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씬한 아보카도(2) (43/183)

60화. 날씬한 아보카도(2)

“얼마나 잔 거지?”

진석은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간은 낮과 밤이 없는 세계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은 없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현실과는 무관하니 말이다.

“잘 주무셨습니까? 공간주님.”

“어, 사령관, 그래, 더 이상은 자라고 해도, 못 잘 정도로 말이야.”

“산에, 아보카도를 심을 거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래, 맞아. 산으로 가자고.”

오늘도 말을 타고, 공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산까지 일꾼들과 이동을 했다.

“여기가 좋겠군.”

공간은 꾸준히 확장되고, 산도 계속 그 면적이 커지고 있었다. 산에서는 각종 작물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되도록 더 높아지는 것보다는 면적이 확장되도록 산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하자고.”

진석은 비어 있는 밭을 가리켰다. 일꾼들이 재빨리 작업을 시작했고, 진석은 가져온 씨앗을 땅에 심었다. 그리고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떡잎이 나오는가 싶더니 나무는 빠르게 성장을 시작했다.

“뭐지? 어디까지 자라는 거야?”

진석도 아보카도 나무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열대 작물이라 그런지, 타원형의 넓은 잎과 줄기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크게 자라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사령관, 한 10미터 아니, 15미터는 되는 것 같은데.”

“밭에서 키우기에는 좀 큰 작물이네요.”

“그래, 밭은 그렇고, 산기슭에 나무를 베어내고, 넓게 넓게 심어 보자고.”

일꾼들이 아보카도 나무를 심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 더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진석은 처음에 심은 나무에서 아보카도 열매를 채취했다.

“나무가 높아서, 올라가서 따야 할 것 같아.”

“제가 올라가 보겠습니다.”

사령관은 겁도 없이 원숭이처럼, 아보카도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담을 게 필요한데요.”

“잠깐, 기다려봐, 칼과 바구니를 올려 보내줄게.”

진석이 열매를 따기 위한 도구를 올려주자, 사령관이 아보카도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아보카도를 칼로 잘라보니, 제주도에서 먹은 것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씨를 골라내고,

이번에는 산기슭에 넓게 아보카도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나무가 크게 자라는 걸 고려해서, 충분한 간격을 띄우고 땅에 씨앗을 심었다.

다시 시간을 가속하자, 땅속에서 파란 줄기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북카페, 홍대 본점.

“이게 아보카도라고요?”

“그래, 좀 특이하지.”

“이건 빨간색인데요? 아보카도 농장주인 말로는 아보카도는 녹색이다가, 갈색, 검은색으로 익어 간다고 하던데. 빨간색이란 말은 없었어요.”

“이건 좀 새로운 종류야,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그래요?”

유민지는 신기하다는 듯이 붉은 빛이 감도는 아보카도를 살펴보았다.

“점장님, 그게 뭐예요?”

“어, 이건, 새로 나온 아보카도인데, 참, 인사드려, 우리 회사 사장님,”

“어머, 안녕하세요. 설지연이라고 합니다.”

“오, 새로운 알바생인가?”

“예, 어제부터 일하고 있어요.”

“그래, 열심히 일해봐요.”

설지연은 홍대 미대생이라고 하는데, 조금 통통한 스타일이었다.

“이게 아보카도라고요? 대박..빨간 아보카도가 다 있었네, 이거 동영상을 좀 찍어도 돼죠?”

“맘대로 해요. 그런데 동영상은 찍어서 어디에 쓰게?”

“제가 스트리머도 좀 하고 있거든요.”

“스트리머? 아, 유튜브 그런 거 말이군.”

“예, 취미 삼아서 시작했는데, 잘 돼서 이제는 제법 구독자가 늘었어요.”

“무슨 컨텐츠를 촬영해요?”

“여러가지요, 그 중에서 조회수가 가장 잘 나오는 건, 먹방 컨텐츠예요,”

“먹방? 먹는 걸 보여주는 거 말이죠? 그런 것도 재밌더라고요. 다른 사람 먹는 게 뭐가 재밌나 싶다가도, 이것저것,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걸 보면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저도 원래, 먹는 걸 좋아하고 먹어도 살도 안 찌는 스타일이라, 가볍게 시작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계속 먹는 컨텐츠를 찍다 보니까, 10kg 이상, 체중이 늘었지 뭐예요.”

“뭐, 보기 괜찮은데요. 건강해 보이고.”

“저는 원래, 남들 시선 신경 쓰지는 않는데, 갑자기 살이 쪄서 옷도 잘 안 맞고 그런 건 불편하더라고요.”

“어머, 그럼, 먹방은 그만해야지. 컨텐츠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중요하잖아.”

유민지는 칼로 아보카도를 자르며 말했다.

“그래서, 저도 스트리머는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해볼까 하고요. 컨텐츠 찍는다고 매일 밤 야식을 반강제적으로 먹고 있었는데, 그것만 안 먹어도 살이 빠질 것 같아요.”

“스트리머도 쉽지 않은 일이군. 그건 그렇고, 민지 씨, 어때? 잘라보니까, 아보카도 맞지?”

“예, 그리고, 과육이 더 부드러운 것 같아요. 향도 더 좋은 것 같고.”

“그걸로 있잖아. 내가 알려준 프랑스식 아보카도 샌드위치, 그걸 만들어 보라고.”

“그거, 좀 맛은 별로던데.”

“그래? 난, 맛있게 먹었는데.”

유민지는 주방에서 뭔가를 찾아보는 것 같았다.

“뭐 해?”

“계란을 삶아서, 샌드위치에 넣어보려고요. 사장님이 만든 샌드위치는 뭔가 살짝 맛이 부족한 것 같아서, 계란을 더 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아무튼 제가 한 번 만들어 볼게요.”

“점장님, 저도 같이 할래요. 제가 이래 봬도, 음식 전문 스트리머라고요.”

옆에서 지켜보던, 설지연도 유민지를 돕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진석은 아보카도 한 조각을 고양이에게 내밀어 보았다.

“어때, 건강에 좋은 거라는데, 먹어 봐.”

“야옹..야아옹..”

잠시 야옹거리던 녀석은 아보카도를 외면해 버렸다.

“맛은 별로인가?”

진석은 생 아보카도를 입에 넣어 보았다.

“뭐야? 맛이 왜 이래? 과일이라면서 느끼하네.”

“사장님, 원래 아보카도는 기름기가 많아요. 대신, 그 오일 성분이 몸에 좋은 거라고요.”

“그래? 하지만 생으로 먹기는 좀 그런데.”

“자, 여기, 사장님의 프렌치 샌드위치에 계란을 추가한, 에그 드랍, 프렌치 스타일, 아보카도 샌드위치 대령입니다.”

“맞아, 크리스티나도 계란을 넣는 거라고 했거든,”

“크리스티나가 누군데요?”

“음, 와, 이거 더 맛있네. 확실히, 계란이 들어가니까, 뭔가 맛이 더 풍부해진 느낌인데.”

“그렇죠? 사장님이 전에 만들어 주신 건, 뭔가 약간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이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좋아, 이걸로 하자고. 이번 시즌의 새로운 메뉴 말이야.”

“음, 제 입에도 딱 맞아요.”

설지연도, 샌드위치 하나를 먹으며 엄지척을 해보였다.

진석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이수정이었다.

“사장님, 댄 김이 전화 좀 해달라는데요.”

“댄 김? 알았어, 바로 전화, 아니, 알았어, 내가 바로 처리할게.”

***

맨하튼 워터라인 스퀘어, 진석의 아파트

“허드슨 강이라? 언제봐도 멋지군.”

멀리 허드슨 강이 보이고 있었다. 진석은 댄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진석 사장님. 마침 드릴 말이 있어서 전화했었습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시죠?

좀 긴 이야기라.”

“그럼 만나서 이야기하죠.”

“만나서요? 지금 어디신가요? 서울 아닌가요?”

“뉴욕에 와 있습니다. 같이 저녁이나 하시죠.”

“뉴욕요? 알겠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어디서 만날까요?”

“저는 뉴욕은 잘 모르니까요, 편한 곳으로 정하시죠.”

댄 김은 맨하튼 인근의 프렌치 식당으로 진석을 데려갔다.

“여기가,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이죠.”

“이건 송로 버섯인가요?”

“예, 제법 고급 레스토랑이거든요, 고급 재료를 듬뿍 쓰죠. 대신 값도 비싸고요.”

“그건, 그렇고, 임상실험은 잘 진행되는 겁니까?”

“예, 이제 곧 1차 실험이 마무리되고, 2차와 3차 실험 준비해 들어갈 겁니다.”

“오래도 걸리는군요.”

지난번에 댄 김을 만났을 때, 댄 김이 요구한 로비 자금이 잘 먹혀들어갔는지, 1차 임상실험은 생각보다 일찍 끝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빨리 진행된 겁니다. 2차와 3차도 일정이 바로 잡혔고요.”

“역시 로비의 힘인가요?”

“로비든 뭐든, 일을 빠르게 진행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은 각오해야죠.”

“돈이야, 큰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죠.”

“하하,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댄 김은 진석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뉴욕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 제가 전화를 할 걸 미리 알고 오신 건 아닐 테고?”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까, 뉴욕에도 일이 많죠.”

“음, 그렇겠군요. 저도 한국 소식을 듣고 있는데, 제이에스가 여러 가지 재밌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재밌는 사업요?”

“예, 화장품 사업도 크게 성공하시고, 농산물 유통도 하신다면서요?”

“하하, 미국에도 소문이 난 건가요?”

“저도, 한인 마트에 가끔 가는데, 요새 아이스크림 바나나가 아주 인기입니다. 미국인들도 좋아하고요.”

“그래요? 미국 농산물 시장에도 조만간 진출해야겠네요.”

“생각이 있으시면, 괜찮은 사업가를 알고 있는데 소개시켜 드릴까요?”

“사업가요?”

“재미교포인데 믿을만한 친구죠. 사업 수완도 좋고, 뉴욕에서 사업을 오래해서 미국 쪽 사정도 잘 알고 말입니다. 혹시, 미국에 농산물 관련된 사업을 해보시려면, 이 친구에게 한 번 연락해 보시죠.”

댄 김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데이비드 정, 이라?”

“제 친구의 동생인데, 한인 마트 운영도 하고, 농수산물 도매 쪽도 잘 알고 있죠.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죠.”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어, 유민지는 어디 갔지?”

“유민지 전무님요? 식자재 주문하러 가신다고 나가셨는데.”

“어, 그래요? 새로운 알바생인가? 못 보던 얼굴이네.”

“어머, 사장님 저 기억 못 하세요? 서운해요. 저, 설지연이에요. 미대생 설지연요.”

“어, 설지연? 설지연 씨?”

듣고 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설지연이라는 이름도 성이 특이해서 기억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진석이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제가 살이 많이 빠졌죠?”

“그래, 지난번에 봤을 때가 1주일 전 아니었나? 갑자기 날씬해진 것 같네요.”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날씬해졌어요.”

“그 먹방 방송을 그만둬서 그런 건가?”

“아뇨,”

설지연은 진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주 내내, 먹방 컨텐츠를 찍었는 걸요. 갑자기 그만둘 수가 없어서요. 오랫동안 하던 건데, 그만두기에는 그동안 들인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그래? 그런데 살은 어떻게 빠진 거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 샌드위치 때문 아닐까요?”

“샌드위치?”

“예, 다이어트 한다고, 이것만 계속 먹었거든요, 프렌치 아보카도 샌드위치 말이에요.”

“그래요?”

진석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산에서 재배한 아보카도라면, 뭔가 신비한 효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건가?”

“샌드위치에 말이죠?”

“아니, 그보다도 아보카도 말이에요, 그 빨간 아보카도, 그걸 먹으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지연 씨 생각은 어때요?”

진석의 말에 설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그 빨간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엄청 먹었거든요.”

“체중이 얼마나 빠진 거죠? 일주일 동안.”

“음, 대충, 10kg 이상은 빠진 것 같아요.”

“일주일 동안 10kg이라 단기간에 엄청난 체중 감소인데..”

“예, 이게 원래 제 정상 체중이기는 하지만요. 그동안 먹방으로 늘어난 체중이 한 번에 다 빠진 셈이죠. 저도 신기해요.”

일주일에 10kg이라면, 하루에 1kg 이상 체중이 감소했다는 말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체중 감소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설지연 씨가 따로 운동을 하거나, 먹는 걸 줄인 건 아니죠?”

“아뇨, 먹방을 계속 찍는라, 평소보다 더 먹었죠. 그것도 밤에 야식으로..”

“그래요?”

“저도 정말 신기해요. 밤에는 먹방 찍으면서 많이 먹고, 낮에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그랬는데도 살은 계속 빠지더라고요. 사장님, 정말, 이 빨간 아보카도가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걸까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와, 그럼 정말 대박이잖아요? 다이어트 아보카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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