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편안한 연꽃 열매(1)
제이에스 본사,
“사장님 부산에는 잘 놀러갔다 오셨어요?”
“놀러가다니? 누가 놀러갔다는 거야?”
이수정은 진석에게 살짝 삐진 얼굴이었다.
“민지랑 해운대에서 휴가 보내고 오신 거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바쁜데, 해운대에는 북카페 점검차 다녀 온 것 뿐이라고.”
“그게 그거죠. 사장님이 부산에 내려간 동안, 제가 얼마나 바빴는지 사장님은 모르실 거예요.”
“아, 그랬었나 미안해. 어쨌든, 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뭐, 여기저기서, 일이 많았다고요.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주문? 어디서?”
“아토피 환우 커뮤니티 있잖아요.”
“아, 장미사과를 또 주문한 건가?”
“예, 맞아요. 아토피에 효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장미사과 물량은 항상 부족하다고요. 더 구할 수 없냐고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고요.”
“그래, 알았어. 사과는 더 구해올게.”
“사장님, 차라리 그러지 말고, 아토피 치료약도 개발하면 안 될까요?”
“치료약을?”
“예, 어차피, 당뇨 치료제인 넥타르도, 신선복숭아에서 추출한 물질이라면서요?”
“뭐, 그렇기는 하지. 음, 그러고 보니, 수정 씨 말도 일리가 있어.”
생각해 보니, 아토피 환자들이 장미사과를 주문하는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공간에서 시간을 가속하는 방법으로 사과를 꾸준히 생산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전국의 아토피 환자들에게 공급하기에는 생산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앞으로 입소문이 더 퍼지면, 장미사과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공간 밖에서 장미사과를 더 생산할 방법도 마땅치 않고 말이다. 아버지 말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과를 심어서 수확을 하려면 족히 7년은 걸리니 말이다. 차라리 장미사과 추출물을 이용해서, 제2의 넥타르 같은 신약을 개발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
“새로운 신약을 또요?”
도성준은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걸 보십쇼.”
진석은 가져온 장미사과를 도성준 박사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가요?”
“장미사과라는 건데, 아토피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 시켜주는데 크게 효과가 있는 신품종의 사과입니다.”
“아토피에 말입니까?”
“예,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아니지만, 이 사과를 먹은 환자들이 크게 도움을 보고 있어요. 주로 아토피로 고생하던 아이들인데,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음, 그렇다면, 약보다는 사과로 판매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일을 재배하는 것에 좀 한계가 있어서요. 이 품종의 사과는 그렇게 대량 생산은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특정 성분을 추출해서 치료약을 개발해 볼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글쎄요.”
도성준은 조금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저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연구 개발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쉽지가 않네요.”
“예? 그럼?”
“아무래도, 신약 개발은 다른 팀을 만들어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이번에 넥타르가 제 마지막 연구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걸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뭐, 하긴, 그동안 평생 연구와 개발에 노력을 하신 분이니, 이제 그럴 때도 된 것 같네요.”
“저는 직접 연구에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뛰어난 젊은 연구인력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새로운 연구팀을 만들도록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뭐, 도성준 박사님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은퇴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 그렇다고 봐야죠. 넥타르의 연구개발과 관련된 일들은, 이제 다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전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일만 남은 것 같은데. 그건, 이진석 사장님의 몫이라고 봐야겠죠.”
“은퇴 후에는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실, 지금 서울대에서 교수 자리를 제의받았습니다.”
“서울 대학에서요?”
“예, 석좌교수 자리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석좌교수라면 종신직을 말하는 거죠?”
“예, 서울대에서는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말도 있었지만, 제가 제 사정을 말했습니다. 이제 2선으로 물러나서 후진 양성에 힘을 쓰겠다고요.”
“하하,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도성준의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생명공학 쪽의 연구에서는 이제 손을 떼고, 조용히 황혼의 삶을 즐기려는 생각처럼 보였다.
결국 도성준은 은퇴를 결정했고, 진석도 동의하면서 일을 마무리가 되었다.
***
“강민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구소에서 많이 보던 분이군요.”
도성준은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강민호 박사를 후임으로 추천해주었다. 강민호 박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화학 박사 과정을 거친, 그야말로 초엘리트였다.
도성준 박사 밑에서 넥타르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사과 추출물을 이용해서, 신약을 개발하려고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도성준 박사님에게 연구개발을 부탁하려고 했는데, 은퇴를 생각하신다고 해서 말이죠.”
“예, 그 문제라면 전부터 저에게도 자주 하시던 말씀이시죠. 상업적은 연구보다는 자신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으시다고요. 제자들도 교육시키고요.”
“역시 그랬군요. 그럼, 도성준 박사님 대신, 이제 강민호 박사님이 연구 총 책임자가 되셨으니, 강 박사님에게 부탁을 해야겠네요.”
“하하, 저야, 직원 입장으로 사장님이 지시를 하면 따라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아닙니다. 연구개발 쪽은 저는 잘 모르는 분야니까. 오히려 제가 강민호 박사님의 고견을 듣고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음, 일단, 넥타르 개발 과정을 지켜보셨으니까. 신약 개발이 쉽지 않다는 건, 이진석 사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정말 그렇더군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특히 각종 임상실험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굉장히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약이라는 것이, 사람들은 보통 만병통치약처럼, 먹기만 하면 병을 고쳐준다고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많아서, 오남용이 되는 경우도 있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허가나 판매 과정이 까다롭게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약은 의사 처방을 거쳐서, 약사가 제조 판매 가능한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이진석 사장님도 잘 아시겠죠. 그런데, 아토피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사과가 그런 효능이 있다면, 과일로 판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그렇기는 한데. 과일로 판매하는 게 아무래도 수량을 공급하는 게 어려워서 말이죠. 넥타르의 경우에도 필요한 물질만 추출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더군요.”
“대신에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죠. 과일 같은 경우에는 따로 허가가 필요 없는 대신 말입니다.”
“하긴, 그것도 좀 곤란하네요. 당장, 아토피 환자들이 사과를 많이 주문하고 있는데 말이죠.”
“저런, 아토피 환자들이라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많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치료제를 개발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역시나 시간이 문제겠군요.”
넥타르를 개발하던 것처럼, 여러 단계의 임상실험을 거치면 시간과 비용문제가 발생할 것인 분명했다.
“역시 과일로 판매할 수밖에 없겠군요?”
“뭐, 신약 개발과, 생과일 판매의 중간적인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예? 중간요?”
“예, 과일을 그대로 제공하는 건 아니고, 추출물을 이용해서 건강 보조식품을 만드는 방법이 있죠.”
“건강 보조식품요? 그런 건, 홈쇼핑 같은 곳에서 많이 파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를 할 정도로, 생산부터 유통이 자유롭죠. 인공적인 변형을 하지 않은 자연 물질을 이용하면, 약품이 아니라, 식품으로 등록할 수가 있고. 의약품처럼, 까다로운 실험을 거치지 않고, 독성실험 정도만 통과하면 판매가 가능합니다.”
“음,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공간에서 생산한 장미사과 추출물을 이용하면, 특별한 화학작용 없이 자연물로만 건강 보조식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식품으로 만들어도, 효능에는 문제가 없겠죠?”
“그거야, 베이스가 되는 과일에 그런 효능이 있다면, 큰 문제가 없는 한 효능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강민호 박사님이 이 장미사과로, 기능성 식품을 좀 개발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일단 샘플을 보내주시면, 바로, 성분분석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
“은하수 농장에는 오랜만에 오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특별히 변한 건 없어요.”
“장미 농장이라 그런지 여름이 되니까 더 싱그러운 향기가 느껴지네요.”
“그렇죠,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김포에는 논이나 밭도 많이 있고, 화훼 농장들도 많아서, 시골 느낌이 많이 나니까요.”
“그러게요, 요 앞에 보니까, 논도 있고요.”
“김포가 나름 쌀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정말, 그러고 보니 논이 많네요.”
농장 주위에는 논들이 제법 있어서, 물이 찬 논마다, 파랗게 벼들이 자라고 있었다. 서울 토박이인 진석에게 벼가 자라는 모습은 조금은 낯선 모습이었다.
“음, 저건, 연꽃이네요.”
서은주와 농장 주위를 천천히 산책하는 길이었다. 벼들이 자라는 논 한가운데, 연꽃들이 많이 보였다.
“맞아요, 연꽃이에요.”
“이건 뭐죠? 저절로 자라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요즘은 연꽃을 심는 농가도 제법 있어요.”
“연꽃은 왜요?”
“일종의 특성화 작물이죠. 연꽃은 사찰에서 밥을 담아서 찔 때 쓰기도 하고요. 연자육이라는 열매가 있는데, 예로부터 스님들은 이걸 신선이 되는 열매라고 불렀다고 해요.”
“신선이 되는 열매요?”
“예, 흔히 연꽃 열매라고 하지만 사실은 연꽃의 씨앗이에요. 먹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하거든요. 일종의 진정 효과도 있고, 불면증에도 좋다고 하고요.”
“오, 연꽃에서 그런 열매도 나오는군요?”
“이진석 사장님은 다양한 종자에 관심이 많으시겠죠?”
“하하, 뭐, 하는 일이 농업에 관련된 일이다 보니, 새로운 품종이나 각종 식물들에 관심이 많죠.”
“여기 연꽃밭 주인아저씨랑 잘 아는 사이거든요. 필요하시면, 씨앗을 좀 구해드릴까요?”
“그러면 저야 좋죠.”
공간의 산에서 작물을 키우게 되면, 원래보다 특별한 효능이 생기니까, 연꽃이든 뭐든, 공간으로 가져가서 한 번 심어봐서 나쁠 일은 없었다.
거기다, 물속에 피어오른 연꽃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이라, 오아시스 주위에 자라게 해도 괜찮을 것 같고 말이다.
서은주는 진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근처의 농가로 들어갔다. 집주인과는 안면이 있는 듯,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듯싶더니, 집주인으로부터 뭔가를 받아왔다.
“아, 이게 그 연꽃 씨앗이군요.”
“예, 연꽃은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편이니까, 물이 있는 곳이라면 쉽게 키우실 수 있를 거예요.”
***
서은주와는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시의 빌딩숲은 어둠이 내려와 깔린 후였다.
한동안 거실에서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던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사령관, 이건 연꽃 씨앗이야.”
“연꽃 말입니까?”
“그래, 일단 오아시스에도 좀 심어보고, 산에도 심어보자고. 뭔가 나오지는 지켜 보자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당장 실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