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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두 번째 성공 (53/183)

70화. 두 번째 성공

프랑스에서 여름 휴가는 끝이 났다. 한유진과의 기타 레슨도 즐겁게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기타 실력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이 진석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로도 서울은 장마가 계속되고 있었다.

“휴가는 잘 다녀오신 거에요?”

“그래, 잘 쉬었어, 회사에는 별일은 없지?”

“댄 김이 휴가복귀하시면 연락해 달라고 하던데요?”

“댄 김이? 알았어, 내가 직접 연락하지.”

집으로 돌아온,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공간을 거쳐, 뉴욕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

맨하튼 워터라인 스퀘어,

진석은 아파트의 에어컨부터 작동시켰다. 멀리 허드슨강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지만, 대도시인 뉴욕의 여름은 서울 못지 않게 더운 느낌이었다.

“댄 김이 무슨 일이지?”

휴가를 가기 직전에, 시타르의 임상실험이 거의 마무리 단계이기는 했다. 이쯤에서 공식발표 전에 내부적으로는 결론이 나왔을 시간이었다.

고혈압 치료제인 시타르의 임상실험, 벌써 몇 년째, 동물실험부터 임상실험까지 지루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진석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잔 마셨다. 댄 김을 만나러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맥주 한 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맥주가 목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진석은 댄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진석 사장님, 어디십니까?”

“뉴욕입니다. 60번가의 제 아파트요.”

“뉴욕이시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만나서 할 이야기도 있고요. 언제 시간이 될까요?”

수화기 너머로, 댄 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교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태도라는 면에서 차이가 느껴졌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과는 달리,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자란 교포들은,

같은 한국어라도 그 특유의 말투와 느낌이 있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언제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디에서 만날까요?”

“지난번에 그 프렌치 레스토랑 어떻습니까?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그리고,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동행해도 될까요?”

“소개시켜 줄 사람요?”

***

프렌치 레스토랑, 샤콘느..

약속장소는 댄 김과 몇 번 식사를 하러 온, 맨하튼의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여깁니다.”

급하게 잡은 약속이었지만, 댄 김은 용케도, 2층의 조용한 테이블을 예약해 놓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진석이 테이블로 다가가자, 두 사람 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180cm가 넘는 댄 김과 거의 비슷해 보이는 키가 큰 여자였다. 힐의 높이를 감안해도, 꽤 키가 큰 서글서글한 외모의 미인이었다.

“이 분이시군요?

“제니퍼 리예요.”

키가 큰 모델 같은 여자는 진석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자, 다들 않으시죠.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댄 김이 소개시켜주겠다는 한, 여자는 제니퍼 리, 뉴욕대학에서 임상의학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교포 3세 의학인이었다.

“댄 김에게서 제니퍼 리 박사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제니퍼 리는, 하버드 의대 출신으로, 댄 김과는 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댄 김 역시도 하버드 의대 출신, 의학전문 대학원 제도가 있는 미국은 학부 졸업 후 의학전문 대학원에 지원하는데..

뉴욕대학 출신인, 댄 김과 달리, 제니퍼 리는 순수 하버드 출신의 재원이었다.

아무튼, 하버드 의대에서도 인연으로, 후에 뉴욕대학에도 댄 김의 후임으로 임상실험 팀을 지휘하는 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이에스의 심혈관 치료제인 시타르의 임상실험을 지휘하고 있는 실무 책임자라는 의미였다.

그동안은 댄 김을 통해서,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물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댄 김에게서 듣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네요.”

“후후, 그래요, 댄이 어떻게 말했는데요?”

제니퍼 리도, 교포 3세 출신이라, 언뜻 어려울 것 같은 의대 선후배 관계임에도 댄이라고 편하게 댄 김을 부르고 있었다.

“굉장히 연구에 몰두하는 그런 이미지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좀 헝클어진 그런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있죠. 생명공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두꺼운 안경을 끼고, 머리는 대충 묶고, 청바지 같은 것만 입고 다니는 그런 모습을요.”

“하하, 저도 편견이 있는 건가요? 레스토랑을 들어오면서 느낀 첫인상은 무슨 뉴욕의 패션 모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진석 사장님의 생각도 틀린 건 아닙니다. 하버드 의대 시절에는 정말 그러고 다녔거든요.”

“그래요?”

댄 김은 하버드 의대 시절의 제니퍼 리를 선머슴 같은 이미지로 묘사했다.

“그때는 정말 공부만 하고 꾸미고 다니는 것도 몰랐었는데, 그렇지? 제니퍼, 만날 똑같은 체크 셔츠만 입고 다니지 않았어? 솔직히 난, 그때, 옷이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니까.”

“무슨 소리야? 댄, 그냥 바빠서 그랬던 것뿐이라고, 평소에는 공부하느라 편하게 입고 다닌 거지. 파티 갈 때는 나도 꽤 섹시한 드레스도 입고 그랬는데, 그건 기억 안 나?”

“아, 맞아. 파티 때, 너, 완전 타이트한 레드 드레스 입고 온 적 한 번 있었지?”

“두 분 다 하버드 출신이라, 추억이 많은가 보군요?”

“하하,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요. 아무튼, 이번 시타르의 임상실험 결과 보고도 드리고, 수고한 제니퍼 리 박사도 소개를 드리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댄 김의 표정은 시종일관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한 거지만, 시타르의 임상결과가 긍정적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실험이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니퍼 리도, 그렇고 댄 김도, 뉴요대학 의대 병원에서 근무하던 내부자들이었다.

당연히 임상실험을 주관하는 내부 정보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공식 발표는 2주 후쯤이겠네요? 두 분 표정을 보건데,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봐도 될까요?”

“예, 그런 셈이죠. 물론, 공식 발표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제 변수는 모두 제거된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럼, 이미 FDA로 보고서가 올라갔겠군요?”

당뇨 치료제인 넥타르의 개발 경험이 있어서 진석도 임상실험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진석이었다. 최종 임상실험 보고서가 FDA로 보내졌다면, 이제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이제 FDA의 발표를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건가요?”

진석의 말에, 댄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FDA 승인은 거의 확실한 상황입니다. 이변이 없다면 말이죠.”

댄 김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지만, 이런 일은 마지막까지 가봐야 아는 일이다. 의약품 승인에는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의외의 변수가 너무 많으니 말이다.

“일단은 지켜봐야겠죠. 공식 발표 전까는 모든 건 예상일 뿐이니까요.”

“하하, 그렇기는 하죠.”

“아름다운 숙녀분도 오셨는데, 일단, 뭐라도 먹으면서 시작하죠. 저도 궁금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진석은 메뉴판을 열었다.

***

제이에스 본사..

“뉴욕 출장요?”

“그래, 조만간, FDA 승인이 날 것 같아. 언론과의 기자회견도 준비해야 하고, 기왕이면, 미국에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FDA 승인이 나면, 해외 언론에서도 취재를 할 거라는 말이죠?”

“그래, 외신들도 중요하니까,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거지.”

뉴욕에서, 댄 김과, 제니퍼 리와의 저녁 식사를 하며, 그동안의 임상실험의 경과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험의 과정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존의 어떤 심혈관 치료제와 비교해서도, 우수한 혈압 개선 효과와, 혈관 강화 기능, 그리고 무엇보다, 생약 추출물이라는 특성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 대단한 장점이었다.

특히 실험을 주도했던, 제니퍼 리는, 시타르가 혈압치료제 시장에서 압도적 리더가 될 거라는 예상을 했다.

기존의 심혈관 치료제들이 부작용이라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시타르의 탁월한 안정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것은 댄 김도 같은 의견이었다. 의학 전문가들인 그들의 의견이 그렇게 일치한다는 것은 당연히 고무적이었다.

넥타르에 이어서 세계 시장에서 2번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상황은 처음 넥타르를 출시할 때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었다. 그때는 좋은 약을 개발했음에도, 판매망을 갖추지 못해 수익 창출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이미 전세계에 시타르를 판매할 파트너들을 확보한 상태였다.

시타르는 넥타르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으며 빠르게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일단, 그런 모든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은 국제도시인 뉴욕이 더 적합했다.

그리고, 공식일정을 수행하러 가는 길, 공간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귀찮아도 비행기를 타고, 출입국 수속을 밟아 뉴욕으로 가야 했다.

“뉴욕 출장에서 돌아오려면 좀 오래 걸릴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제가 책임지고 있을 테니까.”

이수정은 진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수정 씨만 믿을게.”

북카페 쪽이라면, 유민지가 알아서 하고 있고, 그 외에 제이에스 그룹 전반은 이수정이 책임지고 있었다. 뉴욕에 오래 가 있어도 국내 문제들이라면, 이수정이 잘 처리해줄 것이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날, 파리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다. 한유진이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레슨을 하면서 즐거웠다는 내용과, 진석이 선물로 준 참외는 잘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참외가 너무 딱딱해서 믹서에 갈아서 주스로만 마시고 있는데, 그 덕분인지, 잇몸 염증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잇몸 염증이 개선되었다고?”

한유진은 시시콜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놓고 있었지만, 가장 중심되는 이야기는 참외를 먹고 치아와 잇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치아 때문인지 잇몸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통증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이다.

“역시 그런 거였나? 단단한 대신, 치아에도 도움이 되는 참외였군.”

공간의 산에서 재배한 참외라, 뭔가 특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단단한 과육에 잇몸 질환이나 염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경험들은 후에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는 편이었다. 진석은 기록을 해두고, 제이에스 농업 연구소에도 참외 샘플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후에 단단한 참외는 적당한 의약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베이스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참외는 마무리가 된 건가?”

진석은 그 외에 한국에서 처리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농업 연구소부터, 북카페, 축구단, 농산물 유통 분야와, 여러 가지 작물들의 공급문제까지, 물론 이수정이 대부분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진석은 최대한 마무리를 다 하고 홀가분하게 뉴욕으로 출발했다.

***

뉴욕행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뉴욕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시 가다보니, 한국과 미국의 그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론, 여객기의 퍼스트 클래스는 부족함 없이 편했다. 서비스도 훌륭하고 식사도 만족스러웠다.

진석은 서부 영화를 보다가, 좌석에 누워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영화는 이미 끝난 후였다.

“뉴욕은 아직인가요?”

옆을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거의 다 왔군요.”

진석은 기지개를 켰다. 두둑하는 소리가 목에서 들려왔다.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장기비행에 따른 피로보다는 뉴욕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한국언론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몰려들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경험이 있는 일이었다. 진석은 잘 해낼 자신감이 있었다.

뉴욕의 관문 JFK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제이에스 그룹도 이 비행기처럼, 두 번째 성공, 두 번째 도약으로 진입하는 관문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진석의 인생에도 두 번째 성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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