님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오명진 도지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부탁요?”

오명진 도지사가, 부탁할 일이라? 이미 이곳 농업 단지는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따로 부탁할 일은 없는 상황, 그것도 거창하게 부탁하겠다고 한다면, 작은 일은 아닐 것이고. 대체 뭘 원하는 걸까?

오명진은 이제 도지사보다는 대권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강원도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진석은 세계 곡물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진석에게 오명진이 부탁할 거라면, 혹시, 북한의 식량문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역대 대선에서 대북 정책이란 건, 큰 이슈가 되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정전이 된 이후, 한국의 경제, 문화, 정치, 사회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북한이라는 골칫덩어리가 숨어 있는 형국이다.

모든 시스템이 대한민국 내에서 처리되지만, 그 외부에서 대한민국에 융화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따로 독립되어 제대로 작동되는 것도 아닌 북한이라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말 그대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그중에 가장 곤란한 것은 바로 북한의 경제와 식량문제,

왕조와도 같은 독재 정권의 장기집권으로 경제는 회복 불능의 치명적인 상태, 거기에 국제 무역에서 소외된 북한은 기본적인 식량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예, 바로 북한의 식량문제입니다.”

“음..역시, 대통령을 꿈꾸시는 분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크시군요. 북한의 식량문제를 걱정하시고 계시다니 말입니다.”

“하하, 저도 북한 정권이라면 질색이지만,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그 문제를 한 번쯤 해결해보겠다는 패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누군가는 손을 대야 하는 일이기는 하죠.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차라리 아프리카나, 인도의 극빈층을 돕는 일이라면 모를까? 투자를 하고 싶어도 독재 정권 때문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죠.”

“이진석 사장님 말씀대로입니다. 사실, 대북지원이니 뭐니 하는 것도 저는 저희 당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오명진도 자신이 속한 당과 대북 문제에 대해서는 각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 정치 공학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중도를 최대한 끌어안은 쪽이 승리를 얻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도를 강화해 상대에게 갈 표를 최대한 끌어온 쪽이 대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명진도 정치적으로 자신의 지지기반 이외에, 중도 내지는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표를 끌어오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다.

현재의 양당의 기본 정책을 볼 때, 오명진 도지사가 중도로 지지기반을 확장할 만한 분야는 대북 정책 외에는 별로 없는 느낌이다, 교육이나, 경제, 외교니 하는 분야는 당의 기본 정책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

그에 비해, 대북문제는 이전의 정책들이 지지부진 하기 때문에, 한 번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수십 년의 정책이 북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식량 사정도 크게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유엔 식량 기구 등을 통해 들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북한의 올해 가뭄 등의 영향으로 식량 수확이 더 줄어들었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식량 수입도 여의치 않다는 보고였다.

그런 정치적 모순 때문에 애꿎은 어린아이들만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대북지원이라는 것도, 무작정 식량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큰 성과가 없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죠.”

“대전환이라? 어떤 걸 말 하시는 겁니까?”

“하하, 그건, 제가 아니라 이진석 사장님이 답을 해주셔야 하죠.”

“예, 제가요?”

“지금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한 사람은 무능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혁신적인 사업가인 이진석 사장님입니다.”

오명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석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이 못 하는 일들을 사업가인 내가 하라는 말인가?

능력을 평가해 주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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