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편안한 연꽃 열매(3) (26/183)

43화. 편안한 연꽃 열매(3)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오명진 도지사님이 뵙고 싶으시다는데요.”

“오명진 도지사가?”

“예, 국회에 오셨다가, 지금 사장님이 회사에 계시다니까, 이리로 오시겠네요. 어떻게 할까요?”

***

“연락을 안 주셔서, 마침 지나가다 들렀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축구단 인수 문제 때문이시겠군요?”

“예, 지난 번에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신다고 하셨는데 검토는 해 보셨나요?”

강원 FC에 대해서 대략 재무 조사와, 수익성을 검토해 보기는 했다. 연간 100억의 운영비가 들어가는 팀이었는데 그에 비해 수익이랄 것은 전무한 팀이었다. 리그 최상위권 팀들이 400억 가까운 돈을 쓰고 있었지만, 유니폼이나 스폰서쉽으로 200억 정도는 자체 수익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2부리그 격인 챌린지 리그에 속한 강원 FC는 100억 내외의 운영비로 운영되는 작은 구단이었다. 하지만, 자체 수익은 10억 내외로, 연간 90억 가까운 적자를 내고 있었다.

성적도 만년 하위에, 유명 선수도 없는 팀이라, 100억이라는 구단 운영비도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돈을 많이 쓰는 구단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서인지 유명 선수도 없고, 유니폼 판매도 저조하더군요. 그리고 아무리 작은 팀이라도 프로 구단이라, 들어가는 돈이 연간 100억이 넘고 있습니다.”

“해마다 80억 이상 적자가 나는 팀이죠. 제가 구단을 매각하려는 이유도 그런 겁니다.”

“하하, 뭐, 제가 사업을 하면서 돈을 꽤 벌고는 있지만, 수익성이 전혀 안 보이는 팀에 그만한 돈을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강원도 연간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강원도라고 하면, 꽤 넒은 지역이기는 한데, 지방 자치단체 예산 규모는 잘 모르겠네요.”

“인구가 적은 편이라, 다른 시도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일년에 5조 정도의 예산이 집행됩니다.”

“와, 엄청나군요. 도지사님이 쓸 수 있는 돈이 연간 5조라는 거 아닙니까?”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집행하려면 모두 지방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죠. 사실, 강원도 전체 예산 규모로 보면, 도민 구단 운영비가 큰 부담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는 하겠죠.”

“하지만, 정치라는 게 그렇게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서, 적자를 내고 있는 축구단은 눈에 잘 띄는 편이죠.”

“알아보니, 지난 선거에서 축구단 민간 매각을 공약을 거셨더군요.”

“그렇습니다. 적자를 내는 축구단은 눈에 잘 띄어서 전임 도지사를 공격하기 좋은 소재였죠.”

“하하, 정치란 비정하군요.”

“선거라는 게 제로섬 게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예산의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축구팀보다 더 문제가 많은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회계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부분은 대중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쉬운 축구단이 타겟이 된 거죠.”

“구단 매각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선거 공약이고, 눈에 띄는 공약이죠. 제가 다음 선거에 나갈 때, 구단의 매각 여부가 꽤 이슈가 될 겁니다. 매각이 성공하면, 제가 이슈로 만들 테고, 실패하면, 상대가 이슈로 만들겠죠.”

“뭐, 저도 도와드리고는 싶지만. 축구단 운영 경험도 없고, 수익성도...”

“들어가는 돈 이상으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예?”

“강원도 예산 중에, 각종 투자 유치를 위해서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은 꽤 있습니다.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돈이라도, 명목만 있으면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는 게 정부의 예산이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가령, 제이에스 같이 농업에 관련된 기업이라면, 강원도와 관련된 농산물의 홍보나 유통, 판매를 위해 서울에 건물을 매입하는 자금도 지원이 가능하죠.”

“제가 쓸 돈보다 더 큰 돈을 받을 거라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강원도에 연구시설이나, 유통에 필요한 창고 등을 짓는다면, 토지를 무상을 제공할 수도 있고, 각종 세제 혜택도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정치인과 사업가가 만나면, 사업가가 이득을 본다고들 하죠.”

“좋습니다. 도지사님이 그런 생각이시라면 믿고 축구팀을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장님 오늘따라 멋지신데요.”

“뭐? 갑자기 수정 씨가 웬일이야? 나한테 멋있다는 소리를 다 하고.”

“사실, 멋지잖아요, 뭐, 얼굴도 그럭저럭, 키도, 크지는 않아도, 작지도 않고, 나이는 아직 젊은 편이고, 무엇보다 성공한 사업가, 장래가 촉망받는 전도유망한 멋진 남자라는 거죠.”

“수상한데. 뭐, 사고 친 건 아니지?”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멋지신 분이라면, 차도 멋진 걸 타고 다녀야 할 거라는 거죠.”

“차?”

***

강남의 수입차 매장.

“수정이 누나랑은 교회에서 만났죠. 성가대요.”

“수정이가 성가대도 해요?”

“예, 수정이 누나는 피아노 반주도 잘 하시고, 기타도 잘 쳐요. 다재다능하죠.”

“수정 씨가 기타랑 피아노를 치는 줄은 몰랐네요.”

이수정이 기타를 치는 모습은 언뜻 상상이 가지 않았다. 피아노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뿐 아니죠, 회사에서는 그 나이에 상무까지 올라갔잖아요? 그 정도면 임원급 아닌가요? 물론, 이진석 사장님 정도로 성공한 건 아니겠지만요.”

성제윤이라는 친구는 갓 대학을 졸업한 수입차 딜러라고 했다. 이수정과는 교회 누나와 남동생 사이라는데 일부러 차까지 사주라고 이수정이 졸라댈 정도면 그 이상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제윤 씨도, 능력이 좋으시네요. 수입차딜러 치고는 상당히 젊은 편이죠?”

“예, 수입차 중에서도, 여기 있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롤스로이스 같은 차들은 슈퍼카 혹은 럭셔리카 라고 하거든요. 가격도 최소 2억 이상이니까. 파는 일도 쉽지는 않죠.”

“슈퍼카들이죠? 강남 쪽에 가면, 이런 차들 많이 보이더라고요.”

“예,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많이 늘어났죠. 특히 도산대로 쪽이 메카죠.”

“도산대로요? 음, 그쪽이 위치도 그렇고, 이런 차들 타고 드라이브 하기에는 괜찮겠네요.”

“예, 전, 그 도산 파파라치 출신입니다. 하하..”

성제윤은 조금 멋쩍은 듯이 말을 꺼냈다.

“도산 파파라치요?”

“어릴 적부터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고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자동차에도 관심이 생겼죠.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편의점 앞에, 어떤 분이 멋진 페라리를 타고 왔더라고요. 그때 슈퍼카라는 걸 처음 봤는데, 그 순간에 꽂혀 버린 거죠.”

“슈퍼카 쪽에 말이죠?”

“예, 그때는 그런 차들 이름도 모르고, 가격이 얼마나 되는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차가 너무 멋있어서,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당구 처음 배워서 재미 붙이면, 잘려고 누우면 천정이 당구대로 보인다고 하잖아요.”

“하하, 그렇겠네요. 아무튼, 파파라치라면, 사진을 찍었다는 말이죠? 도산대로에서 슈퍼카들을?”

“예, 예술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갖고 싶은데 현실에서 가질 수 없을 때, 그런 걸 다른 방식으로 창조하는 거죠. 저는 그게 사진이었어요.”

“그런 파파라치들이 많나보죠?”

“예, 슈퍼카를 갖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그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니까요. 대신 저처럼 사진으로 대리만족하는 친구들이 제법 있는데, 그걸 도산 파파라치라고 해요. 자동차 오너들은 싫어하지만.”

“그렇겠네요, 사생활 침해도 돼고.”

“그 날도 멋진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가 딱 앞에서 멈추길래,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죠. 그러다가 그 주인하고 시비가 붙은 거예요. 사진 왜 찍냐고, 카메라를 뺏으려고 하더라고요.”

“저런..”

“그 분이 바로, 지금 우리 회사 사장님이세요.”

“예? 정말요? 싸우다가 취직이 된 케이스네요.”

“하하, 좀, 특이한 경우죠.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 사장님, 옆자리에 미모의 여자 탤런트가 타고 있었다는 거였죠. 사장님은 제가 그 여자 사진을 찍는 줄 알고, 오해를 하셨고.”

“후에, 훈훈하게 오해가 풀리고, 취직까지 하신 거군요?”

“그렇게 된 거죠. 제가 슈퍼카에 관심이 많고, 기본적인 지식도 있는 걸 알고 같이 일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매니아적인 딜러시군요?”

“하하, 사실, 차는 잘 못 팔고 있어요. 이런 딜러를 하려면 인맥이 중요한데 제가 그런쪽으로 좀 약하거든요. 술도 잘 못 마시고.”

“하지만, 교회는 열심히 나가시잖아요. 교회 누님들과의 관계도 돈독하고 말이죠.”

이수정의 부탁도 있고 해서, 소위 말하는 슈퍼카 하나 정도는 구매할 생각이었다.

“사실, 저는 이런 차들은 처음이라, 제윤 씨는 어떤 차를 추천하시겠어요?”

“음, 저라면, 람보르기니 우라칸이 좋을 것 같네요. 마침 우라칸 포퍼먼테가 아주 좋은 매물이 나왔거든요.”

“람보르기니라면 아벤타도르가 유명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고성능의 람보르기니 감성이 물씬 풍기는 상남자들의 차죠. 하지만, 성능은 훌륭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래 타고 다니기는 불편한 차라.. 처음 슈퍼카를 구매하시는 분들에게는 우라칸을 추천해 드립니다.”

“음, 좀 더 편안한 차라는 말이죠.”

“예, 가격도 신차 기준으로 4억대로 저렴하죠. 중고는 더 가격이 낮게 형성되고요.”

“싼 건 아닌데요.”

“아벤타도르가 6억 이상이니까. 상대적인 거죠. 거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벤타도르든 우라칸이든 다 람보르기니일 뿐이니까요. 엔트리 슈퍼카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죠.”

“좋아요. 그걸로 하죠.”

***

하늘색의 람보르기니는 도산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예, 강민호입니다.”

“아, 강 사장님, 잘 지내시죠?”

“예, 지난 번에, 이야기하신, 연자육 성분 분석이 끝났습니다.”

“그래요? 뭐, 특별한 거라도 나왔나요?”

“예, 사장님이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심장이나 스트레스와 관련된 동물 실험도 해봤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요? 어떤 점에서 흥미롭다는 거죠?”

“그 보라색과 검은색 연자육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봤는데, 검은색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보라색 연자육은 혈압 강하 작용이 나타났습니다.”

“혈압 강하라? 혈압이 떨어진다는 건가요?”

“예, 심장과 뇌에도 영향을 미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을 억제하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몸을 이완시키는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좋은 건가요?”

“아직 연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단순히 혈압이 강해되든 게 아니라, 적정수준에서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근육이완 효과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할까요.”

“혈압약이라면? 이미 많이 있지 않나요?”

“시판되는 약은 많지만, 약효가 부족하거나 부작용들이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천연 원료 추출물이라 부작용은 적을 것 같고, 약효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상당히 좋을 거라는 느낌입니다.”

“신약 개발을 진행하자는 말이군요?”

“사장님께서 결단을 하신다면, 한 번 해볼만 한 것 같습니다. 혈압이나 심혈관 질환은 대표적인 성인병이라, 수요가 엄청나죠. 당뇨 치료제 못지 않은 거대 시장입니다.”

“심혈관 질환이라? 좋습니다. 한 번 도전해 보는 걸로 하죠.”

진석의 람보르기니는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해운대 오션 시티, 펜트하우스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전망이군.”

해운대에 북카페를 오픈 하러 왔다가, 근처에 오션 시티라는 고층 아파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 구매한 것이었다.

가격이 30억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였지만, 90평대의 펜트하우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해운대 앞의 바다 풍경이 꿈결처럼 아름답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서울에도 이렇게 노을이 지려나?”

갑자기 노을을 보고 있던 진석은 서울에 스카이 타워가 궁금해졌다. 이미 해운대 앞쪽의 태양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진석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공간을 허브처럼 이용할 수도 있잖아.”

해운대에 펜트하우스를 구매한 후에, 공간으로 가는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환한 빛이 비추는 공간의 오아시스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서울의 스카이 타워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열었다.

시계를 보니, 해운대에서 공간으로 들어갈 때와, 서울의 집 거실로 나왔을 때의 시간은 동일했다.

거실 창을 내려다보니, 서울은 아직도 노을이 붉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5분 정도 지나자 완전히 일몰이 되고 말았다.

“경도 차이가 있어서 5분 정도 느리군.”

신기한 경험이었다. 해가 지는 걸, 하루에 두 번이나 보게 되다니.

“재밌는 걸 알게 되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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