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대홍수(1)
변화의 적응 스킬을 사용하자, 염수의 호수에 있던, 몇몇 물고기들은 담수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진석은 낚시로 걸려 올린, 물고기들을 민물 양어장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시간을 가속하자, 민물 양어장에 새로운 종류의 물고기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개의 호수, 민물과 염수의 호수 사이에 작은 통로도 만들어 놓았다. 중간쯤에 민물과 염수가 섞이는 중간 지대를 만들고 서로 통할 수 있게 연결해 놓은 것이다.
통로를 만들어 놓자, 연어처럼 민물과 염수를 오가는 어종도 나타나게 되었다.
“낚시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공간주님, 물고기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진석은 추가로 염수의 호수 크기를 더 확장했다. 호수의 크기가 더 커질수록 물고기의 숫자나 각종 생명체의 개채 수도 늘어났고, 낚시대에 걸리는 어종도 더 다양해졌다.
“사령관, 오늘 잡은 건, 내장을 제거하고, 햇볕에 말리라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말린 생선들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다. 생선에는 고양이들에게 필수적인 영양소인 타우린 풍부했다.
고양이들에게는 좋은 먹이인 셈이었다. 덕분에 따로 사료를 먹이지 않고도 수십 마리로 늘어난 고양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진석이 하루 한 끼 정도 생선을 먹는 게 전부였다.
“잠깐, 구름이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구름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던데요.”
“공간의 하늘에서 구름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음, 예쁘군. 저 구름은 고양이 비슷하게 생겼는걸.”
“고양이 말입니까? 공간주님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
“축구팀요?”
“예 부탁드립니다.”
제이에스 바이오 본사를 찾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강원도 도지사인 오명진 지사였다. 야당 출신의 도지사로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상당히 젊은 나이의 지사였다.
도지사에 당선되기 전에는 초선 국회의원으로 꽤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글쎄요. 도지사님 이야기는 알겠지만, 저는 축구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요.”
“이진석 사장님 이야기라면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강릉에 북카페도 오프하셨죠?”
“아, 그럴 겁니다. 워낙 여기저기 카페가 많이 생겨서 강릉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서울에 있던 북카페 오아시스가 지방에 분점을 내고 있으니까요.”
“저도, 북카페 오아시스라면 서울에 있는 카페들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여의도에 있고 여기저기 많이 있더군요.”
“하하, 그러시군요.”
“사실, 북카페를 늘려나가는 걸 보고,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대단한 일요?”
“일종의 문화사업 아닙니까? 성공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니까요.”
“하하, 북카페는 문화사업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북카페로 꽤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군요. 저도, 오아시스를 몇 번 가봤는데 상업적인 카페라기보다는 책을 읽는 도서관 같은 느낌이더군요. 뭐랄까,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랄까?”
“사실, 그게 컨셉이기는 하죠.”
“아무튼, 이진석 사장님이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고, 또 꼭 돈만 추구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 도민 구단을 인수해 달라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강원도 차원에서도 최대한 지원해 드릴 것은 지원해 드릴 생각입니다.”
“구단 재정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사실, 구단 운영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구단들은 대부분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죠.”
“그렇기는 하죠, 프로리그라고는 하지만, 상업적으로 수익을 내는 수준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아직도 그런 면에서는 아쉬워요. 관객이나 중계권료 수입 이런 부분에서, 프리미어리그나 세리에 A,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이런 유럽 리그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대기업의 스폰서에 의존하는 수준인데, 저희 같은 강원도 도민 구단은 더 재정이 열악한 형편입니다.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 할 엄두도 내지 못하죠. 아시겠지만, 도 예산이란 게 함부로 집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폰서를, 아니 제이에스 바이오가 스폰서가 돼 달라는 말이군요?”
“제이에스는 성공한 바이오 기업이고, 농업 쪽에서도 사업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청정한 농업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고요.”
“스폰서라?”
딱히 스폰서를 한다고 회사의 이미지가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단을 운영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가장 많이 하던 스포츠가 축구이기도 하고, 거기에 돈만 충분하다면, 게임 하듯, 축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떻습니까? 지금 강원도 팀은,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서포터들도 상당히 잘 조직되어 있고요. 팀을 인수하신다면, 강원도 차원에서 지원도 더 늘릴 겁니다.”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회사에서 협의를 해보고 연락드리죠.”
“긍정적으로 검토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
날씨가 더워지고 있었다. 해운대는 여름의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피서 인파들로 붐비는 느낌이었다.
“와, 전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데..”
“올여름이 더워서 피서객들이 더 일찍 모여들었어요. 부산시에서도 해수욕장 개장 시기를 앞당겼고요.”
북카페 오아시스 해운대점에도, 손님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수영복 차림에, 가디건 정도를 걸친 여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인데? 마치 유럽의 휴양지에라도 온 느낌이야.”
“그렇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남들 눈치 안 보는 분위기예요.”
유민지는 새로 꾸민 인테리어를 진석에게 설명해 주었다.
“유럽 휴양지라고 하셨는데, 지중해 산토리니 느낌을 내보려고 파란색도 많이 썼고요. 그리고 그리스 신화나 그런 쪽의 그림과 조각들로 꾸며봤어요. 어때요? 유러피언 감성이 느껴지나요?”
“유퍼리언이라? 그런 느낌도 있는데, 그림들은 그리스 신화나 그런 쪽인가? 이건 뭐지?”
“토럭토니라는 겁니다.”
“토럭토니요?”
뒤를 돌아보자, 잿빛 머리에 역시 비슷한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신사가 서 있었다. 별로 꾸민 듯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큰 키에 미중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박수원이라고 합니다. 조각가 겸, 대학교수죠. 부산대학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 이걸 조각하신 분인가요?”
“예, 신화와 관련된 조각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 본건데, 마음에 드시나요?”
“음, 특이한 조각이네요. 이 조각상 이름이 토럭토니인가요?”
“토럭토니는 황소를 죽이는 미트라의 이미지를 말하는 겁니다.”
“미트라? 황소를 죽인다고요?”
“예, 미트라는 로마의 태양신으로 알려져 있죠.”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요.”
“미트라 신앙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아요. 그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글로 남기지 않고, 이렇게 몇몇 이미지로만 전승이 되기 때문에, 미트라 신앙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지 않고, 그래서 굉장히 신비로운 신화라고 할 수 있죠.”
“그러고 보니, 이 남자, 그러니까, 모자를 쓴 남자가 황소를 공격하는 모습이네요.”
“그렇습니다. 여기 보시면, 왼쪽에는 태양신 쏠, 그리고 오른쪽에는 달의 신 루나가 있죠.”
“미트라가 태양신이라면서요?”
“보통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잘못된 해석이죠. 보다시피, 미트라는 죽음의 신입니다.”
“죽음의 신이라고요?”
“태양에서 달로 가는 사이에 미트라와 황소가 싸우고 아니,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고 있죠. 이건, 태양의 일주기 그러니까,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달이 뜨고 지는 하루의 일주기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미트라는 태양신이라기보다는 하루의 변화, 즉, 시간의 신이겠군요?”
“역시, 머리가 좋으시군요. 태양신이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미트라는 시간의 신이죠. 그리고, 신화에 의하면, 이 황소는 미트라의 적이 아니라, 미트라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요?”
“예, 자신의 적인 거대한 황소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황소를 죽이는 장면이라는 겁니다.”
“아니, 왜? 자기가 만든 황소를?”
“신화적 해석으로는 태초에 미트라가 만든 이 유일한 피조물의 뱃속에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잉태되어 있다는 거죠.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습니까?”
“데미안? 알, 새로운 세계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황소는 미트라의 창조물이었지만, 그 안에 잉태된 더 거대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당해야 했던 거죠.”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자신과는 이별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말하자면, 진화의 과정, 문명의 발전과 같은 거죠. 항상 변화라는 건, 이전의 것을 파괴하는 그런 작용이니까요. 전쟁도 그렇죠.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가 말하려던 것도 그런 게 아닐까요?”
“민지 씨, 생각은 어때?”
“모자가 귀여워요.”
“뭐? 모자?”
“사장님, 저거, 스머프 모자 아닌가요?”
“스머프 모자? 태양신 미트라가 스머프 모자를 쓸 리가 없잖아?”
“아닙니다. 스머프 모자 맞습니다. 하지만 순서는 좀 다르네요. 스머프 모자를 미트라가 쓴 게 아니라, 미트라가 쓴 프리기아 모자를 스머프들이 쓴 거겠죠.”
“아, 그런가요? 저런 걸 프리기아 모자라고 하는군요.”
***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는 왠지 하늘이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구름, 그것도 어느새 먹빛에 가까운 먹구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공간주님, 뭔가 이상합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이런 일은 처음인데.”
사령관은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왜 하늘에 이런 구름들이?
진석은 상태창을 열었다.
“이봐, 저 하늘에 구름들은 대체 뭐야?”
“공간주님, 이제 공간의 면적이 확장되면서 기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상현상? 날씨 말이야?”
-그렇습니다. 공간의 샘들과, 강, 호수, 오아시스 등에서 증발되는 물들의 양도 엄청나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대기의 순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럼, 비가 내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공간의 안정성을 위해, 기화된 수증기가 지표면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는 구름 상태지만, 응결 작용을 거쳐 물방울이 되면 지상으로 하강할 것입니다.
“비가 내린다는 말이지? 잠깐, 그러면, 진흙 일꾼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진흙과 모래 일꾼들은 물에는 약한데, 비를 맞으면?”
-이제는 진흙과 모래의 시간은 끝이 난 것 같습니다.
“뭐..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공간이 확장되면서 기상현상이 일어나고, 이제 자연스럽게 비가 내리는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비를 맞으면 진흙은 녹아 내리게 되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공간주님,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었고, 이전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안돼, 하나둘도 아니고, 그 많은 일꾼들이 모두 죽게 된다는 말이잖아?”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비는 아직 내리지 않는데?”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공간주님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뭐야? 그럼 내가 승인을 안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비가 내리지 않는 거지?”
-하지만 그럴 경우, 공간의 안정성이 훼손되어, 공간이 붕괴할 수도 있고, 그걸 막기 위해 공간은 무한히 정지될 수 있습니다.
“공간이 붕괴? 정지된다고?”
-공간의 확장에 따라, 필요한 설정을 조정해 주지 않으면 공간의 시간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걸 하고 안 하고는 공간주님의 선택사항이지만, 필요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공간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그건 곧 공간이 정지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택의 기로였다. 진석은 먹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선택은 없는 거지?”
-현시점에서 기상현상을 발생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비를 내리거나, 공간이 정지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진흙과 모래 인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달리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군, 비를 내리게 해.”
- 공간주님, 기상현상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5천 시간 포인트가 사용됩니다. 기상현상 스킬을 사용하여 공간의 수자원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기상현상으로 공간 전체에 수분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더 쾌적하고, 풍요로운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기상현상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기상현상 스킬을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