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향긋한 송이(2) (14/183)

31화. 향긋한 송이(2)

지진의 여파로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은 상태에 따라, 일꾼들이 다시 흙으로 덮어 복구를 하거나 더러 상태가 안 좋은 것들은 잘라서 목재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복구와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벌집들은 어떤가?”

“망가진 벌집들이 꽤 되지만, 진흙으로 복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벌들은 이상 없습니다.”

“다행이군. 발전소 쪽으로 가는 수로는?”

“수로도 중간이 끊어졌지만, 지금 막 복구 작업을 끝냈습니다. 수력 발전소 쪽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산의 고지대가 생성되면서, 산의 지형도 꽤 달라졌다. 전에는 완만한 구릉 같은 느낌이었다면, 높이도 높아지고, 산 위쪽이 가팔라진 느낌이었다.

“진짜 산 같은 느낌이군.”

며칠 동안, 공간의 일꾼들이 총동원되어 대규모의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다.

***

“공간주님, 복구 작업은 거의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소나무를 심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사령관, 산 위쪽에 소나무를 심어 보자고.”

상태창 말대로 산 위로 올라가자, 기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소나무 묘목을 심고 시간을 가속하자, 나무는 멋진 적송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자라면서 아래로 작은 소나무들이 생겨나고 다시 묘목을 옮겨 키우는 방식으로 소나무를 증식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열대의 숲을 연상시키던 산은, 이제 높이에 따라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산이 되어 가고 있었다.

소나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송이 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흙덩이를 소나무 아래에 땅을 파고 채워 넣었다.

“과연 생각대로 될 것인가?”

진석은 기대 반 걱정 반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나무 아래에서는 송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게 송이버섯이군요. 희한하게 생겼네요.”

“사령관,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아래쪽을 누르는 거야. 그러면, 송이가 위로 솟아 나오거든.”

진석은 시범을 보이며, 일꾼들에게 송이 채취 요령을 가르쳤다. 그리고 송이가 자라난 주위의 흙을 이번에는 둘로 갈라서, 다시 통째로 파내었다. 그리고 옆의 소나무 아래로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무식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엄청난 숫자의 진흙 일꾼들과 진석의 시간 지배력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던 송이버섯 증식 작업은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지나자, 자연적으로 송이가 자생력을 얻고 스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간 가속을 더 하자, 송이는 산의 고지대에 거대한 군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공간주님, 대성공입니다.”

***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네요.”

호텔 로비로 나온, 마츠이는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출국하시는 날까지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좀 급하게 왔습니다. 이걸 보시죠.”

진석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뭔가요?”

마츠이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오, 송이군요, 모양도 좋고, 크기도 훌륭하고, 갓도 벌어지지 않은 최상품이네요. 향도 아주 좋은데요.”

“일본에 송이를 수출해 보고 싶습니다.”

“송이를요? 하하, 송이 채취를 하시는 분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채취한 송이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송이를요?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마츠이는 약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15톤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예? 얼마라고요?”

“15톤이요. 마츠이 상은 일본에서 상당한 거물이라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그 정도 물량을 감당하실 수 있나요?”

“15톤이라, 하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제가 한국 송이 시장이라면 잘 알고 있는데 그 정도 물량이 있을 리가 없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죠. 한 번 보여드리죠.”

진석은 마츠이를 파주의 창고로 안내했다. 그리고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송이가 담긴 상자들..

이게 다 송이라는 건가요?

“확인해 보시죠. 다들, 최상급입니다. 제가 호텔에서 보여드린 것과 같은 것들입니다.”

몇 개의 상자를 열어보던 마츠이는 감탄한 얼굴로 진석을 바라보았다.

“굉장하네요. 다들, 최상품입니다. 이렇게 좋은 송이는 본 적이 없어요. 향도 너무 향긋하고, 거기다 물량도 엄청나고요.”

“어떻습니까? 이걸 다 매입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좋은 물건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

제이에스 본사,

“300억요?”

“그래, 모두 현금으로 받았어. 통장을 확인해 보라고.”

마츠이와의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물건을 다 확인한, 마츠이는 현금으로 300억을 지불했다.

“와, 대박..이거면 당분간은 돈 걱정은 없겠는데요.”

일단 송이를 판매한 대금으로 자금난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이었다.

***

화요일 오후, 익선동 골목길은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네요.”

“사장님,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르죠.”

날씨가 좋아서인지, 희원 씨의 모습도 왠지 상큼한 모습이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더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이 힘을 겨루는지, 정체된 더운 공기를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살짝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윤희원은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날씬한 몸매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 아래로는 청결한 느낌의 베이지색 미니스커트,

“희원 씨는 연예인을 했어도 성공했겠어요.”

“어머, 연예인요? 뭐, 한때는 그런 말도 좀 들었었죠.”

“그래요?”

“예, 기획사나 그런 곳에서 제의도 받았고요.”

“한 번 도전해 보지 그랬어요?”

“사실, 외모는 그럭저럭 자신 있었는데, 끼도 없고,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재능은 없다는 거죠.”

“음, 그냥 봐서는 끼도 있고, 뭐든 다 잘할 것 같은데.”

“그냥, 그렇게만 생겼어요. 친구들도 그래서 처음 보고, 너는 잘 놀고, 술도 잘 마시고, 남자랑 연애도 잘하고 다 그럴 줄 알았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아니다 그런 건가요?”

“그래서 제 별명이 윤 허당이에요. 뭐든, 어설프다고. 그것도 멀쩡하게 잘할 것 같은 애가 못 하니까 더 허당처럼 보인다고요. 사실, 평균은 하는 편인데, 억울해요.”

“카페 업무는 잘하는 것 같은데요. 아닌가?”

“아니에요. 카페 일은 확실하게 하고 있다고요.”

익선동 북카페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시간 포인트가 제법 들어오고 있었다. 카페의 매출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허름해 보이는 헌책방 분위기가 나는 곳이라,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어와 마음껏 책을 읽는 모양이었다.

진석은 카페를 둘러보았다.

전에 왔을 때는 비가 와서 약간 칙칙한 분위기도 있었는데,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나름 분위기 있는 헌책방 느낌이었다. 문과 창이 넓어서 환기도 잘되고, 개방감 있는 공간과 레트로 감성의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낡고 불쾌한 느낌보다는 오래되고 아늑한 추억 속의 공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뭐라도 먹으러 갈래요?”

“사장님이 사 주시는 거예요?”

“예, 이 근처에 뭐 맛있는 거 없나요?”

“요 옆에, 수플레 유명한 곳이 있는데, 좀 비싸요.”

“얼마나 하는데요?”

***

“와, 딸기 수플레 팬케이크 하나에, 커피 두 잔 시켰더니 5만 원이라고요?”

“비싸죠?”

“뭐, 괜찮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비싼 것도 수두룩한 세상인데, 자본주의 시대니까,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거겠죠.”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수플레는 뭔가 식감이 부드럽기는 했다, 맛은 원래 한식 체질이라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고,

“사실, 사장님은 엄청 부자니까, 이런 건 별것도 아니겠죠. 그렇죠?”

“하하, 부자요? 뭐, 고수익 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죠.”

“좋으시겠어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러 다니고.”

“돈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사업 규모가 커지다 보니, 돈 쓸 일이 점점 더 많아지거든요.”

“주로 돈을 어디에 쓰시는데요?”

***

“이번에도 한 10억 이상 구매를 하시네요. 하하, 뭐 저야 좋지만.”

건축 자재상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공간에서 쓸 자재들을 잔뜩 주문해서 파주 창고로 옮겨놓는 길이었다. 창고에 혼자 남게 되자 진석은 공간의 문을 열었다.

송이버섯을 수출해서 꽤 돈을 벌어 두었기 때문에, 오늘은 공간에 들어가서 좀 쉬고 올 생각이었다.

“사령관, 지난번에 만들라고 한 전용 극장은 완성된 거지?”

“물론입니다. 공간주님, 이쪽으로 오시죠.”

새로 지은 건물은 극장과 오락실, 그리고 개인 서재 등이 들어가 있었다. 탁구대도 설치가 되어 있었다.

유산소 운동이나 헬스 장비가 갖추어진 체육관과는 달리 이곳에는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영화도 볼 수 있는 그런 휴식의 공간이었다.

극장으로 들어가자, 10여 석 규모의 소파가 두 줄로 자리잡고 있었다. 딱히 더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혼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영화는 오래된 서부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최신 영화보다는 옛날 영화 취향이라 주로 오래된 영화들을 보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진석이 좋아하는 장르는 서부영화였다.

총 쏘고 그런 장면보다는, 넓은 황야 지대를 누비고 다니는 그런 주인공 주변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진석이 떠올리는 미국의 이미지는 저렇게 넓고 거대한 자연의 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말을 타고 다니네.”

영화 속의 서부의 황야는 진석의 공간과는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진석의 공간은 오아시스라던가 수로를 통한 관개시설이 잘 정비되어서 푸른 녹지가 많기는 했지만, 아직 미개발 지역은 저런 황야 지대였다.

***

“말요?”

“그래, 수정 씨가 좀 알아봐 줘.”

“말을 사서 뭘 하시려고요?”

“뭐, 다 쓸데가 있다고.”

“말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한 번 알아보죠.”

“그래,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알아보라고.”

“참, 도성준 사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도성준, 왜?”

“사장님께 보고 드릴 게 있다고.”

“음, 그래?”

***

엔시스 테크 본사.

“무슨 일이십니까? 뭐, 더 자금이 필요하신 건가요?”

“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기쁜 소식입니다.”

“예? 그럼?”

“신선 복숭아에서 당뇨 질환에 반응하는 신물질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정말요?”

“예,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와, 엄청난 발견이겠네요?”

“WHO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당뇨 환자 인구는 4억 5천 2백만 명입니다.”

“그 정도인가요?”

“인구만 놓고 보면, 당뇨 환자만으로도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번째 인구 대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엄청나군요.”

“그리고 대부분, 부유한 유럽과 미국, 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쉽게 말해 먹고 살 만한 사람들입니다.”

“경제적 가치도 크다는 말이겠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저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신물질을 발견했다고 해도, 치료약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닙니까?”

“일단, 비임상 실험부터 해야 할 겁니다.”

“동물 실험 말이군요?”

“예, 일단, 동물 실험을 거쳐서 안정성을 검증받고 그다음은 여러 단계의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합니다.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실제 당뇨 개선 효과가 있는지 검증 과정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 FDA 승인을 받아야 세계 시장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겠네요. 여러 단계 중에서 하나만 문제가 발생해도 신물질은 무의미해지는 거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먼저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니까요.”

“좋습니다. 하이리스크엔 하이리턴이라는 거겠죠. 신약 개발에 도전할 때부터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과감하게 추진해 보죠. 뭐든 필요한 건 말해주십쇼. 돈이든 장비든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역시 이 사장님은 화끈하시네요. 참, 그런데 신물질에 이름을 붙여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진석 사장님이 직접 붙여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신물질 이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