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상쾌한 흙당근(3)
“와, 고양이다, 고양이, 내가 잡을 거야.”
“야..야옹...야아옹...”
꼬마 소녀가 고양이를 추격하고 있었다.
“유리야, 그만해, 고양이를 괴롭히면 안 돼.”
소녀를 피해 고양이는 카페 뒤쪽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따님이 많이 건강해진 것 같네요.”
“예, 이진석 사장님 덕분에 유리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 덕이라고요?”
“예, 아무리 생각해도, 카페에서 보라색 당근 주스를 마시고부터 유리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는 보라색 당근은 저희가 따로 공급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무상으로요.”
“예, 와,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유리 너도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
“고맙습니다. 아저씨..”
“하하, 그래, 대신 고양이는 괴롭히면 안 돼요..알겠지?”
“예, 앞으로는 야옹이는 괴롭히지 않을게요.”
진석은 귀여운 대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카페 안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오늘은 꼬마 손님들이 많이 보이네요. 소진 씨..”
“예, 꼬마들이 책을 읽으러 많이 와요, 고양이들하고도 잘 놀고요.”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은 일이죠.”
진석은 책을 읽는 아이들을 쭈욱 한 번 살펴보았다. 대부분 동화책을 읽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어려운 철학책이나 과학 서적을 읽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와, 너는 되게 어려운 책을 읽는구나, 블랙홀과 양자물리학은 너무 어려운 책 아니니?”
“아뇨, 재밌는데요. 저는 수학도 잘하고 과학도 1등이거든요. 그래서 이 책도 되게 쉬운데..”
“오, 그래?”
“소진 씨, 이 카페도 점점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예, 많지는 않지만, 관광객들이 꽤 오는 편이에요.”
애월읍의 카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진석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시간의 역사, 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민지 씨, 오다보니, 선거 때문에 시끄러운데,”
“하루종일 그래요, 지방선거가 다음주잖아요?”
“서울시장은 누굴 뽑을 생각이야?”
“뭐, 아무나요.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요?”
“그래도, 마음에 생각해 둔 후보가 있을 거 아냐?”
“그런 거 없는데요. 공약집을 읽어보기는 했는데 큰 차이를 모르겠어요. 후보마다 좋은 건 다하겠다는 것 같은데. 나중에 몇 개나 지켜지겠어요?”
사실, 서울에 살고는 있지만, 진석도 서울 시장 선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강원도와 제주도 지사 선거에 더 관심이 있는 진석이었다.
강원도 지사인 오명진과는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앞으로도 같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제주도 고일준 지사의 선거도 마찬가지. 제주도 지사와 강원도 지사는 각각 다른 당이었지만, 둘 다 사업 파트너라는 점에서 진석은 두 사람의 당선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진석의 바람과 달리, 오명진도 고일준 지사도 여론조사 상으로는 고전 중이었다.
“사장님은 누굴 뽑으실 건데요?”
“나도 별로..서울시장은 관심이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강원도와 제주도 지사 선거에 더 관심이 가고 있다고.”
“어차피, 그쪽이라면, 선거권도 없으시잖아요.”
“하하, 그건 그렇지만, 우리 사업 파트너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란다는 말이지.”
그 주 내내, 시끄러운 선거운동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선거가 끝나고, 오명진과 고일준 지사 모두 선거에서 박빙으로 신승하며 도지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
춘천, 강원도 도지사 집무실,
“재선, 아니, 3선을 축하드립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오명진 지사님은 12년이나 도지사 직을 유지하게 되었군요.”
“휴우, 정말, 이번 선거는 힘든 선거였습니다. 어쨌든 이기기는 했지만 말이죠.”
선거운동 때문인지, 오명진 지사는 조금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하하, 도지사님 얼굴을 보니까 정말 고생하신 것 같네요.”
“뭐, 그래도 선거가 다 끝나고 복기를 해보니, 이진석 사장님 덕을 본 것 같습니다.”
“예, 제 덕을요?”
“개표를 해보니까, 지난 선거에서 크게 졌던, 인제군 쪽에서 표가 많이 나왔거든요.”
“음, 인제군이라면, 역시. 제이에스 농업연구단지가 민심에 영향을 준 모양이군요?”
“예, 저도 표를 많이 얻었고, 이동식 군수님도 큰 표 차이로 재선 되시고요. 확실히, 제이에스의 연구단지를 만드는 데 힘을 쓴 정치인들에게 정당에 관계 없이 표가 많이 몰린 것 같습니다.”
“뭐, 그것 때문에 당선되신 건 아니겠지만, 도움이 되셨나니 저도 기쁘네요.”
“그래서 말인데 말입니다. 연구단지는 이제 완성이 된 것 같고, 그다음 단계로 농산물 가공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요?”
“농산물 가공요?”
“예, 쉽게 말해서, 농산물은 1차 산업 아니겠습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식자재니까, 기본 재료로 가정에서도 많이 구매하지만 최근에는 인구구성이 크게 변하고 있죠.”
“인구구성요?”
“예,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전체 가구 수에서도 3인이나 4인 가족보다 1인 가구가 최대 가구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음, 혼자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거군요?”
“예, 기존에 전통적인 가구 구성은, 남자 가장과, 전업주부인 여성, 그리고 자녀들 이런 식이었죠.”
“집에는 전업주부가 있으니, 집에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하는 게 표준이었을 테고, 감자나 당근, 호박 같은 농산물을 식자재로 소비했을 거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1인 가구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직장에 다니는 미혼 여성이라면,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호박을 자르고 생선을 다듬어서 찌개를 끓이고 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겠죠. 퇴근하고 피곤한데, 집에서 요리까지 하기는 귀찮은 일이죠.”
“그러다 보니 외식 비중도 높아지고, 외식 외에도 반조리 식품이나 어느 정도 가공된 농산물이 더 인기죠. 예를 들어서, 김장 배추도, 생배추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절임 배추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거든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명진 지사는 3선에 성공한 베테랑 정치인답게, 선거 승리의 기쁨보다는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석으로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결국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니 말이다.
“도지사님의 말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디에 농산물 가공 공장을 만들자는 말인가요?”
“저는 홍천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천요?”
“예, 인제보다는 서울에 가깝기도 하고요. 군사도시로 최근에 경제가 하락세라는 공통점도 있고.”
“음, 정치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하, 그런 것도 생각하시나요?”
오명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명진 정도 되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같이 사업을 하는 파트너인데, 자세한 내막 정도는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번에 홍천군수에 당선된 김성락 군수는 제 학교 후배입니다. 서울대 정치학과 말입니다.”
“음, 역시 후배에 소속당도 같겠죠?”
“맞습니다.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지금은 제가 다시 도지사를 맡게 되었지만, 이제는 3선이니까, 더 하는 건 좀 보기에도 안 좋고...”
“김성락 군수를 차기 도지사로 키우시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강원도는 믿을 만한 후배에게 물려주고 저는 중앙으로 진출할 타이밍이죠.”
오명진은 이번 4년의 임기를 채우면, 12년을 하는 셈이다. 그 정도 기간을 한 사람이 강원도의 지사를 하고 있다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없을 리가 없다. 거기에 오명진은 차차기쯤에는 대권을 노리고 있는 거물 정치인...
후배고 믿을 만한 김성락을 키워, 차기 도지사로 만들어주면, 후임자에 의해서 자신의 10년 이상의 도정이 비판받는 일은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진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도지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
“어, 지난번에 핫도그 먹던 아저씨네?”
뒤를 돌아보니, 저번에 본 적이 있는 꼬마 축구팬이었다. 나름 열성 팬인지, 지난번처럼, 강원 fc의 저지를 입고 응원하고 있었다.
“어, 너도, 축구 보러 또 왔구나?”
지난번에 축구를 관람하러 온 후로, 한 달이 지났다. 진석의 제이에스에서 고용한 영양사가 강원 fc에 투입된 지도 한 달째..
진석은 강원 fc의 체력 강화, 그중에서도 심폐기능 강화를 위해 공간에서 생산한 보라색 당근을 식단에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당근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요리에 넣을 수 있는 기본 식재료라, 지난 한 달 동안, 강원 fc의 식단에는 보라색 당근이 매일같이 오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주스 형태로 선수들에게 음료로 제공되기도 해서,
강원 fc의 선수들은 매일 같이 상당한 양의 보라색 당근을 섭취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때, 오늘은 우리 팀이 이길 것 같니?”
“잘 모르겠어요.”
챌린지 리그는 막판으로 가고 있었다. 아직 강원 fc는 중위권 그룹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전반이 시작되자, 강원 특유의 패싱 게임이 시작되었다. 현란한 패스 연결에, 상대팀은 무리한 태클을 시도하다가, 공간을 내주기 일쑤...
“찬스다..”
상대의 과감한 태클이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중앙에 넓은 뒷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강원 공격수가 과감하게 중거리를 시도하자, 골키퍼가 몸을 달려 펀칭을 시도했다. 하지만, 구석으로 공이 빨려들어가며, 강원이 먼저 1득점..
“골이다, 우리가 이기고 있어요.”
꼬마 팬도 신이 난 모양이었다.
후반이 되자, 상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강원 fc 선수들은 활동량을 늘리며, 공간을 좌우로 크게 벌리며 롱패스를 시도했다.
그에 질세라 상대로 먼 거리를 열심히 뛰어가며, 강한 압박 전술을 편다..
하지만, 후반에도 강원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공간창출과 숏패스 혹은 롱패스를 적절히 시도하자. 오히려 체력이 먼저 방전된 쪽은 상대팀이었다.
결국, 후반에 강원의 역습이 성공하며, 2점차 리드...
“와, 아저씨, 오늘은 이길 것 같아요.”
결국.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며, 경기는 3:0의 강원 fc가 승점 3점을 챙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김현수 감독도 관중석의 진석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멋진 경기였습니다. 감독님.”
“하하, 다 구단주님 덕분입니다. 구단주님 말대로, 식단을 바꾸었더니 선수들 체력이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오, 그래요. 식단에 변화를 준 게 효과를 봤군요?”
오늘 승점 3점을 더 얻어서, 강원 fc는 4위까지 순위가 상승했다.
“4위면, 2위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겁니까?”
“요즘은, 팀들 간에 실력이 평준화가 돼서, 2위와도 3점 차이입니다. 다음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 변동이 있을 수 있죠.”
“남은 경기게 세 경기인가요?”
“예, 지금 3연승 중인데, 3연승을 더 하면, 우승이나 최소한, 2위에 들어서, k리그 진출을 노려볼만 합니다.”
“그렇군요.”
이미 3연승 중이니, 앞으로 3연승을 더 못하란 법도 없었다. 남은 경기에 따라, 생각보다 빨리 k리그로 올라갈 기회였다.
“남은 3경기에 모든 걸 걸어보겠습니다.”
“좋은 기회니까, 한 번 모든 걸 걸어보죠..”
***
제이에스 본사,
진석은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신문을 보세요?”
“어, 수정 씨, 이것 좀 봐.”
“뭐에요? 스포츠난이네, 아, 강원 fc가 2위로 k리그 최종 승격을 확정했다. 이런 기사네요.”
“그래, 우리 제이에스가 후원하는 팀이 드디어, 1부리그로 승격이군.”
“그건 좋지만, 축구팀이 지금도 일 년에 100억이나 돈을 쓰잖아요. 그런데 k리그에 승격되면, 구단 운영비가 더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뭐, 그렇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으니까.”
챌린지 리그와 k리그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챌린지 리그는 실력과 무관하게 2부리그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도 편견을 갖고, 대중으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k리그는 국내 1부 리그로, 축구의 인기를 감안하면, k리그 구단의 홍보 효과는 엄청나다.
제이에스가 k리그 구단의 모기업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투자하는 금액 이상의 홍보 효과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만한 가치요?”
“그래, 이제 제이에스 그룹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