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시원한 수박(2)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이거 호박이에요?”
“아니, 호박 비슷하지, 그런데 수박이라고.”
“세상에, 껍질도 울퉁불퉁하고, 색도 수박 같지가 않아요. 진한 녹색에, 줄무늬도 없고.”
유민지는 진석이 가져온 수박을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래도 맛은 괜찮아. 주방에서 좀 잘라와, 같이 맛 좀 보게.”
“사장님, 이거 껍질이 엄청 단단해요. 칼도 잘 안 들어간다고요.”
수박을 가지고 들어간, 주방에서 유민지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껍질이 두껍기는 하지, 하지만, 칼도 안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고.”
새로 공간의 산에서 수확한 수박은, 어딘지 호박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거 이름이 뭐예요?”
“아, 신품종인데, 호박수박 어때?”
“잘 어울리네요. 음, 맞은 꽤, 달달한데요.”
“그래, 생긴 건 이래도, 맛은 괜찮잖아.”
“하지만, 외모도 중요하죠. 이렇게 호박처럼, 생겨서 누가 이런 수박을 사가겠어요. 예쁜 수박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이건 줄무늬도 없고 색깔도 너무 칙칙해요. 껍질도 너무 두껍고.”
“그래서 말인데, 그냥 생으로 먹기에는 단점이 많으니까, 수박으로 뭔가 신메뉴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카페, 신메뉴요?”
유민지는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여름이니까, 수박으로 뭔가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래, 유민지 전무가 좀 연구를 해봐. 여름에는 역시 수박이잖아.”
“일단, 껍질은 잘라내고, 달콤한 과육을 갈아서 말이죠..”
얼마 후에 유민지가 가져온 것은, 라임향이 나는 붉은 빛깔의 음료였다.
“이게 뭐야?”
“수박 모히또요.”
“수박 모히또? 모히또라면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이잖아? 안돼, 민지 씨. 여기는 북카페라고, 헤밍웨이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모히또가 아니라.”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무알콜 모히또예요. 원래 모히또는 쿠바인들이 즐겨 마시던 술, 럼으로 만드는 칵테일이지만 이건, 럼 대신, 수박 과즙에 탄산수를 베이스로 라임을 으깨 넣어서 향을 더한 무알콜 모히또라는 거죠.”
“그래? 맛은 괜찮으려나..”
진석은 유민지가 만든 수박 모히또를 마셔 보았다.
“음, 뭐지, 굉장히 달면서도 시원한데, 뭔가 시원한 맛이 있어.”
“베이스가 수박이잖아요. 수박은 달기도 하지만, 청량감이 있으니까 라임 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기대 이상이야. 특히 더운 여름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딱이겠는데. 좋아, 이걸로 하자고.”
***
엔시스 테크 본사.
“유럽 출장은 잘 갔다 오신 겁니까?”
강민호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 덕분에요. 사실, 엔시스 테크의 도움도 있었고,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바이엘과의 계약은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 진출이군요.”
“그렇죠. 일단, 유럽 연합이 사정권에 들어온 거고, 그다음은 러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남미까지. 미개척지가 남아 있죠.”
“미국과 아시아를 제외하면, 나머지 유럽과, 제3세계는 바이엘 같은 유럽 제약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바이엘과 파트너가 되었다는 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아니겠습니까.”
“하하, 제이에스 바이오가 호랑이가 된 건가요?”
“계약이야, 사전에 조율이 된 거니까, 큰 문제는 없으셨겠죠? 이진석 사장님은 혼자서 와인 투어까지 즐기고 오셨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난 건가요. 뭐,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을 둘러보고 온 겁니다. 포도밭 구경도 하고 지역 음식도 좀 맛보고요.”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접대를 하는 문화가 아닌데 중국 영향인지 요즘은 조금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중국이 성장하면서, 유럽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도 바뀐 것 같더군요. 전에는 아시아의 접대 문화를 부패나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런 그들도 중국 같은 거대 시장이 열리면서, 관시 라던가, 접대 문화에 적응해가는 가는 거죠.”
“참, 지난번에 보여드린 아토피 치료 기능식품 말입니다.”
“장미 사과 추출물 말이군요.”
“예, 시제품은 보셨을 테고. 이제 식품 허가가 나왔습니다.”
“음, 그래요? 어디 볼 수 있을까요?”
강민호는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작은 상자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신제품이군요?”
“예, 필요한 안정성 실험이나, 건강보조 식품에 관련된 인허가는 다 끝난 상태입니다. 이제는 마켓팅만 남은 거죠.”
강민호가 내민 상자에는 분말 스틱형으로 만들어진 장미사과 추출물이 들어있었다.
“잘 됐군요. 아토피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북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수박 모히또요.”
“수박 모히또? 그거 맛있냐?”
“야, 먹을만 해, 그리고 난, 이거 먹고 전립선이 많이 좋아졌어.”
“전립선?”
“그래, 밤에 소변보는 게 불편했는데, 이거 한 잔 마시니까. 전립선이 아주 싱싱해졌다니까. 소변도 시원하게 보고.”
“그래? 그럼 나도 수박 모리또 한 잔 마셔야겠는데.”
“왜, 너도 전립선이 안 좋냐?”
“너나 나나, 같은 50대인데, 이제 그럴 나이지 뭐.”
카페에서 주문을 하며, 두 명의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사원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홍대 근처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었다.
“민지 씨, 수박 모히또는 어때?”
“제법 잘 나가고 있어요. 특이하게, 나이가 있는 남자분들이 많이 찾아요.”
“아, 그래?”
진석도 들었는데, 그 두 남자는 전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산에서 가져온 수박의 효능은 전립선을 좋게 하는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예, 수박 모히또가 전립선에 좋다고 소문이 난 것 같아요.”
진석은 북카페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로 젊은 학생들이 많았던 북카페에 중년 남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소문이라면? SNS 라던가 그런 쪽인가?”
“예, 아무래도 그렇죠.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후기 같은 게 올라온 것 같아요.”
유민지의 말로는, 수박 모히또를 마시고 전립선이 좋아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중년의 남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전립선 질환이라면, 남자에게 흔하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유병률도 높아지는 만성질환이다.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공간에서 생산한 호박수박에 그런 기능이 있다면, 건강보조식품으로 개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강민호 사장에게 수박을 몇 개 보내보기로 했다.
***
제이에스 스토어 신촌점.
“수정 씨,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데.”
진석은 이수정과 함께, 새로 오픈한 농산물 전문 판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게요.”
제이에스 스토어는 강원도에서 재배한 채소나 과일, 한우, 송이버섯, 벌꿀 등 다양한 농산물을 취급하고 있었다.
그 외에 아토피 치료성분이 들어있는 장미사과 분말도 건강보조식품으로 출시해서 선보이고 있었다.
“지원 씨, 어때요. 매장 일은 할만해요?”
“아, 사장님, 전무님도 오셨네요.”
장지원은 30대 초반의 제이에스 스토어 신촌점의 점장이었다. 원래는 북카페에서 점장으로 일하던 직원이었는데, 제이에스 스토어가 오픈하면서 이쪽 점장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카페랑은 많이 다르죠?”
“예, 이쪽은 농산물 쪽으로 품목이 다양하고, 진열하는 문제도 있고, 카페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새로운 일이라 좀 힘들어요.”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죠. 하지만, 곧 익숙해 질 겁니다.”
제이에스 스토어의 직원들은 완전히 새로 뽑은 것은 아니고, 기존의 북카페에서 일하던 직원 중에 지원을 받아서 여기저기에서 선발한 인원들이었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그나저나, 지원 씨,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판매도 괜찮아 보이네요.”
“예, 일단, 장미사과 분말제품을 사러 오시는 분이 많아요.”
“아, 그래요?”
“주로 아이가 아토피가 있는 분들이 장미사과 분말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도 오시니까요. 그런 분들은 유기농 농산물에 관심이 많아서, 둘러보고 많이 사가시는 편이에요.”
“음, 역시 그랬군요. 어쩐지, 주부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싶더니.”
미리 예측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이에스 스토어에서 팔기 시작한 장미사과 분말을 사러 온 사람들이 다른 농산물들도 구매하는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었다.
“장미사과 분말은 어때요? 많이 팔리나요?”
“저길 보세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잖아요.”
장지원은 매장 한쪽의 건강식품 코너를 가리켰다. 긴 줄은 아니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었다.
“줄까지 서고 있을 정도군요.”
“이 시간대가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기는 해요. 항상, 저 정도는 아니지만. 이 스토어에서 가장 있기 있는 건 역시 장미사과 분말이에요.”
“이진석 사장님이시군요.”
고개를 돌려보니, 이 건물을 건물주인 최기선이었다.
“아, 최 사장님이 여기 어떻게?”
“영업이 잘되는지 보러 왔죠. 사람이 엄청 많은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손님이 더 빨리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2층과 3층도 제이에스 스토어가 임대해서 매장을 확장하면 어떨까요?”
“음, 2층과 3층 말이군요.”
처음에 1층에 제이에스 스토어가 입점할 때부터, 나중에 2층과 3층이 공실이 되면,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건물주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문제였다.
“지원 씨 생각은 어때요? 2층와 3층으로 매장을 확장해도 괜찮을까?”
장지원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간이 부족하기도 해요. 진열공간 외에도 창고나 직원도 휴게실 같은 곳도 있어야 하고. 2층과 3층까지 쓸 수 있으면, 창고 문제도 해결되고. 여러모로 편하기는 하죠.”
“그렇죠. 아무래도 공간은 넓을수록 좋으니까, 좋아요. 그러면, 최 사장님이 마침 오셨으니까. 2층과 3층도 추가로 임대하기로 하죠.”
“하하, 젊은 분이라 결정이 시원시원하군요.”
“처음부터 1층만 쓰기에는 좀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생각보다 매장을 찾는 고객들도 많고요. 대신 2층에는 절반 정도는 카페 겸 휴게실을 만들까 하는데 괜찮겠죠?”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오늘 보니까, 여성 고객 수가 더 많아 보이는데. 카페가 있으면, 더 좋겠죠.”
***
강원도청 도지사 접견실
“이 사장님이 웬일이십니까?”
오명진 도지사는 반갑게 진석을 맞아주었다.
“제이에스 스토어 문제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오픈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한 번 가봐야 했는데, 갑자기 일이 많이 생겨서.”
“하하, 도지사님이야 도정에 집중하셔야죠. 아무튼, 신촌에 오픈한 제이에스 스토어가 생각보다 매출이 괜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1층 4백 평 정도 규모만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2층과 3층도 마저 임대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건물을 임대하는 비용은 강원도에서 지불하고 있었다. 그 외에 인테리어 비용도 강원도의 부담이라, 도지사의 허가가 필요했다.
“매장 운영이 잘 된다면 좋은 거죠, 강원도 농산물이 잘 팔린다는 말이니까, 좋습니다. 매장을 더 확장하기로 하죠.”
오명진은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매장 2층 공간 일부는 카페 겸 고객 휴게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직원들도 쉬고요.”
“그것도 좋겠네요. 요즘은 큰 매장에는 휴게 공간이 다 있으니까요. 그건, 이진석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용 문제는 제가 대외협력부에 말해 놓겠습니다.”
“하하, 그러면 감사하죠.”
“참, 그리고 제이에스 스토어를 몇 개 더 오픈하는 건 어떨까요?”
“추가로 매장을 오픈한다고요?”
“예, 신촌점에 대해서는 저도 보고를 받았는데, 반응이 괜찮다더군요. 농산물 판매도 잘 되고.”
“좋습니다. 그럼, 도지사님은 다음 매장으로는 어디를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강남에 하나 오픈하고 싶은데요. 상징성이 있는 곳이니까 말이죠.”
“구매력이 높고,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이기는 하죠. 하지만, 임대료도 높은 곳인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강원도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일이니까, 도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도지사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저희도 강남에 제이에스 스토어 2호점 오픈을 추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