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상큼한 블루베리(3) (29/183)

46화. 상큼한 블루베리(3)

“뉴욕 출장은 어떠셨어요?”

“뉴욕에는 비가 내려서..”

“가신 일 말이에요. 댄 김이라는 사람하고는 잘 되신 거죠?”

“아, 그래, 아직 할 이야기가 더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더 하기로 했어.”

“뉴욕에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데 가신 김에 확실하게 해두시지 그랬어요.”

“뭐, 그거라면 나중에 기회는 많으니까. 난, 좀 피곤해서 먼저 퇴근할게. 수정 씨.”

뉴욕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회사에 먼저 들렀다가, 곧장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스카이 캐슬 레지던스의 집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누워 바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몇 시지?”

뉴욕에 갔다 오느라, 피곤했던 건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대충 샤워를 하고 침실로 향했다.

“막상, 침대에 누우니 또 잠이 안 오잖아.”

다시 거실로 나가 맥주 한잔을 마셨다. 시간은 아직 새벽 2시 15분이었다.

“뉴욕은 몇 시나 됐을까?”

뉴욕과 서울의 시차는 13시간 차, 서울이 13시간이 빠르다. 그렇다면 뉴욕은 오후 1시 15분일 터였다.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오아시스를 지나, 뉴욕으로 향하는 출입구를 열었다.

“와, 뉴욕이잖아.”

진석이 뉴욕에 구입한 60번가의 워터라인 스퀘어의 아파트였다. 라운지로 나가자, 멀리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였다.

냉장고에는 뉴욕을 떠나기 전에 미리 사둔, 소시지와 맥주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소시지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을 비우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침대에 눕자 그제야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석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신촌, 제이에스 스토어 오픈 일,

“자, 이번 무대는 인기 걸그룹이죠. 러블리 핑크의 축하 공연입니다.”

오픈 기념으로 경품 추첨과, 걸그룹의 공연, 그리고 입장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사은품도 증정하고, 회원 카드를 만들면 가입 축하 포인트도 지급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농수산물 전문 마트인데, 걸그룹의 공연 때문인지, 젊은 남자들 비중이 높은 것 같아 보였다.

“사람이 많은 건, 좋은데. 다들 걸그룹 팬들이 몰려 온 거 아니야?”

진석의 말에, 이수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기는 해요. 그럼 어쩌죠?”

“일단 지켜보자고, 젊은 남자들이라고 우리 매장의 고객이 안 되라는 법은 없잖아.”

제이에스 스토어는 4백 평 규모의 농산물 전문 매장이었다. 일단은 건물 1층만을 이용해서 시작을 했다.

2층과 3층은 회계법인과, IT 회사가 쓰고 있었는데, 조만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라 건물주 말로는 다음 달부터는 공실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라 매장을 더 늘릴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을 봐서, 2층과 3층으로도 제이에스 스토어를 더 확장할 계획도 플랜 B로 준비 중이었다.

***

은하수 농장,

“은주 씨, 잘 지냈어요?”

“어머, 이 사장님이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서은주는 장미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커다란 셔츠 하나를 걸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뭘 하고 있었어요?”

“음, 가지치기요.”

“장미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네요.”

“장미만 그런 게 아니라, 식물이라는 게 다 그렇죠. 농사일이 쉽지는 않다고요.”

“저, 지난번에 노인정에 가져다 드린 블루베리는 반응이 어때요?”

“아, 그거 때문에 오셨군요.”

“하하, 뭐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블루베리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던가요?”

“그럼요, 비타민이 풍부해서 그런지, 건강들도 좋아지신 것 같아요.”

“오, 그래요?”

“예, 주말에 봉사활동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 말을 들어봐도, 요새 노인정 분위기가 좋다고 해요.”

“분위기요?”

“예, 전에는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와도, 잘 기억도 못 하시고, 말씀들도 없으셨는데. 요새는 가면 알아보는 분들도 많고, 그리고 어르신들이 활기차 지셨다는 거죠.”

“활기요?”

“예, 갑자기 요즘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데요. 그런데 기억력들이 어찌나 좋으신지, 50년도 지난 일들을 하도 생생하게 말씀하시니까. 봉사하러 가는 사람들도 놀란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신 건가요?”

“뭐,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한두 분이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내서 이야기하다가 다른 분들도 점점 따라하시는 모양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그런 식의 이야기죠.”

서은주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늘색 블루베리에 기억력과 관련된 효능이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일단, 하늘색 블루베리 샘플을 강민호에게 보내, 성분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

제이에스 본사, 사장실.

“김현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대한민국에서 김현수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사실 저도 팬입니다.”

국가대표 부동의 미드필더, 필드의 여우라고 불리던 김현수 선수였다. 지금은 은퇴하고, 대학 축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대학 축구부를 맡고 계시다고요?”

“예, 제 고향도 강원도고, 대학은 연세대로 진학하긴 했지만요. 저하고는 인연이 있는 학교죠.”

“모교는 아니지만, 고향 팀이라 애착이 있으시겠군요. 강원대학팀 감독이시기도 하고, 강원도 출신이시니, 지역에서 인기도 대단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하,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좀 좋아해주시는 거죠.”

“그런 것도 중요하죠. 프랜차이즈 스타, 사실, 강원 FC에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만한 스타가 없습니다. 팀이 2부 리그에 머무는 것도 문제고. 스타의 부재, 그런 이유로 인기도 없고요.”

김현수도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역에서 큰 인기도 있으시고, 축구 경험도 풍부하신 김 감독님이 강원 FC를 맡아 주셨으면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음, 좋은 조건이기는 한데, 대학팀을 맡고 있는 것도 있고.”

“그거라면, 이런 조건이면 어떻습니까.”

“어떤 조건 말입니까?”

“김 감독님이 강원 FC를 맡아 주신다면, 강원대학 출신 선수들을 많이 데려오는 조건 말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원래, 성적보다는, 강원도에서 인기 있는 구단을 만드는 게 제 목표거든요. 마치, 스페인 리그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있지 않습니까?”

“바르셀로나라면, 지역 연고가 강한 팀이기는 하죠.”

“맞습니다. 일단, 팀이 성장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팬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저는 강원 FC가 성적 이전에 일단, 강원도 지역에서만이라도 인기팀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음, 지역에서 인기 있는 팀이라면 지역 대표성이 있어야겠죠. 선수 구성이라든가 하는 점에서요.”

“가장 좋은 건, 김현수 감독님처럼, 강원도 출신으로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는 건데, 현실적으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진석 사장님은 강원대학 출신들을 기용하시겠다 이런 생각이시군요?”

“기왕이면, 고등학교도 강원 출신이면 더 좋고요. 일단 성적을 단기간 내에 끌어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신, 지역 대표성을 강조해서 강원도민에게 잘 나가는 팀은 아니더라도 우리 고향 팀이라는 이미지를 좀 심어주고 싶거든요.”

“음, 무슨 말씀이신 알겠습니다.”

“그래서, 팀도 맡아 주시고, 유망주 위주로 리빌딩도 해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저도 강원도 사람이고, 지역 축구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하, 잘됐군요. 앞으로 한번 잘 해보죠.”

***

다른 대학가에 문을 연, 북카페 오아시스 지점들과는 달리, 서울대점은 대학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단 대학 캠퍼스 규모가 큰 이유도 있고, 북카페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일종의 도서관으로 평가를 받아, 인문대학 옆에 입주할 수가 있었다.

“너는 뭐 마실래?”

“난, 좀 피곤한데. 아메리카노나 마실까?”

“야, 그러지 말고, 딸기 스무디 먹어봐.”

“졸리고 피곤한데, 커피를 마셔야지.”

“아냐, 여기 허니 스트로우베리 스무디가 잠 깨는데는 딱이라니까, 마시고 나면 잠도 깨고 머리도 맑아지고.”

“그래, 뭐, 그러면 저, 허니 스트로베리 스무디로 주문할게요.”

다른 매장들과는 달리, 대학 안에 입주한 북카페 오아시스 서울대점은 고객들도 거의 대부분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서울대 학생들...

“이미선 씨라고 했던가?”

“예, 기억하시네요.”

“하하, 당연히 기억하죠. 장래 희망이 변호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전공은 사회학이고, 로스쿨 준비를 하려고요.”

“나중에는 변호사님이 되겠군요?”

“아마도요?”

이미선은 미소를 지었다. 서울대 출신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사회학도였다. 졸업 후에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왜 하려는 거예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고 좋잖아요. 저희 집도 한 10년 전에 사기를 당해서 집안이 많이 어려워졌거든요.”

“오, 그래요?”

“예, 사기 피해를 입었는데, 억울하게 사기 가해자로 몰려서 하마터면 아버지가 감옥에 갈 뻔한 일도 있었고요.”

“저런...”

“그때 알았죠.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많고, 그런 놈들에게서 나 자신을 지키려면 많이 배워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법을 공부하려는 거군요?”

“예, 일단은 저부터 지키고, 또 다른 사람도 지켜 줄 수 있는 좋은 직업이잖아요.”

“후후, 뭔가 순수한 소녀처럼 말하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변호사는 돈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다들 직업적인 마인드로 로스쿨에 진학하니까.”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

“예,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로스쿨로 바뀌면서 비용이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돈 없는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변호사가 되기 어려워졌죠.”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알바도 하는 모양이군요?”

“예, 맞아요. 전에 그 사기 사건으로 아직도 집이 어려운 편이거든요. 아, 사장님, 죄송한데. 이제 수업시간이라 가봐야겠어요.”

“하하, 얼른 가봐요. 괜히 내가 쓸데없는 걸 물어봐서, 수업 늦으면 안 되죠.”

이미선은 옷을 갈아입고 카페를 뛰어나갔다.

“어때요? 저 학생. 꽤나 성실해 보이는데?”

“성실하고 착해요. 변호사가 되면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아이인데. 로스쿨 들어갈 돈이 좀 부족한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과외도 하고, 틈틈이 카페 알바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카페 점장은 안됐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

카페 오아시스 홍대 본점.

“민지 씨. 우리도 장학제도를 만들어 보는 게 어때?”

“장학제도요?”

“생각해 보니까, 카페에서 일하는 알바생들 중에, 학생들이 제법 있잖아. 안 그래?”

“그렇기는 하죠.”

“솔직히 돈 많은 집 애들이, 우리 카페에서 알바하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냐?”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대학원 과정까지는 학비 지원도 해주고 그러면 어떨까 해서.”

“카페 알바생에게요? 정식 직원도 아니고.”

“물론, 아무나 장학금을 주자는 건 아니고, 1년 이상, 성실하게 일한 학생들 중에서 형편이 어렵다거나 아무튼 금전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점주 추천을 받아서 장학생을 선발해 보는 거야.”

“뭐,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네요.”

“그래, 카페 쪽 일은 유민지 전무가 담당이니까. 한 번 추진해봐. 그렇게 키워낸 인재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큰일을 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대신, 들어가는 돈은 사장님이 책임지시는 거죠?”

“그건 걱정 말라고, 이번에 유럽에 가면 바이엘과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거야.”

“바이엘이라면, 독일 회사 말이죠?”

“그래, 독일 회사라기보다는 이제는 글로벌 다국적기업이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리지만, 아무튼, 독일에 본사가 있는 건 맞지.”

“그럼, 이제 유럽에서도 넥타르가 판매되는 건가요?”

“그렇지, 지금은 미국과 아시아서만 판매되고 있었는데, 바이엘과 함께 본격적으로 유럽 진출을 하는 거야. 거대한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거니까. 우리 제이에스의 수익도 크게 늘어날 거라고. ”

“이제 큰돈이 들어올 거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하하,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장학금 지급하는 건 유민지 씨가 추진해 줘.”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 일이라면 저도 좋죠.”

“그리고, 난, 다음 주에는 계약 문제로 유럽 출장이야.”

“유럽요?”

“말했잖아. 바이엘과 계약하러 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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