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담수와 염수(3)
“여름이 되면 해운대에 사람이 많겠지?”
“그렇죠. 그런데 정말, 북카페를 여기에 오픈하실 거예요?”
부산이 고향인 이수정도 휴가 겸해서 유민지와 같이 부산에 온 길이었다. 여름 시즌이 되면 아직은 조용한 이 해운대의 백사장은 파라솔의 천국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수정 말로는 여름 피크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의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더러는 파라솔 아래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는 휴식을 취하러 오는 곳이잖아. 당연히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좋을 거 아냐?”
“사장님, 뭔가 착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여기는 쉬러 오는 곳이 아니라, 뜨겁게 젊음을 불태우러 오는 곳이라고요.”
“그런가? 하하, 뭐 아무렴 어때. 활활 불태우고 나면, 좀 쉬고 싶어질 거 아냐.”
길 하나를 건너면 모래사장이 나오는 위치에 진석이 소개받은 건물이 있었다. 1층과 2층을 합쳐 150평 정도 공간이 나오고 있었다. 임대료가 비싼 편이었지만, 진석은 고민 없이 계약을 맺었다.
“해운대니까, 여기 특성에 맞추어서 특색을 주고 싶은데 말이야.”
“환경에 적응하라는 말인가요?”
유민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민지는 서울과 수도권에 30여 개의 카페를 운영하는 책임자였다. 본사라고 할 수 있는 제이에스 바이오가 큰돈을 벌게 되면서 자회사 격인 북카페 오아시스도 세력확장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원래, 돈보다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는 목적이 강했기 때문에, 분점 수가 늘어나면서 카페들은 유력 상권이나, 주변 대학가, 유동 인구 특성을 고려해서 인테리어부터 판매하는 음식의 종류가 가격, 진열하는 책들의 종류 등도 적당히 변화를 주며 특성화하기 시작했다.
“물론이지, 같은 환경이라는 건 없으니까. 해운대는 또 서울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다르고. 바다라는 외부환경도 다르고 말이야.”
“사장님은 어떤 변화를 주고 싶은데요?”
“일단, 음악부터 좀 청량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틀어야겠어. 항상 여름은 아니겠지만, 여기 피크는 한여름이잖아. 그렇다고 다른 곳들처럼 시끄러운 댄스음악은 안 되고, 여름 하면, 보사노바가 제격이지, 원래가 브라질 음악이라 여름과 바다 이런 것들과 잘 어울린다고.”
인테리어도 창이 많고 문도 크게 만들어서, 개방감이 느껴지는 구조를 만들 생각이었다. 전체적으로 청량감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시원한 음료와 경쾌한 보사노바, 바다가 보이는 개방적인 전망, 여름 휴가를 와서 잠시 책을 읽으며 쉬다가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
“여름이 되면 아주 멋진 카페가 되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따가 요트를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요트요?”
“근처에 마리나가 있더라고, 요트 선착장 말이야.”
“요트 사시게요?”
“뭐? 그냥 구경가는 거야, 수입 요트를 판매하는 회사가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날 초대를 했더라고.”
공사 중인 카페를 나와, 롤스로이스 던을 타고, 근처의 마리나로 향했다. 차를 오픈하고 뒷좌석에 유민지와 이수정을 태우고 바닷가의 도로를 달리자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
해운대 마리나,
“이진석 사장님이군요. 차가 멋지네요.”
박유진이라는 여자는 30대 초반 정도의 상큼한 느낌의 여자였다. 짧은 핑크색의 미니스커와 흰색의 블라우스 그리고 엷은 핑크색의 서머 재킷 차림이었다.
“여기 요트들에 비하면, 롤스로이스도 평범해 보이네요.”
진석은 차를 주차하고, 마리나에 정박한 흰색의 중형급 요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슷한 크기의 요트 세 대가 나란히 정박해 있었는데, 모두 이탈리아 베니토라는 회사의 요트로 대당 가격이 1천억이 넘는 호화 요트들이었다.
“요트 하면 부자들의 세계에서도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
“돈이 많으면 한 번쯤 사고 싶은 게 요트기는 해요. 하지만, 이런 큰 요트는 가격이 엄청나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수입차를 사면서 들었는데 비싼 차의 대명사인 부가티 가격이 30억 정도인데, 우리나라에는 몇 대 없다고 하더라고요.”
“예, 맞아요. 아직 개인이 호화 요트를 구매하기에는 주변 시선도 있고. 자금 문제도 있어서 국내 요트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건 아니죠.”
“그렇겠죠. 가격도 부담스럽고 사람들의 시선도, 수천억짜리 요트를 산다고 하면 곱지 않을 테고.”
“하지만, 40피트에서 50피트 사이의 세일 요트는 제법 팔리고 있어요. 사실, 아시아에서 요트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죠.”
“중국에는 부자들이 많은가 보죠?”
“백만장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억만장자가 중국에 5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요. 최고 레벨의 부자들인데, 그중에는 진짜 돈이 많고 주변 시선에 신경 안 쓰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중국이 요트의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마리나의 주차장으로 고급 차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 초대를 받은 건, 진석뿐만이 아니었다. 고급요트의 판매 대행을 맞고 있는 벤니토의 한국 지사에서 재력 있는 셀럽들을 초대한 선상 파티를 개최한 것이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이진석 사장님도 오셨군요.”
서태준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진석에게 다가왔다.
“어머, 세상에, 서태준이잖아요?”
평소 팬이라던 이수정은 서태준이 다가오자, 반색을 했다.
***
공간의 면적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성장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가장 큰 영향은 늘어나는 북카페 때문이었다. 서울에만 22개, 거기에 수도권에도 분점 수가 계속 불어나고, 이번에 해운대를 비롯한,
강원도와 광주, 대전 등에서 잇달아 분점들이 오픈하고 있었다.
이런 카페들의 잇따른 오픈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이에스의 자금력 때문이었다. 진석이 독일의 바이엘과 협력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당뇨 치료 시장에 뛰어들었고, 바이엘의 세계적인 유통망을 타고 넥타르는 단기간에
세계 제약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제이에스 바이오의 이진석이 북카페, 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지는 북카페에 투자를 하는 것을 외부에서는 일종의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진석의 북카페는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넓은 휴식 공간 겸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역할을 하기도 하는 새로운 분점을 개점할 때마다 그 지역의 명소가 되고는 했다.
스카이 캐슬로 돌아오자, 거실에는 신문이 놓여 있었다. 룸서비스로 배달되는 신문들이었다. 레지던스는 호텔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서, 독신인 진석에게는 여러모로 최적의 환경이었다.
신문 일면에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사, 그리고 문화 섹션에 진석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책 읽기 운동을 주도하는 북카페 오아시스라.. 다들, 내가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는군..후후..”
***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은 늘어난 북카페들 덕분에, 2천 5백만 평 이상의 넓은 면적이 되어 있었다. 공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산도 높이와 면적이 계속 확장되어서 이제 산의 최상부의 높이는 천 미터가 넘고, 면적도 5백만 평이 넘고 있었다.
“사령관 복구 작업은 아직인가?”
“이번에는 피해가 심해서,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신선복숭아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은 공간의 산에서만 가능했다. 자연히 넥타르의 원료가 되는 복숭아 재배를 위해, 산의 크기를 계속 확장하고 있었다.
문제는 산이 커지면서, 크기를 확장할 때마다 발생하는 지진도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복구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덕분에 일꾼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어서 1만 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진 복구에는 언제나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도 오아시스는 무사해서 다행이야. 사령관.”
오아시스 일대의 풍경도 많이 변해 있었다. 처음에 지었던, 진흙 건물들은 잦은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가거나 하는 일들이 많아서, 결국 철거를 하고 상대적으로 지진에 강한 목조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조 주택을 늘려가는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지진이 날 때를 대비해서 내진 설계도 되어 있어서 산이 확장될 때 오아시스는 이제 안전하니까요.”
오아시스 주변에는 진석의 저택과, 체육관, 식당, 그리고, 일꾼들이 쓰는 막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대형 창고들이 지어져서, 공간에서 재배한 농작물들을 보관하는 저온 창고들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력은 부족하지 않지?”
“발전소가 늘어나서 전력은 충분합니다.”
산이 커지면서, 산에는 여러 개의 샘도 생겨났고 전체적으로 유량이 크게 늘어서 계곡의 물과, 그 물이 내려오면서 만드는 강의 크기도 커졌다. 그리고 강의 유량이 늘어나면서, 수력 발전소도 증설이 되었고 덕분에 전력 생산도 크게 늘어서 저온 창고 등으로 늘어난 전력 수요를 충분히 커버하고 있었다.
대충 사령관에게 현황 보고를 받았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음, 그나저나, 민물 양어장에는 아직 물고기가 없는데..”
염수 호수에는 이제 물고기들이 늘어서, 낚시를 하면 생선들을 제법 잡을 수 있었다. 진석은 염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민물 양식장에도 넣어서 수를 불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바닷물에서 살던 물고기들은 민물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역시 바닷물에서 살던 녀석들은 담수에는 적응하지 못 하는 건가?”
-삼투압 때문입니다.
상태창이 열렸다.
“삼투압이라니?”
-세포는 작은 막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막은 분자의 크기에 따라서 물질을 통과시키기도 하고 막기도 하죠. 마치 정수기 필터처럼요.
“필터라고?”
-그런데 이 세포의 막은 물의 농도에 따라, 투과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이동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바다와 같이 염도가 높은 곳에 있다가 염도가 낮은 담수로 옮기면, 삼투압의 균형이 무너져서 세포 내부의 물을 외부로 빼앗겨서 세포가 파괴되는 겁니다.
“생명의 본질은 물이라는 건가? 세포 하나가 하나의 호수처럼, 물을 저장하고 있고, 그 물속에는 보다 작은 생명의 구성체가 살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물이라는 건, 흔하기도 하고 아주 기본적인 물질이니까요
“하지만, 민물에도 살고, 바다에도 사는 물고기도 있잖아?”
-물고기뿐만 아니라, 고등생물들은 체내의 염분이나 당분의 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내의 물질의 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은 환경에 적응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죠.
“그럼, 바닷물고기보다, 민물고기가 더 진화한 형태라는 말이야?”
-지구의 물고기의 예를 들자면, 태초의 바다에서 탄생한 어류가 민물에 적응하면서 염도 조절 능력을 갖게 된 거죠. 환경에 따라, 염분을 배출하는 기능을 얻은 소수의 어류는 민물에 적응하며 육지의 강이나 호수로 진출하게 되었던 겁니다.
“오, 그럼, 민물고기가 더 우수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과정은 그렇습니다만, 대다수의 민물 어종은 바다를 나와 민물에 적응한 후로는 다시 그런 적응능력을 상실하고 퇴화하고 말았죠. 덕분에 민물고기는 민물의 강과 호수에 고립되고 말죠.
“연어 같은 건 제외하고 말이지?”
-그렇습니다. 두 세계를 이동하며, 세계를 확장하는데 성공한 사례도 있죠. 연어는 안전한 산란 환경인 민물의 계곡과, 위험하기는 하지만 풍부한 먹이가 넘치는 바다를 모두 생활 터전으로 삼을 수 있었죠.
“안전한 산란 환경이라고? 별로 연어들에게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인간이나 곰들은 연어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환경이죠.
“아무튼, 그럼, 염수에 살던 고기들은 진화를 거쳐야 담수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염분 배출 능력은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럼?”
-아시다시피, 그런 정교한 기관과 기능은 신의 계획된 의지가 아니고는 불가능하죠. 아무리 주사위를 던진다고 주사위가 저절로 거대한 빌딩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럼 나의 의지로 민물에 적응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공간주님의 창조스킬 중, 변화에 적응 스킬을 사용하시면, 바닷물고기가 삼투압을 조절해 민물에 적응하는 기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 그래?”
-변화에 적응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한 번 해보지 뭐. 민물에도 물고기가 있으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 그리고 환경이란 언제나 바뀌는 법이지.”
-그럼 변화에 적응 스킬을 사용하겠습니다. 스킬 사용을 위해, 5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