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신들의 음료(3)
“마지막 질문인데요. 만약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신다면 어떨까요?”
“예? 노벨 의학상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벌써부터 SNS에서 도성준 박사님과, 이진석 사장님이 공동으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진석은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음, 하하,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질문이네요. 하지만, 저는 모르겠지만, 도성준 박사님은 수상할 자격이 있는 분이죠. 화학 분야에서 대단한 권위자이시니까요.”
“예, 아직은 좀, 이른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시청자 여러분들도 그렇고 아마도 모든 국민들이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소식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네요.”
“글쎄요. 뭐라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예, 이상으로 특별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바쁘신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제이에스 바이오의 이진석 사장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전에 단독 출연하기로 약속한 것도 있고요. 저도 출연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녹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녹화 어떠셨어요?”
“혼자 출연하는 거라, 더 힘드네요. 쉬지 않고 질문을 받고 답변해야 하니까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잘하시던데요. 그나저나, 이러다가 정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시는 거 아닌가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SNS나 그런 데서 정말 노벨 의학상 이야기가 나오나요?”
“예, 정말이죠? 장 PD님”
“맞습니다. SNS에서 난리예요. 저도 오늘 아침에 보고 좀 놀랐는데, 몇몇 커뮤니티에서 그런 말들이 나와서 아주 크게 이슈가 되고 있어요.”
“저런, 큰일이네요. 이러다 FDA 승인이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나저나 오늘 정말 감사해요. 출연해 주셔서.”
최진아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그것도 마치 가까운 친구나 지인처럼 대화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약속한 거잖아요.”
“제가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 아니었나요?”
“시작은 그랬지만, 제가 동의한 거였죠. 저도 누가 부탁한다고 다 들어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러면 제가 뭔가 보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보답요?”
***
“이건 무슨 고양이야?”
“러시안 블루요, 어때요,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이지 않나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유민지 덕분에, 카페 오아시스의 고양이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2마리 먼치킨 고양이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수십 마리로 불어나 버렸다.
“손님들 반응은 어때?”
“다들, 좋아해요. 엄청 귀엽잖아요.”
회색빛 털을 가진 고양이는 도도한 모습으로 북카페 한쪽의 캣타워를 오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동물이었다.
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않고, 잠자는 시간도 압도적으로 많고,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카페에서 키우기에도 괜찮은 편이었다. 작고 귀여운 외모는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았고, 덕분에 고양이들의 먹이를 일부러 준비해 오는 열성 팬들도 생기고 있었다.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있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키우고 싶지만, 못 키우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주로 고양이를 못 키우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대리만족을 하는 거죠.”
“내가 몇 마리 가져가도 되지?”
“어디로요?”
“아, 시골에, 부모님이 과수원을 하시는데. 쥐가 많다고 하더라고.”
“쥐요? 고양이들이 쥐도 잡을 수 있나요? 한 번도 쥐 잡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연히 쥐를 잡을 수 있지, 고양이들의 본능이라고.”
***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공간주님, 같이 온 작은 동물은 뭔가요?”
“고양이들이야, 사령관. 어때, 귀엽지 않아?”
“아, 그렇군요. 키우실 생각이신가요?”
“그래, 일단, 세 마리만 가져와 봤어.”
공간에 적응을 잘하는지 보려고 데려온 세 마리의 고양이는 공간의 문이 열리자, 잠시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내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진석은 고양이들을 데리고 오아시스로 향했다. 오아시스 주위는 몇 번의 공사를 치르며 진석이 휴식을 취하기 최적의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진석은 먼저 수영장으로 가서, 유유히 수영을 즐겼다.
“사령관, 같이 수영해 볼 생각 없어?”
“아닙니다. 물에 들어갔다가는 진흙이 다 녹아버릴 텐데요.”
“하하, 농담이야.”
진흙 인간들은 물에는 취약했다. 몸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진흙이라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공간에서 물이 있는 곳은 샘과, 수로, 그리고 스프핑클러가 돌아가는 잔디밭과 농경지 주위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수영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자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일꾼들 중에서 요리 교육을 받은 요리사가 있어서, 한식과 양식 두 가지를 취향에 맞게 고를 수가 있었다.
“오늘은 비빔밥이군.”
“한 번 준비해 봤습니다.”
요리사는 비빔밥과 몇 가지 반찬을 내놓으며 말했다.
“음, 괜찮은데, 아주 맛있어.”
요리사의 실력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 공간에 들어오면 활동량이 많아져서 식욕이 돌고 있었다. 어지간한 것은 다 맛있게 느껴졌다.
마치 도시에 살다가, 주말에 시골로 내려오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시골치고는 굉장히 독특한 곳이지만 말이다.
진석이 밥을 먹고 있자, 고양이들이 다가와서 야옹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요리사, 고양이들도 뭔가 먹을 걸 줘야겠어.”
“뭘 준비할까요?”
그러고 보니, 고양이들 사료를 준비하는 걸 깜빡 잊은 것 같았다.
“닭가슴살이 있을걸? 그거랑 신선한 생선이 있으면 같이 줘봐.”
“알겠습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요리사가 주방에서 닭가슴살과 생선을 준비해 오자, 고양이들이 다가왔다. 약간 생소한지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다가, 천천히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선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다 먹지는 않고 남기기는 했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도시에 살다가, 넓은 공간으로 환경이 변해서인지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넓은 오아시스 주변의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석은 이번에도 몇 주간 공간에 머물며, 공간의 건물들을 더 짓기도 하며 충분히 휴가를 즐기다 갈 생각이었다.
침실로 들어가 한숨 잠을 자고 나오자 고양이들이 수영장 주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속에 뭐라도 있는 줄 아는지,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고기라도 잡을 생각인 건가?”
“하하, 물고기가 있을 리가요?”
어느새 사령관이 진석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령관은 공간에서 재배하는 작물들에 대한 현황을 보고하러 온 길이었다.
대충, 인삼을 비롯한 생산물들은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확을 해서, 출하를 준비 중이었다.
“다른 것들은 그대로 하면 되고, 신선복숭아는 재배 면적을 더 늘려야겠어.”
“아, 복숭아 말이군요.”
“그래, 앞으로는 복숭아가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될 거야. 필요한 수요도 점점 늘어날 테니까. 거기에 대비해 두라고.”
“알겠습니다. 특별히 복숭아나무들에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뭐, 그 정도면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군.”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공간주님.”
“음, 양어장을 하나 만들어 볼까?”
“양어장이라면, 물고기를 키우는 곳 말입니까?”
“그래, 나도 먹고, 고양이들도 생선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물고기를 키울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래, 쉽지는 않겠지만, 사령관이 연구를 해서 한번 만들어 보라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흙 일꾼들의 사령관,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숫자도 늘어났고 그와 함께 일꾼들의 전체적인 능력도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상태창을 열었다.
“이봐, 진흙 일꾼들의 지능이 더 상승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 일꾼들의 지능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일꾼들의 전체 숫자가 늘어나면서 집단적인 지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집단 지성이라고?”
- 각각의 지능을 가진 구성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오류를 수정하고 복잡한 문제를 다수의 공동 지능으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오, 그래? 마치 꿀벌들처럼 말이지? 꿀벌들도 서로 페로몬을 분비해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하던데, 그걸로 꿀이 있는 위치에 대한 정보도 서로 교환하고 말이야.”
- 꿀벌과 진흙 일꾼들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집단을 통한 정보 공유라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각각의 지능의 동일하다고 해도,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적인 집단의 지성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음, 집단의 규모가 지능발달에 중요한 요소라는 말인가?”
-인류의 발전사를 보면, 농경의 시작으로 집단의 규모가 크게 성장한 시기부터 비약적인 지적 발전이 이루어지며, 문명이라는 것이 나타나니까요.
“그래? 그나저나, 물고기를 키우려면 커다란 웅덩이 같은 것만 있으면 되는 건가?”
-어류가 생존할 조건은 크게 두 가지 환경이 있습니다.
“두 가지 환경?”
-담수와 염수죠. 물은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담수와 염수?”
-담수는 지금까지 공간주님이 솟아오르게 한 샘물을 말합니다. 오아시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맑은 물이죠.
“그럼 염수는?”
-보통 바닷물이라고 불리는 미네랄이 풍부한 고염도의 물을 말합니다. 유기물과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에, 세포의 초기 생성에 좋은 조건을 형성해 주고 플랑크톤 같은 단세포 생물이 번성해 먹이사슬의 기초가 생성되기 좋습니다. 덕분에, 작은 미생물부터 시작하는 먹이 피라미드가 만들어져 대형 어종도 번성하게 되는 겁니다.
“음, 미네랄이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그게 이어져서 고등어도 나오고, 고래도 나온다는 말이군.”
-비슷합니다. 담수에도 플랑크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염수가 더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염수도 샘솟게 할 수 있는 건가?”
-그동안 공간의 면적이 확장되면서, 공간주님의 공간 지배력의 레벨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지금은 레벨이 52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정도 레벨이면, 염수 생성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잠깐, 염수라면, 바다 아닌가? 공간 주변에 있던 물도 바다잖아?”
-그건, 단지 배경일 뿐입니다. 공간을 둘러싼 무의미한 배경일 뿐이죠. 진짜 물도 아니고, 바다는 더더욱 아닙니다. 바다를 만들고 싶으시다면, 염수를 만들어서 확장 시키면 됩니다.
“염수를 확장시키라고?”
-다만, 염수는 농업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종의 소금 호수니까요. 현재로서는 담수가 활용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아직은 그렇다는 말이지. 하긴, 여긴 건조한 지중해 기후 같은 모습이니까. 담수가 있는 오아시스가 더 필요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물고기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염수 호수라면 괜찮지 않겠어?”
- 어류를 육성할 생각이시라면, 좋은 생각입니다. 염수 호수를 만드시겠습니까?
“그래, 너무 큰 거는 말고, 대략, 길이가 50미터 정도, 지름이 그 정도의 호수면 괜찮을 것 같은데.”
- 공간의 면적과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적당한 사이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염수 호수, 그러니까 작은 바다를 생성하시겠습니까. 바다의 생성에는 5천 시간 포인트가 사용됩니다.
“바다라?”
물론, 아주 작은 바다를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간에 존재하던 담수와는 성격이 다른, 염수의 호수가 생기는 것이었다.
“좋아, 바다라는 건 조금 거창하기는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줄 생선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래 바다를 만들어 줘.”
- 바다를 생성하겠습니다. 염수가 들어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반이 붕괴될 예정입니다.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나 주십쇼.
진석은 상태창의 경고에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땅 아래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콰앙...’
마치, 싱크홀처럼, 눈앞의 지반이 붕괴되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꺼져 들어간 땅속에서 흙탕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은 아니군?”
“생성 초기라 흙이 섞여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훨씬 맑아질 겁니다.”
진석은 아직 흙기운이 빠지지 않은 물에 손을 넣어 조금 떠올려보았다. 혀끝에 닿는 짠맛이 느껴졌다.
“진짜 바닷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