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61/183)

78화.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그거 아십니까? 체르노빌 사태가 벌어졌을 때, 워렌 버핏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농장들을 사들였죠.”

주앙 곤잘레스는 잘 익은 그로 미셸 바나나를 까서 맛을 보며 말했다.

체르노빌이라면, 구소련 시절의 원전유출 사전이 일어난 그 체르노빌을 말하는 것인데 체르노빌 방사능 사태가 벌어졌는데,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남미의 농장들을 사들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곤잘레스는 진석에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소련에서 그러니까, 지금의 러시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면, 식량 재배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방사능 자체가 피해를 입히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그 일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방사능이 의심이 돼서, 소비자들이 거부할 수도 있고 말이다.

아마도, 체르노빌이라면, 지금은 러시아가 아니지만, 구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 어디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워렌 버핏은 그런 걸 염두해 두고, 그 대체재인 남미의 농장들에 투자를 했다는 말일 것 같았다.

“아마,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가 피해를 입을 걸 염두해 두었던 거 아닙니까?”

진석의 대답에, 주앙 곤잘레스는 바나나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역시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은 체르노빌 사태로 전세계가 공포에 떨 때, 뭐가 돈이 될지는 생각한 거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데, 현명한 건 둘째고 돈이나 투자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네요.”

워렌 버핏은 한평생 투자를 업으로 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취직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는 진정한 전문 투자가, 물론 투자 성공으로 엄청난 자산가가 되어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투자 실력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투자에 대한 열정인 모양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방사능 유출 사고로, 대재앙을 두려워 할 때, 그는 놀랍게도 그 사태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을 염두해 두고 투자를 했으니 말이다.

“그렇죠. 투자에 대한 본능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버핏은 그 투자로 돈을 꽤 벌었죠. 실제로 방사능 공포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했거든요.”

“지금도 우크라라이나는 밀 산지로 유명하죠?”

진석과 곤잘레스는 워렌 버핏이 했던 것과는 반대로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에 투자를 하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는 넓은 평원과 적당한 기후, 그리고 흑토라고 불리는 비옥한 토양이 어우러져, 유럽의 식량 창고로 오래전부터 지위를 누려오고 있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인들은 농업을 통해 풍요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 풍요를 노린 외부의 침략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히틀러가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노리고 공격을 감행한 2차 세계대전을 들 수 가 있다. 그리고 현재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식량문제다.

거대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지만, 대부분 극지방에 가까운 추운 기후 때문에 농업 생산성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로 있는 유럽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식량 생산지인 것이다.

“투르진스키는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를 손에 넣고 싶어합니다.”

“투르진스키가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진석의 말에, 주앙 곤잔레스는 미소를 지었다.

“푸틴이 싫은 거죠. 알다시피, 투르진스키는 올리가르히 출신이거든요. 이제는 푸틴과는 라이벌을 넘어, 적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죠.”

“식량을 무기화 하겠다는 건가요?”

사실, 한국에서 농산물 개방이 이루어질 때, 농민단체에서 많이 걱정했던 것이 농산물의 무기화, 즉 식량의 무기화가 이루어져 나중에 엄청나게 오른 가격에 수입 농산물을 사야 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모를까,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그런 식량의 무기화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과 적대적인 러시아나 중국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를 장악한다고 해서, 푸틴이 부담을 느낄까요?”

“물론이죠.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대립적인 국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핵탄두를 서로 겨누고 있던 냉전 시절에도, 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식량 수입국이었습니다.”

“지금은 의존 비중이 더 커졌겠군요?”

“맞아요, 냉전시대에도 핵무기보다, 미국의 식량 공급이 끊기는 것이 더 위협적이었죠. 사실 미국내에서도 구소련에게 대한 식량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거절되었죠.”

“두 가지 이유라?”

“하나는 소련을 자극해서 진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농가들이 반대를 한 거겠죠? 안 그런가요?”

“하하, 맞습니다.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데올로기의 대결 양상이 극으로 치달았던, 냉전시기에도 식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역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필요했던, 러시아와 작물을 팔아야 하는 미국 농가들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 농민단체의 힘은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미국의 선거제도를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 꼭 인구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선거제도입니다.”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더 적은 득표를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말이군요. 그렇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면적이 넓은 농업지대가 인구에 비해, 더 강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군요?”

“맞습니다. 지역적으로 중부와 남부 내륙지역이고,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지지층이 많죠.”

“아이러니군요, 냉전기가 절정일 때, 공화당의 레이건은 가장 소련에 대해 강경한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하하, 레이건이 영화 배우 출신이라는 거 아십니까?”

주앙 곤잘레스는 바나나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레어건 대통령이 대중 앞에서 연기를 했다는 겁니까?”

“뭐, 연기를 했다기보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는 말이죠. 레이건 시대에는 스타워즈 프로젝트라던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군수산업에 막대한 예산이 집행되었죠. 마치, 구소련과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강경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고요.”

“덕분에, 레이건이라면, 지금도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대단하죠.”

“그러게 말입니다. 뭐든 그렇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인기를 얻기는 쉽죠. 하지만, 그런 강경책이 쏟아져 나올 때도, 뒤로는 엄청난 식량이 러시아로 흘러들어간 거죠. 미국 농가들의 이익을 위해서요.”

“지금의 미국도 별반 다를 건 없지 않나요?”

“맞습니다. 자국의 농산물을 수출하려는 건, 미국의 전통적인 스탠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말이겠죠?”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 농산물을 수출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다. 그 대상에는 적대국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농업 생산력을 이용해서 국제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보는 미국정부와도 친하죠. 특히, 정보 계통 쪽에 인맥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의 식량을 장악하자 이건가요? 뭐, 의도는 알겠습니만, 어떻게 말입니까?”

진석의 말에, 곤잘레스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크라이나에도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있죠. 친러시아파도 있고, 친미국파도 있습니다. 농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친러시아파는 밀이고, 친미국파는 옥수수라고 할 수 있죠.”

“밀과 옥수수라고요?”

밀이라면, 러시아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보통 주식으로 먹는 빵의 원료다. 그에 비해 옥수수는 한국에서는 쪄서도 먹고 가루를 내서 여러 요리에도 사용하는 재료.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옥수수는 그저 가축 사료 정도의 생각되는 작물이다.

물론, 옥수수를 먹지 않는 건 아니지만, 주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작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거리상 가까운 우크라이나에서 밀 재배지가 많다면, 비상시에 식량 확보가 쉬워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옥수수 경작지가 늘어난다면, 식량안보라는 측면에서는 구멍이 생기는 셈.

평화시라면, 밀이나 옥수수나 큰 차이는 없을 수 있다. 어차피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일 뿐이고 비용과 가격이라는 것 외에는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바나나는 어떻습니까?”

“그로 미셸은 맛이 훌륭하죠. 이진석 사장님이 보내주신 바나나를 심기 시작했는데. 잘 자라기도 하고, 맛도 좋은 것 같고요, 바나나는 이 정도면 대만족입니다. ”

“그럼, 다음은 우크라이나군요. 투르진스키는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거대한 옥수수 재배지도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죠?”

“사실은, 투르진스키라기보다는 미국정부의 압력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이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까지, 최근에 크림반도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격돌한 일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의 영토 분쟁으로 불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친서방정책을 펼치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견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서부의 곡창지대는 미국 중부의 대평원 프레리,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평원 팜파스, 등과 함께 3대 곡창지대로 손꼽히고 있다.

당연히 부침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의 흑토 지대는 러시아의 식량 안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고 반대로 생각하면, 이 지역이 미국으로 넘어간다면, 미국이 러시아에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요지 중의 요지.

“미국 정부든 뭐든, 우크라이나의 농부들에게 밀 대신 옥수수를 재배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느 나라든 농민단체는 파워가 엄청나요. 우크라이나 정부든, 어디든, 그들에게 뭘 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옥수수가 더 돈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곤잘레스의 말은 진석이 개발한 슈퍼 테오신테를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에 보급하자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비옥하기로 유명한 흑토 지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비료를 주지 않고도 농업이 잘 되는 건 아니었다.

밀 재배에도 역시 충분한 비료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비용은 상당한 편이다. 그에 비해 진석이 개발한 슈퍼 테오신테는 마치 콩처럼, 자체적으로 질소 성분을 생산해, 따로 비료의 공급 없이도 충분히 수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같은 양을 수확하더라도, 들어가는 인건비와 비료 등의 비용을 제외하면, 이익은 더 커지는 것이다.

“슈퍼 테오신테로 더 이익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옥수수 재배지가 늘어나고, 그건 미국이 원하는 큰 그림이 그려지겠군요.”

“예, 미국의 자유무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게, 우리 같은 곡물 무역을 하는 입장에서도 더 유리하죠.”

“역시 그렇겠죠. 그러면, 우리 제이에스가 우크라이나에 슈퍼 테오신테를 공급하면 되는 건가요?”

“예, 투르진스키도 그렇고, 우리 카르텔의 회원들도 도울 수 있는 건, 모두 도울 겁니다.”

“우크라이나라?”

한국에는 미녀들이 밭을 갈고 소를 끄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바로 그 나라, 우스개소리에 불과하지만, 농업이 발달하고 소규모 자영농이 많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파네마의 집에서 진석은 짐을 꾸렸다. 다음 행선지는 뉴욕이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우크라이나의 서부, 르비브로 향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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