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맛있는 바나나(2)
북카페 오아시스 건국대점.
“지영 씨, 고양이들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죄송해요, 사장님. 근처의 꼬마애들이...”
“꼬마애들이 뭐?”
“골목에서 놀다가, 배고픈 고양이를 보고는 여기로 데려오더라고요.”
“우리 카페로?”
“예, 배가 고픈 것 같아 보인다고 불쌍하다고, 그렇게 한 두 마리씩 애들이 들고 오는데 매정하게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캣타워에는 원래 고양이들이 한 마리 씩 들어갈 수 있는 투명 해먹이 달려있는데, 고양이들이 늘어나서, 서로 해먹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녀석들도 보였다.
“지영 씨, 할 수 없지, 애들이 데려온 걸 어쩌겠어. 캣타워를 더 설치해야겠네, 고양이들끼리 자리가 좁아서 부대끼는 모양이야.”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뭐지 저 애들은?”
“사장님, 그 동네 꼬마들이에요.”
“아줌마 안녕하세요.”
“어, 그래. 너희들 또 온 거야.”
“예, 저희가 또 어린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 왔어요.”
아이들이 들고 있는 상자를 보니, 정말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가 들어 있었다.
“아니, 이건 어미가 있는 고양이들 아니니?”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그치?”
“그래, 맞아. 어미 고양이 없었는데.”
“아이고 애들아, 새끼 고양이가 이렇게 단체로 모여 있으면, 어미가 먹이 구하러 가는 동안 숨겨둔 거야. 어미가 와서 찾을 거 같은데.”
“이미 데리고 온 걸 어떻게 해요?”
“그러고 보니, 여기 북카페에 고양이들이 늘어난 게 다 너희들이 한 거구나?”
“예, 여기는 공짜로 고양이를 키워준다고 해서. 불쌍한 고양이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여자아이가,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이 고양이들은 어쩌지? 이거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응, 그거, 우리 학교 뒤편에 편의점 옆에 골목 안쪽에 있었어요.”
“그래?”
“아, 거기라면, 제가 알아요. 제가 갖다 놓고 올게요.”
“그렇게 할래요? 그럼 지영 씨가 좀 수고 좀 해줘.”
김지영은 새끼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너희들은 이제 고양이는 그만 가져와야 돼. 알겠지?”
“왜요? 왜 고양이를 데려오면 안 돼요?”
“그거야, 이제 카페에 고양이들이 너무 많아서 안 돼. 저기 봐라, 캣타워도 자리가 모자라서 서로 해먹에 들어가려고 싸우잖아.”
“어, 정말이네, 이제 고양이는 그만 가져오자. 너무 많아.”
“그래, 이제 고양이 구조대는 해산...”
“고양이 구조대? 하하, 너희들 이제 보니 구조대 놀이를 하고 있었구나.”
“예, 우리가 이 동네 고양이 구조대예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해산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럼 해산 기념으로 아저씨가 선물을 줄까?”
“선물요?”
선물이라는 말에 꼬마애들이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진석은 들고 온 상자에서 바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짜잔..어때, 굉장하지.”
“빠나나잖아. 빠나난 집에 많아요..”
“그래, 집에도 마트에도 바나나는 흔하지, 하지만, 이런 맛있는 바나나는 못 먹어봤을걸?”
“맛있는 빠나나요?”
“그래, 노래도 있잖아.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이런 노래 모르니?”
“한 번 줘보세요.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 보게.”
진석은 바나나 송이에서 바나나를 하나씩 따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뭐지? 생긴 게 좀 이상한데..”
아이들은 생소한 모양의 바나나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바나나는 약간 휘어있는 오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진석이 공간에서 새로 재배한 씨가 있는 바나나는 더 통통하고 짧아서 고구마 같은 모양이었다.
“이거 바나나 맞아요?”
“그래, 신품종 바나나야?”
“신품종이 뭐예요?”
“새로 나온 바나나라는 말이야?”
“아, 신상 빠나나..음, 이거 되게 맛있다. 속에 아이스크림인가? 뭐지 이게..”
“맛있지, 안에 크림 같은 것도 있고, 그리고 이건 끝부분에 씨가 있거든 그건 먹는 거 아니다.”
“빠나나에 무슨 씨가? 어..진짜네..까만 씨가 있어. 와, 빠나나 씨야..”
“하하, 완전 신기하다.”
아이들은 바나나가 맛있는지, 한 송이를 다 먹어치웠다. 그때쯤 김지영이 빈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고양이들은 어미를 찾아준 거야?”
“예, 아이들이 말한 곳에 가보니까, 다행히 어미가 서성거리더라고요. 너희들, 이렇게 새끼 고양이는 함부로 가져오는 거 아냐.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 잃어버리고 얼마나 슬펐겠니..”
“예, 이제 고양이 구조는 그만할게요. 아줌마도 이거 먹어봐요. 대박 맛있는 바나나예요.”
“바나나? 이게 뭐예요?”
“어, 지영 씨도 하나 먹어봐, 우리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아주 맛있는 바나나야.”
김지영도 바나나를 하나 집어 들었다.
“신가하게 생겼네, 음...뭐지..안에..크림 같은 게 있어요.”
***
인제군, 제이에스 농업 연구 단지.
단지 중앙에 설치된 대형 온실에는 다양한 열대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미터 이상으로 자라나, 주렁주렁 송이들이 열려 있는 바나나들이었다.
“생긴 게, 고구마 같이 생겨서, 고구마 바나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측아 번식법이 아니라, 씨를 파종해서 저렇게 자란 거죠?”
“그렇습니다. 저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성장 속도도 3개월 정도면 수확이 가능합니다.”
소대영은 인제군 출신의 농대생이었다. 마침 졸업을 앞두고 제이에스 농업 연구 단지가 들어서면서 연구원으로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다행이네요. 바나나에 씨가 있기는 했는데 파종법으로 잘 자랄지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잘 자란 걸 보니.”
“맛도 전형적인 고구마 바나나로, 안쪽에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크림이 있는 것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좋아요. 일단은 파종법으로 재배하는 건 성공한 것 같군요. 축하합니다. 입사하고 소대영 씨가 첫 번째로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했군요.”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영 씨는 인제가 고양이죠?”
“예, 집은 용대리입니다.”
“오, 그래요? 그쪽은 계곡이 유명하지 않나요?”
“예, 12 선녀탕이라고 해서, 계곡 중간중간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연못들이 있습니다.”
“아, 그 선녀와 나뭇꾼의 배경이 바로 여기죠?”
“예, 전설이니까, 어디가 그 장소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지역 설화라고 할 수 있죠.”
이동식 인제군수와 약속을 한 것처럼, 최대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이 지역 출신들을 선발해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행히, 소대영은 첫 번째 임무를 잘 수행한 모양이었다.
“고향에서 취업을 한 거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소대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 아무래도, 그렇죠. 집에서 가까우니까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갈 수도 있고. 급여도 대기업 수준으로 좋고, 복지도 잘 되어 있어서, 친구들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도 많이 부러워들 합니다.”
“하하, 제이에스 바이오 농업 연구소가 알고 보니, 꿈의 직장이었군요.”
“그런 셈이죠. 그나저나, 이 고구마 바나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연구소에서 필요한 실험은 다 끝마친 것 같은데요.”
“이제 본격적으로 농가에 보급해야죠.”
***
제주도청, 도지사 접견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주도 지사, 고일준은 56세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이렇게 반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하하, 요즘 제이에스 바이오의 이진석 사장님을 모르면 간첩이죠.”
“그런가요? 다큐멘터리에 한 번 출현했더니 많이 알아봐 주시더군요.”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tv에 인터뷰나 뉴스가 정말 많이 나오는 분이니까요.”
“뭐, 조금 나오는 정도입니다.”
“아무튼, 바쁘신 분을 제주도까지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제주도가 그리 먼 곳은 아니죠.”
평소 같으면, 요트를 타고 왔겠지만, 오늘은 제주도 지사와의 공식 면담도 있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거쳐, 이곳 도청이 있는 제주시로 오게 되었다.
“맞습니다. 비행기로 오고가는 시대니까, 이제 제주도도 1일 생활권이죠.”
“제주도 지사님은 바나나에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원래,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제주에서 바나나를 키우는 농가가 많았어요.”
“저도 들었습니다. 80년대만 해도 바나나 산지로 제주가 유명했다고.”
“그 이후에 저가의 필리핀 바나나가 대거 들어오면서 농가들은 바나나는 포기하고 감귤 농사로 전환했던 거죠.”
“그럼, 다시 제주도에서 바나나 재배를 하시려는 생각이시군요?”
“저도 다시 바나나 재배를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가, 제이에스 스토어에서 고구마 바나나라는 걸 팔더군요. 이게 뭔가 하고 먹어봤는데. 맛이 정말 달고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놀랐고, 옆에 가격을 보니까, 가격도 비싸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두 번째로 놀라셨겠군요.”
“그래서 좀 알아봤는데, 제이에스 바이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품종이라고 하더군요. 바나나는 열대작물이라, 한국에서 하우스 재배를 하려고 해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물이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가을까지는 기후가 괜찮아서 여름에만 난방을 하면 재배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런 면에서는 가격 경쟁이 있다고 할 수 있죠.”
“맞습니다. 완벽한 노지 재배는 아니더라도, 계절에 따라 따듯한 기후의 덕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환경입니다. 난방에 드는 에너지 비용도 무시하지 못하죠.”
“그래서, 바나나를 재배하시고 싶으신 거군요?”
“저는 정치인입니다. 이진석 사장님은 사업가고요.”
“하하, 보통, 사업가와 정치인이 만나면, 사업가가 이득을 본다고 하던데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죠. 경제적 이득은 사업가가 가져가고 정치적 이득은 정치인이 가져가는 거니까요.”
“고 지사님이 원하는 정치적 이득은 어떤 겁니까?”
고일준 지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제주도에 제이에스와 같이 대규모 바나나 농장을 만들어보고 싶은데요.”
“바나나 농장요?”
“지금 제주도의 농업은 위기입니다. 땅값이 많이 오르고 그에 비해 농가 소득은 줄고 있거든요. 농사를 짓던 농업인들도 땅을 외지인에게 팔아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판이죠.”
“음, 그건 고일준 지사님에게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겠군요?”
“뭐, 저 같은 토박이들에게는 제주도 원주민들이 많은 게 좋죠. 선거를 치를 때도 유리하고.”
“저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섬 지역은 좀 배타적인 정서가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배타적이라기보다, 고립된 지역이라 지역성이 강한 거죠. 아무튼, 제 구상은 이런 겁니다. 지금 놀고 있는 제주도의 농지를 장기 임대하는 거죠. 제주도가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장기 임대요?”
“예, 제주도에는 농사를 포기한 농지가 많은데, 그걸 장기 임대로 돌려서 제이에스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서 바나나 재배를 하는 농장을 만드는 겁니다.”
“음, 좀 특이한 방식이네요.”
“제 생각에는 큰 비용 없이도, 넓은 바나나 농장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죠.”
“경작을 포기한 농지를 재활용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고용도 창출 할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한 번 그런 임대형 농장을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진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공간에서 재배한 고구마 바나나들은 산에서 재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도가 높고, 아이스크림 같이 식감이 부드러운 것 외에는 특별한 효능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대신, 다른 산에서 재배한 작물들과 달리, 씨를 뿌리면 외부 세계에서도 공간과 같은 바나나가 열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고구마 바나나의 특성인 셈이었다.
덕분에, 진석은 공간 외에도 인제의 농업연구센터에서 이미 씨앗 파종으로 재배에 성공한 상황, 거기에...
제주도 지사가, 고구마 바나나에 대한 정보를 듣고, 진석에게 제주시와 공동으로 바나나 농장 사업을 제안한 것이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진석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