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톡쏘는 송로버섯(1)
뉴욕 맨하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1호점.
“축하드립니다.”
댄 김은 진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 박사님 덕분이죠.”
“제 덕은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데이비드 정,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요.”
“신세는요.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맨하튼의 한인타운에 들어서는 제이에스 인터네셔널 매장은, 말하자면 제이에스 스토어의 글로벌 버전이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바로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이었다.
“일단은 한인타운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제이에스 스토어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있으니까요. 한국인, 아시아인, 그리고 본토 미국인들 이런 식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거죠.”
데이비드 정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였다.
“잘 될 것 같네요. 매장 규모는 서울에 있는 매장들보다는 좀 작기는 하지만, 차차 늘려가면 되겠죠.”
서울에 있는 제이에스 스토어와의 차이라면, 강원도의 농산물들 대신 제이에스의 기능성 건강보조식품들이 매장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한국 외에도 아시아 산 과일 등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강원도 농산물들이 안 보이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죠.”
진석의 말에, 데이비드 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미국이니까요. 한국산 농산물을 바로 들여오는 건 좀 어렵습니다. 특히 서울의 제이에스 스토어처럼 갓 수확한 유기농 농산물을 소량으로 그때그때 가져오는 건 뉴욕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진석의 공간을 통해, 뉴욕으로 바로 직행하는 통로를 만들어 시차 없이 농산물을 유통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여러 가지 법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진석은 강원도 산, 유기농 채소들은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농산물들이 많이 보이네요. 이건, 태국산 골드 망고, 필리핀에서 온 파인애플도 있고 말입니다. 제주도 산 아이스크림 바나나도 있고요, 중국에서 온 용과도 보이는군요.”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은 그 이름에 걸맞게 아시아 지역 농산물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아시안 마켓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건 뭐죠?”
“송로 버섯입니다. 중국산이죠.”
“중국에서도 송로 버섯이 생산되나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송로 버섯이 있기는 하죠. 하지만, 서양 송로에 비해서는 품질도 떨어지고 가격도 3분의 1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송로 자체가 고가의 식자재라, 중국산도 1kg에 천 달러 정도 합니다.”
데이비드 정의 말에 진석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국산이 그 정도면, 유럽산은 얼마나 하는 겁니까?”
“킬로당, 3천 달러 정도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중에서도 최고급품이라면, 이탈리아산 화이트 트러플이죠. 그건, 1kg 가격이 6천 불 이상이니까, 한국 돈으로 대충 7백만 원 정도 하겠네요.”
데이비드 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값의 한 10분의 1수준이네요?”
“그렇습니다. 요새는 금값도 많이 올라서 황금 가격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더 귀해서, 실제로 귀족들이 같은 무게의 금과 교환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말 그대로 숲에서 자라는 황금이네요. 송로 버섯이 귀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뭐, 귀해서 그렇죠. 트러플은 서양 요리에 많이 들어가는 최상급 식재료거든요. 육류를 많이 먹는 서양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향과 풍미를 만들어 내죠.”
진석도 데이비드 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이나 유럽 여행 중에 들른 고급 레스토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트러플이었다. 귀한 식재료인 트러플을 얼마나 제공하느냐가 식당과 메뉴의 가치를 더 하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알고 보면 버섯인데, 인공재배는 안 되는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듣기로는 2차 세계대전 전에는 프랑스에서 트러플을 인공재배 했다는 기록도 있기는 했죠.”
“그래요?”
“뭐, 그런데, 전쟁을 겪으면서, 재배 시설이 파괴되고 그 후로는 명맥이 끊겼다는 것 같습니다.”
“인공재배는 어떻게 한 거죠?”
“글쎄요, 그것까지는 제가 버섯 전문가는 아니라서. 하하...”
“자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샴페인으로 축배나 들죠.”
뉴욕의 제이에스 인터네셔널의 매장 오픈일에는 축하 공연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샴페인이 제공되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스타일은 좀 다르군요.”
“예, 미국은 개업을 한다고 가수를 부르지는 않죠.”
***
맨하튼 워터라인 스퀘어. 진석의 아파트...
이번 출장은 비행기를 이용했다. 공간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뉴욕의 맨하튼까지 다이렉트로 올 수도 있었지만, 뉴욕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거쳐 정식으로 입국 수속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갈 때도 비행기를 타야 간다는 말이지. 귀찮게 됐는걸.”
뉴욕에는 1주일 체류일정으로 온 거라, 1주일 동안은 꼼짝없이 뉴욕에 있어야 했다.
“심심한데, 뉴욕 구경이나 할까?”
진석은 아파트에 혼자 있기도 지겨워서, 뉴욕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디가 좋으려나?”
혼자서 뉴욕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진석은 인터넷으로 뉴욕의 갈만한 곳들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음, 여기가 맛집이군. 여기는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고, 여기는 멕시칸..”
중간중간 갈 만한 식당도 검색하고...그리고..이건 도서관인가?
책을 좋아하고, 북카페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는 진석이라, 책이나 도서관에도 관심이 많이 갔다. 미국의 도서관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뉴욕의 대형 도서관에 대한 흥미도 생기고 말이다.
“멕시칸 식당, 근처니까. 점심 먹고 한번 들러봐야겠군.”
***
53번가 뉴욕 공립 도서관..
“이렇게 작은가?”
생각보다 도서관의 규모는 작았다. 뉴욕 대학처럼, 뉴욕 공립 도서관도 하나의 큰 도서관이 아니라, 뉴욕 시내 여러 곳에 작은 도서관 지점들이 있는 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마치 프랜차이즈 도서관 느낌이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이라 엄청 클 줄 알았지만, 작은 여러개의 도서관들이 있는 것이라, 하나의 도서관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대신에, 도서관이 여러 개가 있으니까,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좋겠군.”
미국이라 당연히 장서들은 영어로 되어 있었다. 진석의 영어 실력은 그럭저럭 회화는 가능하지만, 전문적인 책을 읽기에는 약간 부족한 실력..
“영어가 짧아서, 읽어도 잘 모르겠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결국, 영어 실력 부족으로 도서관은 그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도서관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책들은, 최신 서적도 있었지만, 진짜 오래돼 보이는 책들도 안쪽을 채우고 있었다.
“뭐지? 이건, 버섯에 관한 책들이네..”
도서관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버섯에 관한 책들이 있는 구역에 오게 되었다.
“버섯이라, 송로 버섯에 관한 책들도 있으려나?”
진석은 책장 여기저기를 뒤져 보았다. 다행히 송로버섯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보였다.
그중에서 진석의 흥미를 끈 것은 조셉 존슨이라는 사람이 쓴 프랑스 트러플에 관한 책이었다.
내용은 대충,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에서 트러플을 인공재배 하던 농부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송로버섯을 인공으로 키운 기록이 있다는 거군, 흥미로운데.”
지금도 인공재배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80년 전쯤에 프랑스에는 농부들이 트러플 재배를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책에 기록된 방식은, 이런 것이다. 송로 버섯은 숲속의 떡갈나무 아래에서 자라는데, 문제는 산삼처럼 성장하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송로 버섯 포자가 땅속에 들어가, 떡갈나무 뿌리에 기생해 생존하다가, 땅 위로 솟아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기록에 의하면, 20년 정도라는 것이다.
프랑스 농부들의 방식은, 송로버섯을 발견한 떡갈나무 아래에 작은 떡갈나무 묘목을 심는 것이다. 그런 후에 나무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 땅속에 포자가 작은 떡갈나무 뿌리에 닿아 포자가 착상되고,
그 떡갈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거기에서 송로버섯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대략 20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역시 시간이 문제군, 송로 버섯을 하나의 작물이라고 생각했을 때, 송로 버섯이 제대로 이식되었는지 확인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말이 20년이지, 지금 30대인 진석이 50대가 되어야, 이런 인공재배한 송로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의 시간 진행을 따르게 된다면 말이다.
당연히 이런 방식의 송로 재배는 대를 이어 전해지는 송로 재배지를 통해 가능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걸, 아버지가 채취하고, 그 돈으로 손자를 키우는 데 쓴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송로 버섯 포자가 착상된 어린 떡갈나무를 심어 놓으면, 20년쯤 후에 손자가 그 나무 아래에 솟은 송로 버섯을 채취해 돈을 버는 구조다.
그런데 전쟁으로 한 번 송로 재배의 사이클이 깨져 버리자,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송로 재배에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송로 버섯을 채취한 떡갈나무 아래 심어 놓아 이식한 어린 떡갈나무가 성장해도 꼭 송로가 자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확률적으로 절반 이하의 성공률이라는 것이다.
“20년을 기다려야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있는 로또 복권 같은 거군?”
어찌 보면 송로의 인공재배 법은 이미 나와 있지만, 현대인의 시간 개념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방식인 것이다.
보통, 농업의 경우 재배 주기가 1년 이내가 많고, 아보카도나 사과 같은 과수에 열리는 열매라고 해도, 3년이나 7년 이내에는 수확이 가능하다. 그런데, 송로 버섯은 그 재배 주기가 최소 20년인 것이다.
“당연히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키울 거라면, 숲에서 자연 채취를 하는 게 더 쉽겠지.”
하지만, 시간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진석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20년이든, 200년이든, 시간이라는 것은 진석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린 떡갈나무를 이용해서 인공재배를 해볼까? 기왕이면, 송로버섯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화이트 트러플을 말이야.”
***
이태리, 투스카나. 산 미니아토..
“여기가 그 화이트 트러플로 유명한 곳이군요?”
“예, 산 미니아토라고, 이태리에서 화이트 트러플이 나는 몇 안 되는 곳이에요.”
서현진은 이태리에서 성학을 공부하는 유학생이라고 했다. 틈틈이 학비도 벌 겸, 관광 가이드 겸 통역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악을 하셔서 그런지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
진석은 옆자리의 지연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토스카나의 시골길을, 페라리 812 슈퍼 패스트가 굉음을 내며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이진석 사장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정말요?”
“굉장히 혁신적인 사업가라고 하더라고요?”
“혁신적이라? 그럴지도 모르죠.”
“농업이라는 것이 좀 낡은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그 인식을 깨고 새로운 작물을 만들어 내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하하, 뭐,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쪽에 마을이 보이는데, 저기가, 산 미니아토인가요?”
“예, 바로 저기예요.”
***
“이쪽은 로베르토 씨, 여기는 한국에서 오신 이진석 사장님이에요.”
“본 조르노.”
“반갑습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이태리어는 거의 모르는 진석이라, 서현진의 통역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딸뚜뽀, 딸뚜뽀..비앙꼬..”
“뭐라는 겁니까?”
“이태리 말로, 아니, 투스카나 방언으로 송로버섯을 딸뚜뽀 라고 해요. 딸뚜뽀 비앙꼬는 화이트 트러플을 말하고요.”
로베르토는 중년의 대머리였는데, 갈색의 돌덩이 같이 생긴 것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뭐죠?”
“화아트 트러플요, 화이트 트러플은 실제로는 겉은 갈색에 가까워요.”
“오, 신기하네요.”
로베르토는 자신이 직접 채취한 화이트 트러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석의 부탁으로 화이트 트러플을 채취한 숲으로 진석과 현진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
“여기래요.”
투스카나 지방 특유의 아름다운 숲속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커다란 떡갈나무가 보였다. 로베로트는 떡갈나무를 가리켰다.
“비앙꼬, 딸뚜뽀 비앙꼬..”
진석이 나무 아래쪽을 보니, 작은 떡갈나무 묘목이 보였다.
“현진 씨, 저 작은 떡갈나무를 캐어가도 되냐고 물어봐요.”
현진이 통역을 시작했다.
“그건 곤란하다는데요.”
“여기서 캔, 화이트 트러플 만큼, 돈을 주겠다고 해봐요.”
“예, 정말요?”
“예, 난, 저 작은 떡갈나무가 필요하다고요. 어서 통역해 줘요.”
서현진이 통역하자, 로베르토가 잠깐 놀라는 얼굴이 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뭐래요?”
“정말, 그 돈을 준다면, 맘대로 하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