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바나나(3) (41/183)

58화. 맛있는 바나나(3)

“제주경제 신문, 최별 기자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이름이 아주 예쁘시네요.”

제이에스 그룹이 제주도에 바나나 농장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제주도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부동산 투자도 아니고, 바나나 농장은 또 뭐래?”

“바나나든 뭐든, 제주도에 일자리가 생기면 좋지.”

“바나나 농사가 될까? 필리핀이나 그런 데서 싸게 들어오잖아?”

당연히 매스컴에서도 그런 제이에스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진석 사장님, 도민들을 대표해서 궁금한 것 좀 여쭤보려고 이렇게 인터뷰를 신청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제주도의 땅에 새로운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도민 여러분들에게 자세하게 알리고 지지를 얻어야겠죠.”

“예, 그럼, 첫 번째 질문인데요..”

***

“인터뷰는 잘하고 오신 거예요?”

이수정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인터뷰가 다 그렇지, 기자들이야 뻔한 것만 물어보고. 나야, 대답이 다 준비된 거니까. 어려울 게 있나..”

“제주도에는 몇 번 와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일 때문에 오니까, 또 느낌이 달라요.”

“그렇지, 나도 그래. 난, 전에 가족여행으로 한 번, 대학 때, 친구들이랑 한 번 여행 와 봤는데, 나도 올 때마다 느낌이 달라.”

제주도에는 2번 정도 와 봤는데, 관광객으로 왔을 때는 멋진 풍경이나, 유명한 곳들만 찾아다니다가 농장 준비를 하면서 평범한 농가나, 시골길을 다녀보니, 또 다른 제주의 멋이 있었다.

“제주도에도 시골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 조용하고 사람도 없고 이쪽 애월읍 일대도 생각보다 조용하네.”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야 사람들로 붐비겠지만, 조용한 시골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수정 씨, 바나나 농장도 농장이지만, 이런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북카페를 오픈하는 건 어때?”

“북카페요? 그런 건 유민지한테 말하세요. 그건 민지 담당이잖아요?”

“유민지가 없으니까. 수정 씨한테 물어보는 거지. 그래, 유민지도 여기 내려와서 카페를 준비하라고 해야겠다.”

생각해보니, 제주도에는 아직 오아시스 카페가 하나도 입점하지 않고 있었다. 서울처럼 사람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더라도, 한적한 시골에 북카페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진석은 바다가 보이는 몇몇 농장들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감자나 감귤을 생산하던 곳인데 최근에는 주인이 농사를 포기한 곳들이었다.

“이런 빈 농장들을 임대한다는 거죠?”

“그래, 땅을 다 사서 농장을 만들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이런 식으로 임대를 하면, 농장 주인들도 서로 윈윈이고.”

“왜 이런 노는 땅들이 많은 거죠?”

“원래는 다 농사짓던 땅인데, 땅 주인이 외지인들로 바뀌면서 농사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음, 아깝다. 나름 잘 관리되던 농지 같은데.”

“덕분에 우리가 임대해서 바나나를 키울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

제이에스 스토어. 영등포점.

“와, 이게 누구야, 대스타 한지수 님 아니신가?”

“어머, 사장님, 왜 그러세요. 쑥스럽게.”

제이에스 스토어가 새롭게 영등포점을 오픈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농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 서울에서 잘 될까하고 시작한 제이에스 스토어였지만,

제이에스에서 개발한 건강보조 식품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제이에스 스토어의 매출도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3번째로 영등포점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나도 이렇게 한지수 씨가 성공한 걸 보니까, 기뻐. 이렇게 보니까, 완전히 연예인이네.”

“정말요? 하긴, 저 진짜 연예인 맞아요.”

“하하, 그런가?”

보통은 이렇게 새로 카페나 매장을 개장하는 날에는 경품 추첨도 하고, 오픈 기념으로 연예인도 불러서 팬 사인회나, 아니면 축하 공연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전에 홍대점에서 일을 하다가, 최근에 영화배우가 된 한지수가 팬 사인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와, 한지수다.”

“진짜 예쁘네.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그래? 오빠, 내 눈에는 cf 때 나온 게 더 예쁘던데. 그거 있잖아? 이비자 크림 광고, 거기서는 진짜 여신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사람인데.”

“언니, 저 사인 좀 해주세요. 너무 팬이에요.”

“지수 씨,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팬 사인회 해야지.”

“예, 사장님, 나중에 봬요.”

한지수의 팬 사인회도 잘됐고, 매장 오픈도 성공적인 것 같았다.

매장 바로 앞쪽에는 제주도 농장에서 생산한, 고구마 바나나가 잔뜩 쌓여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 이거 아이스크림 바나나잖아.”

학생들이 바나나를 아이스크림 바나나라고 부르는 게 진석의 귀에 들려왔다.

“아이스크림 바나나? 고구마 바나나가 아니고?”

제이에스 스토어에는 보통, 주부나, 회사원들이 많이 오는 편인데, 오늘은 한지수의 팬 사인회가 있어서인지 중고등학생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중학생 여학생과 친구인 듯한 남학생 둘이 고구마 바나나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너희들 중학생이니?”

“예, 그런데요?”

“와, 아저씨, 여기 사장님이죠?”

“어, 나를 알아?”

“저기 tv에 나오잖아요?”

“어디?”

여자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입구 쪽에 설치된 대형 tv 화면이었다. 거기에, 제이에스 그룹에 대한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소리는 안 나오고, 화면만 재생되고 있어서 진석도 잘 몰랐는데, 창업자인 진석의 얼굴도 자주 비추어지고 있었다.

“뭐야? 저런 건 언제 틀어 놓은 거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들, 이 바나나를 아이스크림 바나나라고 부르네?”

“이거요? 친구들은 다 그렇게 부르는데, 아이스크림 맛이 난다고.”

“그래?”

“친구들도 이 바나나 좋아하니?”

“예, 좀 비싸기는 한데, 맛있다고 요즘 이 바나나 엄청 인기예요.”

“그래, 아이스크림 바나나, 고구마 바나나보다는 어감이 좋은데.”

이름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오죽하면, 네이밍 전문가가 따로 있으니 말이다. 고구마 바나나는 왠지 어감이 답답해 보인다.

“너희들 고구마 바나나 라고 하면, 느낌이 어때? 이름 말이야?”

“고구마는 좀 답답하다는 의미 아닌가요? 사이다는 시원하고.”

“역시 그렇구나.”

아이들의 생각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고구마 하면, 겨울에 별미인 군고구마 그런 추억이 떠오르는 이름이었는데, 요즘은 길거리에 고구마 장수들도 다 없어지고, 고구마 하면, 답답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저, 아저씨, 셀카 좀 같이 찍어 주세요.”

“어, 나랑? 그..그래..”

얼떨결에 연예인이라도 된 듯,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말았다.

“사장님, 뭐 하세요?”

“어, 수정 씨, 무슨 일이야?”

“강원도 대외협력부 장준영 과장이 할 말이 있다는데요.”

“장 과장님이 왜?”

매장 2층에 카페로 들어가 보니, 장준영 과장이 벌떡 일어나서 진석을 맞았다.

“장 과장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저, 그게..”

장준영 과장은 곤란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고구마 바나나 말입니다.”

“바나나가 왜요?”

“생산지가 제주도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제이에스 스토어는 강원도의 예산으로 임대료나 각종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원래는 강원도 농산물 전문 매장으로 기획한 거니까요.”

“아, 그건 그렇군요.”

“강원도 농산물 외에, 제이에스에서 개발한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건, 서로 협력관계이고 공동 투자자니까 이해할 수 있는 부문인데, 강원도 돈으로 운영하는 농산물 매장에 제주도 농산물까지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아, 제가 그걸 생각 못 했군요.”

물론, 제이에스 바이오의 농장에서 생산하는 바나나였지만, 제주도와 강원도는 별개의 자치단체, 강원도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제이에스 스토어에 제주도 산 농산물이 들어온다는 것이 구설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어쩌죠. 그렇다고 이미 판매를 시작한 걸, 중지할 수도 없고.”

“그 문제는 아무래도, 실무자인 제 수준에서 답을 드리기는 곤란하고 도지사님 같은 정치인들이 정무적 판단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라면, 제가 오명진 도지사님을 한 번 만나서 상의를 해봐야겠군요.”

***

“장준영 과장이 뭐래요?”

이수정은 카페를 나온 진석을 바짝 따라오며 물었다.

“강원도 말고, 제주도 산 바나나가 판매되는 게 문제가 되나봐.”

“하긴, 강원도 예산이 들어가니까,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죠.”

“뭐, 이런 건 정치적인 문제니까.”

“정치적 문제요?”

“그래, 사실, 별 건 아닌데, 장준영 과정도 걱정하는 게, 선거를 앞두고 이게 공격의 빌미가 될까 봐 신경 쓰는 거지.”

“음, 하긴 선거가 얼마 안 남기는 했죠. 선거철이 되면, 별의별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그 문제는 도지사를 만나봐야겠어. 그리고, 고구마 바나나는 이름이 너무 답답한 느낌이야.”

“이름을 바꾸시게요?”

“그래, 아까 중학생 애들이 그걸 아이스크림 바나나라고 부르더라고, 그게 더 맛있어 보이지 않아?”

“아이스크림 바나나라? 하긴, 바나나 안쪽에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그런 게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나중에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고, 고구마보다는 아이스크림 바나나가 좋을 것 같아. 수정 씨가 홍보팀과 상의해서 이름을 바꿔 보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유민지 전무랑, 제주도에 좀 다녀올게.”

“정말 북카페를 제주도에 개점하실 거예요?”

“그래, 마침, 괜찮은 농장 하나가 매물로 나왔다고 하더라고, 유민지랑 같이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매입해서 카페로 만들어 볼까 하고.”

***

제주도 애월읍

“와 저기가 한담해변이죠?”

“예, 풍경이 정말 좋죠?”

이채린은 요가 강사라고 했다. 서울에서 요가 강사로 활동하다가, 3년 전에 이곳 애월읍으로 귀촌을 한 셈이었다.

“농장이 굉장히 예쁘네요. 돌담도 있고. 직접 만드신 건 아니죠?”

“예, 원래, 제주도는 밭과 밭 사이의 경계에 돌담이 있더라고요. 경계의 의미도 있고, 밭에 돌이 많아서 쌓아 놓은 거라고도 하고.”

“음, 위치가 참 좋네요. 여기는 요가 학원으로 쓰는 건물이군요.”

목조 주택인데, 집 한쪽은 요가 학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좋은 곳인 것 같은데 왜 서울로 돌아가려는 겁니까?”

“정말 살기에는 좋은 곳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요가 강사거든요. 요가 수업을 하고, 수강료로 생활해야 하는데, 이곳은 수강생이 너무 적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인구 자체가 적으니까요.”

“예, 처음에는 제주도로 이주 열풍이 불 때라, 서울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으니까 요가를 배우는 수요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서울에 있을 때랑 비교했을 때 수입이 3분의 1로 줄어드니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더라고요.”

“결국, 경제활동 문제로 다시 서울로 귀환이군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왜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3년 동안 살았던 것만으로 인생의 큰 자산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하, 긍정적인 분이시군요.”

“그런데, 여기에 북카페를 만드시려고요?”

“왜요? 장사가 안 될까봐 걱정되세요?”

“여기가 아무래도 시골이라, 카페를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관광객들이 있다고는 해도, 여기보다는 한담해변 쪽에 많고 거기에는 카페도 제법 있거든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죠? 민지 씨.”

“그럼요, 우리 북카페 오아시스는 수익성보다는 주민들에게 독서 기회를 주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와, 대단하네요. 그만큼, 돈은 다른 곳에서 많이 벌고 있으시다는 말이겠죠?”

“예, 돈이라면, 여러 가지 사업으로 많이 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이런 한적한 해변이 보이는 마을에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왠지 멋지네요. 경제적으로는 성공해서 돈은 큰 관심사가 아니라니..”

“하하, 그런가요?”

“저도, 지금은 돈을 벌러 서울로 다시 올라가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그것도 좋겠네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먼 훗날에 또 이곳에서 만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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