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깨끗한 오이(3)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점.
“이게 그 하얀 오이로 만든 미백 크림이라는 거죠?”
“맞아, 새 제품이 출시되자 마자, 바로 가져온 거야.”
유민지와 김지영, 그리고 한지수의 모습도 보였다.
“지수 씨, 어학연수는 잘 다녀온 거야?”
“예, 덕분에요.”
한지수는 얼마 전에 아르바트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장학프로그램으로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한지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건대점에서 일하던 김지영이 잠시 도와주러 와 있었던 것이다.
“지영 씨랑, 지수 씨는 딱히 이 미백 크림이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머, 아니에요. 저도 주세요.”
한지수는 다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하, 많이 가져왔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우리 카페 알바생들한테 다 나눠주고도 남으니까.”
“정말요?”
“대신 공짜는 아니야.”
“뭐예요? 설마 돈 내고 사야 하는 건 아니죠?”
“돈은 필요 없고, 사용해 보고, SNS에 사용 후기를 남기는 조건이야.”
“그거야, 어렵지 않죠.”
“홍대점만 나눠주는 건 아니죠?”
유민지가 화장품 상자를 살펴보며 물었다.
“그래, 홍대뿐만 아니라, 우리 오아시스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에게는 모두 무료로 지급할 거야.”
“음,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의 일환이군요?”
“그런 셈이지. 입소문 마케팅이 효과적이라고 하잖아.”
“그렇기는 한데, 안 좋은 소문이 나면요. 직원들이라고 너무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화장품의 기능과 품질은 최고니까..”
일단, 전국 각지에 있는 북카페로 화장품들을 배송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식재료들을 배송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클럽 이비자의 미백 크림을 사용해 보기 시작한, 카페 여직원들이 SNS에 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
제이에스 본사, 회의실..
“SNS를 통해서, 이비자 미백 크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오고는 있어요.”
“판매는 어때? 수정 씨.”
“아직은 그저 그래요. 제이에스 스토어와, 쇼핑몰 정도에서 팔고 있고, 다른 소매 매장은 아직 협의 중이고.”
“판매량은 미미한 건가?”
“그렇죠. 써본 사람은 좋다고 하는데, 아직 사람들이 많이 알지는 못하니까요.”
오아시스 카페 직원들에게 나눠준 미백 크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다들 피부가 너무 좋아졌다는 반응이었고, 무료 화장품을 다 쓰고, 재구매 하는 비율도 아주 높았다.
“우리 직원들은 한 번 써보고 나니까, 다들 좋다고 난리던데.”
“그렇기는 한데, 입소문이 나는 것도 어느 정도 제품이 알려져 있어야 효과가 있는 거죠. 사람들이 ‘클럽 이비자’ 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는 것도 잘 모른다고요.”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 쪽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하다고.”
“사장님, 여기는 동남아가 아니라, 한국이에요. 사람들이 제품을 고를 때, 입소문이나 후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제품 인지도도 중요하다고요. 꼭, 사서 자기만 쓰는 것도 아니고,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것도 많잖아요.”
“선물?”
“그럼요, 품질에 만족해도,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면 선물용으로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죠.”
“하긴, 그런 것도 중요하겠지.”
진석이 개발한 이비자 크림은, 미백과 피부 트러블 개선 등의 효과는 정말 뛰어났다. 사용자들의 반응도 호평 일색, 하지만 아직 인지도가 미미한 브랜드 때문에 좋은 품질과 높은 평가가 판매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결국은 광고를 해야겠군.”
***
청담동, 최창일 감독의 스튜디오..
“다시 뵙게 되는군요. 이진석 사장님.”
“하하, 또 부탁드려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죠.”
“광고 의뢰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어디죠? 카페인가요? 북카페 오아시스도 제이에스 그룹 계열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이번에, 화장품 브랜드를 하나 인수 했거든요.”
“화장품요? 와, 대단하시네요. 제약, 농산물 유통, 카페 프랜차이즈에 이어서, 화장품까지요?”
최창일은 감탄한 듯한 얼굴이었다.
“뭐, 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네요.”
“화장품 브랜드라면, 어디를 인수하신 겁니까?”
“클럽 이비자라고 아십니까?”
“아, 최진아 씨가 하던 거 말이군요.”
최창일도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 최진아나 서태준에게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시는군요. 동남아에서는 꽤 알려진 브랜드인데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좀 부족해서 말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원래, 최진아가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면서 론칭한 브랜드라. 한국에는 홍보가 별로 안 되었죠.”
“제가 새로 개발한 미백 크림이 있는데, 품질은 정말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미백 크림요?”
“제가 몇 개 드릴 테니, 사모님이나, 지인들에게 나눠 드리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정말, 탁월한 품질의 화장품입니다. 다만 홍보가 좀 부족하고,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아서 문제죠.”
진석의 말에 최창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tv와, 유튜브 등을 통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해보려고 하는데, 최 감독님이 cf 제작을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동영상 말이군요, 어떤 컨셉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브랜드 이름이, 클럽 이비자이기도 하고 해서, 이비자 섬을 배경으로 cf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요.”
“이비자 섬이라? 가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진 곳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라고요.”
“모델은 누구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요즘 핫한 여성 스타들을 생각해 봤는데, 전소영이나, 오수아가 어떨까요?”
“전소영은 걸그룹 출신이죠. 요즘은 솔로 앨범도 성공했고, 다 좋은데, 약간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사생활요?”
“재벌 3세와 열애 중이라는데, 아마 조만간 뭔가 터질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곤란하겠네요.”
“광고 모델이라는 건, 이미지가 중요한데, 열애설이 터지면. 이어서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죠.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다는 겁니다.”
“역시 최 감독님이 연예계 마당발이라는 소문이 맞는 모양이군요. 이렇게 상의 드리길 잘했네요. 그럼, 전소영은 일단, 제외하고. 그럼, 오수아는..”
“오수아도, 인기도 있고, 다 좋은데..오수아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별명요?”
“cf의 여왕이죠. 아마, 작년 한 해 동안, 오수아가 찍은 cf가 tv에서 가장 많이 방영되었을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cf에 많이 나온다는 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도 되겠군요?”
“모델로서 인기가 있는 건 좋지만, 오수아의 문제는 너무 많은 cf를 찍어서 사람들이 그냥, 오수아가 광고 모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뭘 광고하는지는 기억을 못 한다는 거죠.”
“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저도, tv를 틀면, 오수아가 나오는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데, 오수아 얼굴만 기억나고, 뭘 광고하는지는 기억도 잘 안 나니까요.”
“맞습니다. 이 둘은 일단 제외하는 게 좋겠네요.”
최창일 감독은 이진석이 종이 위에 적어 놓은 이름 두 개를 볼펜으로 그어서 지워버렸다.
“그 외에 누가..”
“더 생각하신 모델은 없나요?”
“음, 오수아나, 전소영 둘 중에 하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스타급 연예인 보다, 신인을 기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신인요?”
“예, 신데렐라 효과를 이용하는 거죠.”
“신데렐라 효과라면, 신인 연예인이 갑자기 유명해진 걸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명의 신인이 갑자기 cf에 출연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호기심과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주목도가 확 높아지고. 광고 제품도 같이 주목받는 전략이죠.”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그러려면, 무명의 신인이라도, 외모나 어떤 매력이 확실해야겠죠. 그래야, 누구지? 이런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만 되면 좋겠는데, 그런 무명 연예인이 있을까요?”
“오디션이든 뭐든 새로운 얼굴을 찾아봐야죠.”
“새로운 얼굴이라?”
***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클럽 이비자의 새로운 미백 크림의 홍보 cf의 촬영장소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이비자 섬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모델은...
“한지수 씨, 스페인은 처음이지?”
“예, 바르셀로나는 말로는 많이 들었는데, 되게 신기해요.”
“후후, 그래, 사실은 나도 처음이야.”
티키타카로 유명한 fc 바르셀로나의 연고지로도 유명한, 바르셀로나, 스페인에서도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카탈루냐 지역을 대표하는 상업 도시였다.
진석 일행은 바르셀로나를 경유해, 이비자 섬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지중해의 평화로운 섬, 휴양지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구시가지는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낡은 빛바랜 골목들이 많이 있었다. 광고를 촬영하는 장소는 바로 이 빈티지한 느낌의 구시가지였다.
이번 광고 촬영에서, 메인 모델로 발탁된 것은,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점의 아르바이트생인 한지수였다.
“설마 제가 화장품 모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사실, 진석이 한지수를 모델로 결정한 건 즉흥적이었다.
“그래도,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오늘 촬영장에서 정말 잘하던데요.”
최창일 감독은 촬영이 만족스러웠는지, 한지수를 연신 칭찬하고 있었다.
“어머, 정말요? 전,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여기저기 뛰어다닌 것뿐인데.”
“아니에요, 여기 촬영 영상 좀 보라고요. 표정이 살아 있잖아요.”
최창일은 촬영 영상을 리플레이 하며 한지수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진석 사장님은 어떻습니까? 꽤 촬영이 잘 된 것 같은데요.”
“뭐,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은 것 같네요.”
***
제이에스 본사.
“이비자 섬에서는 잘 놀고 오신 거예요?”
“놀다 오기는 광고 촬영을 하러 간 거였다고. 수정 씨”
“이비자 섬, 완전 예쁘던데, 사장님이 절 안 데리고 가셔서, 저는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섬이 예쁘기는 하더라고.”
“그러니까요, 그 예쁜 섬에 저도 좀 데려가시지 그랬어요.”
“말했잖아, 일하러 간 거라고, 그리고, 수정 씨야, 우리 회사의 핵심 인재인데, 수정 씨가 자리를 비우면 회사가 돌아가겠어?”
“뭐, 하긴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그 한지수라는 알바생은 연기 잘했어요?”
“그래, 최창일 감독이 아주 만족을 했어. 이제 곧 tv에도 대대적으로 cf가 나올 테니까. 수정 씨도 직접 보면 알 거야.”
이비자까지 가서 촬영한 클럽 이비자의 미백 크림 광고는 예상대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완전한 무명이었지만, 눈에 띄는 한지수의 연기 덕분에, 광고가 나가면서 실검 순위에 이비자 모델이라는 검색어가 1위를 차지하면서,
이비자 미백 크림도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공간에서 재배한 백오이로 만든, 미백 크림의 피부 미백 효과는 단숨에 엄청난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일으키며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 로비..
“이진석 사장님..”
“서태준 씨군요.”
“요즘 사업이 엄청 잘되신다고요. 이비자 크림이 엄청나게 인가라면서요?”
“하하, 뭐, 서태준 씨 덕분이죠. 좋은 브랜드를 소개시켜 줘서, 덕분에 화장품 사업도 잘되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이 뭐 있나요, 그나저나, 이제라도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예, 도움요? 서태준 씨가요?”
“저도, 화장품 모델도 하고, 화장품 업계에 인맥도 좀 있는 편이죠. 특히 중국 쪽에는 저의 관시가 좀 있습니다.”
“관시라면 인맥 말이군요?”
“그렇죠, 제가 중국 쪽에서 사업상 알고 있는 지인들이 있는데, 최근에 이비자 크림에 관심이 많더군요.”
“음, 중국에서 말이죠?”
“아무래도 중국은 공산국가라, 그쪽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사업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이진석 사장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진석 사장님의 화장품 사업을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제 사업을요? 중국 진출을 도와주신다는 말인가요? 서태준 씨의 인맥으로요?”
“예, 그렇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니까요. 특히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지금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에 아주 적기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음, 그래요? 중국 시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