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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59/183)

76화. 카우보이

드론 여러 대가 편대 비행을 하고 있었다. 드론의 스피커에서는 맹렬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떼들은 익숙한 개의 목소리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개가 아니, 드론이 소를 몰고 있는 모습이라니, 진석이 생각했던, 아르헨티나의 목축 지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어떻습니까? 이제는 드론이 소들을 몰고 있죠.”

드론에서는 개 짖는 소리 외에도, 사이렌,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들이 평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는 건가요?”

진석은 옆에 서 있는 주앙 곤잘레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브라질 출신의 사업가인 곤잘레스는 40대 후반의 날렵한 인상의 남자였다. 약간 작은 키에, 갈색의 피부는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의 느낌이었다.

“돈이 문제죠. 가우초라는 목동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공연을 하는 게 주 수입원이죠.”

곤잘레스는 브라질에서 커피 농장과, 바나나, 그리고 옥수수와, 사탕 수수를 중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를 수출하는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땅이 있는데도 소들을 좁은 축사에서 키우다니 놀랍네요.”

진석의 말에, 주앙은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에서 소를 키우던, 목동인 가우초들은 원래 평원에서 몇 달씩 숙식을 하면서 소를 키우던 카우보이들입니다. 평원에서 소를 키우는 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건, 그렇겠군요.”

진석은 지금은 비어 있는 넓은 평원에 소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드넓은 팜파스에 소들이 뛰어다니고, 소떼를 감독하는 가우초들이 말을 탄 채, 소들을 몰아간다. 더러는 무리를 이탈한 소들이 나오고, 가우초의 추격대는 도망간 소들을 찾아 며칠 동안, 팜파스를 헤매다, 물웅덩이에서 쉬고 있는 소들을 발견한다.

거기에, 악당들과의 총격전이라도 추가되면 서부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가우초들은 매력적인 존재죠. 관광객들에게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르헨티나에는 가우초를 하겠다는 젊은이들은 없어요. 말을 타고, 소떼를 몰고, 팜파스에서 숙식을 하는 걸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닐 테고 말이죠.”

진석의 말에, 곤잘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축업자들도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걸 깨달았죠. 방목은 아르헨티나의 오랜 전통이지만, 이제는 집약식 목축으로 변하고 있어요.”

곤잘레스가 말하는 집약식 목축이라는 건, 한국에서도 익숙한 가축 축사에서 사료를 먹이며 키우는 것을 말한다. 아르헨티나 같이 넓은 목초지가 있는 곳에서 언뜻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 게 더 비용이 적게 들것 같지만. 역시 목축업, 특히 규모가 큰, 대규모의 목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인건비다.

“카우보이들을 고용할 돈이면, 사료를 사서 먹이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거죠.”

“그렇겠군요.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겠죠?”

“미국은 더 하죠, 인건비가 더 비싼 나라니까요.”

전세계적으로 육류의 소비도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목축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외형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인건비의 절감을 위해, 사료를 먹이는 집약식 목축으로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는 소들이 들판을 뛰어다니기는 하네요?”

“예, 일주일에 한 두 번 운동 삼아 나오는 거죠.”

곤잘레스와 진석이 소떼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 말을 타고 한 사람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헤이, 호세..오랜만이군.”

“곤잘레스 씨군요. 오늘은 손님도 오셨네요.”

호세라고 불린 남자는 이 농장의 주인인 호세 크루즈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의 젊은 남자였다. 그 정도 나이에 이런 목장의 주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석은 호세라는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소떼를 몰고 가는 건, 드론도 있었지만, 가우초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목동들도 있었는데, 보통 검게 그을린 가우초들과 달리 호세 크루즈는 백인이기도 했지만, 얼굴도 그을린 기색 없이 하얀 편이었다.

아마도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아 가업을 잇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죠.”

“아, 그러시군요. 뉴욕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들은 것 같던데?”

호세 크루즈는 말에서 내려와 진석과 곤잘레스 일행 옆으로 다가왔다.

“한국출신이고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죠.”

주앙 곤잘레스가 끼어들며 말했다.

“농장주 치고는 젊으신 분이네요?”

“예, 얼마 전에 아버지가 은퇴하셨거든요, 심장이 안 좋으셔서 말이죠.”

“저런,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으셨는데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의사 말이 힘든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말 타는 것도 자제하라고 하고요.”

“그래서 크루즈 씨가 사업을 물려받으신 거군요?”

“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도시에서 사업을 했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도시에서 생활하던 사람이라면, 이런 외진 곳에서 농장을 하는 걸 그리 바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말은 기회만 되면, 농장을 팔아치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석이 원하는 대로 말이다.

“깜뽀에는 익숙하지 않겠군요?”

“하하, 아르헨티나어를 잘하시네요.”

호세는 깜뽀라는 단어에 미소를 지었다. 깜뽀는 아르헨타니 말로, 시골이라는 의미였다. 거기에 이런, 전통 방식의 농장들을 에스탄시아라고 한다. 깜뽀 에스탄시아라면, 시골에서 소를 키우는 가우초들의 농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곳 산 실비아는 부에노스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곤잘레스 말로는 이곳 농장주는 소떼를 키우는데 흥미가 없다고 한다. 대신, 가우초 체험 농장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호세 크루즈는 진석과 곤잘레스를 자신의 에스탄시아로 안내했다. 보통의 아르헨티나의 전형적인 시골 농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우초라고 불리는 목동들을 위한 숙소도 있고, 농장주의 저택, 창고, 그리고 소를 키우는 농장답게 소나 말들의 축사들도 있었다.

“식사는 하셨나요?”

어딜가나 사람을 대접하는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아르헨티나도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역시 음식이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하루에 4끼를 먹죠.”

곤잘레스의 말에, 호세 크루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고 하죠. 춤도 많이 추고, 식사도 많이 하고요. 하하..”

스페인의 영향으로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자는 문화도 있고, 메리엔다라고 해서 한낮에 간식을 먹는 전통도 있어서 보통 하루에 4끼를 먹는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아직, 점심은 안 먹었습니다.”

“그럼 점심부터 먹어야겠군요.”

호세가 준비한 점심 식사는 농장에서 직접 키운 소고기로 만든 아사도와, 초리토라는 소시지,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자주 먹는다는 엠빠나다라는 고기 만두, 그리고 음료와 술이 나왔다.

“비노? 세라비싸?”

“뭐라는 겁니까?”

스페인어에 익숙하지 않는 진석이 주앙 곤잘레스를 쳐다보았다.

“맥주와 와인 중에 고르라는 군요.”

진석은 와인을 선택했다. 곤잘레스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인이었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다.

와인에 겻들여, 오랜시간 동안 구운 아르헨티나 전통 아사도를 맛보게 되었다. 고기는 생각보다, 단백한 느낌이었다.

“아사도 요리가 훌륭하네요.”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진석은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이 농장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였다.

진석의 제이에스 바이오는 이제 세계 곡물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곡물 시장의 주요 고객은 바로, 남미의 목축업자들이었다.

“크루즈 씨는 농장 운영하는 일에 만족하십니까?”

“하하, 뭐, 어느 정도는요. 조상 대대로 하던 가업이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소를 키우는 일도 쉽지는 않겠죠?”

호세 크루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농장을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농장을 팔 마음은 이미 어느 정도 굳힌 상태였다. 문제는 적당한 가격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500만 달러 정도면 어떻습니까?”

진석의 제안에 호세 크루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800만 달러의 가치는 있는 농장입니다. 농장에 속한 토지도 상당하고요.”

“제가 알기로는 적자가 나고 있고, 농장에 딸린 가우초들도 해고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는 소를 키우는 일보다는 가우초 체험 농장으로 전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죠.”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600만 달러를 제안하죠.”

진석은 아르헨티나에 몇 개의 농장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소를 키우면서, 곡물을 이용한 사료에 대한 실험도 할 생각이고, 그 외에, 아르헨티나에 포도 농장도 사서, 와인 생산에도 도전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지역은 유럽인들이 이주한 곳으로 유럽의 포도 재배 기술을 이어받은 포도 농장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에 농장을 매입해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저는 옥수수나 콩, 밀 같은 곡물의 종자를 연구하고 있죠. 아르헨티나에서 많이 수입하는 사료용 옥수수 같은 것들의 종자를 개발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 고객인, 아르헨티나의 소들은 저희들의 연구 대상이죠.”

“그럼, 이 농장을 연구소로 만들 생각인가요?”

“연구소라기보다는 농장에서 소를 키우는 일이죠. 대신, 우리가 개발한 곡물을 먹여서 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거죠. 그리고 저도 말 타는 걸 좋아하거든요. 멋진 평원에서 말들을 타는 기회도 얻을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곳도 별장처럼 이용할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 멋진 농장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이국적인 팜파스 초원에 별장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다. 물론, 곡물 생산을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소를 키우는 것이 주목적이기는 했다.

“그런 연구를 하신다면, 좋은 일이군요. 사실, 저도 깜뽀의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향이지만, 농장이나 목축 일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호세 크루즈는 의외로 솔직하게 농장 경영의 피로감을 호소했다. 카를로스에게 전해 들은 대로 이 젊은 농장주는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6백 5십만, 이게 저의 마지막 제안입니다. 사실, 그 이상이면, 다른 농장을 알아보는 편이 더 이익이거든요.”

호세 크루즈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거래는 성립되었다.

***

“좋은 거래를 한 겁니다.”

주앙 곤잘레스는 운전석에 진석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저도 압니다. 그 정도 규모의 농장이라면, 적당한 가격이죠.”

“하하, 호세라는 녀석이 더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그 녀석은 깜뽀라면 질색인 녀석이라, 아마, 농장을 팔고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하든 농장을 팔고 싶어 안달이었으니까요.”

곤잘레스의 말대로, 적당한 가격에 첫 번째 농장 매입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곳 이외에도 몇 군데의 농장을 더 알아보고 있었다. 소를 키우는 농장도 있고, 밀을 재배하거나, 포도를 키우는 농장들도 있었다.

농업에 관련된 연구도 할 수 있고, 농장 자체를 경영하면서 수익도 낼 수 있는 그런 곳들이었다.

“소규모 농장주들은 경영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농업이 점점 대기업화하다 보니, 경쟁력을 잃고 있는 거죠.”

곤잘레스의 말대로 남미의 전통적인 축산이나, 농업을 생산하는 농장들도 차츰 대형화 되고 있는 추세였다. 외국에서의 투자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외국인이 농장을 사들이는 것에 대한 제한 조치가 시행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최근에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투자가 가능해진 상태였다.

“자 그러면, 다음 농장으로 갑시다.”

“하하,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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