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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음료(1) (16/183)

33화. 신들의 음료(1)

천하의 최진아가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다는 걸까?

“사실, 두 가지예요. 하나는 공적인 거, 하나는 사적인 부탁.”

“어떤 건가요?”

“공적인 부탁은 제이에스의 넥타르가 FDA의 승인을 받으면, 다시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거예요. 물론, 그때는 단독으로 출연하시는 거죠.”

“뭐, 그거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또 하나는 사적인 부탁인가요?”

“후후, 이건 개인적인 건데 사실, 가로수길에 있는 오아시스 카페에 몇 번 가봤거든요.”

“아, 그러세요?”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북카페가 드물잖아요. 개인적으로 책 읽은 걸 좋아해서 맘에 들었어요. 물론, 유명하다는 허니 스트로베리 스무디로 맛있었고요.”

“하하, 그럼 부탁이라는 게.”

“다, 좋은데. 저는 연예인이라 주 생활권이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 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여의도 근처에도 북카페를 하나 만들어 주세요.”

***

“녹화는 잘하고 오신 거예요?”

“괜찮게 하고 온 것 같아. 난, 파주에도 다녀올 게. 수정 씨.”

“또요?”

“일이 있어서 그래, 그리고 민지 씨한테 여의도 쪽에 카페를 오픈하려고 하는데 시장 조사 좀 해두라고 말해줘.”

“여의도에 분점을 내시려고요?”

“그래, 방송국에 가봤더니, 그쪽도 괜찮아 보이더라고. 방송국 직원들도 많고, 방청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수요가 좀 있을 것 같아.”

“음, 예, 민지한테 전해 줄게요.”

“그리고 난, 이제 뉴욕으로 갈 거야.”

“뉴욕요?”

***

비행기의 1등석은 확실히 편했다. 공간도 넓고, 기내식으로 먹은 비빔밥도 소고기구이가 따로 한 접시 나오고, 미역국도 고기라든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느낌이었다. 서빙을 하는 스튜어디스의 몸매도 더 훌륭하다고 할까.

식사를 마치고, 음료를 가져다 주는 스튜어디스는 깔끔한 인상에 잘빠진 몸매를 하고 있었다.

“뉴욕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뉴욕이라면 어디로 가시는 거죠?”

스튜어디스의 태도는 다소곳했다. 생글거리는 미소와 뭔가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유니폼 스커트는 타이트하게 엉덩이를 조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뉴욕의과대학으로 가는 길입니다.”

“병원에 가시는 건가요?”

“아뇨, 뉴욕의과대학과 공동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러 가는 길이죠.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임상실험이 필요하거든요.”

“임상실험이면 사람한테 실험하는 거죠?”

“예, 신약이 나오려면 보통은 3단계의 임상실험이 필요합니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소규모 임상실험이 있고, 다시 규모를 늘려서 포괄적인 안정성을 실험하고, 지금 뉴욕의대와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실험은 3단계로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실제 환자들에게 대규모의 임상실험을 진행하는 거죠.”

“그러면, 거의 성공하신 거네요?”

“후후, 그러면 좋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니까, FAD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로또처럼, 마지막 숫자까지 발표되기 전까지는 예측은 금물이죠.”

“하지만, 마지막 번호까지 맞는다면, 엄청난 성공을 얻을 수도 있고요?”

“하하, 그런가요.”

***

뉴욕의 관문, JKF 공항은 특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세계 경제의 수도, 뉴욕의 입구,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추억이 느껴지는 그 이름. 케네디는 도전을 즐기는 프론티어였다. 그가 과감한 우주개발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아폴로 프로젝트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세계 최강 미국을 떠받치는 첨단 우주항공기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진석은 뉴욕의 관문에 발을 내디뎠다.

“젊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스튜어디스들도 성공한 사업가인 이진석 사장님을 알아보는 걸까요?”

“무슨 말입니까?”

같이 비행기를 타고 왔던 도성준은 여자 승무원들이 진석에게만 관심을 갖는다며 푸념을 했다.

“하하, 그럴 리가 있나요. 자기들 일 하는 것뿐이죠.”

“그래요? 저한테 말도 걸지 않던데요.”

“뭐, 도성준 사장님은 나이가 있으시니까, 좀 부담스러웠나보죠.”

미국에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JFK 공항을 벗어나, 뉴욕 시내로 들어서자,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마천루,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기도 한 뉴욕 한가운데에 뉴욕 대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미국의 명문 대학과는 달리, 뉴욕 대학은 도심에 캠퍼스가 분산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하자면, 뉴욕이라는 도시 전체가 뉴욕 대학의 캠퍼스인 셈이었다.

“댄 김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도성준 박사님과는 구면이시죠?”

“하하, 도 박사님은 제가 존경하는 화학자시죠. 저도 공부하면서 도성준 박사님의 연구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댄 김은 뉴욕대학에서 임상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재미교포 의과 교수였다. 실력도 있고, 한국계라는 점도 감안이 돼서, 이번 제이에스 바이오와의 임상실험의 담당자로 발탁된 인물이었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의대 교수치고는 젊은 편에 속했다.

“준비는 잘되고 있는 건가요?”

“일단은 필요한 자원은 많은 편입니다.”

“자원이라면? 지원자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죠, 당뇨는 흔한 질환이고, 뉴욕에서는 특히 더하죠, 패스트푸드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니까요.”

“가정이지만, 우리가 개발하는 넥타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 되겠군요?”

“뭐, 아직은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니까, 저는 최대한 신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다 완성된 것 같은 엄청난 신약들이 임상실험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못 넘기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그렇겠죠.”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역대급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당뇨는 그 자체는 심각한 질환은 아니지만, 합병증이 다양하고, 만성질환이라는 특징이 있죠.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미국 중산층에 아니, 사실 전 계층이죠. 미국은 비만과 당뇨가 국민병이라고 할만하니까요. 아무튼, 미국에는 비만과 당뇨 인구가 엄청납니다.”

“미국 인구가 3억이 넘죠?”

“그 중, 1억 이상은 넥타르가 출시된다면, 그걸 사려고 할 겁니다.”

“1억이라?”

단순 계산으로 1인당 10만 원 정도만 계산해도, 10조라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다, 임상실험 중인, 넥타르는 완벽한 당뇨 치료제라기보다는 기존에 인슐린이 하던, 당뇨 완화 기능을 대신하는 성격이 강했다.

차이라면, 인슐린처럼, 스스로 화학물질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췌장의 베타 세포에 작용해, 체내 호르몬을 조절해 스스로 당수치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점이 달랐다.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힘을 길러주는 방식이라, 신체에 다른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점은 넥타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사기를 이용한 다거나 하는 불편함 없이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쉽게 조절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전 세계로 범위를 확대하면, 최소 5억 이상의 수요가 있을 겁니다. 대부분 당뇨 환자들은 서구의 산업국가 출신이라 구매력도 확실하고요.”

“성공만 한다면야 신약 개발의 역사를 쓰게 되겠죠.”

도성준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도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임상실험도 절차가 복잡하고, 알다시피, FDA의 플라시보 테스트는 악명이 높죠.”

“플라시보요?”

“예, 위약효과라고 하죠. 적어도 가짜 약과 비교 실험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대략, 플라시보의 효과가 30% 전후로 보니까. 그보단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 정도면 효과가 있는 약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신체라는 건 참 미묘해서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약이 효과를 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죠. FDA의 실험은 체질에 상관없이 전체 실험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약효가 있어도 통과하지 못 하는 약들도 있죠.”

“흠, 그래도 플라시보만 통과하면, 끝이겠군요?”

“뭐,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게 여러 단계를 고생스럽게 통과해서 약이 시판이 돼도, 나중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경우에는 소송 천국인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민사소송을 당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아무리 거대한 제약회사라도 파산으로 몰리게 되는 겁니다.”

진석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왠지 제가 하면 안 되는 일을 벌이는 느낌이네요.”

“하하,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약 개발에 도전하죠. 도전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 아닙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저는 용기와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멋진 말이군요.”

“그리고, 그런 용기와 도전으로 현재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약이라면, 바이엘의 아스피린을 꼽을 수 있죠. 하루에 1억 개의 아스피린이 팔린다는 걸 아시나요?”

“하루에요?”

“예, 정말 엄청난 양이죠. 인류 역사상 그렇게 성공적인 약물은 없었을 겁니다. 원래는 버드나무에서 진통제를 추출하는 민간요법에서 시작한 거죠. 아무튼, 천연에서 추출한 성분이라, 부작용이 적고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넥타르와 비슷하죠.”

“성공만 한다면 말이죠.”

“예, 아직은 좀 기다려봐야겠지만, 훗날, 역사는 가장 성공한 신약 개발 사례로 아스피린이 아니라, 넥타르를 꼽을 날이 올지도 모르죠.”

***

택시는 비가 오는 뉴욕 맨하튼을 달리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멋지겠네요. 센트럴 파크, 여기도 가을이면 단풍이 물든다면서요?”

“뭐, 그렇죠.”

도성준은 뉴욕이 익숙한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댄 김 하고는 친하신가봐요?”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저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던 대학원생이었어요.”

“멋진 친구더군요.”

“잘생기고, 아직 젊기도 하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친구죠. 굉장히 스마트해요.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죠.”

“능력도 있어 보이더군요. 너무 낙관적이지도 않고, 너무 비관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 같아 보여요. 추진력도 있어 보이고.”

“잘 해낼 겁니다.”

“도성준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FDA 승인 말입니다.”

“두고 봐야겠죠. 변수가 많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한발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죠.”

“뉴욕은 처음 와보는 데 정말 멋진 도시네요. 부동산 가격도 엄청나겠죠?”

“세상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이죠. 더없이 멋진 곳이지만,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랍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이곳으로 와야겠군요.”

“하하..”

***

북카페 오아시스 가로수점.

“민지 씨, 어때? 여의도에 새로운 카페를 오픈하려고 하는데.”

“방송국 근처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많이 모이는 곳이니까.”

“하지만, 대부분 방송국을 찾는 사람들은 연예인들 보러 오는 청소년들 아닐까요? 무슨 팬클럽 회원들 그런 사람들요. 그런 곳에 북카페를 열었다가는 팬클럽들에게 점령당할 것 같은데..”

“아무려면 어때, 팬클럽 회원들은 사람 아닌가? 난, 누구든, 자유롭게 책을 읽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북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매출이나 수익은 관계없이 말이죠?”

“돈이야, 다른 곳에서 벌면 되지. 그리고, 내 영업비밀인데, 사실은 이 북카페로 난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고.”

“엄청난 이익요? 그럴 리가요? 여기 카페들 매출은 제가 관리하는데.”

“민지 씨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야.”

“거짓말이죠? 사장님. 제가 모르는 뭐가 더 있다는 거예요?”

***

“공간주님, 말들이 기가막히네요.”

공간의 면적은 이제 150만 평을 넘고 있었다. 진석은 산 주위에서 숫자가 불어난 야생마들을 훈련시켜 사령관과 일꾼 10여 명과 같이 타고, 공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었다.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마대의 대장이 된 기분이었다. 명마 서러브레드의 후손들이라 그런지, 말들은 힘들이 넘치고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말들이 생각보다 잘 달리는데. 훈련이 잘된 것 같아. 사령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뭐든 명령만 내려주십쇼.”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미국 출장으로 피곤해졌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말의 옆구리를 발로 가볍게 두드렸다. 말은 더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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