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향긋한 송이(1)
수요일 오전, 익선동 골목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페는 잘되고 있는 건가?”
“어서 오세요. 사장님.”
윤희원, 28세, 전직 기상캐스터, 원래는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 일을 하다가 방송국 일이 안 맞아 퇴직 후 카페 일을 시작,
익선동점이 오픈하면서 이곳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북카페 오아시스는 레트로 감성의 거리에 맞추어 마치 90년대의 헌책방 같은 분위기로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었다.
세련된 가로수점이나, 유니크한 홍대 분위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손님은 많아요. 그런데 매출은 생각보다...”
“매출은 상관없어, 돈이야 다른 곳에서 벌면 되지.”
단층의 카페는 한옥의 마당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은 진짜 한옥은 아니고, 한옥 분위기를 내기 위해 리모델링을 한 것이지만 말이다.
비가 내리자, 건물 한 가운에 작은 마당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옥 마당 주위로 마치 마루처럼,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방학에 놀러갔다가, 비가 내리자, 마루에서 친척 형의 책을 읽고 있는 아이 같은 모습도 얼핏 상상이 되었다.
“사장님은 돈이 많으신가봐요?”
“어?”
“북카페는 취미로 하시는 거 같아서요.”
“취미라? 북카페도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야.”
“별로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하하, 세상일이라는 게 겉보기와는 좀 다른 법이라고.”
***
제이에스 본사 사무실,
“사장님, 아무래도, 돈이 부족해요.”
“무슨 말이야? 수정 씨.”
“엔시스 테크 인수비용도 많이 들어갔고, 거기에 추가로 연구비도 엄청나고요. 딸기 로열티가 많이 들어왔다고는 해도, 새로 북카페 오픈 자금도 많이 들어가고, 북카페는 수익은 별로잖아요.”
“인삼 판매 대금도 있잖아?”
“그건, 사장님이 어디에 쓰는지 다 가져가시잖아요. 대체, 포클레인은 사서, 어디에 쓰는 거죠?”
“흠, 그..그건..뭐, 다 필요해서 사는 거라고.”
“거기에 소파, 침대, 주방기구, 이런 것도 다 주문하시는 거죠? 매일 사무실 컴퓨터로 쇼핑몰에 접속하시잖아요.”
“그건,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이라고? 주식 배당을 받은 거잖아.”
“아무튼, 배당금도 회사 수익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게 그거죠. 물론, 이 회사는 사장님 회사니까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회계 관리를 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 조만간 추가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제이에스 바이오는 재정적 어려움을 맞게 될 거라는 거죠.”
“뭐, 당장은 아니잖아.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무슨 생각요?”
***
“올해는 유난히 작황이 안 좋죠. 가뭄 때문에 그럴 겁니다. 봄부터 계속 비가 안 내리고 가물더니 여름에도 마른장마, 결국 송이버섯들도 수확량이 3분 1로 줄었어요.”
“정말요?”
“덕분에 가격도 올라서, 최상품은 1kg에 100만 원이 넘고 있어요.”
“1kg에 100만 원요?”
“뭐, 금이 더 비싸기는 하지만, 송이도 이제 금값이라고들 하죠.”
순금 1kg의 가격은 7천만 원 가까이 하니, 금값 하고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버섯의 가격으로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금산에 인삼을 팔러 갔다가, 인삼 도매상에게 송이가 비싸다는 말을 듣고, 강원도 인제에 있는 송이 공판장을 찾은 길이었다.
진석은 공판장을 둘러보다가, 일본에서 왔다는 송이 수입상을 만나게 되었다. 마츠다 라는 수입상은 원래는 박 씨고 귀화한 자이니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두 개의 세계를 오고 가는 생활을 하시는군요?”
“예, 어릴 적에는 정체성에 혼란이 좀 있었지만, 결국 두 가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건 장점이 되더군요.”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송이가 귀하다면서요?”
“맞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의 송이 생산량은 10분이 수준이죠.”
“국토 면적은 더 넓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건가요?”
“아무래도 기후 영향도 있는 것 같고요. 송이라는 게 양식으로는 재배가 안 되는 거라, 산에서 자연적으로 채취하는 방법뿐이죠. 그런데, 올해처럼 가물어도 수확량이 뚝 떨어지고, 반대로 비가 많이 와도 수확이 좋지 않죠. 좀 까다로운 녀석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물량은 확보하신 건가요?”
“아뇨, 올해는 전체적으로 수확량도 많이 부족하고, 더구나, 최상급으로 자란 녀석들은 더 귀하네요. 제가 원하는 건 최상급인데요.”
“최상급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크기와 갓을 보는 거죠.”
“갓요?”
“버섯의 머리 부분 말입니다. 좋은 송이는 이 갓이 벌어지면 안 돼요. 갓이 벌어지면 보통 흔히 보는 버섯 머리가 되는 거죠. 크기는 8cm가 넘게 자라면서, 갓이 벌어지지 않아 전체적으로 남자의 그것 같은 모양이면 최상품이죠. 하하..”
“하하, 그렇군요. 일본에는 송이가 더 비싸다던데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올해는 최상급 기준으로 1kg이 한화로 200만 원이 넘고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송이를 좋아하나 보군요. 그 정도면 가격도 상당한데.”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송이가 귀하거든요, 일본에서는 한국으로 치면, 산삼과 비슷합니다. 그 정도 대우를 받죠.”
“혹시 명함을 교환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음, 제이에스 바이오라? 농업 관련 회사인가요?”
“일본에는 언제 돌아가십니까?”
“다음 주에는 가봐야죠.”
“그 전에 한 번 연락 드리죠.”
***
제이에스 본사.
“소나무 묘목은 어디에 심으시게요? 그리고 이건 송이네요. 자연산 송이죠?”
“송이버섯은 다 자연산이야. 수정 씨도 한 상자 가져가.”
“정말요?”
“그런데 저 흙이 담긴 커다란 상자는 뭐에요?”
“아, 그건, 송이 포자가 담긴 흙이야.”
“송이 포자요?”
송이는 아직 재배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는 작물이다. 단지 포자로 번식하는 버섯이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고, 포자가 멀리 이동하지 못하고, 반경 1미터 이내에 포자가 퍼지는 특성 때문에,
송이를 채취하고 다음 해에 다시 그 자리에 송이가 다시 자란다는 정도가 알려졌을 뿐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송이 채취를 하는 농가를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고, 채취한 송이가 있었던 곳의 흙을 통째로 퍼온 것이다.
“아니, 흙을요?”
“예, 대신 보상은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상당한 보상액을 제시하자,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아저씨는 진석을 데리고 자신이 송이를 취한 장소로 동행해 주었다.
“와, 여기군요? 주변에 적송이 많이 보이는 위치네요.”
“송이가 자라는 환경이 있어요. 나는 송이 캐러 다닌 것만 2십 년째라 이제 딱 보면 알지.”
“하하, 전문가시겠네요. 여기가 이번에 송이를 채취한 자리라는 거죠?”
“맞아요. 여기서 꽤 좋은 송이들이 나왔지, 내년에 여기로 오면 또 자라 있고, 그런데 여기 흙을 다 파헤쳐 가면, 여기 송이들은 끝인데.”
“송이 포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서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이 소나무 아래 흙을 전체를 퍼가기로 한 겁니다. 그러면, 어쨌든, 그 흙에서는 포자가 퍼진 상태니까, 조건만 맞다면, 송이가 자라겠죠.”
“뭐, 생각은 그럴듯한데, 그런 식으로 송이를 얼마나 재배하겠어요? 퍼간 흙에서 송이가 나올지도 의문이고.”
“하하, 확실한 건 없죠. 저도 농업 연구를 하는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실험 차원에서 해보는 겁니다.”
진석은 장소를 확인하고,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아저씨에게 허락을 받은 후에, 인부들을 불러 송이가 있던 자리의 흙을 가로 세로 깊이, 1미터 정도로 파내기 시작했다. 흙을 파는 게 아니라 주변부를 파 내려가서, 마치, 흙을 떠올리는 작업을 해서 상자에 옮기는 일이었다.
“살다 살다, 또 이런 별난 광경은 또 처음이네. 이렇게 해서, 송이가 양식 재배가 될까?”
“글쎄요. 알 수 없죠. 한 번 해보는 겁니다.”
***
진석은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파주로 향했다.
창고에 혼자 남게 되자, 공간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묘목을 가지고 오셨군요.”
“그래, 사령관, 산에 소나무를 심어볼 생각이야.”
“소나무 말입니까?”
송이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한 데, 송이버섯은 주로 적송 소나무 아래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소나무 아래에 송이버섯이 자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일이었다.
송이버섯은 진석이 고려인삼에 이어 새로운 캐시카우로 키워 보려는 작물이었다. 일단, 양식 재배가 불가능해 희소성이 있고, 수확량이 해마다 불안정해서 가격 변동이 심한 편이었다.
특히 올해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크게 줄어서, 가격이 폭등한 상태, 만약, 진석이 공간의 산에서 송이버섯을 키울 수 있다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된 씨앗이나 모종을 구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송이가 난 자리에서 해마다 송이가 자란다는 것에 착안해서 송이 채취를 마친 소나무 아래의 땅을 통째로 퍼온 것이다.
“일단은 소나무부터 심어보자고.”
“알겠습니다. 공간주님, 작업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아시스에 일꾼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진석은 사령관을 픽업트럭에 태우고 먼저 산으로 출발했다. 산에는 이제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처음에 심었던 흑판수부터,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그리고 주변의 장미와 여러 가지 꽃들도 무성하게 자라 있는 모습이었다.
산에 도착해서 소나무를 심으려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소나무는 침엽수로 한대림에 자라는 수종인데, 전체적으로 열대 기후에 가까운 이곳에서 자랄까 하는 의문이었다.
진석은 상태창을 불렀다.
- 소나무의 식생에 적합한 기후는 온대와 한랭대 기후입니다. 공간의 평균 기온은 열대에 가깝기 때문에, 소나무에 적합한 기후는 아닙니다.
“역시 소나무는 무리인가?”
-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산의 높이를 500미터까지 상승시키면, 소나무의 식생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산을 높이라고? 산을 더 확장하라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산의 면적도 추가로 더 확장하고 높이를 현재 130미터에서 500미터 이상으로 상승시키면, 소나무의 식생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좋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대신, 산의 융기 작용으로 기존 나무들에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소나무 생장 환경을 위해 높은 고지대가 생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에 산을 확장했을 때보다 피해가 더 심하게 발생할 수 있으니 그 점 유의해 주십쇼.
“완만하던 산에 고지대가 만들어질 거라는 말이지? 뭐 어쩔 수 없지, 소나무를 심어야 송이 버섯도 키울 수 있을 테니까.”
- 산의 확장과 고도 상승을 위해, 1천 시간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그 외에 산의 융기로 인해 각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산을 확장하고 고도를 상승시키시겠습니까?
“그래, 산을 더 크고 높게 만들어 줘.”
- 산의 확장과 고도 상승 작업을 실행하겠습니다. 융기 작용으로 지진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산에서 즉시 하산해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령관, 지진이 일어날 거야, 어서 피하자고.”
“지진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진석은 픽업트럭을 타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차가 산을 벗어나 오아시스 중간의 수력 발전소 앞에 멈추어 섰을 때,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산 주위가 뿌옇게 흙먼지로 휩싸이고 있었다. 뒤이어 강력한 흙먼지 바람이 진석이 타고 있는 픽업트럭으로 몰려왔다.
“공간주님, 엄청난 먼지 폭풍입니다.”
“괜찮아, 사령관, 금방 사라질 거야.”
“역시, 공간주님이 하신 일이시군요. 공간주님의 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산을 더 크게 하신 건가요?”
“보면, 알 거야. 더 크고 높아졌을 테니까. 산에 고지대가 형성되면 거기에 내가 가져온 소나무를 심을 거야.”
“알겠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먼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공기가 맑아지자, 진석은 다시 픽업트럭을 몰고 산으로 향했다.
“산이 많이 훼손된 모습인데요. 지진의 충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사령관의 말대로, 산의 높이가 많이 상승해서인지, 피해를 입은 나무들도 상당한 숫자였다.
“사령관 복구 작업이 쉽지 않겠는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맡겨 주십쇼.”