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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감자(1) (33/183)

50화. 튼튼한 감자(1)

“자, 카메라 보시고요. 예, 감자 한 번 들어서 활짝 웃으면서, 굿...좋아요.”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희원 씨, 생각보다 잘하는데요.”

이수정이 진석을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말했잖아, 기상 캐스터 경험도 있고, 학창 시절에는 교복 모델도 한 경험이 있다고.”

제이에스 스토어의 홍보 CF를 촬영하는 날이었다.

진석의 제안을 생각해 보겠다던 윤희원은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첫 번째, 홍보 촬영은 강원도의 청정 농산물이라는 컨셉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모델은 윤희원과, 강원도 대표 작물인 감자와 옥수수..

“예, 이번에는 옥수수 한 번 들고, 그렇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좋아요.”

촬영 감독도, 윤희원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에 만족한듯한 모습이었다. CF 촬영장은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였다.

“예, 일단, 오전 촬영은 이걸로 마치죠. 식사하고, 오후에는 한우하고, 송이버섯을 찍을 거니까. 준비 좀 해 줘요.”

“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희원 씨, 고생했어요.”

“아, 뭘요?”

“같이 식사나 하러 가요. 수정 씨 하고. 감독님도 같이 가시죠?”

***

진석은 촬영 스튜디오 근처의 한우 전문점으로 향했다.

“여기 괜찮은 것 같네요. 처음 와보기는 하는데.”

“저는 스튜디오 근처라, 자주 오는 곳입니다. 근처에서는 유명한 맛집이죠.”

“아, 그래요, 그냥, 보이는 곳으로 온 건데, 운이 좋았네요. 최창일 감독님이라고 하셨죠?”

“예, CF 감독 최창일입니다.”

최창일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였다. 언뜻 봐서는 운동선수 같은 느낌의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저는 처음 보고 운동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하하..”

“아, 그런 말 많이 듣죠.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야구선수였습니다.”

“그래요?”

“투수였는데 훈련하다가 어깨를 다쳐서, 일상에는 지장이 없지만 운동은 그만두었죠.”

“음, 그 후에 CF쪽으로 전향을 하신 거군요.”

밑반찬과 고기가 나오고 있었다.

“뭐, 딱히 CF 일을 한 건 아니고, 대학에 가서 빈둥거리다가 군대에 갔는데 우연히 사진병이 되었죠.”

“사진병요?”

“예, 제가 강원도에서 근무했거든요. 근무하던 곳이 겨울이면 눈이 와서 차량 진입이 안 되는 고지대였어요.”

“와, 그런 곳도 있나요?”

“눈이 오고 안 오고 차이는 있는데,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눈이 오면 차가 못 오고 그러면 바로 고립되는 거죠. 눈이 안 녹으면, 겨울 내내 꼼짝 못 하게 됩니다. 휴가도 못가고, 병력 교대도 안 되는 거고.”

“그런데 그게 사진병하고 무슨 관계인가요?”

“원래, 사진학과 출신들이 사진병을 하면서 관측 사진을 찍는 일이 있었는데, 그 사진병이 휴가 간 사이에 큰 눈이 내려서 사진병이 겨울 내내 복귀를 못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타로 사진병이 된 거죠.”

“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배우신 거네요.”

“예, 거기다가, 그럴 운명인지 봄이 돼서 사진병이 복귀했는데 이번에는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후송을 갔죠.”

“하하, 뭐, 정말 운명이 있나 보네요.”

“뭐, 그렇게 대타로 사진을 찍다가, 사진에 관심도 생기고 그래서 전역하고 사진을 배우게 된 거죠.”

“사진학과로 진학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 다니던 대학에 사진 동아리가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죠. 나중에는 기회가 돼서, 교내 신문사 사진기자를 하다가 잡지사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예부 사진기자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뭔가 운명이 이끌어 준 거 같네요. 여기 희원 씨는 우리 회사 직원인 건 아시죠?”

“아, 예. 아까 소개를 받을 때, 대충 들었습니다. 윤희원 씨는 익선동에서 북카페 점주님이시라고요?”

“예,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요.”

“모델 경력은 있으신 거죠? 아까 촬영할 때 너무 자연스러우시던데.”

“모델은 예전에 교복 모델을 한 번 한 게 전부예요. 그 후에 기상 캐스터를 했으니까 카메라가 익숙하기는 하죠.”

슬슬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진석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음, 맞이 괜찮은데요. 소문이 날 만하네요.”

“하하, 그래서 저도 여기 단골입니다.”

“사실, 윤희원 씨는 제이에스 스토어 뿐만이 아니라, 제이에스 그룹 전체의 이미지 광고 모델로 기용할 생각인데요.”

“그룹 이미지 모델요?”

“예, 아무래도 우리 회사에서 현직에서 일하는 직원이기도 하고, 윤희원 씨의 이미지도 제약, 농산물, 카페 같은 그룹 이미지와 잘 맞는 것 같아서요.”

진석의 말에, 최창일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건데, 윤희원 씨에게 뭔가 신뢰감이 가는 단아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농산물이나 제약 회사와도 잘 어울리겠네요.”

“사실, 희원 씨나, 여기 이수정 전무하고는 이미 다 이야기가 된 일이고요. 오늘 촬영하시는 걸 보니까, 최 감독님에게 저희 회사 이미지 광고를 부탁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하하, 뭐, 저야, 일거리를 주시면 고마운 일이죠.”

“그럼, 제이에스 스토어 촬영을 마친 후에, 제이에스 바이오와, 북카페 오아시스, 그리고 엔시스 테크까지, 우리 제이에스 그룹 전체의 홍보를 맡아 주시는 걸로 하죠.”

“와, 꽤, 큰 계약일 될 것 같은데요.”

“하하, 그룹 전체의 광고를 맡아 주시는 거니까. 규모가 작지는 않을 겁니다. 실무적인 건 여기 이수정 전무와 상의하시면 될 겁니다.”

***

인제군 농업 연구 단지, 공사 현장.

“그래도 공사가 많이 진행됐네요.”

“이제 시작 단계죠. 진입 도로도 만들어야 하고 말입니다.”

인제군수 이동식은 60대 후반의 남자였다. 약간 농부 같은 모습도 있었는데, 실제로 농부 출신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에 농사를 지으셨다고요?”

“그때는 농사 안 짓는 사람이 없었죠. 지금이야,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거지만 그때는 그냥 시골 사람들은 다 농사짓는 거였어요.”

이동식은 농부 출신으로 서른이 넘어서 대학에 진학해 농업을 학문적으로 공부한 케이스였다. 말하자면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겸비한 스타일이었다.

“농업을 전공하시기도 했고, 농부 출신이니 농업 문제는 전문가이시겠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농사도 지어봤고, 농대도 나왔으니. 하하..”

“그래서 질문드리는 건데. 지금 강원도 농가에 가장 필요한 농업 연구라면 뭐가 있을까요?”

“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장 농가에서 가장 급한 게 씨감자입니다.”

“씨? 감자요?”

“예, 감자는 영양체 번식을 하는 작물입니다.”

“영양체라면, 감자나 고무마처럼, 작물 자체가 곧 씨앗 역할을 하는 걸 말하는 거죠?”

“맞습니다. 감자는 감자 자체가 씨앗이 되는 작물이죠. 일종의 클로닝, 즉 자기 복제를 하는 셈입니다.”

“감자는 감자를 잘라서 심으면 감자가 나는 거죠?”

“예, 그러니까. 감자가 여러 장점이 있기는 한데, 유전자 다양성이라는 점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겁니다. 감자라는 건 다른 식물들과 달리, 자기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이거든요.”

“스스로를 복제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dna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취약한 구조다?”

“파 앤드 어웨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나온 영화 말이죠? 생각해보니 그 영화 배경도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배경이군요.”

“그렇습니다. 감자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지만, 유전적 한계로 각종 병에 취약한 게 문제죠. 사람으로 치면, 면역력이 무척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씨감자는 어떤 게 좋은 겁니까?”

“당연히 감자에서 가장 좋은 씨감자는 무균상태의 씨감자죠. 그래야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아. 병해의 발생이 적거든요.”

“감자가 병해에 취약한 게 동일한 유전자가 복제되는 감자의 특성 때문이라면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는 없는 겁니까?”

“그게 쉽지가 않아요. 말씀드렸다시피, 감자는 영양체 번식을 하기 때문에, 유전자의 구조가 변하지 않거든요. 품종 개량을 하려면 변종이 나와야 하는데, 변종 자체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불가능한가요?”

“사실상요, 감자 열매라는 게 있기는 합니다.”

“감자 열매요?”

“감자꽃이 본 적이 있으신가 모르겠는데, 하얀 감자꽃이 지고 나면, 감자 줄기에 파란 열매가 달리죠. 아주 작은, 그게 감자 열매입니다.”

“열매가 있기는 하군요?”

“예, 하지만, 독성이 강해서 동물이나 새들도 먹지 않죠. 그러다 보니, 열매로 번식은 안 되고 어느 것이 인과관계의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매로 번식이 아니라, 영양체, 즉 우리가 아는 감자 그 자체로 번식하는 거죠. 자기 복제 방식으로요.”

“열매에는 씨앗도 있는 겁니까?”

“예, 아주 작지만, 씨앗이 있죠. 그걸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감자는 열매로 번식하는 작물이 아니라, 효과는 그리 크지 않죠.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그렇군요. 맛이나 모양은 크게 상관이 없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수미 감자 종류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하죠. 하지만, 감자는 대부분 맛이 비슷합니다. 큰 차이는 없죠. 맛이나 영양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게 감자라는 작물이거든요.”

“그러면 지금 강원도에 씨감자 많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죠?”

“최근에 감자 농가가 많이 늘었거든요. 사실,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감자가 싸지는 않아요. 건강 웰빙 열풍을 타고, 수요도 많이 늘고, 가격도 올라가다 보니, 농가도 감자 재배를 많이 하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깨끗한 무균 씨감자는 부족한 편이죠.”

“수요를 못 따라가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무균 씨감자를 배양하려면, 배양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시설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여기 농업 연구소에도 씨감자 배양 시설이 들어서면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좋은 씨감자만 확보해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는 게 지금의 감자 농업의 현실이거든요.”

***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주님, 오늘은 뭘 가지고 오셨습니까?”

“감자야. 이걸 공간에 심어 보자고.”

진석은 들고 온 감자가 담긴, 자루를 사령관에게 내밀었다.

“이건 먹는 열매 아닌가요?”

“그렇기는 한데, 그걸 잘라서 심으면, 자기 복제를 하면서 또 다른 감자로 자라난다고, 그걸 영양체 번식이라고 하지.”

“오, 그렇군요.”

일단은 오아시스 앞쪽에 감자밭은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자들을 땅속에 심고 시간을 가속하자, 감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초록색의 감자 줄기와 잎들이 뻗어 나오고, 하얀 감자꽃의 잠시 보였다가 지고 있었다. 진석은 시간을 멈추었다.

“여기 이렇게 보면.. 이게 감자 열매군.”

작은 녹색 토마토 같은 느낌이었다. 진석은 열매를 따서 열매 안쪽에 들어있는 씨앗을 채취했다. 그리고 다른 밭에 채취한 씨앗을 심어 보았다.

“공간주님, 감자 열매에서 얻은 씨앗은 별로 성과가 없는데요.”

사령관의 말대로, 씨앗을 직접 심은 감자밭에는 겨우 몇 개의 감자 줄기만 자라나고 있었다. 감자 열매는 원래는 생식기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능이 많이 퇴화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열매에 있는 감자 씨앗도 발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아무것도 안 생기는 건 아니잖아.”

진석은 씨앗을 뿌린 밭 군데군데 자라난 감자 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감자를 생산하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려는 거니까, 생산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진석은 몇 개밖에 성장하지 않은, 씨앗을 뿌린 감자 줄기에서 열매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다소 지루한 작업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진석은 몇 주 동안 오아시스에 머물며, 감자의 품종 개량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진석이 가속시킨 시간은 천 년의 시간 이상을 흘러가고 있었다.

***

“이게 다 뭡니까?”

제이에스의 농업 연구소에 진석은 수십 종의 신품종 감자를 들고 나타났다.

“영석 씨, 감자에 관련된 바이러스 질환을 다 검사해줘. 바이러스 대한 면역력 같은 거 말이야.”

“신품종 감자인가요?”

박영석은 제이에스에서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등을 당당하고 있는 연구원이었다.

“그래, 새로 개발한 감자들인데, 각종 감자 바이러스에 견디는 능력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려고, 괜찮으면 씨감자로 생산해서 농가에 배포 할 생각이거든.”

“어디서 이런 감자들을?”

“그건, 영업비밀이니까, 영석 씨는 이 감자들이 바이러스에 잘 견디는지 그것만 테스트 하면 돼.”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박영석은 진석이 가져온 감자 상자들을 순서대로 연구소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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