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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테오신테 (58/183)

75화. 슈퍼 테오신테

“어, 수정 씨, 나야, 어디기는 뉴욕이지.”

일리노이의 옥수수 농장지대를 돌아보고 온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바꾸었다. 한국에서 하는 사업은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간 것들이어서, 이수정이 관리만 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뉴욕에 머물면서, 투르진스키가 제안한 종자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한국에는 귀국 안 하시고요? 지난주에 오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계획이 좀 바뀌었어, 뉴욕에서 농자 관련된 사업을 구상 중이야.”

“종자요?”

“그래, 이쪽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말이야. 한국에는 큰 문제는 없지?”

“물론이죠, 이쪽에서는 당장 급한 일은 없으니까요.”

이수정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안심이었다.

“그래, 수고하고, 뭐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한국에 돌아가도 상관은 없겠지만, 뉴욕이 사람들을 만나기도 편하고, 국제적인 비즈니스를 준비하기에는 적합했다.

특히 진석이 관심을 가지고 개발하려는 것은 새로운 옥수수였다. 현재 미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들은,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기존의 전통적인 품종들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생산성이나 병해에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더 우수하다는 평가지만, 전미 옥수수협회 회장인 에릭 카슨의 말대로, 지금 미국 옥수수의 경쟁 상대는 다른 옥수수 품종이 아니라, 콩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로 미국 농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재배 면적을 확장했던 대두 농업에서 옥수수로 전환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콩에 비해, 재배 시에 비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옥수수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작물들이 가진 성질이지만, 콩처럼 비료 성분을 자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옥수수가 나온다면, 옥수수 농업에 큰 혁명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진석은 뉴욕의 맨하튼의 아파트에 머물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의 오아시스가 보였다. 진흙 인간들이 다가와 진석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공간주님, 오늘은 뭘 가지고 오신 건가요?”

진흙 인간들의 사령관이 진석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옥수수를 키울 생각이야. 신품종의 옥수수 종자가 필요하거든.”

“오늘은 옥수수군요? 그럼 산으로 떠날 준비를 할까요?”

“음, 산이라?”

그동안은 대부분의 작물은 공간 중심에 있는 산에서 재배를 했었다. 산에서 작물을 키우면, 산에 흐르는 공간의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에너지를 영향으로 특이한 변종이 일어나고는 했다.

그런 작물들은, 보통 환경에서라면 얻을 수 없는 신비로운 효능을 가지지만, 동시에 그런 작물의 종자는 외부로 가져갔을 때 그런 특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아시스 주변의 토지에서 키운, 작물들은 외부의 세계에서 키워도 역시 같은 특성을 보전하고 있다. 대신 산에서 키운 작물들처럼, 강렬한 효능은 없는 평범한 작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평범하지만, 외부로 가져가서 종자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작물이었다.

“사령관, 산은 됐고, 그냥 평지의 땅에, 옥수수를 심을 준비를 해.”

“평지에 말입니까?”

늘 산에 새로운 작물을 심는 진석이었기 때문에, 진흙 인간의 사령관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작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오아시스 주위에 밭이 일궈지기 시작했고, 파종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공간에서는 따로 비료를 주거나 한 일이 없었다. 공간의 토양 때문인지, 따로 비료를 주지 않고도 작물들은 항상 잘 자라고 있었다.

공간의 장점이 이번에는 역으로 단점이 되고 있었다.

에릭 칼슨이 원하는 새로운 옥수수 품종은, 비료 없이도 잘 자랄 수 있는 옥수수였다. 대규모 농장에서 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작물도 비료 없이 항상 잘 자라는 공간의 토양 때문에, 옥수수가 따로 거름 없이 잘 자라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곤란하게 됐는데..”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공간주님.

“공간의 토양 말이야, 비료 없이도 아무 작물이나 잘 자라고 있잖아?”

-그거야, 공간의 토양은 식물의 생장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사실은, 새로운 옥수수를 개발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거든, 가장 중요한 조건은 콩처럼, 비료 사용 없이도, 재배가 가능한 옥수수 품종을 개발해 달라는 거지.”

-비료 없이도 잘 자라는 품종을 개발하려는데, 공간의 비옥한 토양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말이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작물이 잘 자라는 건 좋은데,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품종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토양의 비옥도를 조절하면 되겠군요.

“토양의 비옥도라고? 그걸 조절이 가능한 건가?”

-물론입니다. 토양의 비옥도는 원래 최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원하신다면, 공간주님의 의지로 비옥도를 낮추어서 척박한 토지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비옥도를 조절해서, 일반적인 미국의 옥수수밭 정도의 비옥도로 조절해줘.”

-알겠습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옥수수밭의 정보를 참고해서 토지 비옥도를 계산했습니다. 옥수수 재배 예정지의 토지 비옥도를 일리노이의 일대의 옥수수 재배지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그럼, 토양은 실험준비가 완료되었군.”

진석은 토지 비옥도를 떨어뜨린 비어 있는 밭에, 옥수수 씨앗을 파종하기 시작했다.

씨앗을 뿌리고, 시간을 가속하자, 다소 척박한 밭에서 옥수수 잎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떡잎들은 줄기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굵고 단단한 옥수수 대로 자라났다.

“역시 공간주님의 능력은 대단하군요.”

사령관이 감탄을 하고 있었지만, 비옥도를 떨어뜨린 토양에서 자란, 옥수수는 어딘지 그리 싱싱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도 노랗게 말라가는 모습이고, 맺힌 옥수수 열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진석은 옥수수 몇 개를 따 보았다.

“뭐지? 속이 여물지 않은 것도 있고, 크기도 애매하고.”

“공간주님, 공간에서 키운 작물들이 이렇게 부실한 건 처음 보네요.”

“그러게 말이야, 일부러 토지의 비옥도를 낮춘 거기는 한데. 토지 비옥도가 떨어지니까, 옥수수가 엉망이 되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비료라도 뿌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일부러 비료 없이도 잘 자라는 옥수수 종자를 만들려는 거니까.”

진석은 뉴욕에서 가져온 다양한 옥수수 종자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시간을 가속하며 실험을 반복했다.

척박한 토양에서 대부분의 옥수수들은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부실한 성장과 빈약한 열매를 맺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좀 쉬어야겠는데.”

계속되는 지루한 시간 가속 작업에 진석도 지치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아무리 시간을 증식하며 옥수수를 개량하는 일을 반복해도, 원하는 정도의 결과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간주님, 생각보다, 옥수수를 개량하는 일이 쉽지가 않은데요.”

“그러게 말이야, 비료 없이 옥수수를 잘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일반적인 공간의 토양이라면, 문제없이 잘 자라고 탐스러운 옥수수가 열리는 품종들이었지만, 비옥도를 낮추어 척박해진 토양에서는 제대로 된 옥수수의 수확이 어려웠다. 그건 품종에 따라 거의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진석은 품종 개량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선택법을 사용해서, 옥수수밭에서 같이 재배한 옥수수 중에, 가장 성장이 좋은 옥수수의 씨앗을 받아, 증식하는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에는 이르지 못했다.

결국 진석은 오아시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한숨 잠부터 푹 자기로 했다. 잠을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진석은 야자수 아래의 해먹에 쓰러지듯 몸을 맡겼다.

***

얼마나 잔 걸까? 잠에서 깨고 나자, 배가 고팠다. 일단, 오아시스의 저택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다행히, 고기와 야채 같은 식재료들이 들어 있었다.

진석은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 야채와 같이 식사를 마쳤다.

“푹 자고, 배도 든든하고, 이제 뭔가 해결책이 떠오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진석은 생각에 잠겼다. 옥수수라면, 남미의 인디오들에 의해, 1만 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품종이 개량된 거의 완벽한 작물이었다. 그런, 옥수수인데, 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품종으로의 개량이 어려운 것일까?

그때, 진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테오신테...

지금의 옥수수는 남미에서 자생하던 테오신테를 인디오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개량한 품종이었다. 그 말은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한 거의 완벽한 작물이라는 말이다.

콩처럼, 비료 없이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특성은 없지만 말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미 완숙한 중년이라고나 할까? 좀 더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미 여러 단계의 성장을 거치면서,

중요한 한 두 가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가능성들은 과감하게 포기한 완숙하고 성공적인 중년의 삶 같은 것 말이다.

그에 비해, 테오신테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어린아이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새로운 특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런 미숙한 상태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옥수수는 이미 수많은 선택 과정을 통해, 최고의 품종으로 완성된 작물이다. 그 자체로는 훌륭한 품종이지만, 새로운 특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테오신테 같은 가능성이 개발되지 않은 미완의 품종이 더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진석의 뇌피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 생각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직접 해보면 알 것이다.

“그래, 테오신테? 슈퍼 옥수수가 아니라, 슈퍼 테오신테를 개발하는 거야..”

그러려면, 테오신테가 필요하다. 옥수수 종자는 흔하지만, 테오신테 종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목적지는 서울의,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

일단, 서울로 돌아가, 강원도의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를 찾았다. 그리고, 종자 보관소에서 테오신테의 씨앗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래, 바로 이게 야생 테오신테. 옥수수의 먼 조상 격인 테오신테다. 진석은 테오신테의 씨앗을 챙겨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사령관,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공간주님, 옥수수로 다시 실험을 하는 겁니까?”

“아니, 이번에는 테오신테 차례야..”

“테오신테라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오신테는 간단히 말해, 야생의 옥수수라고 생각하면 돼, 물론, 지금의 옥수수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맺히는 열매도 거의 먹을 수 없는 수준이지만, 남미의 인디오들은 이 테오신테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1만 년에 걸쳐, 지금의 옥수수를 개발한 거라고..”

“오, 그러니까. 옥수수의 조상님이군요.”

“그래, 새로운 슈퍼 옥수수를 개발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슈퍼 테오신테를 만들어 보는 거야.”

옥수수 종자로 실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테오신테를 이용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비옥도가 떨어지는 척박한 환경에서 따로 비료나 거름 없이 테오신테의 씨를 뿌려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가속되었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척박한 토양에서 잘 적응하는 품종의 테오신테만이 선택과 증식을 반복하며, 차츰 옥수수와 비슷한 모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1만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가고, 야생의 테오신테는 현대의 옥수수보다 훨씬 더 크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공간주님, 성공인 것 같습니다.”

사령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난 테오신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1만 년에 걸친, 테오신테의 옥수수로의 진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한 것이다. 그것도 일부러 척박한 토양에서, 거름을 주지 않고, 키우는 방식으로 이전의 옥수수가 같지 못한 토양적응능력도 추가된 새로운 옥수수, 아니 슈퍼 테오신테였다.

진석은 비료 없이도, 기존의 슈퍼 옥수수처럼, 커다랗게 자라난 테오신테 열매를 따 보았다.

실하게 들어찬 열매는 잘 익은 옥수수 열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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