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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천억짜리 펜트하우스 (54/183)

71화. 천억짜리 펜트하우스

“힐튼 호텔 말이군요?”

장유식은 kbc의 뉴욕 특파원이었다. kbc 라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국이었다.

뉴욕에 도착한 진석에게 장유식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다음 주에 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거라는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FDA의 공식발표는 기자회견 전날 있을 예정이고요.”

FDA의 승인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제이에스 바이오에 대한 홍보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기자회견 장소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었다. 기왕이면, 뉴욕의 명소이면서 상징성이 있는 장소로 진석은 뉴욕 힐튼 호텔을 선택했다.

세계적인 힐튼 호텔 그룹의 소유이기도 하고, 뉴욕에서 가장 큰 호텔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장 기자님은 그렇게 알고 준비하시면 될 겁니다.”

공식발표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댄 김의 하버드 의대 인맥으로 그 정도의 정보는 미리 알아낼 수 있었다.

한국과 해외 유명 언론사에도 이미 비공식적으로 통보가 된 상황, 일종의 엠바고로 제이에스의 신약, 시타르의 FDA 승인 기사는 보류 중이었다. 어차피 오피셜의 발표는 아직 전이었고, 다음주에 FDA의 공식발표 후, 제이에스의 뉴욕 기자회견이 준비 중이었다.

언론도 급하게 기사를 쏟아낼 이유는 없었다.

“다음 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파티에나 가보시죠?”

“파티요?”

맨하튼에, 1천억짜리 고급 펜트하우스에 뉴욕 명사들의 비밀 파티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비밀 파티죠. 비밀이라기보다, 언론에 노출이 안 된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초대되는 게스트들도 극소수의 유명인사들이고요. 간단한 와인 파티죠.”

“저도 초대를 받은 겁니까?”

“예, 이곳 뉴욕의 사교계에서도 이진석 사장님은 꽤나 핫한 인물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장님을 만나보고 싶어하죠. 혹시 영어가 불편하신 거는 아니죠?”

“영어는 문제없습니다. 회화라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편이죠. 그런데 제가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뉴욕의 명사들이 모이는 모임인 모양인데, 진석의 사업에 그런 유명인들이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여서, 유명인사 호기심을 느끼는 나이도 아니고 말이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다들, 전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거나, 그런 비즈니스에 깊이 관련된 인물들입니다. 대학생들처럼, 즐기는 파티는 아니라는 거죠.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모이는 사람들이니까, 이진석 사장님도,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댄 김은 진석이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평소 같지 않게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사교 파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댄 김이 그 정도로 진지하다는 것은 상당히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자리라는 의미였다.

“좋습니다. 듣고 보니 중요한 자리 같군요,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모시러 가죠.”

이틀 후, 저녁 무렵이었다. 맨하튼의 마천루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시간이 대충 된 것 같은데 댄 김은 아직이었다.

진석은 드레스룸에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한 모습이었다.

댄 김이 귀뜸해 주기로는 드레스 코드는 특별히 신경 쓸 거 없는 편안한 자리라고 했다. 진석은 가져온 옷 중에, 편한 캐주얼 재킷을 골랐다. 대충 그 정도면 무난해 보였다.

거울을 보고 있는데 진석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댄 김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시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앞쪽에서 댄 김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깁니다. 이진석 사장님.”

댄 김은 멋진 수트 차림에 근사한 회색 람보르기니 앞에 서 있었다.

“와, 람보르니군요? 아벤타도르인가요?”

“예, 맞습니다. 아벤타도르 로드스터죠.”

댄 김도 진석의 일을 도와주면서, 제법 괜찮은 수입은 올리고 있었다. 의사 시절보다 훨씬 큰 돈을 벌고 있었고, 그 돈으로 고가의 주택과 수퍼카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댄과 잘 어울리는군요.”

“하하, 어렸을 때는 돈이 없어서 이런 차는 꿈도 못 꾸었죠. 지금은 나이가 걱정입니다.”

“나이가 왜요?”

“더, 나이를 먹으면 이런 차는 못 탈 것 같아서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 이 차를 샀죠.”

“하긴, 즐기는 것도 젊을 때나 가능하기는 하죠. 진석은 댄 김의 회색 아벤타도르의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이진석 사장님도 슈퍼카 정도는 가지고 있겠죠?”

“저도 우라칸 두 대와, 페라리 한 대를 가지고 있죠. 아벤타도르는 아직입니다.”

“그래요, 나중에 하나 구입하시죠. 정말 멋진 차입니다.”

댄 김은 람보르기니에 시동을 걸었다. 슈퍼카는 굉음을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댄 김이 아벤타도르 로드스터를 몰고 도착한 곳은 같은 맨하튼의 42번가의 한 고급 아파트였다.

“이곳인가요?”

댄 김이 차를 세운 곳은, 진석의 아파트 주차장과 비슷한 지하 주차장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특이하게 지하 주차장 한쪽이 다른 구역과 벽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작은 주차 구역을 구분해서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프라이빗한 느낌의 주차 구역에는 댄 김의 람보르기니 외에도, 페라리, 포르쉐, 벤틀리 같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 파티에 초대받은 게스트들의 차들이었다.

그리고 그 분리된 구역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이곳으로 가면 됩니다. 3번 엘리베이터는 45층의 펜트하우스 주인의 전용이죠.”

“정말요? 전용 엘리베이터가 다 있나요?”

진석의 말에, 댄 김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만도 하죠, 펜트하우스 가격이 8천 5백만 달러입니다. 한화로는 천억이죠.”

“천억요?”

진석 역시도 서울에 백억에 가까운 고급 아파트에 살고는 있었지만, 역시 뉴욕이라 그런지 클래스가 다른 느낌이었다.

“굉장하네요, 그만하면,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을 만 하군요.”

“예, 덕분에, 아주 비밀스러운 사교 모임도 가능하죠. 이, 주차 구역과, 엘리베이터 모두 펜트 하우스 전용입니다.”

댄 김은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45층에 고정되어 있었다.

댄 김의 말대로, 45층 펜트하우스의 주인은 이 엘리베이터를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서울의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에 입주민 전용 엘리베이터와 로비가 있기는 했지만, 단 한 세대의 펜트하우스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라니..

하긴, 한 세대라도 그 가격이 천 억이라면, 그 정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 여기 주인은 누구입니까?”

“아, 제가 설명을 안 했었나요? 하하, 정신이 없군요. 투르진스키라고 러시아의 억만장자입니다.”

“러시아의 억만장자요?”

“올리가르히라고 들어보셨나요?”

“러시아의 신흥 재벌들 말이군요?”

올리가르히라면, 구소련 붕괴 후에 옐친 정권하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부를 축적한 러시아의 신흥 재벌을 말한다. 구소련의 방대한 공기업을 헐값에 불하받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후 푸틴의 시대가 된 지금까지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푸틴 역시도 옐친 밑에서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그러니, 푸틴이나 올리가르히 모두 옐친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들,

하지만 다른 경쟁 세력이 사라진 지금은 올리가르히와 푸틴이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푸틴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예, 러시아에 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죠. 석유나, 철광석, 철도 같은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가들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푸틴을 피해, 외국으로 많이 이주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목숨이 위태로운 러시아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을 더 선호한다고 하던데... 투르진스키는 뉴욕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군요.”

“하하, 뉴욕은 누구에게라도 멋진 최고의 도시죠. 물론 저에게도 그렇고. 이진석 사장님은 어떠신가요?”

“물론, 저에게도 최고의 도시입니다. 다 온 것 같군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꽤 넓은 복도가 나왔다. 펜트하우스로 들어가는 입구인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펜트하우스 입구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짧은 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약간 러시아 스타일의 얼굴이었는데, 댄 김의 설명대로라면, 투르진스키의 경호원쯤 되어 보였다.

“미하일 잘 지냈나?”

“김 박사님이시군요, 옆에도 같이 오신 건가요?”

댄 김은 미하일이라는 경호원과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댄을 따라, 진석은 펜트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통과하면 복도가 나온다, 미국식 아파트의 특징인데 현관문을 열면, 거실부터 나오는 한국 아파트와 달리, 미국 아파트는 복도를 지나 맨 끝으로 가야 거실이 나온다.

“규모가 상당하네요.”

“그렇죠, 맨하튼 한복판에, 8개의 방과 욕실을 갖추기는 쉽지 않죠. 부동산을 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뉴욕시 전체에서 3번째로 비싼 집이라는군요.”

“와, 정말요?”

3번째로 비싸다는 말은 이 집보다 비싼 두 채가 있다는 말, 대체 그 두 채는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미국 전체로 보면, 이보다 더 큰 호화 주택은 많을 것이다. 시 외곽이나, 전원지대로 가면 진짜 크고 으리으리한 저택도 많으니까, 하지만, 뉴욕의 중심 맨하튼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면적은 평수로 해도, 엄청나겠는데요?”

“400평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맨하튼의 45층, 거실로 가면, 전망이 정말 끝내주죠.”

복도 끝을 지나자, 거실로 이어지는 문이 나왔다.

안에서는 이미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한 통통한 체격의 남자가 거실로 들어서는 진석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투르진스키 씨?”

“예, 친구들은 사보라고 부르죠.”

나중에 투르진스키에게 사보 라고 친근하게 부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오히려 참석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댄도 잘 지냈나?”

“저야, 늘 잘 지내죠.”

“여러분 오늘의 주인공 이진석 씨가 오셨습니다.”

투르진스키의 거실은 진석의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전체의 공간 정도의 면적인 느낌이었다. 충분히 떠들썩한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은 진석과 댄 김을 포함해, 10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쪽은 텍사스에서 온 마크 데이비스, 저분은, 캘리포니아서 오신, 리처드 록, 그리고 마지막은...”

“후안 곤잘레스라고 합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왔죠.”

“반갑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하면,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던 곳이죠.”

“하하, 아주 멋진 곳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초대하고 싶군요.”

뉴욕의 사교계 모임이라고 해서, 영화배우나 셀럽들을 만날 줄 알았더니, 모두 사업가들이었다.

그것도 모두 농업에 관련된 사업가들이었다.

“농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죠. 텍사스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캘리포니아에 오렌지 농장을 가지고 있죠. 캘리포니아는 전세계 오렌지의 40%를 생산하는 곳이죠.”

진석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이었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은 진석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농업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 건가요?”

“그런 셈이죠. 농작물의 국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농업은 이제 국경이라는 개념이 많이 희석된 산업이죠.”

투르진스키의 말에,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텍사스의 소고기나, 캘리포니아의 오렌지는 전세계에서 소비되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글로벌한 비즈니스가 되어 가고 있죠. 또 생산성이라는 면에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은 산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이진석 사장님의 제이에스 바이오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음, 저를 초대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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